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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런 올 나이트> 아들의 복수를 위해
[정훈이 만화] <런 올 나이트> 아들의 복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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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삶은 불완전하며, 쉽게 바뀔 수 있으며,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두번 다시 볼 수 없구나,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구나!’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모순이 들어 있다.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다’라는 말은 영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두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흘러가는 것들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흔들지만 우리 역시 흘러가는 중이다. 우리는 삶에서 딱 한번밖에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고, 거꾸로 달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여태껏 아무도 되돌아온 자 없는 그곳, 그 미지의 나라,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김중혁의 바디무비] 한번뿐인 존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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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눈사태가 스키장 레스토랑을 덮친다. 사상자는 없다. 깔려죽은 것은 위기의 순간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혼자 줄행랑을 쳤던 남자의 에고다. 가족의 공기엔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고 이윽고 “나는 생존 본능의 희생자야!”라는 남자의 울부짖음이 쾌적한 호텔 복도에 울려퍼진다. 루벤 외스트룬드 감독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배경인 스키 리조트를, 사나운 자연과 그것을 길들이려는 문명이 부딪치는 장소로 소개한다. 광막한 설산과 5성급 호텔의 편의시설, 동물적 본능과 문화적으로 구성된 셀프 이미지가 대조된다. 특히, 네 식구가 쓰는 같은 상표의 전동칫솔은 부유한 핵가족의 일체감과 잘 관리된 라이프 스타일을 함축한다. 그러나 청결한 침묵 가운데 울려 퍼지는 진동음은 기괴하게 위협적이다.
02/24
“꺼져! 이 흉악한 인간아. 나는 아빠랑 집에 가겠어.”
<위플래쉬>의 클라이맥스인 카네기홀 공연에서 플레처 선생(J. K. 시먼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앤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저 얻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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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갖춘다는 일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갖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임경선식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부탁하고 거절할 것인가,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같은 매일의 사건사고들에서 생각해볼 만한 점들을 그녀의 목소리로 읽을 수 있는 책.
[도서]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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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의역, 형식/의미, 문자/정신, 구조/내용, 원문 중심/역문 중심, 문학성/가독성, 충실성/창조성, 딱딱함/유려함, 이국화/자국화와 같은 번역을 둘러싼 이분법적 화두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실제 번역 사례들을 통해 번역에 관한 여러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책이다. 학술서나 고전문학 번역뿐 아니라 만화책을 번역하면서 설정을 바꾸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명탐정 코난>)에 대한 사례도 실렸다.
[도서] 번역에 관한 여러 고민들에 대한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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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김혜남 에세이.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아온 그녀는 최근 병세가 악화되었고, 그러면서 달라진 것들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움직이기 어려운 자신을 간병하는 친정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깨달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미생>에 열광하는 마음을 읽어낸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 들지 말라’ 같은 글은 특히 추천.
[도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김혜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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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이 불러일으킨 추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기나긴 소설이 된 것은 우연일까? 음식은 오감을 깨운다. 머릿속 잿빛 기억에 색채를 부여하고 향과 맛을 더한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으로 과거 행복했던 어느 아침의 부엌 풍경을 떠올리는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다. 영국 소설가 로렌스 더럴은 <프로스페로의 암자>에서 올리브 한알이 불러낸 놀라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지중해 전체, 조각상들, 야자나무, 금빛 구슬, 수염을 기른 영웅들, 와인, 철학 사상, 배, 달빛, 날개 달린 고르곤, 남자 청동상들, 철학자들, 이 모든 게 이 사이에 낀 검은 올리브의 시큼하고 톡 쏘는 맛에서 솟아오른 것 같다. 고기보다 오래되고 와인보다 오래된 맛. 차가운 물만큼이나 오래된 맛.” 메리 앤 코즈의 <모던 아트 쿡북>은 음식에 관한 그림과 글을 황홀한 플레이팅으로 차려낸 책이다. 고흐와 피카소, 세잔은 물론이고, 낯선 이름과 요리도 등장한다. 미야와키 아야코
[도서] 눈으로 음식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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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와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을 다룬 다큐멘터리 <파울볼>의 연출은 조정래, 김보경 감독 2인 체제로 이루어졌다. 3년 동안 원더스를 따라다니며 모든 경기를 기록한 이들은, 자신들을 ‘영화판의 원더스’로 표현했다. 구단의 해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마저 다큐멘터리의 한 굴곡으로 연출해내며 원더스의 선수들처럼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이들을 제작사인 TPS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울볼>을 3년 동안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개봉하는 소감이 어떤가.
=조정래_감개무량하다. 개봉 자체가 기적이다. 수많은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하다.
김보경_VIP 시사 때 선수들이 있는 상영관에 무대 인사하러 들어갔는데 눈물이 났다. 선수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완성해서 돌려주는 영화다. 그 진심이 관객에게도 느껴졌으면 좋겠다.
-야구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고양 원더스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까닭이 궁금하다.
=조정래_사회
[flash on] 야구 다큐멘터리로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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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달시 파켓이 명함을 건넨다. ‘프로파간다’가 디자인을 맡았다는 소박하고도 귀여운 들꽃 문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로 2회를 맞는 들꽃영화상 시상식은 그렇게 한국 독립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의 애정어린 조력으로 운영되는 행사다. 한해의 주목할 만한 저예산 독립영화를 선정해 10개 부문의 상을 시상하는 이 행사를 운영하는 건 미국 출신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다. 4월9일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리는 들꽃영화제 시상식을 앞두고 그와의 만남을 청했다.
