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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 속의 캐릭터가 배우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강렬한 심리적 몰입이 필요한 메소드 연기자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잦다. 이런 테마의 고전으로는 조지 쿠커의 <이중생활>(1947)이 꼽힌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널드 콜먼)는 공연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성공에 기뻐하기는커녕 점점 불안감에 빠져든다. 자신이 오셀로처럼 변해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자신도 사랑하는 연인을 목 졸라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실제와 허구 사이의 ‘이중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갈등을 그린 이 고전의 주인공처럼, 캐릭터와 거의 동화되어 성공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한 대표적인 배우를 꼽자면 비비안 리가 단연 돋보인다. 비비안 리는 영원히 하나의 캐릭터, 곧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 블랑시로 살았다.
신경증에 가까운 연기
물론 많은 관객에게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한창호의 오! 마돈나] 불안과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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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심장이 되겠습니다!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은 그 어느 해보다 화려했다.
어머, 나 못 알아보면 어떡해~ 나 조여정이에요~. <정글의 법칙 인 캐리비언> 찍느라 홀쭉해졌어용~.
“우리 7년 사귄 커플이에요. 이대로 결혼하면 될까요?” <결혼전야>(감독 홍지영)의 동갑내기 두 배우 옥택연과 이연희(왼쪽부터).
“올해는 회고전과 신작 <화장>의 제작 발표로 왔습니다.” 임권택 감독과 채령 여사가 씩씩하게 레드 카펫을 걸어가고 있다.
4대 천왕과 월드 스타의 만남. 개막식 사회를 맡은 홍콩 배우 곽부성과 강수연(왼쪽부터).
우리는 톱스타! <톱스타>의 박중훈 감독, 배우 엄태웅, 소이현, 김민준(오른쪽부터)이 레드 카펫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다.
‘낭랑 18세’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태풍 피토의 간접 영향을 받을 거라는 전날의 일기 예보는 다행스럽게도 기우에 그쳤다.
[씨네스코프] BIFF는 열여덟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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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한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이 가능할까. 2013 아시안영상정책포럼(주최 부산영상위원회, 부산광역시,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이 8일 벡스코에서 개막한다. AFCNet 회장이기도 한 부산영상위원회 오석근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아시안정책포럼의 주제가 ‘아시아영화 교육 문제’였다. 그때 나온 논의는 그해 11월 한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영화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젝트인 ‘플라이(FLY)’로 실행될 수 있었다”며 “올해는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공적개발원조기금을 지원받아 영화와 관련한 원조사업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의 세미나 중 9일 오후 4시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세미나 ‘영화는 있고 극장은 없다’에서 영화 원조 사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다. 오위원장은 “가령, 라오스는 유네스코로부터 영화 촬영 장비를 지원 받은 적이 있다.하지만
[MARKET NEWS] 날아라, 영화를 위한 공적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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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를 할 때 가장 대책 없는 경우는 진 사람이 이긴 거라고 규칙을 바꾸거나 안 한다고 뻗대는 때가 아니다. 누군가가 약지 하나만 내는 식으로 엉뚱한 손모양을 내밀 때다. 대운하 안 하겠다면서 뒤로 돌아선 4대강을 대운하로 만들라고 ‘지시’(혹은 닦달)한 것처럼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거짓말과 탐욕이 뻔히 보여서 욕할 일도 많았고 창의적인 욕들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는 그런 말놀이 문화가 실종됐다. 다들 입을 닫는다. 귀도 막는다. 비판하거나 욕을 할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반대하며 자리에서 물러나자 정권 주요 인사들이 앞다투어 배신자 취급을 한다. 서청원, 홍사덕 같은 올드보이들이 여당 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환하며 ‘보스의 의리’를 과시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호출에 여당 고위 인사들이 몰려가 청와대 근처, ‘윗분’의 코앞이라는 이유로 폭탄주를 마다하고 와인잔을 홀짝였다니, 여기까지는 조폭의 업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후진,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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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일랜드를 사랑하는 만큼 아일랜드도 영화를 사랑한다. 숱한 명작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아일랜드는 영화 산업의 규모가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계 영화제에서 이름을 떨친 많은 거장들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게다가 세계 영화의 중심인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경우도 상당해 국제적인 경험도 풍부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할리우드까지 이어진 영화의 길, 아일랜드 영화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국제합작 경험이 있는 감독들 중심으로 아일랜드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가진다. 이른바 아일랜드 영화계의 빅 3라고 할 수 있는 존 부어만, 닐 조단, 짐 쉐리단 감독의 대표작 2편씩을 중심으로 최근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감독 5인의 영화를 더해 총 11편의 영화가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할리우드는 물론 유럽영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존 부어만 감독의 작품은 그에게 23회와 5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
