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실. 막 수술을 마치고 나온 듯한 남자가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딸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다. 갑자기 남자의 숨이 가빠진다. 소녀는, 그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남자는 세상을 등졌고, 소녀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린다.
며칠째, 아니 몇년째 같은 꿈이다. 이 꿈이 나를 찾았다는 것은 곧 3월이 온다는 암시다. 남들에게 3월은 꽃 피고 새 우는 설레는 계절이라지만 내겐 악몽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아직 쌀쌀함이 남아 있던 3월의 어느 날, 난 아빠를 잃었다. ‘음주가무’ 중 아빠의 소식을 들었던 터라 걱정보다 짜증이 앞섰다. 아빠는 곧 수술실로 들어갔고, 난 속 편히 잠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만신창이가 돼 수술실을 빠져나왔다. 놀랐다. 아빠가 저렇게 가녀린 허벅지를 가졌는지, 아빠의 눈꺼풀이 저토록 무거웠었는지 처음 알았다. 그 사이 아빠는 조금씩 세상과의 짧았던 인연을 거두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속이 울렁거렸다.
문제는 그 다
[오픈칼럼] 눈물 나는 이름, 아빠
-
<박하사탕> 장관에 이어 <서편제> 장관이 탄생했다. 지난 3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4개 부처 개각에서 배우이자 전 국립중앙극장장인 김명곤이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 배우, 연출가, 극작가 등으로 활동해온 김명곤은 93년 <서편제>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장 예술인이 입각하게 된 것은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에 이어 김명곤이 두 번째. 국립중앙극장장 재직 당시 보여준 뛰어난 업무 역량이 장관 발탁의 이유라는 후문이다.
배우 김명곤,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 임명
-
이제는 유명해진 저 <왕의 남자>가 만일 스크린쿼터를 1/2로 대폭 축소한 2006년 12월쯤 개봉했다고 치자. 과연 2006년 12월판 <왕의 남자>도 ‘관객 1천만명’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을까?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월드컵 축구 우승팀 맞히기 정도에 걸 만한 금액을 선불로 내는 것이라면 당신은 과연 ‘YES!'에 걸 수 있을까? 그래도 ‘YES!'다? 그렇다면 만일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승부라면???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그러면서도 대다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환상 가운데 하나는 ‘투명한 것은 선이다’라는 논법이다. 이 논법을 약간 변형-발전시키면 ‘세상에 공정한 게임은 존재한다’는 논법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멀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IMF 사태) 직후부터 득세한 한국 재벌의 투명화 작업(또는 공작?)을 비롯해 노무현 정권 들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까발리기 따위도 큰 틀에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저강도전쟁’
-
IHQ가 영화사 마술피리의 지분 51.43%를 인수했다. 공시에 따르면“마술피리와 IHQ의 계열사 아이필름의 영화제작 인프라 구축 및 향후 공동제작, 전략적 제휴”를 목적으로 한 주식 취득이다. 취득 예정일은 3월 20일이다. <마술피리>는 남선호 감독의 가족코미디물 <모두들, 괜찮아요>를 3월 24일 개봉한다. IHQ의 이번 지분 확보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가 아이필름 대표를 겸하기로 한 인사 결정과 연계된 움직임으로 보인다.
IHQ, 마술피리 51.43% 지분 확보
-
-
여행을 하다보면 불현듯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직접 볼 때 성당이 단순히 신과 내가 만나는 장소 이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와 정교한 조각품, 거대한 벽화와 웅혼한 파이프오르간 소리, 그 속에서 종교는 문자나 음성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몇 곱절 숭고해진다. 사람들은 신을 만나러 성당에 가는가? 예술의 마력에 이끌려 성당에 가는가? 중세미술이나 바로크음악에 관해 책으로 읽는 것으론 알 수 없는 것을 어떤 장소가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여행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사는 745년에 만들어졌다는 오래된 절이다. 절이라고 하면 석굴암과 불국사만 대단한 줄 알았던 나는 도다이사의 엄청난 크기에 입이 딱 벌어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1709년에 재건했다는 대불전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란다. 그 거대한 건축물은 일본은 작은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을 단숨에 무너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류와 일류
-
LJ필름 인수 등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뛰어든 이노츠가 3월2일 공격적인 라인업을 발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배급시장에 의욕적으로 뛰어들 이노츠는 자회사 LJ필름이 제작하는 조의석 감독의 <조용한 세상>(김상경, 박용우 주연)과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영, 강동원 주연) 등을 비롯해 8편의 한국영화를 확보했다.
