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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고다르는 과학자들이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한다는 사실에 큰 매력을 느껴왔고 그런 상호성을 영화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쿄의 과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영화가 하나의 예술로 자리잡는 데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이들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다르 자신은 영화는 예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과학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과학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화됨으로써만 비로소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추측했던 것 같다(과학적 작업이 과연 고다르가 생각한 바와 같은 것이냐는 여기선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 그는 영화가 예술일 수 있었던 시대는 그가 데뷔했을 즈음에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고다르가 보기에 작가주의는 영화의 과거와 (그 자신이 등장한 1960년대에 국한된) 현재를 일단 예술로서 정당화하면서 무언가 다른 미래를 불러들이기 위한 연결고리였을 뿐 미래를 정당화하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영화, 상호성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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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찬 정신이상자의 돌발 행동인가,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확신범의 집단 살인인가.”
노르웨이 연쇄 테러범의 정체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브레이빅의 변호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그를 면담을 해본 결과 ‘그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믿고, 지금은 전쟁 중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 가공할 범죄자를 변호할 유일한 방법은 그를 환자로 만드는 길밖에 없었을 거다.
아목, 통제할 수 없는 격노에서 나오는 광기
이렇게 다수의 무고한 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는 것을 독일에서는 흔히 ‘아목라우펜’(Amoklaufen)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러닝 아목’(running amok)이라고 한다. 아르라우펜(=러닝 아목)은 말레이어 ‘멩아목’(mengamok)을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그 속의 ‘아목’(amok)이라는 말은 “통제할 수 없는 격노에서
[진중권의 아이콘] 겁에 질린 극우파의 초라한 알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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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운용된 미군의 초능력 부대를 다룬 <초(민망한)능력자들>은 의외로 선명한 구도로 진행된다.
한 부대의 동료였던 래리 후퍼(케빈 스페이시)는 시대에 잘 적응한 인물이고 빌 장고(제프 브리지스)와 린 캐서디(조지 클루니)는 시대의 부적응자다. 한편 그들과 엮인 밥 윌턴(이완 맥그리거)은 시대 변화 속에서 질문을 거듭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인데 영화의 주제가 ‘뭘 믿고 살아야 하나’라는 점에서 거짓말 같은 엔딩은 좀 의미심장하다. 심지어 주요 배경이 레이건부터 부시(그러니까 아빠 부시) 정부에 걸쳐 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과연 이것은 ‘어떤’ 노스탤지어인가.
영화의 테마곡은 보스턴의 < More Than A Feeling >이다. MIT 출신으로 폴라로이드사에서 일하던 톰 슐츠의 여가활동에서 탄생한 보스턴은 화려한 기타연주와 단단한 화성으로 파워 팝의 기틀을 마련했고, 특히 이 곡은 영화의 막연한 향수를 제대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믿음이 사라진 세계의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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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항상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그러니까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강제적인 구보와 행군을 통해서 난 다른 사람들의 발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그저 발바닥에 살이 많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군 면제를 받을 정도가 아니니 평발은 아니지만 오래 걷거나 뛰고 난 뒤에 다리와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엄청났다.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사진기자가 되어선 더더욱 그랬던 것 같고. 쇼핑몰에 빼곡히 진열되어 반짝거리고 있는 상품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들로 여겨지며 관심이 없었다. 그날도 부실한 발바닥으로 많이 걸었으니 피곤했음은 물론이었다. 빨리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리고 여러 브랜드의 운동화가 진열된 매장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칼 모양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고 너무나 반짝이는 그놈을 보면서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운동화가 들려 있었고 그 편한 신발을 신은 대신 ‘왕빈
[타인의 취향] 그래서 슈즈홀릭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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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저질렀던 경솔한 언행 가운데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눈을 꽉 감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스물다섯살쯤, 다니던 직장 윗분들의 손에 이끌려 경기도 어느 카페촌에 바람을 쐬러 가던 길이었다. 그 동네가 불륜 커플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대화가 막내인 나를 빼고 오갔다. 예나 지금이나 커플에 대한 이해도가 제로에 수렴하던 내가 무심코 입을 연 것은 그저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까지 ‘연애 감정’이란 걸 불태우는 어르신들의 에너지가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나이에도 정말 누가 그렇게 좋고 그런가요?”
