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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기이자 취미는 바보짓이다. 이건 자조적일 뿐 자학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이 말은 자위적이다). ‘바보짓’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쉽게 풀이하면 닭대가리 짓이요(전국의 닭님들아, 미안), 어렵게 말하면 형이상학적 부조리와 모순이 어우러져 탱고를 추는 꼴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 말마따나 죽은 자들의 찌꺼기가 뭐라 하든, 내가 바보짓을 자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 짓을 하게 되었을까? 일단은 나의 탄생부터 바보짓이었다. 나는 정자가 난자를 껴안으려 했던 1970년대 끝자락의 어느 찬란한 여름에 벌어진 사건을 막았어야 했다. 과대망상자의 뇌를 빌려 생각해보건대, 그 찐득했을 밤(혹은 낮?)과 1980년대 한국사회에 일어난 중차대한 사건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카오스모스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대체 어떤 실수들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자신의 바보짓을 (바보스럽게도) 홍보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사건은
[이창] 나의 바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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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엑소시스트>라 하면, 1973년을 버리버리벌벌벌 떨게 했던 전설의 공포영화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귀신무서워하기계의 권위자인 필자는,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특히, 미국 개봉 당시 졸도 관객을 양산했다고 전해지는 그 유명한 ‘360도 목 돌아가기’ 장면은 오히려 상당히 코믹하게 느껴졌더랬는데, 그 천진난만한 악마의 옹알이와 함께 사장실 회전의자 돌아가듯 돌아가던 그 목, 상당히 귀엽지 않았나요? 뭐, 아님 말고. 여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러나, 이러한 <엑소시스트>의 영향으로 완전 방심 상태로 관람에 임한 필자를 실로 오랜만에 바짝 쫄게 하였다. 물론, 기독교 교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 설파하는 듯한 당 영화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거북살스런 것임에 틀림없었다만, 뭐 딱히 기독교도라서 <벤허>를 재밌게 봤던 건 아니니까.
사실 필자가 당 영화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는 대목은, 그런 종
[투덜군 투덜양]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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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따르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담는 예술이다. 그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무엇인가? “한순간에 사건의 의미와, 사건이 비로소 표현력을 얻게 되는 사건의 형식적인 구조를 동시에 얻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클라시커50 사진가>는 적고 있다. 말이 좀 어려우나 브레송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이 어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스스로는 사진을 찍기 전이나 후에만 생각을 하고 사진 찍는 순간엔 무념무상이었다고 하지만 아마 그의 사진 대부분은 셔터를 누르기까지 많이 기다리고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고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무조건 기다리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식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남과 다르지 않다면 결정적 순간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브레송의 사진 가운데 카페에 앉아 있는 마릴린 먼로를 찍은 사진과 미국의 야구장을 찍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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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강한 인상을 가진 배우다. 나직하고 무게있는 목소리를 지닌 그는 <지구를 지켜라!>의 그로테스크한 형사와 드라마 <야인시대>의 미와 경부, <친구>의 위협적인 깡패처럼 악역이나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모습도 있었다. 한때 구국을 외치던 엘리트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택시기사 아내에게 얹혀사는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의 ‘이 선생’은 집착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마르고 날이 선 듯한 외모를 비집고 떠올랐던, 허영도 있지만 따뜻하고 유머러스했던 중년 남자. 이재용은 영화 <도마뱀>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의 모습과는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주인공 아리(강혜정)의 삼촌인 서정 스님은 부모 잃은 어린 조카가 여인이 되기까지, 한 걸음 거리를 두었지만 넉넉한 애정으로 감싸안아, 운명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인물이다. 불혹을 넘긴 이재용은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더
