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마 영화광
마틴 스콜세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영화를 탐닉했다. 11세의 나이에 손수 작업한 스토리보드를 보면 예사롭지 않은 영화광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도시>(The Eternal City)라는 제목의 고대 로마 대서사극을 담은 스토리보드에서 구도와 디테일에 공을 들인 비범함이 엿보인다. 또, 어린 시절의 스콜세지는 16mm 필름 대여소에서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호프만 이야기>를 자주 빌렸다. 이때 단 한 벌 밖에 없는 <호프만 이야기>의 필름을 빌리기 위해 서로 경쟁했던 다른 꼬마는 같은 동네에 살던 조지 A. 로메로였다.
11살의 마틴 스콜세지가 그린 <영원한 도시> 스토리보드.
# 페르소나
스콜세지의 페르소나. 곧장 두 명의 배우가 떠오른다. 그의 작업 시기를 전반/후반으로 거칠게 구분해 본다면 전반기에는 로버트 드 니로와, 후반기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많은 작업을 했다. 드 니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명성을 쌓은 대표작으로는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이 있다. 2002년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디카프리오와 첫 작업을 한 이후로는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꾸준히 함께했다.
<택시 드라이버> 로버트 드 니로(왼쪽), <셔터 아일랜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조 페시 & 하비 케이틀
조 페시와 하비 케이틀을 빼놓고 스콜세지의 영화를 말하기엔 이들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특히 이번 <아이리시맨>에서도 조 페시와 하비 케이틀은 주요 인물로 활약해 팬들을 기쁘게 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공식적 데뷔작인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에서 부터 주연을 맡아 인연을 쌓은 하비 케이텔은 <비열한 거리> <엘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택시 드라이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에 출연했고, 스콜세지 세계관에서 거친 유머로 활기와 서늘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던 조 페시는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카지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 로버트 드 니로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콜세지의 관계는 여간 특별한 게 아니다. <비열한 거리>부터 <카지노>까지, 두 사람이 함께한 8편의 영화는 모두 스콜세지의 대표적인 걸작이 되었다. 그런데 이 콤비의 인연이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기막히다.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 지역 일대에서 유년기를 보낸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16세에 드 니로가 어울린 패거리가 두려워 스콜세지가 그를 잘 마주치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필멸의 작업을 함께한 두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도 말한 적이 있을 만큼 여전히 깊은 협력 관계에 있다. 스콜세지는 드 니로와 함께 영화를 찍지 않는 상황에서도 거의 모든 대본을 공유한다. <아이리시맨>으로 24년 만의 재회를 하게 된 계기 역시, 찰스 브랜트의 소설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를 읽고 매료된 드 니로가 스콜세지에게 책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 캐릭터
스콜세지, 스코세이지, 스코시즈... 한국식 표기도 한 둘이 아닌 스콜세지의 성은 이탈리아계다. 그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는 마틴 스콜세지 본인의 뿌리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영화가 지배적이던 할리우드에서 그가 시도한 테마는 줄곧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처참히 부수는 것이었다. 자신이 청년기에 경험한 미국의 모습은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가 만들어낸 이민자 주인공들은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었다. 빌런이나 히어로를 창조하는 데엔 관심이 없으며,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선 인물들이야말로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의 사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뭔가가 폭발하기 위해서 '열정'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긴장이나, 둘러싼 공기 같은 것들이다"고 믿는 사람이다.
# 영화적 기법
데뷔 51년 차, 연출작 60여 편에 달하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 이토록 두꺼워진 필모그래피에 따라 자연스레 그의 특징적인 연출 기법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법은 보이스 오버(voice-over). 주인공이 곧 화자로서 전지적으로 영화를 설명해가는 구조를 거의 매번 사용하고 있다. 보이스 오버는 주로 회상하는 어투인데, 그렇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이다. 회상이 끝나기 전, 운동하던 화면은 정지 상태가 되고 내레이션은 계속 진행된다. 움직임과 멈춤의 완급조절로 긴장감 만들기를 즐기는 스콜세지. 그의 영화에서 침묵은 훌륭한 재료다. 프리즈 프레임이 사용되지 않은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화하는 인물 사이의 짧은 침묵을 탁월하게 사용해 팽팽한 긴장을 형성한다.
