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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y A Friend》가 처음 나왔을 때 ‘이런 곡이 될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해 웬만큼 실험적인 곡들엔 익숙해졌는데도 휑할 정도의 심플함과 섬뜩한 가사를 팝 장르 아티스트가 들고 나오니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빌리 아일리시는 최근 실험적 방향으로 음악 노선을 틀었지만 《Bury A Friend》는 그중에서도 가장 멀리까지 나갔다. 빌보드 성적을 보면 이 노래가 얼마나 대중성이 결여돼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Bury A Friend》는 라디오를 기준으로 집계되는 ‘라디오 송스’, ‘팝 송스’ 차트에서 순위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라디오 선곡은 러닝타임, 멜로디 훅, 보컬 유무 등을 민감하게 따지기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인 대중성 지표에 해당한다. 그 기준으로 볼 때 《Bury A Friend》는 낙제에 가까운 성적이다. 그런데도 《Bury A Friend》는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
[마감인간의 music] 빌리 아일리시 《Bury A Friend》, 디지털 화력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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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검은 사제들>(2015)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사바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 장재현 감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검은 사제들>이 구마(驅魔)의식이라는 낯선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내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은 만큼 자신의 두 번째 영화인 <사바하>에 거는 기대가 많은 현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만큼 부담감도 크다는 사실을 넌지시 내비쳤다. 2월 20일 개봉하는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사바하>는 신흥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박 목사(이정재)가 요셉(이다윗), 해안스님(진선규)의 도움을 받아 사슴동산이라는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를 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구축하는 까닭에 관객을 붙드는 힘이 있다. 종교 ‘오덕’ 감독답게 이야기 곳곳에 불교, 무속신앙, 심지어 기독교 세계관
<사바하> 장재현 감독, "정보는 짧게, 감정은 길게, 중요한 정보는 두번씩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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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표면에서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나 차별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배제와 분리, 그로 인한 불평등은 얼마나 나아지고 있을까. 이 글은 작품 비평이라기보다 ‘영화 <증인>을 중심으로 본 한국 사회의 장애인 타자(他者)화 문제’라는 주제의 에세이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을 우선 밝히고 시작하려 한다.
두개의 비슷한 풍경이 있다. 먼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자폐 장애를 지닌 동생을 격리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담은 빼어난 작품이다)을 만든 장혜영 감독 자매의 이야기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초청 간담회에서였다. 고관대작들은 “우리 장애우들”, “우리 장애 친구들”이라는 시혜적 호칭으로 말을 꺼내며 그들이 들은 장애인의 어려운 점을 나열했다. 장 감독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를 분노 혹은 실망을 느꼈다”고 털어놨다(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
<증인>으로 보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 혹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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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12살 소녀 옷코가 할머니와 함께 전통 료칸을 운영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많은 작품에 원화 및 작화 감독으로 참여한 고사카 기타로 감독이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 이후 15년 만에 만든 두 번째 연출작이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이다. 영화 속 옷코처럼 “손님에게 정성스레 차를 내어주는 마음으로, 다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고사카 기타로 감독을 만났다.
-일본에서 20주 연속 장기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 정도 장기상영은 이례적인 일로 안다.