[SPECIAL] 아일랜드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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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셸 프랑코의 멕시코영화 <애프터 루시아>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해설을 했다. 한달에 한번 늘 해설을 했던 극장인데도 평소에 비해 관객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칸에서 주목할 만한 부문 대상을 받긴 했지만 신인감독이 만든 멕시코영화에 관심이 쏠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해도 수입사나 홍보사도 그다지 성의가 없는 기색이었다. ‘애프터 루시아’란 제목을 지은 이유가 궁금해 홍보사의 보도자료를 살펴보니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는 최근 이 나라에 살며 인터넷에 뜨는 뉴스에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통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겪는 고통은,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가해자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대신에 우리는 가해자 편에 서는 방식을 택한다. <애프터 루시아>는 그 점에 관해 관객에게 대속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치유는 쉽지 않다
<애프터 루시아>는 교통사
[신 전영객잔] 피할 수 없다면 껴안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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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유심히 바라본 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장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풍경>은 서울의 구로동, 가리봉동, 신림동, 경기도 안산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가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딱 하나. 당신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인상적으로 꾼 꿈은 무엇인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이들의 사연을 따라가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풍경>은 당신의 첫 다큐멘터리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5년 처음 한국에 왔다. 이후 여러 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그때 한국, 특히 서울의 거리에서 본 외국인은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관광객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한국의 거
[INTERVIEW] 꿈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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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서울에서, 사람은 부산에서. BIFF 데일리팀의 기본적인 작업 방식이다. 각종 행사와 게스트를 취재하려면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영화관람을 영화제 시작 전 서울에서 미리 마쳐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지난 2007년엔 부산에서 짬을 내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프랑스감독 파스칼 토마의 <0시를 향하여>다. 당시 <씨네21> 데일리팀의 막내 객원기자였던 나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사가 통과되기 전까지 무슨 사고라도 친 건 아닐까 싶어 사무실에 망부석처럼 앉아있었더랬다. 그때 한 선배가 건넨 말이 도화선이 되었을 줄이야. “영엽, 일 끝났으면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도 돼.” 그 순간 나는 별안간 극장으로 가서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정말 미치도록 영화가 보고 싶었다. 마침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0시를 향하여>를 상영하기 직전이었고, 그 길로 나는 극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숨 가쁘게
[부산에서 만난 나의 영화] 모든 정황은 하나의 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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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배신, 배반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 것 같다. <배우는 배우다>에서 이준의 이미지 변신은 파격에 가깝다. 폭력적인 베드신만 수차례, 거기다 험한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폭행 장면도 적지 않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부류에게는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적신호이자, 허용범위를 넘긴 도전이다. 이준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돌 연기자가 영화의 감초 역할이 아닌 주연으로 전면에 나선 것도 좀체 보기 드문 경우다. 아이돌, 예능돌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급격한 이미지 변화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거침없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이준에게 듣고 싶었다.
