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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루크가 나오는 <더 레슬러> 같은 영화일 줄 알았다.” 웹툰 <전설의 주먹>의 스토리작가 이종규의 말이다. 원작이 워낙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라 “굉장히 무거운 누아르풍의 영화”나 “승부에 치중한 스포츠영화”가 나올 줄 알았단다. 그의 예상은 틀렸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은 이종규 작가의 예상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지닌 가족-스포츠영화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 이종규 작가는 관객으로서 만족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토리작가 이종규는 한국 만화계의 강우석 같은 존재다. 국내 최초의 격투기 만화 <P.K>, 하드보일드 무협 <PING>의 스토리작가로 이름을 알린 이종규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우정과 성장담에 대해 누구보다 유려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전설의 주먹>의 배다른 형제 같은 웹툰
[이종규] 다른 분위기 같은 정서, 희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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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은 동시대 프랑스의 특별한 여배우 마리온 코티아르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연기하여 전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던 <라비앙 로즈>(2007) 이후 그녀의 진정한 두 번째 명연이 <러스트 앤 본>에서 펼쳐지고 있다. 돌고래 조련사였으나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된 여주인공 스테파니(마리온 코티아르)는 처음에는 실의에 빠져 지내지만, 이내 야수 같은 한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리온 코티아르는 여주인공 스테파니의 씩씩함을, 때론 슬픔을, 때론 사랑에의 열망을 한몸에 새기고 연기해낸다. <라비앙 로즈>의 성공을 지나 할리우드영화의 그저 그런 조연으로 전락할까 염려되었던 한 시기를 지나 그녀는 지금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로 돌아와 있다.
마리온 코티아르가 유별난 미모를 지닌 여배우인 것 같진 않다. 카트린 드뇌브나 소피 마르소를 떠올리게 하는 배우
[마리온 코티아르] 진심으로 노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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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관련된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는 말처럼 박홍식 코디네이터의 이력은 화려하다. 모션 그래픽,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작업도 해봤고, 한때는 영화잡지 <필름2.0>에서 취재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로 날아가 영화연출도 공부했다. 유일하게 안 해본 일이 영화제 스탭이라 프로그램팀에 들어왔다고. 그가 맡은 업무는 해외영화를 수급하는 일이다. 장편경쟁부문엔 엄청난 양의 영화가 들어오기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코디네이터들이 먼저 영화를 보고 괜찮은 영화를 고른다. 출장 중일 때 해외 마켓에 좋은 영화가 있으면 직접 협상도 한다. 이 과정은 일종의 힘겨루기다. 좋은 영화는 모두 탐내기 때문에 다른 영화제와의 경쟁 구도도 생긴다. 초청 이후 기술적 정보나 크레딧을 정리해 티켓 카탈로그를 만드는 작업도 맡아한다. 최종적으로 프린트를 인계하면 그의 업무도 끝이 난다
[STAFF 37.5] 이 영화는 내가 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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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았을 때의 은교가 잊히지 않는다.” 소설에서 노시인 이적요는 그렇게 첫 문장만 따로 떼어 썼다. 그 ‘순간’은 영화에서도 결정적이다. 이름 모를 소녀가 잠시 쉬어가는 새처럼 이적요의 흔들의자 위에서 새근새근 눈을 붙이고 있는 그 찰나. 그 찰나를 어떤 언어로 붙잡을 수 있을까. “인생에 돌아오지 않는 어떤 순간이 찍힌 것 같다.” 정지우 감독의 그 말의 애틋한 기운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물한살 소녀 위로 가을 햇살과 나무 그림자가 덧없이 어른거렸다. 그 소녀의 한때를 놓칠세라 김태경 촬영감독도 카메라를 쉽사리 놓지 못했다고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게 만들어버리는 그 순백의 소녀를 2012년의 신인으로 꼽은 게 <씨네21>만이 아니었던 것도 당연하다.
2013년 봄, 스튜디오에 들어선 배우 김고은은 어딘지 달라 보였다. 우리는 얄궂게도 아직 이적요의 처녀를 바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땐 그냥 은교로 살았다”면, 요즘은 ‘복순
[김고은] 은교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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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장준환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화이>를 제작하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의 일을 챙기랴, 애니메이션 합작을 위해 미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랴,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그가 일을 하나 더 벌였다. 4월6일 고양어울림영화관에서 열린 영화나눔협동조합(cinecoop, 이하 협동조합) 발기인 총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안 경제와 그것과 관련한 활동에 관심을 가져온 까닭에 협동조합은 그에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최근 제협 역시 협동조합 모델을 통해 영화제작과 배급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협동조합은 어떤 그림일까. 제협이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제작 시스템과 다른 협동조합 같은 새로운 산업 시스템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바쁜 와중에 자리 하나를 더 맡게 되어 부담스러운
[이준동] 탁상공론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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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 중 하나인 <피노키오>. 하지만 많은 동화들이 그렇듯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원작과는 사뭇 다른 버전이다. 피노키오 탄생 130주년을 기념하여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모여 만든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은 1880년 카를로 콜로디가 쓴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을 130년 만에 되살려냈다. 사람 흉내만 내는 목각인형이 아니라 진짜 피노키오를 만들어낸 엔조 달로 감독에게 그 비밀을 물었다.
