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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은 전작 <여자, 정혜> <러브토크>보다 비균질적이면서 다층적이다. <여자, 정혜>와 유사한 배경 아래 있지만 다소 건조해 보였던 그때의 영화적 표현에 비해 훨씬 더 정묘한 화음을 갖췄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보경의 하룻밤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의 구조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가능한 자기 회복의 조짐을 보이며 끝을 맺는 데까지 이른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부에는 그런 처음과 마지막 사이에 있을 거라 상상하기 힘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까지 끼어든다. 건조하면서도 직선적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소설 <애드리브 나이트>와는 달리 <아주 특별한 손님>은 명백히 다른 차원에서의 영화적 중층을 만끽하게 한다. 이윤기 감독은 세 번째 작품에서 확실히 한발 더 디디는데, 그가 말하는 “생경함”이 바로 그 힘이 아닐까 싶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상했나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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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세 번째 장편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이 개봉한다. 조용하게 큰 홍보없이 만들어진 작은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들여다보니 이런저런 할 이야기들이 꽤 많다. 두편의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가능성들이 좀더 정밀하게 묶인 형태의 영화가 나왔고, 상업적 부담에서 벗어나 있어 그런지 자유로운 영화적 필치도 엿보인다. 갑작스럽게 떠밀려 시작된 한 여자의 하룻밤 이상한 여정을 통해 기묘한 삶의 애착을 길어올리는 영화다. 올해의 아주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만한 <아주 특별한 손님>을 소개한다.
삶을 향해, 자아를 찾아 ‘한 걸음 더’
“저는 미요코가 아니에요. 루미에요. 오사와 루미라고 해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아주 특별한 손님>의 원작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소설 <애드리브 나이트>의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간단히 말해버린다. 독자는 이 여자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찾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그녀의 진술에 따라 확
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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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es To Ashes> 자우림 | T엔터테인먼트 발매
전체적으로 검은 부클릿이 먼저 눈에 띈다. 펼쳐보면 멤버들은 모두 흑백이고 오직 김윤아만이 컬러 사진이다. 자우림의 6번째 앨범 <Ashes To Ashes>의 이런 첫인상은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지금까지의 자우림이 유지하던 어떤 특성들이 변화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차이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고, 포기한 어떤 것(들)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앨범의 사운드는 전반적으로 느리고 낮게 진행되며 디스토션이 등장하거나 단조 리듬을 중심으로 구성된 리프가 흐르기도 한다. 이 앨범을 듣고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느꼈다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장르로 구분하자면 슬로코어, 새드코어와 같은 용어가 떠오르겠지만 이 사운드의 무게감은 그 장르적 규범을 정리했던 포티스헤드나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감수성과 비교되지는 않는다. 첫곡 <Soul Blues>와 <Loving
분산된 무게중심, 실수이거나 의도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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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니 타워> 존 파울스 지음 |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에보니 타워>는 <콜렉터>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존 파울스가 중편과 단편을 엮어 1974년 발표한 단편집이다. 1926년에 태어난 파울스는 전후(戰後)에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대표작인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1969년에 발표됐다. 그런 연표를 떠올리며 예술과 소설과 창작에의 질문이 어른대는 <에보니 타워>를 읽는다면 이 소설들이 품고 있는 긴장을 좀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울스가 애초 <변주>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던 <에보니 타워>는 개별 작품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행위가 부질없게 느껴지는 소설집이다. 예를 들면 타이틀작인, 상아탑인 아이보리 타워와 대비되는 용어인 <에보니 타워>는, 노화가를 방문한 젊은 화가 겸 작가가 겪는 이틀과 에필로그 비슷한 찰나의 느낌이 전부인 소설이다. <
무너질 듯 위태롭게, 행간은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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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12월2일(토) MBC 밤 12시30분
배우의 자긍심은 강건하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 그 자신도 배우인 제임스 다시다. “나는 정말 정말 야심이 없다.” 카리스마를, 배우가 지닌 매력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오늘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는 배우로서 부유해지고 유명해지는 것을 기대하지 않을뿐더러 부와 유명세가 나를 이끄는 힘도 아니다.” 올해 31살.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천금과 같은 시기지만 다시는 191cm나 되는 키를 건들거리며 “나는 그저 나 자신만으로 행복하다”고 토로한다. “내겐 우러러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반드시 그들처럼 되길 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음식처럼 소박하고 그곳의 날씨처럼 온건한 현실주의자인 다시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도널드 서덜런드, 브라이언 콕스 등을 배출한 런던극예술학교(LAMDA)에서 <헤라클레스> &l
[앗! 당신]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사람, 제임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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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2월2일(토) 밤 11시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이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난감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더 없이 마음을 울리고 그 감동을 적절히 조절하며 표현하기에 지면은 너무 작고, 게다가 이미 수차례 좋은 글들이 쏟아진 상황에서 그 영화를 다시 쓰는 것. 내키지 않은 일이다. 이런 영화를 그저 ‘소개’하는 것처럼 따분한 일도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해 약간의 양해를 구한다.
