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지망생들에게 ‘데뷔’만큼 설레게 하는 말이 있을까.영화가 늘어나도 감독의 길은 여전히 좁고, 힘들게 데뷔해도 그게 곧 유작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재능과 의지와 운이라는 세 독립음이 절묘하게 만나 화음을 이루지 못한다면 성공적인 데뷔란 힘들다.
지난 10월25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제2회 광주국제영화제에,자국뿐 아니라 국제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성공리에 데뷔한 신인감독 세명이 게스트로 왔다.미국의 데이비드 고든 그린,아르헨티나의 루크레시아 마르텔, 일본의 만다 구니토시,이들 셋의 데뷔기는 말 그대로 ‘삼인삼색’이었다. 데뷔할 때의 나이가 25살,35살,45살로 10살씩 터울이 졌고,데뷔작 예산도 10만달러,120만달러, 5천만엔으로 제각각이었다.가장 젊은이답게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정자까지 팔아가며 돈을 모아 영화부터 찍고 시작했다.전공이 영화가 아니었던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를 활용하는 슬기를 동원했다.영화평론가로 셋 중 가장 씨네필인 만다 구니토시는 ‘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1]
-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아직까지 몸이 가볍다. 비싸게 굴지 않는다. 광주국제영화제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바로 다음날 가겠다는 대답을 보냈다. 광주 체류 중에도 인터뷰, 대담, 파티 등의 행사가 10∼20분씩 늦어져도 군말없이 앉아 있는다. 27살에 연출작이 한편밖에 없는 신인 감독으로서 당연한 태도라고 여겼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165cm 남짓한 자그마한 체구의 이 젊은 청년은 1∼2년 뒤면 인터뷰하자고 명함도 내밀기 힘든, 할리우드의 거물 감독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돈을 모아 만든 첫 영화가 호평을 받아, 두 번째 영화가 발표되기도 전에 미라맥스 영화사와 세 번째 영화 계약을 맺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드루 배리모어 등이 제작자로 참여하는 큰 예산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게 성공하면 그는 스티븐 소더보그, 쿠엔틴 타란티노의 뒤를 이어, 미국 인디 출신의 드문 스타감독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2] -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재능이 길을 열어준 건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부터 찍고 보자는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방법은 맨땅에 헤딩하기만큼이나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데뷔기는 좀더 신중했고, 프로듀서의 조력도 있었다. 영화전공자가 아닌 그녀는 30대 중반에 데뷔를 마음먹고는, 효율적으로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영화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 →투자자 확보 →영화 완성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 →유럽 수출로 수지를 맞추고 두 번째 영화를 안정적으로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36살보다 젊어 보이는 이 미인 감독은 서툰 영어를 안타까워하면서 자기 뜻이 제대로 전달됐다 싶을 때까지 수차례 말의 방향을 바꿔가며 설명하는 열의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곁눈질처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지만, 실력이 안 됐다. 영화를 시작한 동기는 단편 시나리오가 상을 받으면서였다. 95년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3] - 루크레시아 마르텔
-
만다 구니코시(46)는 데뷔 경로가 앞의 둘과 달랐다. 리쿄대 법학부 시절부터 전공과 무관하게 영화에 빠져버린 뒤, 영화평론과 강의의 길로 나섰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레미파 소녀 피가 끓는다>, 나가사키 슈니치의 <사국>(死國)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데뷔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이 돼, 아오야마 신지와 가와세 나오미 등 30명 가까운 감독을 발굴해낸 프로듀서 센토 다케노리의 권유로 <언러브드>를 찍었다. 이 영화는 2001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음에도 해외수출이 잘 안 됐다. 평단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의 입질없이 두 번째 영화가 부진한, 잘 안 풀리는 경우다.