=SNS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5년 전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때만 해도 SNS를 통한 입소문이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 고사카 기타로 감독, “배려하고 주변에 영향받으며 성장하는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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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잘 사랑하고 있습니까? 브라이언 크라노 감독의 <퍼미션>은 안정적인 관계를 꿈꾸는, 혹은 이미 그런 관계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키스와 연애, 잠자리를 오직 한 사람과 지속해온 커플을 극의 중심에 놓는 이 영화는 사랑과 행복의 정의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관계에 대한 사려 깊은 고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로맨스영화다. <퍼미션>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이는 <아이언맨3>의 마야 한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빅키 역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배우 레베카 홀이다. 최근 연출, 각본, 제작 등 영화인으로서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그에게 <퍼미션>은 가장 잘 알고 믿음직스러운 동료들과 협업해 완성한 의미 깊은 작품이다. 레베카 홀과의 서면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퍼미션>에 출연한 계기는 뭔가.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영화의 각본·감독
<퍼미션> 레베카 홀 - 로맨스의 전형성을 비켜가는 이야기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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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연출한 이시이 유야 감독과 주연배우 이케마쓰 소스케가 영화의 국내 개봉(2월 14일)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언제나 동시대 특정 세대의 문제를 영화에 담아내는 이시이 유야 감독은 소설을 영화화한 전작 <이별까지 7일>(2014), <행복한 사전>(2013)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시인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을 원작으로 삼았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현재 일본의 동년배 배우 중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해도 무방할 이케마쓰 소스케는 이시이 유야 감독과 <밴쿠버의 아침>(2014), <이별까지 7일>에 이어 함께 작업했으며,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대부분 현실에 발 붙이고 선 평범한 청년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지금의 도쿄는 어떤 곳인지,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 이번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이시이 유야 감독, 배우 이케마쓰 소스케 - 도시의 불빛은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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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약목면 경로당. 이곳 문맹 할머니들의 유쾌한 한글 수업을 그린 영화가 등장했다. <칠곡 가시나들>은 소박하고 하루하루 일상이 즐거운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웃음과 감동이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 사랑스러운 다큐멘터리에서 유일한 ‘예외 사항’은 ‘김재환 감독’이라는 크레딧이다. 미디어(<트루맛쇼>), 정치(<MB의 추억>), 한국 기독교(<쿼바디스>), 보수·진보의 사회상(<미스 프레지던트>) 등 대한민국을 날선 시선으로 비판해온 이슈 메이커인 그에게 무슨 변화라도 생긴 걸까. “안 그래도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 맞느냐고 하더라.” 관객이 보여주는 지금의 반응을 그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그럼에도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2011)를 하면서 꼬여서 그렇지 원래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우리 할머니’라고 칭한, 약목면의 일곱 할머니와 그가 함께한 지난 3년의 시간을 풀어놓는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 노년의 일상을 설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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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데스데이>는 베이비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살해 당한 트리가 눈을 뜨면 또다시 죽기 전의 생일로 돌아가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가는 타임루프 설정의 공포영화다. 제시카 로테가 연기하는 트리는 살인마의 타깃이 되는 공포영화 속 전형적인 금발의 여주인공인 동시에 살인마와 싸우며 강해지는 전사다. 클리셰를 걷어차는 클리셰. 1편의 성공에 힘입어 신속히 제작된 2편 <해피 데스데이2유>에서도 제시카 로테는 또다시 반복된 하루를 살아간다. 물리학 너드 캐릭터로 아시아계 배우들이 추가된 2편에서 트리는 친구들에게 어딘가 좀 이상한 백인으로 치부당하기도 하지만, 물리학 공식을 달달 외워 평행우주의 차원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학습 능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2편은 영리하게 코미디를 가미해 반복의 지루함을 극복한다. 살인마와 대결하고 죽음과 정면승부하는 트리의 대담함도 도를 더했는데, 부동액을 마시거나 비키니를 입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제시카 로테는 태
<해피 데스데이2유> 제시카 로테 - 대담하게 장르를 넘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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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고해성사. <살인마 잭의 집>은 그렇게 시작한다. 물결 소리와 함께 두 남자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잭(맷 딜런)은 자신과 동행하는 한 노년의 남성에게 지난 12년간 자신이 벌인 60여건의 살인 중 무작위로 끄집어낸 몇몇 살인사건에 대해 털어놓는다. <살인마 잭의 집>은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스스로를 ‘교양 살인마’로 칭하는 주인공 연쇄살인마 잭을 그린다. 지금까지 라스 폰 트리에가 구축한 영화적 세계를 기억한다면, 라스 폰 트리에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만남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광기의 세계를 라스 폰 트리에만큼 적나라하게(또는 극단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감독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의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마다 으레 생기는 일이긴 하지만) <살인마 잭의 집>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을 때 100여명의 관객이 상영 도중 퇴장한 일화는, 이 영화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개인적으로 그의 이전 작품과 비
<살인마 잭의 집>,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 도달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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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위인 중 하나일 유관순 열사의 활동에 관해, 그리고 같은 시기 존재했던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에 관해 부끄럽게도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1919년 4월 1일 17살의 나이로 고향 병천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체포된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감옥에 머물렀던 1년여의 시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배우 고아성이 유관순을 연기했고, 김새벽이 수원 지역 기생들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향화를, 김예은이 개성 시위를 이끈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인 권애라를, 그리고 정하담이 8호실의 막내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 이옥이를 연기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비추는 여옥사 8호실은 25명의 수인들이 겨우 제 한몸 서 있을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좁디좁다. 옥중 동료로서 “추위도, 배고픔도, 답답한 공기도 모두 함께 느끼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4인 대담 _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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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황금곰상 수상작 <시너님스>는 나다브 라피드 감독이 프랑스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다. 이스라엘 청년인 주인공 요아브는 배낭 하나 들고 파리에 와서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쓰지 않고 오로지 프랑스어만 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이스라엘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프랑스인이 되려는 것이다. 빈집에서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잃을 뻔한 요아브는 부유한 또래 커플에게 극적으로 구조된다. 낯선 것을 대면하는 한 인간의 실존과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이 영화는 올해의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너님스>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 발췌했다.
