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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트> -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비채 펴냄
<홀로 중국을 걷다> - 이욱연 지음 창비 펴냄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 보다 2024> - 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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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과학자다. 모든 관심은 사회에서 시작하고 모든 고찰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국과 세계가 실로 대격변을 겪던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에 이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결정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사회 안에서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내게 이 사회는 영원한 숙제이다. 나는 사회과학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회를 지어 살아가는 한 사회에 대한 탐색과 질문 그리고 해답 찾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는 이런 사회과학의 느린 몸짓을 비웃으며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미국 사회과학은 왜 트럼프가 멀쩡히 살아 돌아와 기세등등하게 유권자를 후리고 다닐 수 있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유럽 사회과학은 홀로코스트의 비극 이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극우의 발호를 눈뜬 채 방임하고만 있다. 한국 사회과학은 우리 민주화 과정이 왜 이런 대통령과
[정준희의 클로징] 어느 부끄러운 사회과학자의 소심한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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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마틴은 캐나다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극작가다. <필 굿>에서 그는 마약중독과 트라우마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논바이너리 바이섹슈얼로서 이른바 ‘젠더 문제’를 겪고 있는 메이 마틴 본인으로 등장한다. 시스 여성이자 ‘벽장’인 애인과의 갈등, 불안정 애착 관계를 맺고 있는 ‘포식자’ 남성과의 대면, 정신질환과 중독 성향으로 인한 자기파괴의 경험 등을 다룬 에피소드들이 <필 굿>의 두 시즌을 이룬다. 넷플릭스의 분류에 따르면 <필 굿>은 로맨틱코미디지만, 당연하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드라마는 단지 그런 보수적인 장르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보다 <필 굿>은 약물중독과 성적 학대로부터 어쩌다 살아남은 메이 마틴이 어떻게 평범한 연애와 프로페셔널한 직업 세계로의 진입은 물론이고 제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의 영위에 처참히 실패하는지를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낱낱이 보여주는 일종의 ‘트라우마 이후 스트레스 장애’(PTSD) 코
[이연숙(리타)의 장르의 감정] 그대가 그대의 재앙이라오, <필 굿>과 PTSD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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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전작 <조커>(2019)에서 탄생해 <조커: 폴리 아 되>(2024)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요란스럽게 폐기된다. 과연 토드 필립스가 전작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에 진 빚을 변제할 능력을 갖추었을까는 <조커: 폴리 아 되>에서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의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역시 예측을 벗어나지 않으며 토드 필립스는 자신이 창조했던 조커의 신체를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질식사시키고 장황하게 실패한다. 전작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표피적으로나마 계승해보고자 애를 썼던 시도를 뒤로한 채, <조커: 폴리 아 되>는 뮤지컬영화를 장르적으로 차용한다. 이를 위해 토드 필립스가 쓴 전략은 레이디 가가라는 동시대의 팝 아이콘을 할리퀸으로 기용한 것이다. ‘오늘은 농담 없나?’라는 교도관들의 반복적인 질문(이것을 하나의 읽어야 할 ‘신호’로 삽입한 부자연스러운 연출도 달갑지 않다)에도 더이
[비평] 만취한 이미지, 숙취의 잔해, <조커: 폴리 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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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폐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로렌스 아부 함단의 <하늘의 일기>와 일본의 필름 작가 니시카와 도모나리의 <빛, 소음, 연기, 그리고 빛, 소음, 연기>를 같은 섹션에 상영했다. 이스라엘이 침공한 레바논 상공의 긴급한 기록을 담아낸 비디오 에세이와 일본 여름 축제의 불꽃놀이를 촬영한 16mm 핸드메이드 필름 작업은 일견 별다른 접점을 공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영화는 하늘에서 만난다. 시작도 끝도 없고, 깊이를 확신할 수도 없는 비정형의 대기에서 만난다.
관객들은 상영 순서에 따라 <하늘의 일기>를 본 뒤에 <빛, 소음, 연기, 그리고 빛, 소음, 연기>를 감상한다. 상공에 떠오른 전쟁의 흔적을 눈과 귀에 새겨둔 관객들에게 고요한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놀이의 아름다운 광경과 수많은 사람을 환호하게 만드는 폭발음은 단순한 축제의 기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하늘의 일기>에서 베이루트의 하늘이 폭
[비평] 대기의 교향곡, 전장의 미장센 - <하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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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유리잔 안에 든 뜨겁고 맑은 찻물 속에서 팽그르르 돌아가는 홍차 티백이 한 장면의 중심일 수 있을까. 카페 테이블 위의 소서와 티스푼,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서 서서히 물드는 각설탕 한 조각은? 질문 둘. 창밖을 내다보던 주인공이 거리를 지나가는 노파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을까. 내친김에 쓰레기를 분리수거 중인 노인의 일과를 도와주기까지 한다면…. 질문 셋. 문득 닥쳐오는 운명적 예감이나 형언하기 힘든 직감을 포획하기에 영화는 적합한 매체일까. 대사나 내레이션이 없는 채로도 관객은 인물이 지닌 심오한 ‘느낌’과 공명할 수 있을까? 세개의 질문은 곧 하나의 연결된 물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가능성을 쥐어준다.
