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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와 장학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강호>는 화면 가득 거친 사내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엇갈린 운명이 비장하게 펼쳐지는 영화다. 그러나 <강호>의 감독 황정보(30)와 시나리오 작가 두치랑(25)을 대면하고, 그들의 영화를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밝고 앳돼 보이기만 하는 두 사람. 독립영화인 장편 데뷔작 <푸보>로 제작자 증지위의 눈에 띄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거느린 채 자신의 첫 메이저영화를 만든 감독과 “홍콩에서 누아르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최초의 여자, 혹은 최연소 작가”로 기록될 시나리오 작가가 지닌 비장의 무기는 바로 젊음이었다. 그간의 작업이 아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질문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한층 활기가 더해졌다.
대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황정보 l 처음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굉장히 행복한 경험이었다. 유덕화나 장학우 같은 배우들이 신인감독인 나
첫 메이저영화 <강호> 만든 감독 황정보, 시나리오 작가 두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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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 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타이의 영화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한국의 영화학자 김소영 교수. 허우샤오시엔을 좋아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카페 뤼미에르>를 보느라 하루 미뤄 성사된 인터뷰지만, 친근한 웃음속에서 이뤄진 편안한 만남이었다. 아마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진지하게 소개하는 첫 번째 문답일 것이다.
<아이언 푸씨의 모험>(The Adventure of Iron Pussy)은 2004년 베를린과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마이클 쇼와나사이의 비디오 연작의 제목이다. 한때 남자였으나 이제는 방콕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로 통하는 아이언 푸씨가 오늘도 매매춘 여성들을 괴롭히는 범죄자들 소탕으로 밤을 밝힌다는 영화다. 이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타이 카로 스튜디오의 구태의연한 영웅담을 퀴어 모험 액션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제목은 한글제목으로 번역하면 “강철 여성성기의
영화평론가 김소영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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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메이지 시대. 에도에서 도쿄로 이름이 바뀐 지 27년이 지난 해다. 화려한 신문물로 어두운 중세가 밝은 근대로 넘어가던 이때에 수도 곳곳에서 괴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낙인 같은 손자국을 등에 찍어 사람을 태워버리는 화염마인,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검은 동물을 데리고 다니며 갈고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찢어버리는 야미고젠, 승복으로 만든 자루에 반딧불 같은 영혼을 담아 둘러메고선 밤길을 걸어가는 영혼 장수…. 요괴인지 인간인지 모를 존재들이 벌이는 사건들은 점점 불운한 섭정 귀족인 타카츠카사 가문의 주변으로 모여든다.만화가보다는 원작자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 <동경이문>(학산문화사 펴냄)은 악령 시리즈, 고스트 헌트 시리즈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호러판타지 작가 오노 후유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작품 전반에 괴기의 기운이 넘쳐나지만, 완전히 드러내놓은 판타지라고 보기는 또 어려울 것 같다. 사건을 설명해가는 반(半)전지적 시점의 인형사와
수도에 날뛰는 밤과 어두움, 메이지 미스터리 <동경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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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하트 <Miss Chocolate>과 플라스틱 피플 <Travelling in the Blue>대중음악은 기술이 아니다. 물론 표현의 기교가 중요한 건 대중음악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형상화하는 한도 내에서다. 줄리아 하트의 싱글 <Miss Chocolate>과 플라스틱 피플의 미니 음반(EP) <Travelling in the Blue>는 기교적으로 허술한 반면, 풋풋하고 알토란 같은 속살을 보여준다. 줄리아 하트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황금의 멜로디 콤비’로 활약한 정대욱(기타, 보컬)이 결성한 밴드이고, 플라스틱 피플은 음악잡지 기자 출신인 김민규(보컬, 기타)가 메리 고 라운드 해체 뒤 윤주미(보컬, 드럼)와 결성한 밴드다. 줄리아 하트는 영화 <후야유>에 삽입된 <오르골>로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듯.줄리아 하트의 싱글은 문학적이고 예민한 낭만적 소년의 감성을 간직한 대학
기교의 빈틈을 채운 한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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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만한 영화가 된 한해.” 영화 관계자들은 2003년 한국 영화계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한 소재들과 획기적인 상상력, 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관객으로 풍요로웠던 한해였다. 작가영화와 관객이 서로를 소외시키던 그 오랜 관습이 서로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며 경계를 지우며 그렇게 소통을 시작한 한해였다. 21권째를 맞이한 은 행복했던 영화계의 “될 만한” 시나리오를 선택하여 그 소통이 단순한 우연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편집위원들에게 옥석 중의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는 풍요로운 상찬의 고민을 안겨주면서 말이다.총 10편의 시나리오로 구성된 이번 선집은 무엇보다 다채롭다. 그 다양함을 두개의 주제로 나눈다면, 하나는 한국 근현대사 돌아보기, 또 하나는 원작 리메이크하기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줄기가 모두 ‘다시 읽기’의 작업이라는 사실. 실제 사건 혹은 원작이 ‘다시 읽기’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영화적 상상력의 참신함이 중요하다.