<라스트 데이즈>는 <게리> <엘리펀트>에 이은 구스 반 산트의 죽음의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게리>가 사막을 가로지르려던 두 남자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루었고 <엘리펀트>가 컬럼바인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었던 것처럼 <라스트 데이즈> 역시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시대의 반영웅, 차라리 시대의 비극, 시대의 슬픔이었던 커트 코베인이다. 1994년 4월5일, 27살의 나이로 숨진 커트
그 죽음 직전의 순간으로, <라스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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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정윤철 감독은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치동 학원 강사로 지금쯤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달변가다. 소싯적에 전교 7등은 놓치지 않았을 날선 외모에서 쏟아져나오는 조리 분명하고 강약 확실한 문장의 추임새가 그 증거다.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로도 아인슈타인처럼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관성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근사한 말은 두 번째 증거다. 물론 첫 영화 <말아톤>으로 생각에 넘치는 성공을 거둔 정윤철 감독은 현재 대치동 학원 강사만큼 바쁘다. 한편의 영화를 막 개봉시켰고 또 한편의 촬영을 두달 전에 끝내고 편집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권옴니버스영화 <세가지 시선>의 <잠수왕 무하마드>, 후자는 김혜수, 천호진, 박해일, 정유미가 출연하는 장편 <좋지 아니한家>다. 유독성 가스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알고보니 타이의 잠수왕이었다
<잠수왕 무하마드> <좋지 아니한家>의 정윤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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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촬영 중이거나 연내에 촬영을 시작할 한국영화들이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충무로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6개의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는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경우, 11월에 스튜디오를 사용한 영화는 <복면달호> 한편이다. 11월24일과 25일에 이명세 감독의 <M>과 하명중 감독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스튜디오를 사용할 계획이지만 “제작이 불붙었던 올해 상반기나 지난해 이맘때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한화성 팀장은 “올해 9월까지만 해도 스케줄이 빡빡해서 제1 스튜디오는 쪼개서 사용할 정도였다”면서 “대개 서울 인근에서 촬영하는 영화들이 15편에서 많게는 20편에 달했는데 지금은 촬영을 시작할 영화들까지 포함해도 5∼6편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반기 한국영화 제작 감소를 체감하는 건 스튜디오만이 아니다.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11월22일까지 로케이션
하반기 한국영화 제작 대폭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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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결혼>(가제)이 지난 11월15일 홍천 비발디 파크에서 촬영에 돌입했다. 이날 촬영분은 기백(하석진)과 은호(유진)가 부모 몰래 여행을 떠나려다 붙잡히는 장면. 집안의 반대로 괴로워하는 연인의 얘기에 기백의 어머니(김수미)와 은호의 아버지(임채무)의 코믹 연기가 덧붙여질 이 영화는 2007년 4월 개봉할 예정이다.
