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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족하다. 간과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구조도 조금 덜 힙합적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다.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 아마도 에미넴 자신은 이런 말을 싫어하겠지만, 영화 속의 그는 힙합 카우보이이다. 카우보이는 법도 질서도 없는 서부의 척박한 땅에서 자기 자신을 지킨다. 외롭게 투쟁하는 그는 결국 악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정의의 씨앗을 심는다. 에미넴 역시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않는 게토의 정글에서 외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여자친구는 힙합 제작자와 놀아나고 엄마는 아들의 동창놈과 놀아나며 여기저기 폭력이 난무하지만 주인공은 그 모든 손쉬운 유혹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우정을, 힙합의 기본 정신을 지킨다. 그래서 그는 역시 정의의 씨앗을 심는다. 이 영화는 힙합 서부영화다. 서부영화의 코드들이 힙합이라는 하위문화 코드의 옷을 입고 있다. 카우보이영화는 늘 정의의 사나이인 카우보이와 ‘악의 축’의 대표자와의 결투에서 끝난다.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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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은 사실상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8마일>은 배틀이 이처럼 힙합의 기원을 암시하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결적’ 요소만을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견인해내고 있다.----------어쨌든 이 영화는 삶은 대결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맞다. 삶은 대결이다. 8마일 저쪽이든 이쪽이든 미국사회는 정글이다. 힙합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이 정글에서의 삶의 법칙에 대해 발설한다. 하드코어 힙합신을 호령하는 수많은 하드코어 래퍼들의 혀가 수많은 자기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그 기본적인 발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세상은 정글’이라는 개념이다. 힙합의 내용은 늘 ‘8마일’ 저쪽과 이쪽을 가르지만 정작 힙합의 주제는 ‘8마일 저쪽과 이쪽’에서 함께 통용되는 삶의 법칙들이다. 그것이 힙합의 재미난 점이다. 힙합에서는 사실상 주류와 비주류가 없다. 세상을 정글로 파악하는 순간 ‘여기/저기’는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먹고 먹히는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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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대,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비장한 위로<무간도>와 내 영혼의 홍콩누아르, 80년대에 바친다----------<무간도>의 시사가 있다는 말에 극장으로 향했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아, 홍콩에서 <영웅>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정도는 있었다. 자리에 앉아 <무간도> 예고편을 먼저 보여줄 때까지 사전 지식이란 그것뿐이었다. 별다른 기대나 호기심도 없었다. 홍콩영화에 대한 설렘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왕가위, 서극, 주성치 같은 이름이 결부되지 않는 한 별 관심도 없다. 익숙한 습관처럼 홍콩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홍콩영화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씁쓸하다.----------담담하게 <무간도>를 봤다. 경찰학교에 입학한 젊은 날의 유건명과 진영인이 등장한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다. 이제 그들도, 젊은 날의 모습에 대역을 투입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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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홍콩누아르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간도>를 보면서, 추억에 빠져들었다. 엣날의 홍콩누아르 한편이 겹치고 있었다. 임영동의 <용호풍운>. 개봉 당시에는 <미스터 갱>이라는 희한한 제목이었다. 87년에 만들어진 <용호풍운>을 처음 만난 것은 불법 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영웅본색>으로 홍콩영화가 한창 뜨고 있을 때, <용호풍운>을 만났다. 여기서도 주윤발과 이수현이 나온다. 그런데 <첩혈쌍웅>과 반대다. 이수현은 범죄자이고, 주윤발은 경찰 스파이다. 범죄조직에 침투한 주윤발은 이수현과 친구가 된다. 혹시 <용호풍운>을 본 적이 없다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떠올리면 된다. <저수지의 개들>의 인간관계와 기본적인 플롯은 <용호풍운>과 동일하다. 표절이라고? 물론이다. 타란티노는 <용호풍운>과 스탠리 큐브릭의 <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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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홍콩누아르를 보러갔다----------<영웅본색>을 처음 본 것은, 동네 3류 극장이 아니라 불법 비디오였다. 아직 극장에서 개봉하기 전이었고, 습관처럼 빌린 비디오의 하나였다. 이소룡과 성룡, 미스터 부 등 홍콩영화가 나올 때마다 즐겨 봤지만 총으로 싸우는 액션영화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 주윤발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고, 오우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기존의 어떤 홍콩영화와도 달랐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한국의 ‘컬트영화’는 홍콩 누아르에서 시작했다는 평가대로, <영웅본색>은 3류 극장에서 재발견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주윤발의 검은 코트와 질겅질겅 성냥개비를 씹고 다니는 사람이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나 역시 기억한다. 