-지난해 제1회 들꽃영화상 시상식을 진행해본 소감이 어땠나.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 영화를 제작 중인데, 내년에 제가 ‘들꽃영화상’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영화인도 있었고. (웃음) 우리 영화상이 큰 시상식은 아니지만, 다른 시상식보다는 아늑하고 친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2회 영화상에서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보다 프로페셔널한 행
[flash on] 지속가능한 영화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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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사고뭉치 소녀 유고는 숲속에서 만난 찐빵 괴물 라라를 쫓다 하늘고래에 올라타게 된다. 동물들만 사는 신비의 구름섬에 도착한 유고와 라라는 신나는 탐험을 즐기지만, 인간은 3일이면 동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라라는 아홉 별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존재로 밝혀진다. 호랑 장군과 여우 대사는 봉인을 풀어 인간을 모두 동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라라를 잡으려 한다. 3일이 되기 전 집에 돌아가야만 하는 유고와 잡히면 희생양이 되는 라라는 멍텅구리 곰 아저씨를 만나 도망치기 시작한다.
2014년 개봉한 <유고와 라라: 신비의 숲 어드벤처>의 이전 시리즈다. 한국에서는 후속편이 먼저 개봉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액션이 강하다. 호랑이와 여우는 장풍과 레이저빔을 쏘고, 유고는 동물들과 육탄전을 해대며 1990년대 격투게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3D 캐릭터의 동작이 과장된 느낌이 있지만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입체적 질감이 극대화된 동물
스펙터클한 동물나라 탐험 <유고와 라라: 하늘고래와 구름섬 대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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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는 완전(장균녕)은 남자친구 선하오졔(하윤동)와 동거 중이다. 취재를 위해 애견카페에 간 완전은 골든레트리버 강아지 리라에게 반해 선하오졔와 함께 기르기로 한다. 서투르기만 하던 두 사람은 리라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리라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그러던 중 임시편집장으로 승진해 바빠진 완전은 선하오졔와 리라에게 소홀해지고, 선하오졔는 완전을 떠난다. 리라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완전은 편집장 승진도 포기하고 리라를 돌본다.
반려견을 매개로 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 소소한 소품이다. 몇몇 감성적인 장면들은 따뜻하지만 드라마는 밋밋하다. 반려동물을 매개로 로맨스를 다루는 경우, 반려동물은 그들의 사랑을 은유하는 상징물로 기능한다. 완전이 일에 빠져 리라에게 소홀해진다는 의미는 선하오졔에게도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을 재결합하게 해줌으로써 반려동물의 임무는 완수된다. <일분만 더>가 안이한 까닭은 서사의 전개를 전적으로 반려견 리
반려견 리라와 함께하는 감성 드라마 <일분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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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같은 발화의 형태를 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단어다. 몸을 치장하는 화장(化粧)이 생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은 죽음을 향한 가장 직접적 통과 절차다. 임권택 감독은 김훈 작가의 단편 <화장>을 토대로 이 정반대의 두 육신에 직면한 중년의 남자, 그 심리를 여행한다.
암투병 중이던 아내(김호정)의 임종을 맞은 화장품회사 마케팅팀 중역인 오 상무(안성기).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간호하는 동안, 회사에 새로 들어온 홍보팀 대리 추은주(김규리)에게 마음을 뺏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뇌한다. 한 남자의 내면을 화면에 옮긴다는 점에서, <화장>은 사건과 역사가 내재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었던 앞선 101편의 임권택 감독의 작품과 차별화된다. 오 상무의 내면 탐구는 회사와 병원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모던한 장소와 현대인의 심리로의 진입이라는 변화는 기존 임권택 영화와는 사뭇
정반대의 두 육신에 직면한 중년의 남자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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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가렐과 루이 가렐은 지금의 프랑스 영화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예술적 콤비다. 아버지 필립 가렐이 사랑이라는 테마를 탐구하며 영화의 다양한 질료를 사려깊게 직조하는 설계자라면, 아들 루이 가렐은 아버지가 설계한 영화적 시공간 속을 거닐며 필립 가렐 영화의 무드를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필립 가렐의 신작 <질투>는 이들의 다섯 번째 협업이자, 이들의 사적인 역사가 영화의 중요한 자양분이 된 작품이다(필립 가렐의 아버지 모리스 가렐은 20살 무렵 자살을 시도했고, 이 에피소드는 <질투>의 주인공 루이(루이 가렐)의 에피소드에 반영됐다). 가난한 연극배우인 루이와 여배우 클로디아(안나 무글라리스)가 사랑에 빠진다. 클로디아는 재기하기가 쉽지 않고 긴 공백기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공허함에 대해 루이에게 위로받길 원하지만, 남자에게 연인보다 더 중요한 건 연극이다.
땅콩은 까기 어렵지만 그래도 맛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먹게 된다고 <질투>의 등장인물들은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섬세한 포착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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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외로운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이하 <그 남자 그 여자>)는 비틀스의 동명 노래 <엘리노어 릭비>의 한 구절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다. 여기 외로운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코너 러들로(제임스 맥어보이), ‘그 여자’의 이름은 엘리노어 릭비(제시카 채스테인)다. 남자와 여자는 한때 사랑했고, 함께 보금자리를 꾸렸고, 아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 행복했던 부부가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
모든 관계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 남자 그 여자>는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내밀한 감정이 있다는 점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 영화다. 누군가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한번 벌어진 관계의 틈을 좁혀나가는 데에는 곱절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 남자 그 여자>가 사랑
두 남녀 각자의 사정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