시끌벅적하던 차 안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고, 정년을 앞둬 일에는 영 의욕이 없었지만 사람 좋기로 이름났던 부장님이 드물게 정색하셨다. “나이 들어도 마음은 다 똑같은 거야.” 그 뒤로 꽤 여러 해가 흘렀고,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철은 안 들었음에도 나는 가끔 그 짧은 정적을 돌이켜본다. 중년을 지난 이들은 모두 인생의 은퇴자쯤으로 여기던, 그리
[최지은의 TVIEW] 간절함, 마냥 아껴드리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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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이 말하는 충격적인 스토리의 전말에 대해 재론할 생각은 없다. 현대 중동의 정치학과 오이디푸스 서사의 절충으로 이 영화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학과 정신분석학을 빌려 이 불편한 진실의 함의에 대해 해설하기보다 나는 가슴을 얼어붙게 만드는 충격효과의 기원에 대해 분석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사건의 대담성만큼이나 이 영화가 우리의 감정을 초토화시키는 것은 서사의 조직과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인식의 효과 내지는, 서사 정보가 은폐되고 점진적으로 또는 급작스럽게 누출되는 방식에서 찾아지기 때문이다. <그을린 사랑>은 인간이 스스로 기획한 혹독한 운명의 비의에 대한 은밀한 성찰의 기회를 여로의 구조를 통해 서사화하고 있다. 현실에서 되풀이되는 갈등과 분쟁의 부조리를 현실감을 탈색시킨 공간과 이야기 구조로 풀이하는 이 영화의 서사화 전략은 근간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였다. 이 전략이
[전영객잔] 관객을 관계의 중심에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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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를 했던 사람이 얌전하게 있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웃음)” <7광구>에서 오지호는 한 여자만 쫓아다니는 남자다. 영화 속 남자배우들 중 가장 몸이 좋지만 별다른 액션 연기가 없다. TV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장철수가 되어 보여준 ‘꼬라지’는 사라지고,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보여준 파이팅과도 거리가 멀다. <7광구>의 유질분석가 ‘동수’를 연기한 그는 7광구에 석유가 있다고 확신하는 해준(하지원)이 본부의 일방적인 명령에 반발하고, 내내 캡틴(박정학)과 갈등할 때 늘 그 곁을 지킨다. 그렇게 해준의 마음이 어떤지 확인할 길 없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순정남’이다. 그런 그를 두고 하지원은 ‘동수바보’의 준말인 ‘동바’라 부르고 다녔다. 그러기에 액션스릴러영화를 택한 남자배우 입장에서 다소 심심할 수도 있는 캐릭터다. 이에 대해 그는 “<7광구>는 내 캐릭터 자체보다
[오지호] 순정남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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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성기라는 배우에게 ‘변신’이란 표현이 어떤 의미가 있으랴만, <7광구>의 새로운 캡틴 ‘정만’은 그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숨긴 캐릭터다. 김성수의 <무사>(2000) 같은 영화들에서 리더를 연기할 때 그는 정의로운 기품과 온화한 배려심이 넘치는 남자였다. 하지만 <7광구>의 그는 <바운티호의 반란>(1984)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보여준 광기까지는 아니라도, <죠스>(1975)에서 오직 상어밖에 모르던 카리스마 넘치는 퀸트 선장(로버트 쇼)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시추 작업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결국 본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은 시추선 이클립스호에 특별히 투입된 캡틴이 바로 그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철수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7광구>를 둘러싼 괴물의 정체를 은폐하고 자신이 직접 잡기 위해서라면 적당한 범죄 정도는 눈감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와 동시에 생명을 걸고서라도
[안성기] 그만이 할 수 있는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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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젤리나 졸리.’ 액션연기를 많이 한 하지원에게 수식어가 붙은 모양이다. 예전의 ‘호러퀸’에 비하면 근사한 표현은 아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서슬 퍼런 칼로 바람을 가르던 사극 액션물 드라마 <다모>(2003)나 영화 <형사 Duelist>(2005)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지원은 복싱 글러브를 낀 채 상대선수에게 강펀치를 날렸고(<1번가의 기적>(2006)), 해운대를 덮친 거대한 쓰나미로부터 죽기 살기로 도망다니지 않았던가(<해운대>(2009)). 비슷한 시기에 기품을 갖춘 기생 ‘황진이’(드라마 <황진이>(2006)),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편 곁을 묵묵히 지키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아내(<내 사랑 내 곁에>(2008))도 연기했지만 하지원의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연기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물론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은 잠시 밀어
[하지원] 여전사는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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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없죠. 지원이는 <진실게임> 때 함께했으니 정말 10년 넘게 봐온 건데 보면 볼수록 믿음직해.”_안성기
“저는 그냥 늘 선생님만 따라했어요. 대본을 왼쪽에 놓으시면 저도 무조건 왼쪽에 놓고. (웃음) 후배 배우들에게 교과서 같은 배우시죠.”_하지원