대학 주변의 재개봉관에서 <영웅본색>을 다시 보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조그만 소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누구나 소마에게 공감했다. 아니 여성이라면 장국영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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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은 <영웅본색>에 이어 <첩혈가두>와 <첩혈쌍웅>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첩혈가두>의 그 낭만성을 사랑한다. 평범하게 자라난 친구들이 베트남이라는,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의 공간으로 들어가 처참하게 뭉개지고 서로를 배신하게 된다. 양조위, 장학우, 이자웅이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그 멋진 장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에서 반복한 바로 그 장면이다. 후일 머리 속의 총알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장학우는, 양조위에게 부탁한다. 마지막 총알을 날려달라고. 양조위의 총을 입에 물고, 절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홍콩누아르의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다. 그들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은 없다.홍콩누아르에는 오우삼의 영화만이 아니라 수많은 걸작이 있었다. 홍콩누아르가 발견되기 이전에 서극의 <제1유형위험>과 맥당웅의 <성항기병>이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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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시리즈 3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촬영이 24일 런던 근교 리브스덴에서 시작됐다고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사가 27일 발표했다. 내년에 개봉될 3편의 감독은 멕시코인 알폰소 쿠아론이 맡았다. 쿠아론은 2001년에 <네 엄마도 그래>를 감독한 것을 비롯, 98년에는 <위대한 대망(待望)>, 95년에는 <작은 공주> 등을 감독했다.J.K 롤링스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영화화한 해리포터 첫 두편은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을 맡았었다. <드라큘라>와 <한니발>로 유명한 게리 올드맨이 아즈카반의 신비로운 죄수 시리우스 블랙역을 맡았으며 <슬리피 할로우>와 <고스포드 파크>에서 열연했던 마이클 갬본이 전편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을 맡았던 리처드 해리스가 작년에 작고함에 따라 교장역을 넘겨 받았다.티모시 스폴이 호그와트 학교 출신 피터 페티그루로 분하고 있으며 데이비드 튤리스가 루핀 교수역을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촬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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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예술프랑스는 아직도 봉건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여성 총리가 나오면 Le Premiere 인지 La Premiere인지 고민하는 나라다. 사무엘 헌팅턴이 지난 2월 초에 파리에 있었다면 서구 전체를 상호충돌하는 여러 문명 가운데 하나로 묶은 것을 후회했을 거다. 외부세계를 중시하는 영미계열 국가들과 모든 사물들에 성별을 매기는 것을 즐길 정도로 정신세계 속으로의 몰입을 즐기는 프랑스, 독일 등의 대륙계 국가들의 차이는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무역협상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문화시장개방 반대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방주도 세력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이 힘겨루기에서 항공기 제조업이 제조업의 총아이듯이 문화산업의 총아인 영화 및 텔레비전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한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는 프랑스가 지난 2월2일부터 4일까지 세계 각국의 반대세력을 규합했던 파리회의의 내용과 형식은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켰다(한국은 예술인들의 참여로 영화산
[서브웨이] 절대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프랑스의 예술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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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말에 <씨네21> 기자 공채공고를 냈고, 1600명가량이 지원을 했다. 서류전형, 필기시험,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4명을 뽑았다.아마도 지원한 사람들이 열배는 더했겠지만, 뽑는 사람 마음도 많이 불편했다. 몇장 안 되는 문서, 두어 시간의 필기시험, 10분 남짓한 면접으로 한 사람의 자질과 성품, 그리고 잠재력까지 알기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그렇게 한다. 선발과정을 훨씬 더 복잡하게 하더라도, 응시자의 불편만 늘어날 뿐 객관성이 썩 커지진 못할 것이라는 게 그나마 어쭙잖은 변명이 된다.어설픈 방식이나마 우리의 선발과정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과 함께 깊은 송구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내 진가를 모르는군” 하고 웃어넘기시기를, 그리고 자기 안의 보석을 여전히 믿으시길….2.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언론은 그걸 ‘인재’라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유용함
