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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에릭(조시 하트넷)은 약물중독으로 스스로 국가대표 자리를 차버린다. 약에 취해 교통사고를 내고 7일 뒤의 재판 출석을 기다리며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 신나게 스노보드를 즐기던 에릭은 기상악화로 설산에 고립된다. 호기롭게 활강 금지구역으로 향했던 것을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방향감각을 발휘하기 힘들게 주변은 온통 하얀 눈밭이고, 밤사이 기온은 영하 40도로 내려간다. 통신이 되지 않는 소형 라디오와 휴대폰, 스노보드와 한줌의 약을 빼곤 식량도 그 어떤 보호장치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메아리조차 없는 절망적 외침이 되고 만다.
<식스 빌로우>는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하고 제임스 프랭코가 주연한 <127시간>(2010)의 설산 버전이라 할 수 있다(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27시간>에서 주인공 아론은 블루존 캐니언에서 하이킹을 하다가 협곡 사이에 추락해 고립되자 추위와 배고픔과 절망을
<식스 빌로우> 기상악화로 설산에 고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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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블록버스터 <메이즈 러너> 3부작의 마지막 영화. 1편 <메이즈 러너>(2014)에서 정체불명의 미로에 갇혀 사투를 벌였던 소년, 소녀들은 플레어 바이러스가 창궐한 폐허의 도시 스코치(2편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를 거쳐 악의 세력 ‘위키드’의 본부가 있는 ‘최후의 도시’로 향한다. 3편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는 위키드에게 납치당한 친구들과 민호(이기홍)를 되찾기 위해 나선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 뉴트(토머스 브로디 생스터) 일행의 격렬한 액션으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이들은 위키드가 납치한 사람들을 태운 수송 차량을 급습하지만 그곳에 민호는 없다. 플레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류의 멸종 위험이 높아지자, 위키드는 면역자인 민호에 대한 실험을 강행한다. 토마스와 뉴트 일행은 민호를 구하려면 ‘최후의 도시’에서 위키드와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들은 위키드에 맞서는 지하조직 ‘크랭크’의 도움을 받아 경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미로의 끝을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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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녀 마리네뜨(여민정)는 마법의 보석 미라클스톤의 선택을 받아 위기의 순간 레이디버그로 변신하는 슈퍼히어로다. 히어로 블랙캣(남도형)과 함께 악당 호크모스(홍시호)로부터 도시를 구하기에 눈코 뜰 새가 없지만 한편으론 블랙캣의 본모습인 아드리안을 짝사랑하는 소녀이기도 하다. 어느날 레이디버그는 미라클스톤의 수호자 마스터 푸를 만나 또 다른 미라클스톤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호크모스가 두 히어로를 제거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을 실행하자 레이디버그는 그의 음모를 저지하고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블랙캣과 합동 작전을 벌인다.
삼지애니메이션과 프랑스 자그툰, 메소드 애니메이션, 일본 도에이 애니메이션 등 한국과 프랑스, 일본 3국의 제작사가 협업한 프로젝트 애니메이션인 <레이디버그>의 두 번째 극장판이다. TV애니메이션 <레이디버그>는 전세계 120개국에 방영됐고, 한국에서는 EBS 주간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라클스톤의 힘을 빌려 레이디버그와
<극장판 레이디버그: 미라클스톤의 비밀> 이색적인 여성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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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코니 아일랜드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지니(케이트 윈슬럿)의 삶은 팍팍하다. 일은 지겹고, 어린 아들은 방화를 일삼으며, 남편 험티(짐 벨루시)에 대한 애정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녀의 삶에서 유일한 낙은 해변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사랑뿐이다. 지니는 믹키와 함께 지긋지긋한 코니 아일랜드를 떠날 날만을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험티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찾아오고, 믹키는 캐롤라이나와 사랑에 빠진다. 이를 지켜보는 지니의 마음 속에 질투가 싹트기 시작하고, 지니의 삶은 점차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디 앨런 자신의 전작 <블루 재스민>(2013)과, 다시 말해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닮아 있는 영화다.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들을 통해 삶의 부조리가 펼쳐지고, 이 부조리 앞에서 관객은 사유할 수 없는 것들을 사유하도록
<원더 휠> 꿈처럼 환상적인 뉴욕, 코니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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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자리에는 용산구 철거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들이 시위를 벌이던 용산 남일당 망루에서 경찰의 폭압적인 강제진압과 화재가 발생해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용산참사 현장에는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와 서울 상도동, 신계동, 성남 단대동 등에서 모인 타 지역 철거민들이 함께 망루에 올랐다. 경찰은 당시 망루에 있던 모든 철거민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2012년,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긴박했던 참사 현장 당시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만든 바 있다. 그 속편 격에 해당하는 <공동정범>에서는 4년여의 실형을 살고 나온 5명의 ‘공동정범’ 철거민들을 따라다니면서 참사 이후 뿔뿔이 흩어져버린 진상규명의 움직임을 다룬다.