-<시너님스>는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
=나는 20년 전 3년 반 동안의 군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패션 잡지에서 일하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사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잔 다르크처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시너님스> 나다브 라피드 감독 - 이 영화는 정체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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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은 줄었지만 실속은 커졌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지난 2월 7일부터 17일까지 베를린 포츠다머플라츠에서 열렸다. 집행위원장 디터 코슬릭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이번 영화제는 20편을 훌쩍 넘기던 경쟁부문 상영작을 17편으로 줄였다. 장이머우 감독의 <원 세컨드>가 영화제 도중 돌연 참가를 취소하는 일이 발생했고, 현지 언론은 그 이유를 중국 당국의 검열 문제라 짐작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 불참을 선언한 <원 세컨드>를 제외한 16편의 경쟁부문 상영작 대부분이 어떤 작품이 수상하더라도 손색없을 만큼 수작이었다는 점이 올해 영화제의 성취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의 영예는 프랑스 누벨바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스라엘영화에 돌아갔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출신 감독, 나다브 라피드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시너님스>가 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지 <스크린>에서 가장 높은 별점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수상작과 경향 현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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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 별생각 없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자세를 고쳐 앉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JTBC 드라마 <SKY 캐슬> 얘기다. 드라마의 중심에 있던 명주(김정난)는 겨울밤 비틀거리며 집을 나와 호화로운 주택지구 한가운데 꾸며진 눈 덮인 연못 옆에서 장총으로 자살한다. <SKY 캐슬> 1회는 이 ‘역대급’ 엔딩으로 즉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파국을 다루는 태도였다. 그동안 다른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감춰둔 비밀이 밝혀지는 건 곧 파국을 의미했다. 하지만 <SKY 캐슬>에서는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잠시 주춤할 뿐 곧 태세를 정비한다. 범죄, 죽음, 광기가 도처에 널려 있고, 이 모든 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죽음조차 이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명주의 자살은 우울과 무기력으로 삶을 멈추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해하는 행위로 매우 스펙터클하게 묘사되었다.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불안을 불러온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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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사카의 대학생 아사코(가라타 에리카)는 <자아와 타자들>이라는 사진전에서 마주친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바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지고 2년 후 도쿄에서 생활하던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은 외모, 판이한 성격을 가진 회사원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발견한다. <아사코>에서 바쿠와의 연애를 그린 초반은 순정만화 같은 컷으로 이뤄져 있다. 둘은 만나자마자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입을 맞추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시트를 뒤집어쓴 채 키스한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그리는 연애의 정경은 너무도 환상적인 나머지 상투성을 넘어 기묘한 불안을 자아낸다. 세월이 흘러 돌연 과거가 살아 돌아왔을 때 아사코는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것은 두개의 사랑인가, 하나의 사랑인가? 과거의 아사코와 현재의 아사코는 같은 사람인가?
02/06
2019 시상식 시즌에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트라이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