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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설 도박장의 복싱 경기에서 상대방을 죽인 죄로 8년형을 선고받은 우철(박성웅)에게는 가슴을 짓누르는 당시의 기억이 남아 있다. 모범수로 사면되는 날, 같은 조직의 동료였던 도식(오대환)이 교도소 앞으로 찾아와 그를 맞이한다. 다시 조직의 일을 제안하는 도식에게 우철은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히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우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우철은 출소 직후 우연히 알게 된 봄이(서지혜)를 보호하려다 비리에 연루된 경찰 정곤(주석태)과 지독하게 엮이고, 여기에 북에서 넘어온 마약 브로커 각수(오달수)까지 등장하면서 네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끝을 향하여 치닫는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범죄 드라마에서 지금껏 보아왔던 소재들이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에서도 익숙한 듯 새로운 모양새로 얽혀 있다. 이들 역시 마지막에 살아남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격투의 수렁에 빠지지만 공모과 배신의 전략을 전복적으로 구사하며 생존을 꾀한다. 한국형 범죄 누아르가 그려내는
[리뷰]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익숙하게 펼쳐지는 한국형 범죄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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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신인 작가 재이(한해인)는 출판사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신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연인 건우(이한주)는 입시 학원 영어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안정된 나날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서로에게 더이상 바랄 게 없는 비혼·비출산 커플로서 동일한 신념과 가치관을 좇고 있는 줄 알았지만, 예기치 못한 뜻밖의 임신 소식으로 많은 것이 뒤바뀌어버린다.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싶은 재이와 달리, 건우는 자신의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고백을 남긴 것. 뒤늦게 건우의 진심을 알게 된 재이는 강경했던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원치 않은 임신이 다정한 연인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출산을 앞둔 여성이 어떤 일상적 차별에 노출되는지, 가족을 구성하는 과정에 어떤 성찰이 필요한지를 날카로운 단상으로 그려낸다. 재이를 둘러싼 주변인의 배려와 조언은 임신부가 아닌 아이 중심적 언어로 채워지면서 개인 재이의 존재를 흐릿
[리뷰] ‘나의 피투성이 연인’, 누구를 탓하지도 울지도 못하는, 조용한 절규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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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서 60여년간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이웃 사회를 위한 기부 등 평생을 공헌해온 독지가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따듯한 온기가 올가을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어른 김장하>는 애초 MBC경남의 2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영돼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지난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지역 방송사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로 교양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언론 인터뷰 등 외부 노출을 꺼리는 김장하 선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김현지 감독 등 제작진의 조금은 특별한 노력과 세심한 배려를 기반으로 주변인들의 회고를 그러모아 선생의 삶을 그려낸다. 자신의 선행에 대해 단답 혹은 침묵으로 답하는 선생의 모습은 선생과 관련된 여러 미담을 적극적으로 전하려는 이웃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더욱 깊은 감동을 전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지역의 장학생들, 일명 ‘김장하 키즈’
[리뷰] ‘어른 김장하’, ‘어른’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단어를 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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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조시 허처슨)는 쇼핑몰에서 경비원으로 일한다. 그는 아이를 납치하는 한 남성을 목격하고 붙잡았지만 사실 그가 폭행한 이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착각 때문에 벌어진 폭행 사건으로 마이크는 결국 일자리를 잃는다. 취업 상담사 스티브(매튜 릴러드)는 야간 경비 일을 소개해주지만 마이크는 거절한다. 하지만 어린 동생 애비(파이퍼 루비오)를 먹여 살려야 하기에 마이크는 어려운 선택을 감행한다. 그는 80년대에 아이들이 실종되고 폐업한 지 오래된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야간 경비를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피자가게 마스코트인 ‘프레디와 친구들’을 마주하며 이상한 일들을 겪기 시작한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동물의 모습을 한 기계인형으로부터 동생을 지키려는 한 경비원의 고군분투를 그린 호러영화다. 영화 속 마이크가 꾸는 꿈이 그가 처한 사건을 푸는 열쇠이자 덫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동생 개럿이 납치되는 사건은 트라우마가 돼 마이크의 현실을 괴롭히
[리뷰] ‘프레디의 피자가게’, 출구없는 미로, 프레디의 피자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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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고 으슥한 산속에 위치한 합숙소. 이곳은 세계 선수권 검도 대회에 나갈 5인의 국가대표 검도 선수를 선발하는 경연장이다. 이곳에선 훈련, 대련, 정신력을 종합 평가해 매주 최하위권 선수 5명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으로 국가대표 검도 선수를 선발한다. 모두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산속으로 향하고 이 대열에 영화의 주인공 김재우(주종혁)도 합류한다. 세상과 단절된 산속에서 재우가 넘어야 할 고비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생애 처음 선발전에 포함된 재우는 “친분 있는 코치의 뒷배로 엔트리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동료 선수들의 시기와 의혹을 마주한다. 또한 “검도를 계속 할 것이냐”는 집안의 만류도 선발전 내내 맞닥뜨린다. 하지만 재우를 가장 괴롭고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는 선발전 내내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 황태수(문진승)다. 태수는 실력과 여유만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태수가 재우의 심기를 거스르는 까닭은 재우와 태수의 악연에 있다.