감사,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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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바람난 가족>으로 스크린 복귀하는 그녀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이유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 유작인 <죽어도 좋을 경험>(1988)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났던 윤여정이 16년 만에 돌아왔다.남은 인생을 육체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바람난 가족>의 속시원한 시어머니가 되어.허스키하면서 높은 음성,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독설, 알맞게 계량된 감정의 부피와 무게. 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무뎌지지 않은 채 더욱 날카롭고 깔깔한 표면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는, 또래 배우들 앞에 놓여진 모성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어머니’란 대명사에 묶여지지 않은 채, 윤·여·정·이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의 머리 깊숙이 박아넣었다.<화녀> <충녀>의 팜므파탈로 시작해 진정한 팜므파탈로 돌아온 이 배우의, 이 여인의, 아니 이 인간의 인생유전 위에, 자신의 드라마 속에 그를 불러오는 영광을 누렸던 노희경, 인
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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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윤, 청승맞아서 캐스팅했지”아랫입술을 윗니로 지그시 깨어물며 “까르르르” 천진한 웃음을 보이던 명자. 그 시골처녀가어느 작곡가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당하며 점점 미쳐 집안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가정비극, 김기영 감독의 71년작 <화녀>는 윤여정의 심장에 배우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었다.“당시에 한 드라마에서 오빠로 나왔던 최무룡 선생의 권유로 고영남 감독의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김기영 감독이 그 제작비를 다 물어주시고 <화녀> 촬영장으로 나를 끌어오셨다니까. 마의 손길이야. 마의 손길. (웃음)” 고약하고 무서운 인상에 말도 별로 없는 이 이상한 감독이 계약서에 쓴 계약조건도 얼마나 변태 같았는지. ‘촬영 들어가기 2달 동안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감독과 만날 것!’ “얼마나 만나기 싫었겠수. 감독님 만나는 시간이면 친구들을 불러냈어요. 우연히 온 것처럼 방해놓으라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 아셨더라고. (웃음) 그 몇달
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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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쟤는 목소리 때문에 안 돼, 그랬대요.”잠자리에 누운 성우에게 영희가 말한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인 거지.”(<거짓말>)경에게 유순이 울먹이며 말한다. “우리 복수 울렸다간… 너 절단 나. 나한테… 나 땜에… 울 만큼 운 애야… 나는 걔 울렸지만 남이 울리는 건 못 봐….” (<네 멋대로 해라>)윤여정은 드라마 작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배우다. <내가 사는 이유>로 만난 노희경 작가를 비롯해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 작가까지 조용하던 그들이 윤여정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할라치면 갑자기 말이 늘어난다. 그러나 누구보다 윤여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름 석자는 바로 작가 김수현이다. 데뷔 초 <무지개>를 시작으로 성공적인 복귀작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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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사람 죽이는 여자인정옥 / <네 멋대로 해라> 작가그 여자가 이상하다.난 그 여자가 신들린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무릇 중견배우의 연기는 신들린이란 표현이 자주 언급되는데도 말이다.그 여자의 목소리엔 쇳소리가 갈린다. 그런데 입엔 장미냄새를 흘린다.그 여자의 긴 목덜미엔 히스테리가 있다. 그런데 그 목 끝 치켜든 턱 위엔 앙증맞은 귀여움이 서린다.그 여자의 찌푸린 미간은 세상에 욕설을 퍼부어대는데, 눈동자는 한 가득 겁을 집어먹으며 세상을 받아들인다.그 여자는 상대의 등짝에 들러붙어 징글맞게 떨어지지 않는 가늘고 억센 팔이 있다.그런데 그 팔을 풀어젖히고 거칠게 내동댕이라도 치면, 너무나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내리는 가늘고 가녀린 어깨가 있다.이 모습이 연기로 사람 죽이는 윤여정이다.이 여자는 연기자가 아니다.인간도 아니다.윤여정은 여자다. 윤여정은 여자로 사람 죽인다.여자 냄새가 이렇게 진한 배우를 난 본 적이 없다.윤여정은‥ 눈빛 하나로 삶을 보듬는
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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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 우린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물 같은 영화 <매트릭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돌아온다’ 한마디만 남기고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염없이 ‘그 뒷 얘기’를 기다렸다. 긴 기다림을 보상하듯, 4년만인 올 여름에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겨울에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린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선발로 달려서, 아니 날아서 갔다. 초특급 보안 시스템을 개비한 채, 문을 닫고 있는 ‘매트릭스 월드’로. - 편집자네오, 다시 이상한 나라로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으로 미리보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매트릭스3 레볼루션>버뱅크=박은영 cinepark@hani.co.kr좁은 통로를 지나 다다른 홀은 칠흑처럼 검었다. 몇 줄기 가느다란 빛이 이리저리 뒤채는 동안 재빨리 훑어보니, 그곳은 술과 음악이 있는 카페이자 비디오게임이 있는 오락실이었다. 검은 벽, 검은 바닥, 그리고
<매트릭스 리로디드>에 대한 6가지 힌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