2003년 한국 영화계를 밝힌 시나리오 10편, <2003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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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이 1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 <2046>을 보다가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이 말한 그 1분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장만옥은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즉 ‘화양연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은 그 1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기억했다 해도 그에겐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생의 전부인 것이 상대방의 마음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같은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눈대도 영원한 사랑을 보장받을 순 없다. 왕가위가 믿는 유일한 방법은 <화양연화>의 양조위처럼 앙코르와트의 돌벽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봉인하는 것이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속편인 동시에 <아비정전>의 후속편이다. 차우는 <화양
왕가위를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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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1995)이라는 PSB(부산방송) 개국 특집드라마가 있다. 서울 샌님 하나가 부잣집 부모 밑에서 방황하다가 어찌어찌해서 자갈치시장까지 흘러오게 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의 삶에 감동받아 건전청년으로 교화된다는 이야기다. 서울 샌님 역의 욘사마와 길다방 아가씨 역의 진재영이 주연이었던(조연으로 등장한 횟집처녀 장서희도 있다), 500만 부산광역시민들 사이에서도 ‘카더라’ 구전으로만 떠도는 전설의 드라마다. 여기서 부산사투리는 서울말의 세련됨에 대구를 이루는 투박한 이방인의 언어였다. 이러니 진재영과 욘사마가 맺어질 리가 없다. 문명어를 구사하는 문명인은 결국 문명으로 돌아갈밖에. <해풍>의 부제는 “자갈치의 포카혼타스”가 아니었던 것이다.나는 부산 출신이다. 언어에 나름대로 소질이 있다 자부하는지라, 경쟁지에서 일하는 서울 경력 수년의 J기자보다는 더욱 상큼한 서울말을 구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 술 취했어’를 뜻하는 부산사투리
부산에도 로맨스를 만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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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은 예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적들은 그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텔레비전 뉴스는 한가롭게도 새마을운동에 나선 자이툰 부대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파병을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슬픈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형제와 아들이 흘리는 피를 보게 될 것이며, 슬픔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더욱 두려운 일이 있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NKHRA)안이 9월28일 상원을 통과했다. 이로써 미국은 부시에게 악의 축으로 손꼽혔던 3국 모두에 적당한 미국법 하나씩을 선물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다. 이라크해방법(1998), 이란민주법(2003) 그리고 북한인권법(2004)이다. 알려진 것처럼 현재 미상원에는 북한에 관한 또 다른 법안인 ‘북한자유화법안’(NKFA)과 이란을 겨냥한 ‘이란 자유와 지원을 위한 법안’(IFSA)이 상정되어 있다. 자유와 인권, 민주와 해방 등 이 법들을 수식하고 있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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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평소에 그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사물들이 많이 있다. 사람의 시선을 끌며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물건들의 그늘에서 이들은 ‘엑스트라’로서 가까스로 제 위치를 지키며 그 나름의 존재를 이어간다. 옷의 단추도 그런 물건들 중 하나다. 셔츠에 달린 단추의 존재는 그것들을 매일 채우고 푸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다. 셔츠는 주목을 받지만 단추에는 웬만해선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목걸이 같은 장신구와 친척관계라 할 수 있으나, 값싼 대량생산의 길에 들어선 이래 그 자체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남성 정장에서 와이셔츠의 단추는 그나마도 넥타이에 의해 가려진다. 이 영원한 단역의 존재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의 뜻밖의 부재 또는 왜곡을 통해서 드러난다. 단추가 떨어져서 셔츠의 소매를 채울 수 없게 되었을 때, 또는 채워야 할 단추가 풀어졌거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존재를 의식한다.어렸을 때 옷의 단추