그날의 현장에서 벌어졌던 상황의 디테일을 파헤치기보다는 죽은 동료들을 버리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공동정범> “나 때문에 모두가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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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연기과 시간강사 오준구에게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 드라마 극본을 받은 오준구는 이것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걸 직감한다. 한편 퇴근을 하던 오준구는 퇴임을 앞둔 노교수 최기호가 대학생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정황을 포착한다. 최기호는 오준구에게 정교수 자리를 제안하지만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라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 오디션장 앞에서 고민하던 오준구는 좋은 학군 주변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집을 계약했다는 아내의 통보에 결국 배우를 포기하고 정교수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최기호의 퇴임식에서 후임 정교수 자리는 오준구가 아닌 다른 강사에게 돌아가고, 최기호는 행방이 묘연하다. 공식 발표 전까지 최기호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오준구의 가정과 꿈, 모든 것이 흩어져버릴 것이다.
빠른 전개 속에서 성찰과 고민의 지점을 남기는 애니메이션이다. ‘헬조선’이라는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혹은 우리가 악마가 되어가고 있
<반도에 살어리랏다> 밥줄과 꿈줄 위에서 분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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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소수자들이 있다. ‘노인’도 그중 하나다. 젊은 스타 캐스팅을 담보할 수 없으니, 투자도, 마케팅도 애초 쉽지 않은 기획이다. 노인을 소재로 하고도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그래서 노인의 성을 전면에 담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2002)처럼 센세이셔널한 소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처럼 웹툰 원작이 주는 효과를 빌려온 작품들이다.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아예 <워낭소리>(2009)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같은 독립다큐멘터리의 ‘리얼’한 삶에 오히려 호응이 더 크다.
칠순이 넘은 네 친구들의 노년기를 그린 <비밥바룰라>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독한 필살기를 두지 않은, 소박한 드라마다. 그러니 시작부터 사뭇 용감한 기획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영환(박인환)이 죽마고우들을 독려해 한집에서 함께 살다가 생의 마지막을 맞는다는 게 이야기의 큰 줄기. 그의 곁에는
<비밥바룰라> 칠순이 넘은 네 친구들의 노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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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선 감독은 사회정의를 영화에 담아내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리고 인간성 회복을 강조해왔다. 현대판 노예선이라 불린 새우잡이 배에서 벌어진 학대와 착취를 펼쳐냈고(<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선택>(2003)).
또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한 협정 때문에 무고한 시민이 억울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했다(<이태원 살인사건>(2009)).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1급기밀> 또한 1997년 국방부조달본부 외자부 군무원의 전투기 부품 납품 비리 폭로,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 2009년 군납 문제 폭로 등 군비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라는 점에서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을 만한 작품이다.
군인 정신이 투철한 박대익 중령(김상경)은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다. 어느 날 공군 파일럿 강영우 대위(정일우)가 그를 찾아와 전투기 부품
<1급기밀> 국방부의 내부 비리를 포착하고 고발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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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머스커, 론 클레멘츠 / 목소리 출연 린 어벌조노이스, 버디 해킷, 조디 벤슨, 팻 캐럴 / 제작연도 1989년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20대 중반까지도 나는 이 일이 내 직업이 되리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나의 관심사는 음악, 소설, 영화(라이브 액션)뿐이었으니까. 소설은 그 취향이 매우 협소해서 한국의 단편소설에만 한정돼 있었고 음악도 당시 유행하던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장르는 손도 대지 않는 편식이 있었지만 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섭취했는데,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매주 <씨네21>을 전철역 가판대(!)에서 구입해 앞 표지부터 뒤 표지까지 모조리 읽기, 비디오가게(!!)를 뒤져서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영화 찾아보기, 극장을 순례하며 개봉영화 섭렵하기 등 나름 시네필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당시는 장르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도 꽤 많이 개봉했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
이달 감독의 <인어공주> 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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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을 꿈꾸는 미구엘(앤서니 곤살레스)이 ‘죽은 자의 땅’(Land of the Dead)에서 마주치는 망자 중에는 화가 프리다 칼로(나탈리아 코르도바 버클리)가 있다. 공동감독 에이드리언 몰리나는 칼로의 캐스팅에 대해 “<코코>는 본인의 예술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배우는 소년의 여정이므로, 멕시코의 예술적 아이콘과 만나는 설정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코코>는 시각예술가인 프리다 칼로의 자산을 백분 활용한다. 자화상을 집요하게 탐구한 아티스트답게 <코코> 속 프리다 칼로는, 본인과 똑같이 생긴 무용수들과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이때 무대는 역시 칼로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했던 ‘과일’과 ‘눈물 흘리는 선인장’으로 꾸며져 있고, 칼로의 알레브리헤(동물정령)도 그의 캔버스에 자주 출현했던 동물 원숭이다.