-데뷔가 늦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너무 게을러서이다. 사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언젠가 내게 장편영화를 찍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찾아가고 돈을 모으고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4] - 만다 구니토시
-
-
미녀 배우 위노나 라이더(31)가 절도 혐의로 최근 유죄평결을 받은 가운데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7일 그녀의 재기 가능성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범죄전력을 다룬 기사를 게재, 관심을 끌고 있다.라이더는 평소에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기인(奇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난해말 베벌리힐스 고급의류점에서 5천500달러짜리 옷을 훔친 그녀의 좀도둑 행각은 그녀에 대한 이러한 평판을 더욱 무색케 하고 있다.할리우드는 한물간 배우들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추락한 배우들에게 두세번의 기회를 주는 관습도 있다. 유죄평결을 받았지만 실형은 면할 것으로 보이는 라이더는 재기를 위해 영화 관계자들에게 그녀에 대한 신뢰감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리처드 기어와 주연을 맡은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 등이 극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 흥행에도 이미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의 복귀 가능성과 관련, 힛
할리우드 스타와 범죄전력
-
영화제가 마니아들을 불러모으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극장에서 개봉하기 힘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가운데 ‘월드 시네마’, ‘오픈 시네마’ 부문과 올해 새로 마련된 ‘비평가 주간’에 올려질 작품이 그런 경우다. 올해의 경우는 여느 해보다 훨씬 알차다.먼저 뜨거운 논쟁을 던질 영화로는 영국 피터 뮬란 감독의 <막달레나 자매들>, 11명의 감독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 등이 눈에 띈다. <막달레나 자매들>은 올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1960년대 아일랜드에서 카톨릭계 수녀원 내부의 비인간적 실태를 고발한 이 작품이 공개되자, 바티칸은 즉각 유감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프로듀서 알랭 브리강이 기획한 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작품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칠레인이 이날 일어난 사태로 가족을 잃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상에 담은 켄 로치의 단편이 호평을 받았다.△ 월요일 아침‘재미’와 ‘작품성
개봉관선 못본다 부산영화제서만 본다
-
스위스 로잔 인근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불멸의 연인’ 오드리 헵번 박물관이 유족과 박물관측의 상업화 논쟁속에 개관 6년만에 문을 닫았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지난 93년 1월 63세를 일기로 작고한 헵번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은 지난달 말 소장품의 대부분을 미국에 거주하는 두 아들에게 반환했다.헵번이 대장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년간 거주한 톨로쉐나에 소재한 박물관은 마을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60명과 후원단체들의 지원으로 운영돼왔으며 경상비를 제외한 입장료 수익금 등 40만 프랑(27만6천달러)을 오드리 헵번 아동재단에 헌금하는 등 사회봉사에도 일역을 담당해왔다.박물관측은 주요 소장품의 반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겠다는 의욕을 보였으나 헵번의 두 아들인 숀 페러와 루카 도티로부터 상업화에 치우쳤다는 비난에 직면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채 폐쇄를 결정했다. 페러는 최근 타임지(誌)와 인터뷰에서 관광객들이 헵번의 무덤을 거쳐 박물관으로 이
오드리 헵번 박물관 상업화 논란속에 폐쇄
-
부산국제영화제가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에게 10편의 영화를 추천했다.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품가운데 수험생들이 긴장을 풀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고 조직위는 설명했다.아시아 영화중에서는 <신의 아이들>(시노미야 히로시,일본)과 <포로,기다림>(모하마드 아흐마디,이란), <아름다운 시절>(장 초치,일본/대만) 등 3편이다.와이드 앵글 부문의 <신의 아이들> 은 필리핀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는 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죽음의 가치를 생각하는 작품으로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기록했다. <포로,기다림> 은 18년동안 이란 포로수용소에 감금된 채 생활해 온 한 죄수를 통해 수감생활의 무료함과 기다림에 지친 포로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의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학
부산국제영화제,수험생 영화 추천
-
● 아직도 고민 중이십니까. 일곱 번째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이 산해진미, 산진해착, 수륙진미, 진수성찬 앞에서 당신은 혹시 갈등하고 계신 건 아닙니까. 젓가락만 휘휘 돌리며 뭘 먼저 집을지, 어떤 영화가 맛있을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저희도 안타깝습니다. 11월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 동안 열리는 제7회 부산영화제의 모든 상차림을 맛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손오공처럼 엉덩이털을 뽑아 수많은 자신을 만드는 분신술을 쓰지 못하는 한, 여기서 상영되는 228편의 영화를 모두 볼 수 없는 건 현실입니다. 설사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는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이 영화를 다 본다 한들, 도대체 줄거리나 머릿속에 남아 있겠습니까.● 머리가 더 아파지셨다고요. 고민하는 여러분께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천하의 산해진미라도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쓸모없는 법. 스스로의 취향에 맞는 영화보기를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 영양과다의 시대에 편식은 부끄러운 일이 아