<도마뱀> 배우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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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렘린2>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스튜디오 제작 속편의 공식에서 벗어난 여러 가지 참신한 시도가 돋보였던 영화다. 그 가운데 핵심은 ‘속편을 전편의 단순한 연장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실제로 이 영화는 주요 등장인물과 괴물 그렘린이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 외에는 전편과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더 나아가 조 단테는 <그렘린2>를 ‘속편에 대한 강력한 풍자’로 발전시켜 전편에서의 심각했던 분위기를 마음껏 뒤틀어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전편의 ‘크리스마스가 싫은 이유’ 장면을 대사 한마디로 뭉개버리는 대목이 그렇다. 중반부에서 갑자기 필름이 불에 타며 상영이 중단되고 그렘린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안팎의 경계까지 넘나들려는 과감한 연출로 관객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 객석에 앉아 있던 레슬러 헐크 호건의 ‘버럭!’으로 상영이 재개된다는 전개는 이마저도 하나의 즐거운 농담이라는 영화의 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렘린2&
[코멘터리] 전편을 즐겁게 풍자한 속편, <그렘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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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미국인 조나선은 기억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그의 방 벽은 수집품으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사진 주변으로 그 사람과 관계된 물건들이 비닐백에 담겨 빼곡히 꽂혀 있다. 비행기표, 열쇠, 테이프, 주사기부터 돈, 틀니, 과자 부스러기, 팬티에 이르기까지, 이런 걸 왜 모으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 그는 ‘잊을까봐 두려워서’라고 대답한다. 어느 날 할머니가 죽으며 남긴 할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사진 속 여자를 찾아 우크라이나에 가기로 한다. 거기서부터 그와 안내를 맡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개 한 마리의 로드무비로 바뀌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온 편지>는 코미디와 드라마가 반씩 섞인 사랑스런 소품이다. 2차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에 거주한 유대인의 비극이 드라마의 축이라면 그 옆으로 훈훈한 인정과 시골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사진)이 넉넉한 미덕을 발휘한다. 우크라이나에는 조나선처럼 기억의 상자를 안고 사는 할머니와 기억을 파묻고 살았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두 사람
유대인 비극에 바친 헌사,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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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레이놀즈가 “여자를 때리면 관객의 항의가 없겠냐”고 걱정하자 로버트 알드리치는 “괜찮아, 자네 매력 때문에 용서할 거야”라고 말했다. 이미 스티븐 매퀸과 똑같은 일을 저질렀던 샘 페킨파나 돈 시겔, 알드리치의 1970년대 영화는 남성성을 두고 서로 경쟁했다. 코가 부러질 정도가 돼야 재미있다고 인정했다는 알드리치의 영화 중에서도 스트레이트한 영화가 <터치다운>이다. 싸우는 남자를 다루는 게 주특기인 알드리치가 자신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에 손대지 않았을 리 없다. 알드리치, 레이놀즈, <대부>의 제작자 앨버트 S. 러디, 미국 남부의 유일한 스포츠라는 미식축구, 교도소의 국가대표급 망할 녀석들 그리고 레너드 스키너드의 노래. <터치다운>은 영화가 거칠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쓸어모은 영화다. 감옥에 간 전직 미식축구 선수가 죄수들로 구성된 ‘사나운 녀석들’팀을 이끌고 준프로팀 수준의 교도관팀과 겨룬다는 설정엔 그리 대단한 것이 없었으나,
거칠어지고 싶은 거친 영화, <터치다운: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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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17일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다섯명의 괴한이 체포된다. <대통령의 음모>는 단순 절도죄로 묻힐 뻔했으나 2년 뒤 닉슨의 사임을 예고한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테인의 이야기다. 전작 <암살단>에서 사건을 쫓다 희생되는 신문기자의 모습을 빌려 음모와 암살의 시대를 통감한 앨런 J. 파큘라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영화화에 더없이 어울리는 감독이었으며, 그에 부응하듯 <대통령의 음모>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당시 정보 제공자였던 ‘딥 스로트’의 정체가 2005년에 드디어 밝혀지면서 <대통령의 음모>가 덩달아 주목받은 적이 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DVD의 음성해설에서 한 나라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윤리관을 재정립한 사건과 그에 충실한 영화가 대다수 미국인에게 그런 식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게 미국의 현실이라며 걱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긴 당시에도 그런 일이 없진 않았다.
[명예의 전당] <대통령의 음모: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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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싸가지 없는 재벌 3세를 다룬 영화들은 통 변화가 없어 보인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재경이 유산 상속을 받기 위해 강원도 산골 학교에서 일으키는 해프닝과 애틋한 첫사랑의 감정이 그렇다. 하지만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은근히 매력있다.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기대 이상으로 자기 몫을 해내는 현빈과 이연희의 매력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DVD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 포스터 촬영현장은 이 두 배우가 지닌 끼와 매력을 듬뿍 담아내고 있다.
