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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모든 남성 후보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제75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감독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모든 후보가 남성감독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에둘러 비판했다. 한국영화계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성감독의 영화는 물론이고 여자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조차 드물었던 지난 2017년의 한국영화계를 떠올려보자. 올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충무로 상업영화의 불균형한 성비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지면을 통해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이 지면에서는 독특한 감각의 영화를 들고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친 두 여성감독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의 김수정 감독과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김보람 감독이 그들이다. 41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파란입이 달린 얼굴>), 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피의 연대기>)을 수상하며 독립영화계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여성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 카메라를 든 여성감독들 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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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장남이 기념전을 찾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구성을 잘했다고 좋아해주셨다.
-기념전을 준비하면서 김기영 감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은 뭔가.
=김기영 감독 하면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많이 부각됐었는데,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니 지금 봐도 세련된 영화언어를 구사한 작품들이었다. 조감독을 거의 두지 않고 시나리오부터 포스터 제작, 주제곡, 소품, 미술 등 거의 혼자서 작업하셔서 장면이 굉장히 효율적으로 구성됐다. 삶과 영화가 구분이 안 될 만큼 1년 내내 영화만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을 사셨더라.
-이번에 새롭게 다가온 작품이 있다면.
=<느미>(1979). 1980년대 초반 코리안 뉴웨이브의 단초로서 재평가가 필요한 작품으로, 배우 장미희씨가 말을 못하는 느미 역을 맡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촬영, 편집, 음악 등 영화의 스타일을 보면 김기영 감독님이 새로운 형식을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기념전을 준비하면서 어
[김기영 기념전] 정종화 한국영화사연구소 선임연구원 - 김기영 감독의 영화언어를 재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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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님은 괴물이다. 용모부터가 그렇다. 6척의 큰 키와 거구의 몸체, 평생 감지 않은 우수수한 머리… 부릅뜬 가재 눈, 그리고 늘 경계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타인과 사물을 본다.” 김기영 감독 인터뷰집 <24년간의 대화>에서 유지형 감독은 대선배 김기영 감독을 기괴하게 묘사했다. <화녀>(1971)를 찍을 때 “쥐를 출연시키기 위해 집에서 사육하고 훈련까지 시켰고, 열댓 마리의 하얀 쥐를 까맣게 칠해서 촬영했으며, 촬영이 끝난 뒤 쥐들이 번식해 수백마리로 늘었다”(김기영 감독의 아들 김동원)는 일화만 봐도 김기영 감독은 괴짜였다.
생전 김기영 감독은 35년 동안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0년대 유명한 감독들이 1년에 10편씩 만들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필모그래피에서 빨간 줄로 따로 표기된 영화 11편은 김기영 감독이 이연호 <키노>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꼽은 자신의 대표작이다. <양산도>(1955), <10대의
한국영상자료원 김기영 20주기 기념전 ‘하녀의 계단을 오르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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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인도는 <파드마바티>로 떠들썩했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 디피카 파두콘, 란비르 싱 주연의 이 사극은 역사 왜곡 논란과 검열 속에 개봉이 연기되었다. 대중이 직접 보고 판단하기도 전에 작품이 심판의 시험대에 오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파드마바티>가 어떤 영화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개봉일은 여전히 안개 속으로, 1월 말과 2월 초 개봉이 유력하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광적인 관심으로 증폭되어가는 가운데, 비슷한 시기의 개봉예정작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널리 회자되는 전설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파드마바티> 논란 속에도 발리우드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전설의 사랑 대신, 전설의 마초 ‘타이거’의 귀환으로 인도 극장가는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2017년 12월 22일 개봉해 단숨에 극장가를 점령한 액션 스릴러 <타이거 진다 하이&g
[델리] 인도 극장가는 근육질의 액션 <타이거 진다 하이>가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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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한 남자는 부르주아 주부들로부터 사랑받으며 돈을 버는 제비족이 되고 싶었지만, 그가 함께 지내게 되는 사람은 사기를 치며 사는 홈리스다. 친구가 병에 걸리자 두 남자는 차가운 뉴욕을 떠나 따뜻한 플로리다로 떠나기로 한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친구는 그의 품에서 죽고 남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았다.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는 두 남자의 씁쓸한 이야기를 다뤄 X등급 영화로는 처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는 몇해 지나지 않아 낭만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마틴 스코시즈의 <비열한 거리>(1973)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뉴욕의 제왕이 된 스코시즈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수많은 감독들이 명멸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굿타임>으로 초대된 조시와 베니 사프디 형제가 요즘 스코시즈의 후계자로 뜨겁게 거론되는 중이다. <굿타임>이 스코시즈의 <특근&