이노츠의 라인업에는 3월 11일 크랭크인하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오정해 주연)도 포함되어 있다. 박기형 감독의 <사선에서>(감우성 주연), 곽재용 감독의 한일합작 프로젝트 <사이보그 소녀> 등도 이노츠 라인업에 합류한 상태다. 이노츠는 이외에 프리프러덕션 단계의 <(가제)레드스킨>, <조선괴담>, <가화만사성> 등도 라인업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이노츠는 한국영화 8편 배급에서 그치지 않고 우호적인 제작사, 수입사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이노츠, 8편의 투자배급 라인업 발표
-
요즘 한창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 <궁>을 보면 “세월이 아이들 키만큼 자랐으니, 모든 것이 잊혀졌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자라지 않는 소년에게 ‘잊혀지는 것’이란 없다. 그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까지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현재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년기를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보내버린 어른들은 <피터 팬>을 보면서 성장하기로 결심한 웬디의 모습이 남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언뜻 꿈과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피터 팬>이 때로는 아프고 심지어 잔혹할 수도 있는 동화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웬디를 집에 남겨둔 채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피터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DVD에서 미공개 결말을 꺼내 이야기를 마무리지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흘러 딸에게 피터 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 웬디가 나온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피터는 옛날의 아이 모습 그대로다. 이제는 네버랜드로 함께 갈 수
[서플먼트] 어른이 된 웬디와 피터의 재회, <피터 팬>
-
남자는 소녀들로 가득한 영화를 접할 때마다 함정에 빠진다. 소피아 코폴라의 <처녀자살소동>이나 피터 위어의 <행잉 록에서의 소풍> 같은 작품은 물론 여성의 정체성을 지적으로 탐구한다는 레아 풀의 <상실의 시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죽거나 사라지고 금지된 열정에 빠진 소녀를 이해 못하는 그들에게 소녀는 신비로운 대상으로 남겨지고 판타지는 커져만 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이노센스>는 급기야 페도필리아(아동성애)를 위한 성찬처럼 보인다.
프랑크 베데킨트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고, 한국에선 노디 시리즈로 익숙한 에니드 블리튼의 여학교 이야기에서 배경을 따온 <이노센스>는 매 순간 숨막히는 회화적 이미지로 충만하다. 관 속에서 여자아이가 나오자, 아이를 둘러싼 소녀들은 나이 순서에 따라 머리 리본을 바꿔 맨다. 자연학습과 발레를 배울 때가 아니면 숲속의 유희와 물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소녀들의 동산은 천국의 현현이다.
[해외 타이틀] 소녀 판타지를 버리시오, <이노센스>
-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더할 수 없는 불쾌함과 충격을 안겨준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 리에디션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발매된 타이틀은 가스파 노에의 또 다른 영화 <난 혼자다>와 함께 2장의 디스크로 묶은 일종의 컬렉션 형태. 스페셜피처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돌이킬 수 없는>에 사용된 특수효과의 비밀을 보여주는 ‘SFX’. 로돌프 샤브리에에게 들어보는 영화에 사용된 특수효과 설명과 비밀 공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들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문제작을 다시 만난다, <돌이킬 수 없는 리에디션>
-
명랑학원물 애니메이션 <스쿨럼블>은 현재 연재 중인 고바야시 진의 동명만화가 원작. 과장된 캐릭터와 행동묘사에서 터져나오는 유머가 작품의 중심이지만, 그 속에는 사춘기 풋사랑의 두근거림과 설렘이 담겨 있다. DVD 발매는 Vol.1로 11화까지 수록된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박스 세트. 부가영상으로 오버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낸 성우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밝히는 캐스팅 비화가 볼만하다. 그 밖에 무자막 오프닝과 엔딩, 프로모션 영상, 설정자료집 등을 수록했다. 화질 음향은 우수하며, 우리말 더빙도 훌륭하다.