-디즈니 버전의 <피노키오>와 당신 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나는 과거의 그 어떤 다른 버전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원작에서 출발했다. 관객은 원작이 원래 갖고 있던 몇몇 요소를 처음으로 발견할 것이다. 예를 들면 투스카니의 멋진 풍경이나 파란 머리 요정(원작에서 이 요정은 성인 여성이 아니라 소녀였다) 같은. 이 영화의 배경인 투스카니 지역은 실제 카를로 콜로디(<피노키오의 모험> 원작
[flash on] 수제명품 목각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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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위드 러브>의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는 호텔방을 잘못 찾아들어가서 만난 남자 안토니오(알레산드로 티베리)와 신혼부부 행세를 시작한다. 안토니오의 친척 어르신들은 ‘어디서 저런 여자를 데려왔을까?’라는 표정을 짓지만, 안나는 주변의 시선이 어떻건 간에 당당하고 쾌활하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의 기술’을 안토니오에게 가르쳐준다. 그저 흔한 콜걸의 에피소드지만, 페넬로페 크루즈의 존재감은 우디 앨런이 상상하는 ‘로마 드림’의 한 조각을 멋지게 맞춘다. 영국 출신을 제외한(아니, 그를 포함하더라도) 유럽 여배우의 활약상을 살펴볼 때, 과연 페넬로페 크루즈만 한 이가 있을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유럽 아트필름을 자유로이 오가는 가장 발랄하고 아름다운 아마조네스와의 만남.
<로마 위드 러브>를 <로마의 휴일>(1953)의 이상한 변형이라고 본다면, 페넬로페 크루즈는 바로 오드리 헵번이다. 실제로 페넬로페 크루즈는 종종 오드리 헵번과 닮았다는 얘
[페넬로페 크루즈] 눈부신 지중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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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로든 더 선명해지고 싶었다.”(계피) 청량한 보이스와 정곡을 찌르는 가사로 사랑받았던 인디밴드 가을방학이 더 깊어졌다. 2년 반 만에 발매한 그들의 정규 2집 앨범 ≪선명≫은 가을방학의 어떤 변화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음반이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보컬 계피(왼쪽)의 목소리는 한층 호소력이 짙어졌고, 전반적인 음악 작업을 맡고 있는 정바비의 가사와 멜로디는 보다 깊은 여운을 안고 있다.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의 활기로 시작해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차분함으로 끝맺는 ≪선명≫의 열두 트랙이 담고 있는 변화에 대해 두 멤버에게 물었다.
-2집 ≪선명≫의 음반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계피_녹음은 올해 2, 3월에 본격적으로 했고, 바비씨가 1년 동안 혼자서 데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바비_평소 곡 작업을 일상에서 계속 하는 스타일이다. 음반 작업을 해보자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1집 ≪가을방학≫을 만들 때도 그
[trans x cross] 우리가 밝은 음악 하는 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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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영화 <전설의 주먹>(2013),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특수본>(2011), <글러브>(2011), <이끼>(2010), <강철중: 공공의 적1-1>(2008), <므이>(2007)
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TEN2>(2013), <히어로>(2012), <떼루아>(2008)
이태훈 미술감독은 강우석 감독과 꽤 오래 파트너십을 유지해왔다. <공공의 적2> <한반도>에는 미술팀으로 <강철중: 공공의 적1-1> <이끼> <글러브>에는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다. 강우석 감독과의 인연은 <전설의 주먹>까지 이어진다(<이끼> <글러브> <전설의 주먹>은 조성원 미술감독과 공동으로 작업했다). “강우석 감독님은 미술감독을 믿고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적으로 맡기
[STAFF 37.5] 예능까지? 미술이면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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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3 영화 <테이크다운>
2013 영화 <오블리비언>
2012 영화 <섀도우 댄서>
2011 영화 <W.E.>
2008 영화 <해피 고 럭키>
2008 TV영화 <마거릿 대처: 핀치리로 가는 먼 길>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주인공 잭 하퍼(톰 크루즈)의 파트너로 등장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한국 관객에게는 낯선 얼굴이지만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가장 핫한’ 영국 출신 배우다. 창백한 피부에 푸른 눈동자, 적갈색의 곱슬머리를 지닌 이 가녀린 노섬버랜드 출신의 여인은 캐스팅 에이전트들을 애태우는 스타답지 않게 화장하기를 귀찮아하고 버스를 즐겨 타며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 배역의 비중을 따지지 않는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소속 테러리스트로 조국의 자유와 가족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싱글맘(<섀도우 댄서>)과 젊은 시절의 마거릿 대처(<마거릿 대처: 핀치리로 가는 먼 길