<굿타임>, 어김없이 실패하는 ‘현실’과 그래도 모험을 하는 ‘영화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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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대학가서 데모하는 놈들이랑 어울리면 큰일난데이.” 깡촌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는 아들을 붙잡고 어머니는 몇번이고 당부한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만 배웠던 영호는 대학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며 알게 된다. 진실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100℃>는 민주화운동사업회에 연재하던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모아 출간한 단행본이다. 2009년 나온 책을 2017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내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100° C>는 과거를 이해하는 기록으로 기획되었음에도 지난 10년간 현재를 공감하는 작품으로 읽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네요’보다 ‘요즘 이야기 같아요’라는 감상이 훨씬 많아 슬펐습니다.” 그러니 책이 덜 팔리더라도 본래의 분류대로 현재가 아닌 역사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100℃ >를 읽으면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연희(김태리)
씨네21 추천도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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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오슬로의 호텔에 방을 잡는다. <팬텀>은 그 남자의 외모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에 대한 ‘힌트’를 준다. 얼굴 한쪽에 길게 난 상처, 주소지로 적는 홍콩 청킹맨션 같은 단서들이 이어지고, 호텔 직원은 숙박부의 이름을 보고는 “당신이 그 해리 홀레입니까?”라며 전설의 주인공을 맞는다. <팬텀>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총 11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는 경찰보다는 마약중독자나 마약거래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리즈를 따라온 사람이라면 그가 오슬로로 ‘돌아왔다’는 데서 그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이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의 직업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혼란을 느낄지도. <팬텀>은 오슬로의 마약 범죄를 다룬다. 마약의 반입과 반출에는 민항기 파일럿이 동원된다. 오슬로시의 마약유통 거점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경찰도 누가 배후의 큰손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씨네21 추천도서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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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번 생애 내내 이마를 비추고 발목을 물들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것은 기억이고, 향수다. 나애는 9살 무렵에 병원집 뒷마당에서 함께 놀았던 상, 도이를, 잠든 나애의 머리맡에서 이마를 짚어주며 전래동화를 자장가처럼 읊조리던 종려 할매를 생각한다. 물론 헤어진 이후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 한순간도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줄곧 그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 것이다. 늘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한 것이다. 평생 그럴 것.”(36쪽)이므로. 지금은 희도와의 다른 생활이 있고, 주변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래도 나애는 알고 있다. 우물 속처럼 따뜻하지만 어둡고, 그래도 빛이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들이 지금을 있게 했다는 걸. 그게 몇살이었든 사람은 위로받고 상처받고 충만했던 기억을 온몸에 저장하며 살아간다.
<해변빌라> 이후 3년 만에 나온 전경린 장편소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의 이
씨네21 추천도서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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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기보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고,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나날이다. 아, 내 경우에는 아니지만 다른 분들은 그러신 것 같다는 말이다. 1월이면 으레 ‘올해의 계획’ 같은 것을 야심차게들 세우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새해 계획 안 세운 지가 10년이 넘었다. 어차피 안 지킬 거니까 계획 자체를 안 세운다. 나이를 강제배식받아 좋은 점은 사람이 자기 주제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1월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자신을 덜 싫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좋은 일들은 의외로 계획 밖의 우연들 속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계획을 지키는 것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재도전보다는 우연을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고질병인 의지박약으로 이번에도 어차피 제3대 국정과제(공부, 다이어트, 돈 모으기)를 배반할 텐데, 그럼 2, 3월에 자신이 얼마나 싫어지겠나. 그러니 1월에도 질척거리며 지난 12월 연말 모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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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그램들은 모두 부제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번에 다룰 프로그램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마이웨이 사부와의 동거동락 인생과외.’
SBS의 새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자, 예능 블루칩 이승기의 제대 후 첫 예능 복귀작인 <집사부일체>가 시작되었다. 육성재, 양세형, 이승기 그리고 예능 첫 나들이인 배우 이상윤이 함께 버스에 오른다. 각자의 승차지점에서 올라타고,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어김없이 예능 초보인 이상윤을 속이고, 동거동락할 사부의 집으로 향한다. 첫사부는 들국화의 전인권.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63년째 살고, 공연 중에는 누룽지와 스팸만 먹는 사부와 네 제자들이 얽혀 인생을 배운다. 또 어김없이 취침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끼워넣어진다.