이준과는 첫 만남이다. 날카로운 얼굴선과 홑겹의 눈매와 얼핏 차가워 보이는 마스크인지라 촬영 때도 그 특유의 카리스마가 시선을 압도한다. 화보를 찍다보면 매번 느끼지만 유독 몸의 쓰임이 자유로운 배우들이 있
[이준] 앉으나 서나 연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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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성 | 한국 | 2013년 | 110분 | 뉴 커런츠
OCT08 롯데4 10:00 OCT10 롯데4 13:00
최진성 감독은 다큐멘터리(<그들만의 월드컵 ver. 2.0> <Jam Docu 강정>), 실험영화(<이상, 한가역반응>), 단편 극영화(<히치하이킹>)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풍자해왔다. 지난해에는 소녀시대, 샤이니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 32명의 뉴욕 공연을 그린 다큐멘터리 <I AM.>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첫 장편 극영화 <소녀>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물이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충격을 받은 윤수(김시후)는 시골 마을로 전학을 간다. 마을의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서 혼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해원(김윤혜)를 발견하고 관심을 가진다. 정신이 나간 아버지(정인기)와 함께 살고 있는 해원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소녀. 각
[COMPETITION] <소녀> Steel Cold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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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이 준이치 | 일본 | 2013년 | 107분 | 뉴 커런츠
OCT08 CGV5 17:00 OCT10 CGV5 17:00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보여주고 싶은 감정이 있어도 미처 다 꺼내지 못하는 시기가 청춘일 것이다. <어게인>은 미숙한 청춘을 관통하는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영화다. 하츠미는 마을에 이사 온 여고생이다.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던 그는 류타로를 알게 된다. 폐지를 수집하는 일을 하는 소년이다. 하츠미와 류타로, 두 사람은 동네에서 자주 만나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를 알아가던 중 류타로는 하츠미와 성적인 관계를 시도하고, 하츠미는 갑작스러운 류타로의 행동에 놀라 집으로 도망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츠미의 엄마는 류타로가 자신의 딸을 강간했다고 경찰에 신고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하츠미와 류타로가 가까워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면 후반부는 두 사람이 서로의 보호자와 함께 사건 조사를 위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류타로
[COMPETITION] <어게인>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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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기 | 한국 | 2013년 | 64분 | 와이드 앵글
OCT08 CGV4 13:00
늙은 어부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순천>은 졸릴 만큼 평화로운 순천만의 풍광을 뒤로 평생 거친 바다 위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는다. 마을사람들이 입 모아 여장부라 칭찬해 마지않는 그녀 곁에는 오십 평생 알코올 중독자로 속을 썩인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는 “평생 나를 고생시켰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살뜰하게 할아버지를 챙긴다.
그녀의 태도에 푸념은 있어도 원망은 없다. 다만 삶의 주름 사이에 고여 있는 피로와 슬픔만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술 때문에 망가지고 지친 몸을 빠끔히 내밀어 그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도 미안함, 답답함, 섭섭함이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회한은 없는 삶의 풍경, 그리고 넉넉한 순천의 풍경. 멀리서 보면 그저 아름다운 풍광에 불과할 테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고단한 순천만 어부의 삶과 겹쳐지며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남긴
[CINE CHOICE] <순천> Splendid but Sad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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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란즈만 | 프랑스, 오스트리아 | 2013년 | 218분 | 와이드 앵글
OCT08 CGV3 11:30 OCT11 CGV7 20:00
능수능란하다. 다큐 감독으로서 클로드 란즈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은 9시간여의 대작 다큐 <쇼아>를 만든 감독이고 <쇼아>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진상을 파헤친 역작이다. <쇼아>가 나온 건 1985년, 근 30년이 지나 란즈만은 <쇼아>의 외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한 편 더 완성했다. 그것이 이 영화 <마지막 부당한 자>다.
란즈만은 <쇼아>를 준비하던 당시인 1975년에 베냐민 무어멜슈타인이라는 인물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맥락과 구성상 <쇼아>에 넣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저 묵혀두었다. <마지막 부당한 자>는 그 인터뷰 자료를 다시 꺼내어 편집한 것이다. 무어멜슈타인은 나
[CINE CHOICE] <마지막 부당한 자> The Last of the Unj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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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오 바나드 | 영국 | 2013년 | 90분 | 플래시 포워드
OCT08 M해운대4 14:00 OCT08 M해운대3 14:00 OCT10 COMC 14:00
아버와 스위프티는 단짝이다. 그들에게 학교생활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있기에 둘은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고철을 줍던 그들은 고철상 키튼을 만나게 되고 말과 수레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고철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은 점점 고철을 돈으로 보기 시작하고 멀쩡한 전선과 철물들을 훔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말을 잘 다루는 스위프티가 키튼의 눈에 더 들기 시작하고 둘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진다. 아버는 점점 더 돈에 집착하고 고물상의 고철 덩어리들을 훔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양떼들이 풀을 한가롭게 뜯고 있는 자연의 풍경으로 시작하지만 곧 콘크리트와 전신주, 고철이 가득한 세상의 풍경들을 보여주며 이들을 대비시킨다.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버려진 폐기물과 고철을 줍는 아버와 스위프트는 고철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CINE CHOICE] <이기적인 거인> The Selfish Gi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