전염된 공동의 슬픔, 실체를 알기 힘든 상실감이나 연결감, 무언가 운명적인 것과 조우했다는 기묘한 확신 같은 것.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는 그런 것들을 향해 춤춘다. 지금껏 이를 종합하기에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운명이 말을 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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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이동휘)와 우정(한지은)은 마땅한 보금자리와 수입이 없는 처지임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근거 삼아 결혼을 마음먹는다. 하지만 선우의 아버지 철구(강신일)가 쓰러지면서 둘의 결혼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선우는 철구의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바삐 돌아다니고, 여유로운 만남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된 선우와 우정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이러한 위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선우는 그간 멀리했던 부모와의 감정적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우정과의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들려 한다. 전작 <운동회>에서 다소 못난 가족구성원들의 좌충우돌 소동과 화합을 그렸던 김진태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에도 영화의 중심 주제는 가족이다. 아무리 다투고 미워하며 잠시 떨어져 있다 해도 결국엔 살을 부딪치며 살아가게 되는 우리네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모라동>이란 제목으로 상영됐다.
[리뷰] 이 시대의 결혼 이야기에 편히 공감케 하는 안정적 연출의 묘, <결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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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한해인)과 설이(한소희)는 강원도 소재의 한 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동기생이다. 아역배우 출신인 설이는 지금껏 연기만 하고 사느라 자신을 제대로 몰라 혼란스럽고, 배우 지망생인 수안은 불투명한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고민투성이의 삶이래도 수안과 설이는 근처 바다로, 서울로 함께 떠돌며 둘만의 천국을 만들어간다. 그러다 두 소녀는 서로에게 이끌리는 감정이 사랑임을 자각한다. 하지만 수안은 이 관계가 우정이라 선을 긋는다. 수안과 설이는 모두 배우라 타인을 가장하는 연기엔 능숙해도 정작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설명하는 데엔 자신이 없다. 영화는 명확한 서사구조나 적확한 감정선을 세우는 대신, 몽환적인 촬영과 조명, 사변적인 대사를 활용해 수안과 설아의 내러티브를 의미 불명의 모호한 대상으로 남겨둔다. 이 전략이 두 청춘의 방황을 외현하는 데엔 효과적이나 작품의 밀도를 채우는 데까지는 기능하지 못한다.
[리뷰] 물기 어린 몽환으로 스케치한 청춘의 예쁜 혼돈,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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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한뼘만 한 엠마(정해은)는 동물 마을의 유일한 인간 소녀다. 라마 부모가 온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데도 체구가 작은 탓에 언제나 친구들에게 무시당한다. 소외감을 느낀 엠마는 자신의 진짜 뿌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멸종된 동물을 연구하는 늑대 에드워드(김다올)와 천재 발명가 거북이 뉴턴(박시윤)이 그녀 곁을 지킨다. 한바탕 우여곡절 끝에 숲속 친구들은 서쪽 바다 너머에 소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자신감을 얻은 엠마 일행은 열기구를 타고 지도에도 없는 섬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 <리틀 엠마>는 <신데렐라: 마법 반지의 비밀>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레오 루이스 랴오 감독의 신작이다. 주인공 엠마의 내레이션이 이야기 전반을 이끌며 한편의 잠자리 동화를 듣는 듯한 포근함을 준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디자인만큼이나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전복시킨 발칙한 세계관이 눈길을 끈다.
[리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뒤집는 발칙함, <리틀 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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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스카이(나오미 스콧)는 긴 공백기를 딛고 대대적인 월드 투어를 준비 중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스카이가 친구 루이스(루카스 게이지)의 자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뒤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괴기한 미소를 짓는 환영과 의문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스카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흥행에 성공한 <스마일>이 2년 만에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파커 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잔혹한 죽음을 목격하면 저주가 전염된다는 ‘스마일 엔티티’의 기본 설정은 여전하다. 다만 주인공의 직업이 정신과의사에서 가수로 바뀌면서 불가항력적인 현상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내적 트라우마의 공포를 집요하게 탐구했던 1편과 달리 <스마일2>는 고어한 묘사에 집중한다. 정신적 외상을 신체적 외상으로 바꿔 시리즈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선택이 기존 팬들에겐 낯설게 다가올 듯하다.