에피소드 첫 번째의 절반 이상이 이승기의 복귀에 관련해 소비된다. 어눌한 전인권의 언뜻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언행과 네 제자의 부적응은 꽤 오랜 시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몰입하기까지는 다
[TVIEW] <집사부일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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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미셸 윌리엄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크 월버그, 찰리 플러머 / 수입·배급 판씨네마 / 개봉 2월 1일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에 손을 댔다. 존 피어슨의 원작 <페인풀리 리치>(Painfully Rich)를 바탕으로 한 <올 더 머니>는 1973년 7월 로마에서 일어났던 ‘게티 3세 유괴 실화’를 소재로 한다. 세계 최고의 거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한 석유재벌 진 폴 게티. 유괴범들이 손자의 몸값으로 1700만달러(186억원)를 요구하는 사건에 휘말린다. 손자의 머리카락과 귀 일부를 받아든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냉혹한 부호 게티는 “유괴범에게 줄 돈은 단 한푼도 없다”라며 협상을 전면 거부한다. 게티는 왜 몸값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 셰익스피어적인 요소를 발견했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돈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Coming Soon] <올 더 머니>, 전대미문의 유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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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바룰라>의 덕기는 오래전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약을 파는 사기꾼들에게 붙들려 이도저도 못하는 신세에 처해 있던 덕기를 찾아낸 건 영환(박인환). 영환의 도움으로 소꿉친구들과 재회하고 가족들까지 만나게 된 덕기는 서서히 웃음을 찾아간다. 1969년 KBS 공채로 데뷔해 <전우> <용의 눈물> <명성황후> 등 드라마에 주로 얼굴을 비춘 윤덕용은 오랜만의 영화, 오랜만의 주연 기회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로 행복을 표했다.
-근래엔 작품 활동이 뜸했다.
=젊을 땐 일이 많았는데 나이 먹으니까 방송국 사람들도 세대교체가 되고 그러면서 관계도 많이 끊어졌다. 그래서 많이 쉬었는데, 3년 전쯤 기독교영화 <신이 보낸 사람>(2014)에 출연했다. 그때 <비밥바룰라>의 제작자인 정유동 대표와 인연이 닿아 이번에도 함께하게 됐다.
-덕기가 아닌 나머지 세 캐릭터 중에 탐나는 역할은
<비밥바룰라> 윤덕용 - 열심히 즐겁게, 라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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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계보를 따지자면, 특히 그 웃음이 삶에서 묻어나오는 페이소스에 무게를 둔다면 대한민국에서 배우 임현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임현식은 병들고 늙어가는 친구들 곁에서 항상 어린 시절 가졌던 젊은 마음을 일깨워주는 유쾌한 친구 ‘현식’을 연기한다. ‘비밥바룰라~’를 읊으며, ‘여자들에게 인기 많다’고 뻐기지만, 첫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배우 임현식을 만났다.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는데, 이런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게 아니고 흔치 않은 기회라는 따님의 말에 설득당했다고.
=노인들이 활약하는 시니어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이 흔치 않다.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 딸들이 의견을 많이 주는데, 우리 딸들은 모처럼 만들어지는 영화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거 같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노인이 아니라고,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웃음) 노인으로서 내 인생 준비가 덜 되어 있는데, 노인 역할을 맡으니 좀 거북했던 거지. 그런데 나도
<비밥바룰라> 임현식 - 웃음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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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나이에도 배우 신구의 필모그래피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일년에 두세편씩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와 연극을 오가고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아르바이트생 역할은 물론, 매체와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는 유연함은 최근 들어 특히 눈에 띈다. <비밥바룰라>에서도 신구는 유연하게 캐릭터의 이쪽과 저쪽을 오간다. 친구들에겐 무뚝뚝하나 치매에 걸린 아내에겐 한없이 로맨틱한 순호가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영화 <비밥바룰라>까지 노년의 어른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다.
=노인들의 이야기, 그건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다. <비밥바룰라>는 우리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 세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 이웃과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잘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라서 출연
<비밥바룰라> 신구 - 동료들과 일하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