01/09
헤이그의 자동차 박물관에서 윈스턴 처칠의 마크IV 리무진을 구경한 적이 있다. 차내에 빌트인된 뚝배기만 한 재떨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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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세편의 한국영화가 이례적인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들이 겨울 시장에서 한주 차이로 맞붙었음에도 관객의 고른 선택을 받은 것은 꽤 드문 일이다. 먼저 <신과 함께-죄와 벌>(2017년 12월 20일 개봉)이 지난 1월4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대 20번째 천만 영화가 됐고, 1월 18일 현재 1300만 관객까지 기록한 상태다. 같은 시기, 가장 먼저 개봉한 <강철비>(2017년 12월 14일 개봉)가 440만 관객, 가장 늦게 개봉한 <1987>(2017년 12월 27일 개봉)도 61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38호에서 이들 세 영화에 대해 김소희·송형국·안시환 평론가가 대담을 나눴던 것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김영진 평론가의 비평을 싣는다. 세 영화 모두 얼마간 자신에게 미흡했다는 그의 비평과 함께하시길.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을 상영하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세편의 한국영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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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불빛이 완전히 꺼지면 등장하는 신데렐라의 성, 그곳에는 두 가족이 산다. 하나는 월트 디즈니의 직계가족. 미키마우스가 휘파람을 불며 방향키를 돌리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1928)의 대표 장면이 이 가족의 문패이다. 또 하나는 픽사. 이들의 문패는 룩소 주니어가 폴짝거리며 등장하는 장면이다. 한 지붕 두 가족, 전략적 공생관계, 그러면서도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치열한 경쟁의식. <코코>의 상영은 이러한 긴장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픽사에서 만든 장편은 늘 단편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준다. 장편 <코코>도 마찬가지다.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라는 단편이 마중물 구실을 한다. 잠깐! <겨울왕국>(2013)의 그 올라프? 반갑기도 하지만 갑자기 혼돈이 인다. <겨울왕국>은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던가?
디즈니·픽사, 한 지붕 두 가족
뭐지, 이 상황은? 일단 지켜보자. &l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소리와 영상으로 기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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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TV시리즈는 <더 어새시네이션 오브 잔니 베르사체: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FX채널>)다. 베르사체 브랜드의 상징인 거대한 메두사의 머리가 포스터를 채우는 이 시리즈는,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두 번째 시즌으로, 1997년 애인의 총격으로 숨진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배너티 페어>의 컨트리뷰터인 모린 오스의 논픽션 <Vulgar Favors: Andrew Cunanan, Gianni Versace and the Largest Failed Manhunt in U.S. History>(1999)가 바탕이 됐다.
1997년 7월 일어난 베르사체 살인사건은 할리우드가 군침을 흘릴 만한 자극적인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용의자 앤드루 커내넌은 고급 남창으로 알려졌는데, 사건 발생 9일 뒤 정박된 보트 안에서 권총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커내넌이 연쇄살인범이었으며 그의 마지막 범
[LA] 베르사체 살인사건, TV시리즈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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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제임스 베닝에 관한 다큐멘터리 <더블 플레이>에 인상적인 대화가 등장한다. 링클레이터가 자신의 고향에 세운 시네마테크로 제임스 베닝을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무엇이 좋은 영화인가를 질문한다. 이에 제임스 베닝은 “나는 좋은 영화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사실 좋은 영화는 이미 너무 많다. 난 형식과 문법이 새로운 영화를 더 지지한다. 그런 영화들이야말로 영화 문화의 저변을 넓혀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제임스 베닝의 말에 동의한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영화적 이해이자 정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언을 조금만 뒤집어보면 곧 쉽지 않은 곤경이 찾아온다. 어떤 영화에서 새로운 형식과 문법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영화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또 다른 곤경의 순간. 지지하던 감독의 반갑지 않은 변화 혹은 선택을 마주할 때의 당혹스러움이다. 그동안 그
<다운사이징>에서 작아진 것은 주인공의 사이즈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