“뭐 저는 두분에 비하면 영화배우로서는 한참 후배죠. 영화 속 남자들 중에서 제가 제일 몸이 좋은데 계속 가만있어야 해서. (웃음) 두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현장이었어요.”_오지호
‘국민배우’ 안성기와 하지원, 오지호가 <7광구>에서 만났다. 안성기와 하지원은 <형사 Duelist> 등 여러 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고 오지호는 어떻게든 그 속에서 제자리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사실상 영화 현장에서 다들 실체없는 괴물과 싸워야 했던 만큼 이야기할 것도 많았다. 실감나는 액션을 해야 했기에 총기는 물론 바이크까지 육체적 소모도 견뎌내야 했다. 마치 아버지와 딸 혹은 오랜 동네
[안성기, 하지원, 오지호] 선배와 후배 환상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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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씨네21>의 좌담 지면 ‘씨네산책’에 참여했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영화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 전문 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프로듀서 시스템에 기반한 기획력과 창작력이라는 사실에 공감했으며 또한 강조했다. 며칠 전, 그걸 입증하는 명필름의 결과물이 나왔다. 명필름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호평이 잇따르고 있고 관객의 반응도 상승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해리 포터 죽음의 성물2> <고지전> <퀵> <퍼스트 어벤져> 등 쟁쟁하게 예고된 국내외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도 예매율 2위를 달리고 있다(7월28일 기준). 물론 한편의 영화에 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낸 그 창작력과 기획력을 주목하는 것이 특별히 필요할 때다. 그런 이유로 심재명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가 끝
[심재명] 매번 선입견과 싸워왔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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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10.1인치 LCD, 1G 듀얼코어, 안드로이드 3.1 허니컴 OS, 256.7x175.3x8.6mm, 후면 300만 화소, 전면 200만 화소 카메라
특징:
10.1인치 대화면 태블릿PC, 안드로이드 허니컴의 한층 부드러워진 인터페이스와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능 탑재.
그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개와 고양이마냥 천생 원수였던지 싸우고 다투고 그 모습이 흉물스러울 지경이다. 바로 애플과 삼성 얘기다. 아이폰이 나왔다. 그럼 조금 있다가 갤럭시가 나온다. 아이폰의 다음 버전이 나온다. 그럼 갤럭시의 다음 버전이 등장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장난 같다. 태블릿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이패드 등장 이후 갤럭시탭이 등장했다. 그리고 아이패드2가 출시되었다. 그럼 그렇지, 갤럭시탭의 다음 버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굉장히 오랫동안의 싸움 같지만 이들의 이런 관계가 불과 2~3년 동안 이뤄졌다는 것도 놀랍다). 갤럭시탭 10.1은 바로 이런 싸움에서 가장 첨병에 위치한
[gadget] 스티브 잡스 긴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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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엔드> Deep End (블루레이)
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상영시간 88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PCM 2.0 영어
자막 영어 / 출시사 BFI(영국, 2장)
화질 ★★★★☆/ 음질 ★★★★☆/ 부록 ★★★★
2년 전, 짧은 인터뷰차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와 만났다. 영화제에서 그와 인터뷰하는 첫 주자였기에 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앉기도 전에 그는 대뜸 “내 영화를 봤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더니, 이번엔 어떻게 그걸 볼 수 있었는지 하나씩 캐묻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문라이팅> DVD의 제작을 진행했던 나로선 솔직히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작품별로 일일이 대답한 뒤에야 그는 인터뷰 사인을 보냈다. 그는 자기 영화를 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화를 보지 않은 자와는 인터뷰하기를 싫어했다(그날 모 기자가 준비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다 창피를 당했다고 들었다). 인터뷰 도중 스콜리모프스
[DVD] 스콜리모프스키의 ‘불안’을 이해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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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이렇게 좋은 노래들을 가지고 이렇게 인기가 없기도 힘든 일일 거다. 스윗튠이 만든 앨범의 첫 싱글 <내꺼하자>는 지금껏 인피니트가 받아온 긍정적인 평가를 잇기에 충분하다. 아이돌 그룹으로는 드물게 ‘복고’라는 음악적 컨셉까지 계속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주얼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좀 슬플 것 같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일전의 미니앨범 ≪Evolution≫을 들었을 때랑 똑같은 기분이다. 그때도 타이틀곡 < BTD >가 아닌 다른 곡들에 더 이끌렸다. 도대체 <내꺼하자> 같은, 남자 아이돌 시장에서 경쟁력 떨어지는 어둡고 무겁고 탁한 노래를 대표곡으로 취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말이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화사하고 세련된 노래들이 몹시 아깝다. <Julia>나 <Tic Toc> 같은 곡들을 ‘내꺼하자’
[hottracks] 내꺼하고픈 아이돌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