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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사수는 지금부터다!.어린 시절부터 사랑해왔던 일매(손예진)와의 첫사랑을 꼭 이루겠다는 태일(차태현)의 눈물겨운 노력과 “전교 꽁바리하는 문제아”에게 절대 딸을 뺏길 수 없다고 철통같이 방어하는 일매 아버지(유동근)의 애뜻한 부정이 뒤엉켜 만든 한랭전선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따뜻했던 2월의 바다. 사실 그 귀여운 승강이 속에 숨어 있는 풋풋한 사랑과 함께 봄이 조금 더 일찍 찾아온 듯한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의 부산촬영은 지난 2월16일 아침부터 영도다리를 부분 통제한 채 이루어졌다.손예진은 짧게 붙인 앞머리 가발이 신경 쓰이는지, 컷과 컷마다 조그만 손거울로 머리를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고 차태현은 ‘잭슨파이브’식으로 볶은 파마머리가 영 부끄러운 듯하다. 하지만 슛 사인이 떨어지자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전거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다리를 건너고, “니 거시기에 털만 나면 그날부로 내 딸래미 니한테 시집 보낼끼다”라는 유동근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차태현은 보트
첫사랑에 목맸다,<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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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초대박 열풍이 2003년 충무로의 봄을 뜨겁게 열어젖혔다. 혹자는 ‘또 코미디야’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한국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고 흥행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온 배우 조재현의 칭찬은 마음의 울림으로 잦아들었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김하늘의 연기는 뛰어났고, 권상우는 자신의 캐릭터 그대로 영화에 스며들었다. 김하늘이 투수라면 권상우는 포수다. 김하늘이 어떤 공을 던져도 권상우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그래서 두 사람의 연기호흡은 환상적이었고,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감독의 연출은 신인답지 않게 무서운 내공이 엿보였다. 예사로운 감독이 아니다….” 그러면서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사실 내가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온 것은 이 영화보다 감독 김경형에 대한 남다른 애증의 시선 때문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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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가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한 지 2년이 넘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새턴, 드림캐스트까지, 세가는 한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세가 게임기는 항상 두 번째에 그쳤고, 팬들은 <샤이닝 포스3>나 <아젤 팬저 드라군> 같은 새턴의 명작들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왔다면 <파이널 판타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평가와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드림캐스트로 출시된 <쉔무>나 <스페이즈 채널 파이브> 같은 참신한 시도들이 묻혀버린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게이머들뿐 아니라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적되는 하드웨어 적자로 빈사상태에 놓여 있던 세가를 개혁하기 위해 가야마 데쓰가 COO로 불려왔다. 가야마는 취임하자마자 세가가 그토록 집착했던 플랫폼 홀더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도입한 게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 큐브, 엑스박스 등 어떤 기종으로든
세가의 끝은 어디인가?<팬저드래군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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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의 주인공50년대 후반의 국내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는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된다. 내 기억에 버지니아 울프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바로 그 시에서부터였다. 그러나 워낙 어린 나이여서 라디오를 통해 그 시를 접했을 당시엔, 문맥상 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가 거론돼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뭐 우수에 젖어 글을 썼을 것 같은 여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 그랬으니 ‘버지니아 울프가 실존했던 인물이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그러다 그녀의 실체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영화 <올란도>를 보고나서였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디 아워스>가 있기까지,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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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열한 관객이다. 비디오 가게의 로맨틱코미디 코너에서 헤매는 친구에게 “너는 만날 싸구려 로맨틱코미디나 보냐”고 야유하면서 나 자신은 미개봉 작품까지 다 뒤져서 보는 로맨틱코미디팬이다. 평가도 아주 너그러워 지난주 <씨네21>에서 준열하게 꾸짖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나로서는 흡족했다.
그러나 <투 윅스 노티스>를 보면서는 짜증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원인제공자는 루시 켈슨 또는 이 잘난 여자를 연기한 샌드라 불럭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두 여성 또는 한 여성이 왜 너그러운 나의 심성을 벌집처럼 쑤셔놓았는지 항목별로 그 이유를 밝히겠다.