[리뷰] ‘만분의 일초’, 기억을 부르는 풍경(風磬)과 손과 발의 풍경(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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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성재가 드라마 <최악의 악> 출연을 결정한 곳은 한동욱 감독에게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힌 뒤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이미 하기로 한 작품이 몇 있어 죄송하다는 얘기를 드리고 나왔는데, 이 드라마를 얼마나 잘 만들고 싶은지를 5~6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던 감독님이 눈에 밟혔다. 그 순간, 이건 하는 게 맞음을 직감했다.” 늦지 않게 기회를 잡은 그가 <최악의 악>에서 맡은 역할은 1990년대 거대 마약 밀매 조직인 ‘강남연합’의 2인자 최정배다. 극 중 최정배의 거의 모든 대사가 보스 기철(위하준)을 부르는 “형님”으로 끝났다면, 인터뷰에서 임성재의 거의 모든 답변은 “효율적”이라는 말로 귀결됐다. 그가 말하는 효율적인 연기란 대본에 있는 것들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없는 장면을 추가하기보다는 표정이나 제스처를 디테일하게 표현했을 때” 감독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그는 대본에 없는 정배의 전
[WHO ARE YOU] ‘최악의 악’ 임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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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주로 하던 시절에도 나는 공연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풍부한 서정을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재탄생시키는 윤상에게서 가수와 작곡가는 물론 프로듀서, 엔지니어로서 다채로운 자질을 발견하는 기쁨은 어느덧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그는 이제 30년이 넘는 이력 중 드물게 남은 미개척지였던 영화음악으로도 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음악감독을 거쳐 영화의 소리를 매만지기 시작한 윤상의 근황을 물었다.
- 영화음악감독 데뷔작인 호러 <뒤틀린 집>에 이어 <뉴 노멀>도 스릴러 장르다. 그동안 가수 윤상이 보여준 색채와는 가장 거리가 먼 분위기로 영화음악을 작업하고 있다.
= 정범식 감독이 처음 의뢰했을 때 <뒤틀린 집>의 영향으로 내게 연락한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더라. 그래서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작업의 인연은 운명인가보다 여기는 편이라서. 정범식 감독은 알고보니 그 자
[인터뷰] 느낌의 접점이 절묘할 때까지, ‘뉴 노멀’ 윤상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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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야구를 보게 된 ‘2023 한국시리즈’.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우승 도전에 나선 LG트윈스를 보니 19년 전 <슈퍼스타 감사용> 촬영 현장(2004년 4월)이 떠올랐다. 패전 전문 투수 감사용(실존 인물)의 특별한 경기를 그렸던 영화다. LG트윈스는 ‘2023 한국시리즈’를 과연 자신들의 특별한 한 시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참고로 야구팬 아닙니다).