단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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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신비한 물체> Mysterious Object at Noon2000년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상영시간 85분화면포맷 1.66:1 비아나모픽음성포맷 DD 2.0 타이어자막 영어출시사 플렉시필름(영국)<렌쿠 애니메이션: 겨울날> 連句アニメション 冬の日2003년감독 가와모토 기하치로 외 34명상영시간 39분화면포맷 4:3음성포맷 DD 2.0 일본어자막 일본어출시사 이마지카(일본)<다섯가지 장애물> De Fem benspænd2003년감독 요헨 레스 & 라스 폰 트리에상영시간 87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5.1 덴마크어자막 영어출시사 코치로버(미국)제9회 부산영화제에서 설화에 토대를 둔 <열대병>의 갑작스런 후반부 전개에 관객이 당혹한 모양이지만 (나는 <열대병>을 보지 못했다) 전작인 <정오의 신비한 물체>에서 감독은 같은 방식을 이미 보여주었다. 즉 <정오의…>는 ‘신비한 물체
릴레이식 제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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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冷情と熱情のあいだ2001년감독 나카에 이사무상영시간 125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5.1자막 한글, 일본어, 영어출시사 마블엔터테인먼트(2장-한정판, 1장-일반판)오디오 코멘터리를 ‘학구 ·정보파’와 ‘잡담 ·재미파’로 나눈다면, <냉정과 열정 사이>는 단연 후자에 꼽힐 것이다. 코멘터리에는 이 판타지 로맨스의 화면을 곱게 장식했던 두 주인공 대신 조연인 유스케 산타마리아와 시노하라 료코(위에서 두번째), 프로듀서와 감독이 나오는데 예상대로 산타마리아(위에서 세번째, 산타마리아는 감독이 이 장면에 대해 “이것은 유스케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고 칭찬(?)하자 득의양양)의 독무대다. <춤추는 대수사선>으로 유명해진 그는 실제로 일본에서도 왁자한 입담으로 유명한 인물. 이탈리아 로케를 ‘2박4일’로 다녀왔다느니(왼쪽 네번째, 실제로는 일본 세트 촬영이었다), 동료 연기자가 묵었던 방에 젖은 팬티가 널려 있어
젖은 팬티 인터넷으로 팔까 했다고?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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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때로 예술이 삶보다 거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보면 삶이 그 위대한 자리를 쉽사리 내줄 것 같진 않다. <취한 말들을…>에서 무엇을 느꼈든 그것을 보통의 영화적 경험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꼬마가 병든 형을 안은 채 말을 끌고 국경을 넘을 때, 우린 영화적 장치를 모두 잊고 그들의 현실로 뛰어들게 된다. 근래 이란영화가 미소와 진실과 행복이 아닌 슬픔과 현실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꼬마들에게 닥친 험난한 환경에 같이 넋놓고 슬퍼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그곳 사람들은 삶과 죽음 앞에서 매번 불가사의한 힘을 보여준다. 그걸 삶에 대한 단순한 낙관이라 부를 순 없다. 그러니 ‘국경을 넘은 아이가 수술에 성공했을까’ 같은 궁금증은 영화 속에 묻어버려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건 소년의 삶에 대한 의지이며, 남은 자는 삶을 이어갈 거란 사실이다. 안타까운 건 바흐만 고바디를 포함한
가혹한 동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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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도 없어요.” “도무지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썼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한 묶음의 종이를 들고 강단에 서있는 발표자를 향해 청중의 십자포화가 날아간다. 질문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발표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다. “음, <맨 인 블랙>같은 느낌으로 코미디 반, 액션반 인 일종의 킬링타임용 영화인데…” 궁색한 답변은 “어디서 웃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라는 가차없는 비판에 금방 오그라들고 만다. <우측사진설명>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작가학교 출신으로 올해 시나리오 공모전에 수상한 작가들.(오른쪽부터)
안슬기(34) <다섯은 너무 많아>로 영화진흥위원회 독립디지털 장편 제작 지원작 선정
박신우(27) <금붕어>로 제9회부산국제영화제 선재펀드 수상
오승희(32) <퍼플 레인>으로 중앙일보 시나리오 공모전 가작 수상
김선아(33) <당신이 죽은 사이에>로 경상북도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 수
충무로의 펜 타고 날래. 시나리오 지망생들 “꿈을 향해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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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타리가 올해 들어 텔아비브영화제 등 이런저런 국제영화제에서 상받는 일이 늘고 있다. 이전까지 개막작을 외국 다큐멘타리로 했다가 올해 한국 다큐멘타리로 바꾼 건 이런 자신감의 반영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이 국내 유일의 다큐멘타리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올해 4회 행사(28일~11월4일, 서울 사간동 서울아트시네마)를 치르고 있다. 다큐멘타리 집단 푸른영상을 이끌어 온 김 감독은 지난해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타리 <송환>으로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선댄스영화제의 상(표현의 자유상)을 받기도 했다. 인디다큐페스티벌 1,2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가 지난해 잠시 자리를 비운 뒤 올해부터 새로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을 맡았다.
“영화제를 시작할 때 조직위원회를 만들자, 이런 적은 규모의 영화제에서 불필요하다 하는 식의 말이 오갔지만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큐멘타리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에서 커지고, 한국 다
인디다큐페스티벌 김동원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