1. 루시 켈슨은 거대한 파쇄봉에 목숨 걸고 매달려 오래된 건물이 파괴되는 걸 막는 열혈 환경주의자다. 그런 환경주의자가 밥은 만날 코팅된 종이로 만든 일회용기에 담겨 비닐봉지에 둘둘 싸여오는 음식을 시켜먹는다. 햄버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해마다 1m2의 밀림이 사라진다는데- 미래의 고기들이 먹는 풀과 포장
<투 윅스 노티스>의 루시 켈슨 또는 샌드라 불럭이 밥맛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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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존재증명살아 있는 것이 일개 사물로 화하는 순간, 곧 죽음의 순간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하지만 스크린상에서 진행되는 죽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즉각 오싹한 공포가 우리에게 엄습해오리라고 가정하는 건 잘못된 것일 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의 죽음이 아닌 타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가 결코 물리적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직접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이러한 일차적인 믿음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장르이다(만일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 누가 영화관을 찾을 것인가). 이때 영화는 타인들의 죽음이 전시될 공간을 무대화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죽음의 광경을 볼거리로 만든다. 그리하여 공포영화는 그 과잉과 소비 혹은 낭비라고 하는 즐거운 유희와 함께 심지어 우리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연작,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익숙한 장치로 서늘함 자아내는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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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유명한 책의 첫 번째 장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어린 시절에 대한 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그것에 따르면 네살 혹은 다섯살가량 되었을 나이의 어린 히치콕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기 짝이 없게도 경찰서 유치장에 10분쯤 갇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부당한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는 어린 시절의 이 끔찍한(그래서 잊지 못할) 기억은 쉽사리 지워내기 힘들었던 것인지 히치콕의 우주에는 유난히 누명 쓴 사람들(the wrong men)이 많이 등장한다. 당장 생각나는 예만 들더라도, 순순히 이혼을 해주지 않는 아내의 살인자로 지목되고만 <스트레인저>(1951)의 테니스 챔피언이나 고해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처지로 인해 살인용의자로 의심받게 되는 <나는 고백한다>(1952)의 마이클 신부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55년작인 <나는 결백하다>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누명의 올가미에 걸려든 한 인물이 자신의
스릴러의 탈을 쓴 로맨틱코미디,<나는 결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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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편영화제라든가, 독립영화제라든가 하는 행사들을 눈여겨보는 타입이 아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규모로 혹은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수준 이하의 결과물에까지 ‘그 정도면 훌륭하네요’라며 치하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니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또한 많이 들어보기는 했으나, 그 출품작들을 일부러 찾아보려 한 적은 없었을 수밖에.하지만 이번에 본 <The Best of RESFEST> Vol. 1 DVD 타이틀로 인해, 이런 선입견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고 고백해야겠다. 타이틀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그야말로 ‘안이한 상태에 놓여 있던 뒤통수에 해머를 가하는 듯한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 차 있어,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97년부터 2000년까지의 출품작 중 우수한 작품들만 추려놓은 것이라 그 정도가 확실히 더 강했던 것이 분명하다.수록된 17개 작품 중 몇몇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에, 탄탄한 연출 그리고 완벽한 화면 장악력
상상력 지수: ∞, 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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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Y가 이사를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잡지들이 너나없이 홈시어터를 소개하는 판국에 그의 고민은 쩨쩨하지만 이렇다. ‘비디오장을 짤 것인가? 아니면 비디오테이프를 버릴 것인가?’ 이사하는 이유는 물론 방이 좁기 때문이다. Y의 아내는 공간 부족이 “다 그놈의 비디오테이프 때문”이라고 한다.“왜 그렇게 많이 쟁여놓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Y는 “그게 다 재산”이라고 대꾸해보지만 “안 보는 게 태반”이라는 아내의 질책에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Y가 두번 이상 본 것은 수집한 분량의 10% 정도다. “수집과 감상의 불균형”이라며 아내는 정곡을 찔렀다.Y가 결혼한 2001년 말경엔 상당수의 비디오숍이 망하고 B급 중고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대여료 수준인 1천원 안팎까지 떨어져서 수집하기엔 좋았었다. 그가 결혼하면서 수집한 비디오테이프는 1년 만에 라면 박스로 20박스가 넘어버렸다. 게다가 Y의 아내는 상당한 독서가로 최소 사흘에 한권꼴로 책을 사서 읽는다.아내의 책은 책장에 상륙