[ARCHIVE] 29년 만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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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다면 어땠을까. 임신과 관련해서는 여성 캐릭터의 발언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워낙 변화가 극적인 탓에 건우의 행방 또한 주시하게 된다. 영어 강사인 건우는 언성 한번 높인 적 없을 듯한 온순한 얼굴로 성실히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원 분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인 건 순전히 재이(한해인)와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영화 <흐르다> <여섯 개의 밤> 등에서 차분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배우 이한주는 “1부터 10까지의 감정을 넘나드는” 건우 역으로 배우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
- 유지영 감독과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만난 인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 그렇다. 그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작품을 같이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로부터 1년 정도 뒤에 정말로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다. 읽어보니 건우는 감정의 진폭이 점점 커지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감정도 강렬해서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확장하는 스펙트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이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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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상대방의 의중을 살피는 표정, 메마른 목소리, 다소 불안한 눈빛. 소설가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재이(한해인)는 타고난 섬세함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나날은 괴롭지만 안정적이고 불안하지만 평화롭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뜻밖의 임신 소식은 재이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낯설고 불편한 신체 변화부터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말투까지, 인간 재이는 흐릿해진 채 세상은 엄마 재이만 남겨두려 한다. <생각의 여름>(2020), <아워 미드나잇>(2020), <달이 지는 밤>(2020) 등에서 인물의 말투와 표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배우 한해인은 재이의 갈등 또한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작품과 관객의 거리를 좁힌다. 재이는 어떤 동시대성을 띠는가. 그가 상징하는 여성의 불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해인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재이는 하고 싶은 일이
[인터뷰] 진심이 발휘될 때, ‘나의 피투성이 연인’ 한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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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을 본 관객이라면 차기작으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내놓은 유지영 감독의 행보가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온전히 자기 경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유지영 감독은 일과 임신, 출산에 대한 고민을 재이(한해인)과 건우(이한주)에게 솔직하게 투영했다. 두 사람은 가족을 이루기로 어렵게 합의했으나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품으려 할수록 더 많은 것이 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이토록 불안정한 두 연인의 관계가 각자의 성장으로 이어지게끔 유지영 감독은 섬세한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 오랜만의 장편 연출작이다.
= 항상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이 시간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과 두려움이 해결됐거나 혹은 이것을 글로 풀어내 정리하고 싶을 때 말이다.
-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자전적 요소가 많이 반영됐나.
임신과 같은 사건은 전부 픽션이다. 아주 오래 만난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 이대
[인터뷰] 타인과의 여정을 고민하며,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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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12주 되셨네요.” 재이(한해인)와 건우(이한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인사를 받는다. 신인 소설가인 재이가 새 소설의 출간을 앞뒀고, 건우가 학원 원장의 신임을 얻어 차근히 강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시기에 바란 적 없는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낳지 않을 것인가.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는 건우와 자기희생을 원치 않는 재이의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수성못>에 이어 유지영 감독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으로 일과 육아의 병행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작품 밖까지 논의를 확장하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재이와 건우가 거쳐온 여정에 관해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우리, 함께할 수 있을까,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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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팩터(form factor)’라는 용어가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크기나 모양 등 물리적 사양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이제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제품 외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2G 시대 휴대폰의 형태가 플립, 폴더, 슬라이드 등 다양했다면 (심지어 ‘가로 본능’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폼팩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3G 시대 이후의 스마트폰은 한동안 터치스크린 기능을 장착한 큰 화면과 얇은 베젤을 중심으로 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유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의 외모가 그렇듯 사물의 외형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많은 전문가들이 폼팩터가 단순히 제품의 외적인 요소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잘 알려진 대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PC와 아이패드를 각각 트럭과 승용차에 비유한 적이 있다. 트럭과 승용차는 확연히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운전자의 경험 역시 완전히 달라진다. 사용자 경험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패드가 약속한 새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리얼하지 않을수록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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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후반부, 나츠코를 찾아 탑 안의 세계로 떠나온 마히토는 마침내 히미의 도움을 받아 나츠코가 잠들어 있는 산실에 도착한다. 마히토는 나츠코를 깨워 데려가려 하지만 눈을 엘 듯 춤을 추는 종잇조각이 둘의 접촉을 가로막고, “나츠코 엄마!”라고 외친 마히토는 의식을 잃는다. 종잇조각의 우윳빛 색감이 산실의 적막한 어둠과 대조를 이루는 이 장면은, 마히토가 전쟁의 화마 속에서 어머니를 상실하던 도입부의 장면과 포개어지며 시적 서정을 새기고 간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작화의 매혹을 잠시 차치하고 곱씹어본다면 이 장면의 감흥은 얼마간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마히토는 이세계에 잠입하기 전까지 별다른 접점도 없던 나츠코를 왜 돌연 엄마라고 부르는 걸까? 마찬가지 이유로 마히토에게 별 감정이 없을 나츠코는 왜 그의 애절한 외침에 “너 같은 건 정말 싫어!”라고 쏘아붙이는 걸까? 마히토가 탑에 잠입하기 전까지인 1부의 세계에서 가족이라고 말하기
[비평] 미야자키 하야오의 우정, 그리고 식탁의 소멸에 관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