# 카메오
오랜 팬들은 영화 속에 짧게 등장한 스콜세지의 모습을 찾느라 바쁘다. 데뷔작부터 카메오 출연을 해 온 스콜세지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의 택시에 탑승한 뒷좌석 승객으로, <코미디의 왕>에서 TV 쇼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휴고>에서 멜리에스(벤 킹슬리)를 찍는 사진사로 등장해 왔다. <좋은 친구들>에서는 부모까지 카메오로 등장시켰다. 스콜세지와 너무 닮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으면 간단하다. 어머니 캐서린 스콜세지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력에 미소가 덤으로 따라온다.
<택시 드라이버>(왼쪽), <휴고>에 카메오로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
<좋은 친구들>에 카메오로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의 모, 부
# 갱스터 무비
마틴 스콜세지는 갱스터 무비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가 만든 갱스터 무비들은 여전히 영향력이 큰 걸작들이다. 하지만 그의 많은 작품들 중 갱스터 영화는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그리고 <아이리시맨>까지 6편이 전부다. 되레 파이가 큰 장르는 전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성난 황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좋은 친구들> <카지노> <쿤둔> <에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까지 7편.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음악 다큐멘터리, 뮤지컬,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아우르는 감독이다.
# 음악광
<라스트 왈츠> <더 블루스 - 고향으로 가고 싶다>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샤인 어 라이트> <조지 해리슨> <롤린 선더 레뷰 - 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 등. 그가 많은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음악을 아주 탁월하게 사용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는 점. 그와 오래 협업한 동료들은 이야기한다. 스콜세지는 이미 머릿속에 신(scene)과 음악에 대한 구상이 설계돼 있다고. 가장 여러 번 등장한 음악은 롤링 스톤즈의 '김미 쉘터'(Gimme Shelter). <좋은 친구들> <카지노> <디파티드> 세 편의 영화에 이 음악이 흘렀지만, 정작 롤링 스톤즈의 다큐멘터리였던 <샤인 어 라이트>에는 '김미 쉘터'가 나오지 않는다.
# 최고 흥행작
거대한 야망을 가진 남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를 바탕으로 만든 <에비에이터>는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첫 영화로 기록된다.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5개 부문의 수상 기록을 냈다. 한편, 마틴 스콜세지의 저작 중 최고로 흥행한 영화는 2013년 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다. <에비에이터>와 마찬가지로 후기 페르소나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명연이 돋보이는 영화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월드와이드 3억 9천만 달러를 웃도는 흥행 성적을 냈다.
# 가장 많은 F-word
거친 세계를 날것 그대로 담는 감독 마틴 스콜세지. 폭력적인 성향의 인물을 자주 그렸던 그의 영화에는 욕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가장 많은 F-word(fxxk)를 포함한 스콜세지의 영화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다. 180분의 러닝타임 동안 총 569번의 f-word가 등장했고, 이는 3.16분에 한 번꼴이다. 하지만 의외로 스콜세지는 실제 생활에서 욕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그는 평소 친절하고 예의 있는 태도로 출연진을 대하며, 온화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편이다.
# 영향
존 카사베츠, 오슨 웰즈, 존 포드, 페데리코 펠리니, 엘리아 카잔, 로베르토 로셀리니,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마틴 스콜세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감독들의 목록이다. 한편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세 작품은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분홍신>, 루치노 비스콘티의 <들고양이>다. 기념비는 또 다른 기념비를 낳는다. 마틴 스콜세지라는 기념비를 보유한 지금의 영화계도 그의 영향 아래 있다.
# 오스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휴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이다. 신작 발표만 했다 하면 오스카의 거의 모든 부문에 호명돼 왔다. 하지만 작품상과는 애가 닳게도 연이 없었던 마틴 스콜세지. 마침내 그가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된 것은 홍콩 영화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 덕이었다.
# 칸영화제
각종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온 스콜세지. 그가 마라케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있을 때, 국내 영화 <한공주>에 보낸 찬사로 국내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제51회 칸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그해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에 돌아갔다.
# 뮤직비디오
마틴 스콜세지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스릴러'(Thriller)와 '빌리 진'(Billie Jean)으로 뮤직비디오의 돌풍을 몰고 왔다. 이 시기에 스토리를 갖춘 완결된 영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에 탄력이 붙고, 유명 영화감독들과의 협업을 하기 시작한다. 잭슨의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배드'(Bad)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의뢰했고, 특유의 음울한 감성을 살린 18분짜리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마이클 잭슨과 웨슬리 스나입스의 연기 대결도 꽤 많은 분량이 담겼다. 이후 존 싱글턴, 데이빗 핀처, 스파이크 리 등의 영화감독과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잭슨의 작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