수집의 난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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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1999년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출연 셜리 핸더슨, 지나 맥키, 몰리 파커, 이안 하트, 존 심 장르 드라마 (유니버설)부유하는 일상을 잡아내기에, 디지털카메라는 최적의 매체다. 뿌리박을 수 없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독감에 시달리는 존재의 미묘한 떨림을 잡아내는 디지털카메라의 힘은 위대하다. 마이클 윈터보텀이 <원더랜드>에서 잡아낸 런던 사람들의 척척한 삶은, 거칠게 흔들리면서 그들의 일상에 달라붙은 디지털카메라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카메라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잡혀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두번 보는 <원더랜드>에는 계속 새로운 의미가 찾아진다.<원더랜드>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여준다. 노동계급인 빌과 에일린의 세딸은 모두 독립해서 살고 있다. 혼자 아들을 키우는 데비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머리를 짧게 깎아 스킨헤드족처럼 보이는 전 남편 댄은 주
왜 사냐고 묻거든,웃지요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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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GO! 다섯 쌍둥이? 그게 누구야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투니버스는 2월17일 지난해 방송된 3천여편의 애니메이션 중 시청률 톱10을 선정해 발표했다. 영예의 1위는? <GO!GO! 다섯쌍둥이>가 차지했다. 평균 시청률은 3.21%. <탑블레이드> <카드캡터 체리> <방가방가 햄토리> 등 쟁쟁한 작품들을 모두 눌렀다.이 대목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 명색이 방송-만화-애니메이션 담당 기자인데, 처음 듣는 제목이었다. “기자 맞아?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볼 수야 없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이야 늘 체크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변명이야 있다. 투니버스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빨라야 밤 9시, 그것도 아주 가끔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색하다. 재빨리 취재원 확보에 나선다. 9살 난 큰딸이 딱 걸렸다.“혜정아, 이런 작품 알아?” “그럼, 되게 재밌어.”(안도의 한숨과 이어지는 미소)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애들이 너무
투니버스 시청률 1위를 차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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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처리인 트라우마> 발간개그 패러디만화 <파타리로>로 잘 알려진 마야 미네오의 <요괴 처리인 트라우마>가 국내에서 번역 발간되어 나오고 있다(시공사 펴냄). 파타리로처럼 3등신의 꼬마인 트라우마 네코타로는 가난뱅이 정신으로 무장한 빈곤신과 함께 요괴들을 퇴치한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능력없이 큰소리만 뻥뻥 치고, 요괴를 퇴치하기는 하지만 뒷끝은 별로 좋지 않다. 전작인 <파타리로>처럼 썰렁한 농담과 패러디로 가득 차 있어 아는 사람만 웃을 수밖에 없는 점은 여전한 한계로 남아 있고,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에피소드들이 조금은 식상해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법 여파로 <파타리로>를 더이상 볼 수 없는 마야 미네오 팬에게는 나름의 대용식이 되어줄 것이다.<도고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도도한 고양이’ 혹은 ‘도둑 고양이’로 읽힐 수 있는 고양이 주인공 도고의 이야기를 담은 신명환의 만화집 <도고가 동쪽으로 간
[만화가 화제] <요괴 처리인 트라우마> 발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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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1983년,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를 타고 그 녀석이 우리 동네로 이사오던 날. 머리카락 두 줄기만 솟아난 민대머리에 가로로 찢어진 큰 눈, 딱 보기에 심술궂어 보이는데다가 이름까지 악동이라니. 그런데 우리에게 놀라웠던 건 그 녀석이 말썽쟁이 만화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아니었다. 그 이전 우리를 즐겁게 했던 길창덕의 <꺼벙이>도, 박수동의 도 부모와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모범생들은 아니었다. 이 속깊은 말썽쟁이가 진짜 새로워 보였던 것은, 그 천진난만한 소동의 뒤끝을 빗질하면서 어린 우리에게 이 세상에는 참으로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 만화 근처에는 서늘한 진실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독재정권에 대한 명료한 은유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의 전성기에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악동이>가 최근 복간되어 나왔다.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우리들의 일그러지지 않는 영웅,이희재의 <악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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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무간도>가 4월 6일에 있는 제22회 홍콩 금상장에서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최다부문 후보작에 올랐다. <무간도>는 지난 해 12월 12일 홍콩에서 개봉하여 총 7백만 홍콩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21일에 개봉해 첫 주말 동안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오랜만에 박스오피스 상위에 홍콩 영화를 올리는 쾌거를 이루며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이번 홍콩 금장상에서 <무간도>는 먼저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유위강, 맥조휘 두 공동 감독이 <영웅>의 장이모 감독, <쓰리>의 진가신, <할리우드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경찰에 잠입한 조직 스파이와 조직에 잠입한 경찰 스파이로 분해 연기 대결을 벌인 양조위와 유덕화는 남우주연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경찰국장 역을 맡은 황추생과 조직의 보스 역을 맡은 증지위는 함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무간도> 홍콩 금상장 최다부문 노미네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