제 7회 부산국제영화제 취향대로 즐기기
-
9·11 이후가 그 이전과 다른 점은 전세계가 확연히 둘로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정의의 카우보이 대 악의 축의 대립이건, 신의 뜻을 수행하는 자들과 이를 거부하는 자의 대립이건, 이 대립은 자본과 힘의 일방적인 집중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 초강자와 절대 약자의 대립에서 눈물 흘리는 건 약자 쪽일 수밖에 없다. 예술은 이 지점에서 개입한다. 9·11 이후 정치와 역사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영화예술의 정세를 살펴본다.남동철 / 김혜리 / 문석 / 박은영 / 김현정고향의 노래 A Marooned in Iraq▶ 아시아영화의 창/ 이란/ 바흐만 고바디/ 103분▶ 11월19일 오후 5시 부산2, 11월21일 메가박스5 오후 5시쿠르드족 버전의 <집시의 시간> 또는 <서편제>. 쿠르드족의 서글픈 삶을 에밀 쿠스트리차 풍의 유쾌한 분위기로 녹여내는 영화. 미르자는 쿠르드족의 정서를 담는 음악을 연주하기로 유명한 노인. 그는 전처 하나레로부터 전갈을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정치·역사 영화(1)
-
아라라트 Ararat▶ 월드시네마/ 캐나다/ 아톰 에고얀/ 115분▶ 11월15일 오전 11시 대영3, 11월20일 오후 8시 부산187년 전의 나비가 일으킨 폭풍. 1915년 터키는 국경지대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출신 주민들 100만여명을 학살한다. 그리고 거의 1세기 전 벌어진 이 역사적 사건은 지금의 캐나다로 날갯짓을 보낸다. 이 사건을 영화화하려는 아르메니아 영화감독이 캐나다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곳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계 청년 라피는 감독의 운전사로 일하며 자신이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고, 한 터키계 캐나다인은 가해자로서의 멍에를 안게 된다. 라피의 어머니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한 사건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하고, 라피의 여자친구는 구원(舊怨)을 쏟아낸다. <아라라트>는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와 증오의 대물림을 다룬다. 라피는 이 영화작업을 통해 아르메니아인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힌 아버지를 용서한다. 물론 전작에서도 그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정치·역사 영화(2)
-
혼수상태에 빠진 식물인간과도, 언어가 안 통하는 타인과도, 친구의 부인과도, 심지어 곰과도. 생명체와 생명체가 만나는 곳에 사랑이 있고 그곳에는 아련한 이야기가 피어나기 마련이다. 어느 해보다 추워진 계절에 찾아온 영화제, 부산의 초겨울 바람을 따뜻하게 덥혀줄 멜로드라마 몇편을 미리 호주머니 속에 챙겨보자.<그녀에게> Talk to Her▶ 오픈시네마/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2002년/ 112분▶ 11월15일 오후 8시 시민회관, 11월22일 오후 8시 시민회관그녀와 함께 살 수 없다면, 그녀와 함께 잠들 수밖에. 기자인 마르코는 정열적인 투우사 리디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리디아는 투우경기 중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남자간호사 베니그노는 아름다운 무용수 알리시아를 흠모하지만 알리시아 역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이 두 남자가 병원에서 만난다. 그러나 리디아가 죽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마르코와는 달리, 베니그노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알리시아가 여전히 살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멜로영화(1)
-
그릴 포인트 Grill Point▶ 월드시네마/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105분▶ 11월18일 오후 8시 부산1, 11월20일 오후 8시 메가박스9사랑해도 되니, 네 마누라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30대 부부들의 삶을 유쾌하게 들추는 독일영화. 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는 두쌍의 부부에겐 각기 문제가 있다. 라디오 진행자인 크리스와 아내 카트린은 함께 침대에 있을 때조차 한마디도 건네지 않는 서먹한 사이. ‘그릴 포인트’란 이름의 식당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우베와 엘렌의 관계도 좋으려야 좋을 수 없다. 이런 와중, 우연히 만난 크리스와 엘렌은 서로의 눈빛에서 뭔가 뜨거운 것을 발견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과연 두 부부, 네 남녀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그릴 포인트>는 과장은 됐을지언정,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들의 진실을 놓치지 않는 예리함도 갖고 있는 영화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곰의 키스> Bear’s Kiss▶ 월드시네마/ 독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멜로영화(2)
-
황혼의 여행 Journey of the Gray Men▶ 아시아영화의 창/ 이란·일본/ 아미르 사합 라자비안/ 101분▶ 11월21일 오전 11시 대영6, 11월20일 오후 5시 메가박스9옛 사랑의 그림자를 따라서 이란의 세 노인은 채 매듭을 짓지 못한 젊은 날의 사랑을 찾기 위해 먼 여행길에 오른다. 노인들은 그들만큼 나이를 먹은 자동차를 타고 추억이 서린 곳을 향한다. 하지만 세상은 예전 같지 않다. 젊은 아이들은 노인네를 조롱하고 경찰은 그들의 여행 목적을 의심한다. 가까스로 닿은 그곳에서 주인공 에스판디아르는 여전히 수줍은 모습의 옛 사랑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도망친다. 그토록 그리던 옛 님과의 재회를 포기한 이유를 묻는 두명의 동료에게 에스판디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사랑이 두개의 짦은 기억으로 포장될 수 있도록….” <황혼의 여행>은 다큐와 극영화의 중간쯤에 서 있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면 감독이 나와 이 영화를 만들게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멜로영화(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