두 배우의 끼와 매력, <백만장자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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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이 제작자로 나선 액션영화들은 늘 좀더 빠르고 강함을 추구한다. 비슷한 구성의 이야기와 홍콩 무술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맨손 격투, 그리고 총격전이 빠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갖춘 <트랜스포터 엑스트림>의 액션은 전편보다 강화되었지만,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다. 시간 때우기엔 적당하지만 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그런 영화다. 반면 DVD 타이틀의 화질과 음향은 뛰어나다. 대부분의 액션장면에서 이 타이틀은 훌륭한 효과음을 들려준다.
강한 액션, 훌륭한 효과음, <트랜스포터 엑스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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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버란 이름의 아파트로 이사 온 매력적인 이혼녀 칼리 노리스에게 다가오는 유혹과 죽음의 그림자. 그녀의 곁을 젊고 매력적인 지크와 추리소설 작가인 잭이 치근거리며 맴돈다. <슬리버>는 첨단 장치로 무장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과 관음적 요소로 <원초적 본능>의 성공을 재현하려는 에로틱스릴러. 팜므파탈의 절대적 섹시미로 남자를 농락한 샤론 스톤은 정반대의 역할로 관객을 유혹한다. 화질과 음향은 적절한 수준이며, 부가영상은 하나도 없다.
샤론 스톤의 에로틱 스릴러, <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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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극히 단순하다. 남편과 남편이 운영하는 클럽에 근무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 남편은 사립탐정을 고용해 아내의 불륜을 추적하고 결국 청부살인을 사주한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치정극이 코언 형제의 손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한마디로, 마술 같은 경험이다. 인물들의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공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나, 인물들 뒤로 배치된 사물이나 적막함 가운데 퍼지는 사운드, 그리고 인물들의 움직임보다 한 템포 전에 혹은 뒤에 등장하는 그림자를 활용하는 능력은 경탄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 공간 안의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듯 포착해내는 촬영은 상황 속에 갇힌 인물들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데 더없이 적절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루는 각 장면들의 밀도는 상당히 높다. 그건 영화 속의 그 무엇 하나도 무의미하게 등장하는 법 없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뜨겁고 끈끈한 코엔식 치정극, <분노의 저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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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판 멜로는 어떤 모습일까? 고구려 창시자 ‘주몽’의 일대기를 다룬 사극 <주몽>은 고조선이 멸망한 뒤 기원전 37년에 고구려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나는 주몽(송일국)과 여걸 소서노(한혜진)의 운명적인 사랑이 펼쳐진다. <허준>의 최완규 작가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공동집필하고, <인어아가씨>의 이주환 PD가 연출을 맡았다. 제작진은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왕 주몽을 통해 우리의 역사가 피비린내 나는 희생과 많은 노력뿐만 아니라 사랑의 힘까지 더해져 만들어졌음을 보여주겠다”라고 밝혔다. ‘우리 민족 역사의 첫 하늘을 연 대서사 러브스토리’라는 기획의도에서 볼 수 있듯 주몽과 소서노의 멜로 라인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얘기다.
<해신>에서 염장 역으로 인기를 끌었던 송일국이 주몽 역을 맡았다. 송일국은 “드라마 초반에 주몽은 유약하고 소심한 왕자지만, 궁에서 쫓겨나 방랑 생활을 하고 소서
고구려 건국신화를 배경삼은 멜로드라마, <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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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극본 임성한, 연출 이영희)가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매회 화끈하게 펼쳐지는 등장인물들간의 싸움과 말다툼, 주인공 커플의 닭살 연애,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음모와 반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이 롤러코스터 드라마는 보는 재미만은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친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는 설정으로 언론의 몰매를 맞기는 했지만, 사실 이 비틀어진 설정이야말로 <하늘이시여> 재미의 원천기술이다. 계모의 구박으로 가난하고 불행했던 신데렐라 자경(윤정희)은 어느 날 친절한 요정 영선(한혜숙)의 도움으로 상류사회에 거주하는 왕자 왕모(이태곤)를 만난다. 신데렐라를 도와주는 요정이 바로 자경이 어릴 적 생이별한 친엄마 영선이고, 이 ‘친절한 영선씨’는 자신이 ‘친자식처럼’ 길렀다는 왕모와 자신의 ‘친자식’ 자경을 과감하게 결혼시킨다.
자경과 영선 사이에는 드라마 단골 소재인 고부간의 갈등이 존재할 리
욕망은 진실보다 중요하다, <하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