[who are you]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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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3 영화 <뷰티풀 크리처스>
2012 영화 <진저 & 로사>
“처음에 출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너무 진부한 영화 같았거든요.”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감독의 설득에 못 이겨 대본을 읽어본 앨리스 엔글레르트는 결국 <뷰티풀 크리처스>의 주인공 리나 역을 맡기로 결심했다. “판타지 로맨스의 클리셰를 다루면서도, 그 클리셰에 매몰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란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한 17살의 엔글레르트는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딸이다. 어머니가 2006년에 찍은 단편 <워터 다이어리>로 데뷔한 뒤 연기자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녀는 사춘기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진저 & 로사>(2012)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새까만 눈동자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입을 다물면 매섭고 당돌하지만 활짝 웃으면 더없이 활달한 10대
[who are you] 앨리스 엔글레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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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재석과 달리 되게 평범했다. 조용하고. 나중에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고민의 결론이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한대 맞았다고 남의 학교 복도에 쳐들어가 자신을 때린 사람 나오라고 외치질 않나, 그마저도 성이 안 찼는지 소풍 가는 데까지 쫓아가 맞은 거 되갚으려고 하질 않나. ‘남서울고 독종 미친개’라는 별명답게 <전설의 주먹>의 재석(박두식. 윤제문의 아역)은 앞뒤 안 가리는 친구이자 빚지고는 못 사는 친구다. 대개 이런 부류의 친구들 중에 의리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친구가 많다. 덕규(박정민. 황정민의 아역)와 상훈(구원. 유준상의 아역)이 으르릉거릴 때마다 재석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적룡이 싸우는 거 봤냐”며 화해를 종용하는데, 단순무식한 그 모습이 전혀 얄밉지가 않다.
윤제문은 원작인 동명 웹툰을 읽자마자 자신이 재석을 연기하게 될 거라 직감했다. “강우석 감독님이 출
[윤제문] 못 말리는 막무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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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다음에 모든 과정을 일기에 다 적어놨다. 나중에 봐야지. 경험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순간들이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스스로 도닥거려준 계기도 됐다.
웬만해선 그를 막을 수 없다. 끝까지 “괜찮습니다. 괜찮다니까요”다. 불혹을 넘긴 과거 고교 싸움‘짱’들의 서바이벌 쇼 <전설의 주먹> ‘전설대전’ 4강전에서 ‘샐러리맨의 우상’ 이상훈(유준상)은 쉽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 적어도 링 위에서는 그렇다.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오기로 악으로 버틴다. 그렇게 결승행 티켓을 따낸 뒤에야, 링에서 내려간 뒤에야, 카메라의 고개가 돌아간 뒤에야, 자신에게 무너질 여유를 허락한다.
‘스크린’이란 링 위에 오른 배우 유준상도 다르지 않았다. 현실법칙에 굴복한 대기업 홍보부장에서 전설의 파이터가 된 사내 이상훈은, 말 그대로 ‘사투’를 벌여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리허설 중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고도 그는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 일념
[유준상] 목숨걸고 혼연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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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할 거다 했다. 그런데 몸으로 익힌 게 무섭더라. 정두홍 감독님한테 며칠 지나고 ‘액션 재밌는 거 같아요’ 했더니 막 웃더라. 그 재미에 자기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고. (웃음)
대한민국에서 슈트발 최고인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황정민이다. 이병헌의 연기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저항할 수 없는 그의 목소리라면, 황정민의 몸은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절대 우위를 차지한다. 팔다리가 길고, 몸집이 탄탄한 황정민은 감상을 위함이 아닌, 살아 있는 풍채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몸의 리듬이 곧장 캐릭터가 가진 멋스러움을 완성하는 진귀한 소품이 되는 것이다.
<전설의 주먹> 로커룸 장면에서 상의를 탈의한 황정민이 걸어나올 때, <아저씨>의 원빈을 향했던 탄성(원빈쪽이 좀 길긴 했다)이 관객석에서 새어나왔다. 고등학생 때 권투로 다져진 몸, 마흔이 넘어 이종격투기 대회에 참가하는 영화 속 전설의 주먹 덕규의 몸은 특별히 지
[황정민] 여유롭게 저벅저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