[리뷰] 내적 트라우마를 신체 훼손으로 무마하려는 오판, <스마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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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실적 꼴찌인 의료기기 영업사원 근성(허지원)의 부업은 인터넷방송 BJ다. 물론 회사 생활처럼 그의 방송도 ‘하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중이다. 우연히 동창회에서 유튜버로 잘나가는 개그맨 종만(남연우)을 만난 근성은 그에게 합방을 제안하지만 대차게 거절당한다. 홧김에 만취 방송을 켜고 종만의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한 근성은 다음날 인터넷상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다. 전승표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개그맨>은 인터넷방송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탐구한다. 떡상, 나락, 어그로, 주작 등으로 대변되는 개인 방송의 구조를 투명하게 그려낸 리얼리즘이 영화의 강점이다. 특히 실제 스트리머를 보는 듯한 배우 허지원의 열연과 노골적인 언어로 점철된 채팅장과 도네이션(기부)이 현실감을 더한다. 다만 조회수에 매몰된 세 인물의 이전투구를 너무 깊게 파헤친 나머지 자극적인 1인 방송의 병폐에 동화된 것처럼 보이는 접근 방식에 의문이 남는다.
[리뷰] 리얼리즘의 함정에 빠져 인방 생태계의 심연을 허우적댄다, <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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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국숫집을 운영하는 미연(김정난)은 자식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엄마다. 가게 일을 돕는 아들 기훈(박지훈)에겐 넓은 기회를, 집을 떠나 아이돌로 활동 중인 딸 지은(김보영)에겐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단 죄책감이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하던 중 지인과 동네를 잊어버리는 일을 겪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세상 참 예쁜 오드리>는 집안의 풍파를 함께 겪으며 가족이 화합하는 이야기다. 미연의 곁을 지키는 기훈은 엄마를 한층 깊이 이해하고 다시 집을 찾은 지은이 엄마에게 손을 내밀면서 세 사람 관계에 새살이 돋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전개되는 내용에 감칠맛을 더하는 건 배우들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화통한 모습을 보인 김정난의 쇠락한 엄마 연기와 <약한영웅 Class 1>에서 감정을 억누르던 박지훈의 마음껏 표출하는 연기가 반전의 매력을 주며 영화에 새로운 색깔을 입힌다.
[리뷰] 무난무난한 작품에 감칠맛을 더하는 배우들의 연기, <세상 참 예쁜 오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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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라. 모든 것을 부인하라.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변호사 로이 콘(제러미 스트롱)이 부동산 재벌의 둘째 도널드 트럼프(세바스티안 스탄)에게 가르친 승리의 세 가지 원칙이다. 도널드는 그 원칙을 체화하며 가족과 스승을 내팽개치는 안하무인으로 성장한다. <어프렌티스>는 청년 도널드의 사생활을 담은 전기영화로 개봉 전부터 많은 스캔들을 불러왔다. <배니티 페어> 기자 출신 가브리엘 셔먼이 오랜 취재를 거쳐서 각본을 쓰고 <성스러운 거미>로 이란의 페미사이드를 고발한 알리 아바시가 연출한 만큼 영화의 톤은 사뭇 진지하다. 풍자나 자극적인 폭로를 배제하고 1980년대 TV영화의 문법을 빌려와 문제적 인물 도널드와 로이 콘이 마음껏 활개를 친 레이거노믹스 시대의 공기를 생생히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탈진실과 혐오 등 동시대 이슈의 징후를 파헤치는 문제의식과 인물의 모순된 내면을 드러낸 두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리뷰] 스캔들과 찬반 논쟁을 기대했으나 뜻밖의 모범적인 탐사보도, <어프렌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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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정인(오달수)과 아내 현숙(장영남)은 퇴임 후 한적한 교외로 이사한다. 2층짜리 전원주택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도 잠시. 오후 네시를 알리는 자명종 소리와 함께 이웃집에 산다는 남자(김홍파)가 부부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무례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한 그의 태도는 끝내 예의를 차려 접대하려는 부부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오후 네시>는 관객에게 새로운 종류의 불쾌감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이야기를 구동한다. 대적하는 두 인물의 행동 양식과 자기합리화는 감정적 불쾌를, 채도 낮은 고딕풍 인테리어와 주요 인물의 외양은 시각적 불쾌를 일으키며 심리와 미장센의 질감을 전반적으로 일치시킨다. 다만 오후 네시 사건을 제외한 에피소드 대부분이 ‘시간 때우기용’으로 빈약하게 쓰인 탓에 상영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
[리뷰] 구역질 나는 자와의 조우, 구역질 나는 나와의 조우, <오후 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