<못말리는 결혼> 촬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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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이한위일 것이다. TV에서는 낯익은 존재였지만, 영화로 치면 불과 몇년 전까지 아주 가끔씩만 등장했던 그가 최근 스크린 속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이한위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외출> <형사 Duelist> <박수칠 때 떠나라> <야수>에 등장했던 그는 올해 들어 <한반도> <예의없는 것들> <원탁의 천사> <거룩한 계보>에 이미 출연했고, 곧 개봉할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도 얼굴을 비친다. 현재 영화 <만남의 광장>과 <바르게 살자>를 찍고 있으며 TV드라마 <열아홉 순정>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 속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기발한 코믹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의 배우 이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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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가 한국 독립영화 흥행사를 다시 쓸 것인가.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개봉 일주일째인 지난 11월23일로 전국 관객 2만명(제작사 집계)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7월13일 개봉한 독립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이 상영 28일째 전국 관객 1만명을 돌파했던 기록을 크게 우회하는 성적이다. <후회하지 않아>의 초반 흥행돌풍에는 동성애 문화에 관심이 많은 여성 관객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 모인 열혈 팬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졌고, 지속적으로 개최된 팬미팅을 통해 팬과 영화 사이의 거리가 좁아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 제작사 청년필름은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어려운 예술영화가 아니라 쉽게 볼 수 있는 신파멜로라는 점에서 일반 관객의 발길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11월16일 CGV(압구정·용산·강변·상암·부산 서면·인천), 서울 필름포럼, 대구 동성아트홀 등
[충무로는 통화중] <후회하지 않아>, 관객의 힘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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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의 귀환과 함께 충무로가 새로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동안 침체를 겪었던 시네마서비스가 전열을 정비하고 야심찬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백의종군 선언’ 이후 공식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강우석 감독이 실질적으로 전면 복귀하기 때문에 시네마서비스의 재편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의 본격적인 개편은 11월17일 강우석 감독이 캐나다에서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곧바로 김인수 대표이사를 비롯한 4명의 이사진이 최대주주인 강우석 감독에게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출범한 김인수 대표 체제에서 투자·배급한 <손님은 왕이다> <방과후 옥상> <도마뱀> <사랑하니까, 괜찮아>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 등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사표 제출의 표면적 이유. 결국 시네마서비스는 당분간 강우석 감독의 친정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시네마서비스의 주변에서는 500억원 규모의
시네마서비스, 새로운 지각변동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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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감독 변승욱·개봉 30일)에서 약사 심인구(한석규)의 약국은 너저분하다. 소화제를 사며 간밤에 누가 대판 싸우더라 따위의 잡담을 하기에 제격일 듯한 동네 약국이다. 인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형 인섭을 돌보지만 너그럽지만은 않다. 성질을 실컷 부리다가 미안해져서 형에게 은근슬쩍 농담을 건넨다. 빚 5억원 탓에 사는 게 버겁기만 한 애인 혜란에게 “다 갚아줄게”라고 호기롭게 말할 만한 왕자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거 참 쉽지가 않네요”라고 허탈하게 웃음 짓는 그저 그런 동네아저씨인데 삐져서 뾰로통해지는 모습까지 한석규에겐 꼭 맞게 어울린다.
한석규(42)는 멜로 영화에서도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나 <접속>(1997년)에서 그는 사랑만큼이나 무거운 다른 문제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플레이어 사용 방법을 알려주다가 짜증을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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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일까. 정화조, 사다리, 파이프 비계, 피뢰침, 소화전, 나뒹구는 안전모, 시멘트 부대, 모래. 게다가 이중구조의 옥상이라 칼바람이 몰아친다. 촬영장일까. 육중한 조명기, 두대의 필름카메라, 현장모니터,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송강호. 청계천과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 10층 건물 꼭대기인 이곳은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촬영장이다. 허공에 매달린 빨간 크레인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은 배우들과 촬영팀, 사진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애플 박스를 들고 난간을 걸어가는 스탭의 모습이 아찔하다. 공사현장과 촬영장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정경에 걸맞게 촬영장비도 모두 크레인으로 이동시켰다. 현장모니터를 비워놓고 하늘과 가까운 카메라 옆에 다가선 한재림 감독은 “섭외가 어려워서 결국 마지막에 촬영하게 됐다”고 로케이션 배경을 설명한다.
이날 촬영은 극중 폭력조직 ‘넘버쓰리’ 강인구(송강호)가 공사를 지연하며 돈을 요구하는 현장소장(정인기)을 찾아오는 장면이다. 촬영장이 배우의
갱스터 아버지의 아이러니한 일상, <우아한 세계>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