귀엽다, 고 녀석들, <스쿨럼블 Vol.1>
-
한 학생의 일기장에 쓰인 내용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극 <6월의 일기>는 일본 만화 <데쓰 노트>의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어색한 농담과 수사 과정 등 다시 봐도 영화는 빈틈이 너무 많은 스릴러지만, DVD 타이틀에는 약한 영화의 힘을 보완하려는 의도인지 상당한 분량의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영화가 선택한 왕따라는 소재에 어울리는 부록이 눈길을 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학원폭력 문제에 대해 들어보며, 해결 방안을 고민해본다.
학원폭력,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6월의 일기>
-
<와일드 번치> DVD 제작사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협의해 필름 상영회를 개최한다. 대개의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그렇듯 <와일드 번치> 또한 스크린으로 감상할 때 영화의 매력을 100%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니 썩 괜찮은 DVD 홍보 수단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래된 서부영화를 스크린으로 처음 만날 젊은 층한테 <와일드 번치>는 난감한 영화다. <와일드 번치>는 부인할 수 없는 서부영화의 고전이지만 동시에 서부영화에 사형선고를 내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와일드 번치>를 이야기할 때면 ‘피의 페킨파’란 명성을 되새기게 하는 후반 총격신을 흔히 떠올리지만, 샘 페킨파의 거대한 선언문은 초반 15분에 자리한다. 긴장감이 흐르는 도입부에 이어 광풍처럼 몰아치는 총격전은 미국 건국의 바탕이 된 청교도 정신과 공동체 사회 그리고 경제적 기반을 상징하는 대상을 무참히 짓밟는데, 그 과정에서 군인(으로 보였던 자들)과 현상금 사냥꾼
폭력은 비극을 부른다, <와일드 번치 감독판, 특별판>
-
<비포 선셋>의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꼬마 야구단 영화를 리메이크했다고? 링클레이터가 야구선수의 경력을 살려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그 덩치에 <비포 선셋>이나 <웨이킹 라이프>를 만든 게 더 신기하다). 하이틴의 수호자로 경력을 시작한 링클레이터는 <스쿨 오브 락> 이후 아예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개봉은커녕 DVD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게 화날 정도로 <배드 뉴스 베어즈>는 재미있는 영화다. ‘만약 당신이 스포츠 정신과 전통, 어린 시절의 순수를 믿는다면 여기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라는 예고편의 문구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가장 과소평가된 감독인 마이클 리치가 1976년에 만든 원작의 많은 부분을 고스란히 안고 온 <배드 뉴스 베어즈>는 보수적이고 심약한 사람들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든다. 실패한 인생의 전형인 은퇴한 야구선수와 악동
링클레이터의 꼬마 야구단, <배드 뉴스 베어즈>
-
웬만한 영화 한편 볼 시간인 2시간 만에 영화를 완성한 감독이 나타났다. 전직 엔지니어 출신 인도 감독 자야라지(45)가 74분짜리 장편영화를 2시간 14분동안 촬영해 최단시간 촬영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로이터통신>이 3월2일 전했다.
<아트부탐>(Atbhutam, 영어로는 Wonder)이라는 이 영화는 2005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식물인간 테리 샤이보의 실화를 다뤘다. 15년 동안 뇌사 상태로 지낸 아내 테리 샤이보를 보다 못한 남편이 인간적으로 죽을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법정 소송을 제기해,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줬고, 샤이보는 영양공급이 중단된지 14일만에 숨을 거뒀다.
지금까지 26편을 연출하면서 꾸준히 실험적인 시도를 해온 자야라지 감독은 “아침 11시46분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모든 스탭들이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시퀀스마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서 “마침내 동료가 ‘한 샷만 남았다’고 말했을 때
인도감독, 최단시간 영화 촬영 신기록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