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절반을 무릎 꿇린 5살 소년의 눈물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서거한 뒤, 레팅 린포체(영적 스승을 의미하는 칭호)는 고인이 된 라마와 역대 모든 달라이 라마의 대를 이어 관세음보살의 현신이 될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을 때까지 섭정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레팅은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의 배경이 된 국경의 변방지대에 소년을 찾으러 승려들을 보냈다. 오랜 탐색 끝에 후보자로 여겨지는 2살의 라모 된둡이 발견된다. 태어날 때 불교의 성조(聖鳥)인 까마귀가 소년을 지켰으며 또한 티벳의 수도이자,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 있는 라사에 가려고 한다는 소년. 승려들은 소년의 집으로 가서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물건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테스트를 했다. 각각의 물건에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것이 들어 있으며 소년은 그의 물건을 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라모 된둡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바로 그가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고귀한 존재)이었다.포토 (18)
네티즌 리뷰 (22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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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connor2008-12-29 02:53:307스콜시지의 의미있는 외도.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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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io732008-10-22 11:59:422스콜세즈가 꼭 이 작품을 찍어야 한 이유가 뭘까?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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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jumi2005-05-29 22:56:367의미심장하다고 관념적일 것 까지야...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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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end2004-09-14 16:29:18그는 티벳의 고귀하신 아버지입니다.mor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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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린 시절 《세계 위인집》은 한번… ^^;; 아니 한권쯤은
읽어봤을 것입니다. 저희 집에도 장장 50권짜리 위인집이 있었거든
요. -_-;;; 반강제적으로 다 읽어야 했던 그 전집에는 여러 위대한
인물들의 일대기가 담겨 있었지만, 가장 저의 마음을 잡아 당긴 것
은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간디〉의 위인전이었죠. 비폭력. 내가 맞
더라도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무저항으로 오히려 더 큰 저항을
한다는 건 어린 저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사상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더 위대한 인물로 느껴졌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현대에도 그
런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달라이 라마죠.
티벳의 위대한 영혼 13번째 달라이 라마가 서거했습니다. 쿤둔의
자리는 비워진 채 환생한 다음 대 달라이 라마를 기다리고 있죠. 승
려들은 린포체 섭정관의 예시에 따라 국경 지대에서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시골 마을에서 마주친 유
난히 눈빛이 영롱한 두 살배기 아이를 만나게 되죠. 위대한 인물답
게 태어날 때 이상한 조짐을 보인 그 아이는 선대 달라이 라마의
염주를 보고 소리칩니다. "내꺼야!!" 몇가지 시험 끝에 달라이 라마
임이 확인된 그 아이는 일정한 나이가 되자 티벳의 쿤둔이 되기 위
해 그는 수도의 궁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가족과 떨어진 외롭고 힘
든 생활이 시작되죠. 하고 싶은 거 많고, 친구와 놀고 싶을 나이에
그는 궁에서 불법을 배우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백성을 위해 고민
해야 되는 무거운 운명에 번민해야 합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돼서
중국이 공산화되자 침략의 위협을 받고 불길한 신탁은 거듭되기만
하죠. 희생되기 시작하는 티벳 국민들의 모습에 그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옵니다. 떠나느냐… 남느냐…
저라면 아마도 밤에 몰래 뒷문으로 도망가고 말았을 꺼 같습니다.
2차대전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처음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써
쿤둔에 오르게 됐을 때 몰래 도망가고 말았을 꺼 같군요. 궁의 높은
곳에서 망원경으로밖에 볼 수 없는 바깥 세상의 활기참, 그런 밖에
비해 할아버지들만 잔뜩 있는 궁 안에서 끝도 없는 공부와 수행을
해야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남아 있을 수가 없을 꺼 같거든요.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만 편하고자 했다면 의무 따윈 벌써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평범한 일상에 대한 유
혹과 이기심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그가 진정한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르죠. 환생의 의무감만으로는 도저
히 견딜 수 없는 자리인 쿤둔은 진정으로 중생을 가련히 여기고 옳
은 길을 위해 가시밭길을 기꺼이 감내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있을
수 있는 자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더욱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
니다. 타인의 선함을 비추어주기 위해 악함을 감내할 줄 아는 정신
그게 바로 진정한 쿤둔-고귀한 존재가 아닌가 싶군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라
는 점이었습니다. [쿤둔]은 그의 다른 작품과 무척이나 상이하면서
도 자세히 살펴보면 비슷한 구석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게 흘러가는 [쿤둔]을 보고 있자면 여기서 축적된 폭
발력이 이 다음작인 [비상근무]에 더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죠.
그의 전작 속에 주인공들은 상처 입히는 인간관계와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좌절감에 빠지고 마침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곤
하죠. 그러나, 그 밑에는 [쿤둔]에서 달라이 라마가 자기 자신 속의
끝없는 번뇌를 괴로워하는 것처럼 자신 속의 괴로움 때문에 더 힘
들어하는 주인공들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죠. 물론, [쿤둔]은 살아있
는 사람에 대한 전기영화답게 너무 정중하게 다루어진게 아닌가 싶
긴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를 충분히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감독의
의도를 충실하게 연기해낸 배우들의 힘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죠.
특히나, 달라이 라마의 성장에 따라 역을 해냈던 배우들의 연기가
참 훌륭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달라이 라마는 자꾸만 자신의 신발과 타인의 신발을
바라봅니다. 티벳을 떠나던 그 날부터 그의 신발은 이제 더 이상 깨
끗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러워지는 신발만큼이나 험란한 인생을 살
아야 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흔들림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건 티벳인들이 그를 믿기 때문일겁니
다. 달라이 라마가 티벳인에겐 신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아닙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했던 다큐멘터리 속의 달라이 라마는 살아 계
시다는 사실 자체로 큰 힘이 되는 우리의 아버지 같은 느낌이더군
요. 그런 지도자가 있는 티벳인들이 무척이나… 부러운 건 비단 저
뿐만은 아닐꺼 같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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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roit2004-09-07 03:02:26그...mor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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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그는 온 세상 환자들이 깨끗히 다 나을때까지 병을 고쳐주려 하는 의사라고 합니다."
"그는 집착에서 비롯된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중생을 건져내려는 구조자라고도 하고요."
"그는 또한, 고해(苦海)에 침잠한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다리이며, 보다 낳은 세상으로 인도해줄 배(船) 라고도 합니다."
"그는 어리석은 인간을 사랑으로 깨우쳐 주고자 노력 합니다. '지혜의 바다' 란 이름 답게 "모두 다 깨우친 자" 라고도 한답니다."
"그는 약속했답니다. 가엾은 티벳 백성을 위해 영겁을 함께하기로... 그는 관세음 보살의 화신으로 고통에서 헤메이는 뭇 중생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만물을 끝없이 사랑하라는 짐을 지고 계속 돌아옵니다."
"그의 이름은... 달라이 라마 입니다. 혹은, "쿤둔" 으로 불리우기도 하고요."
영화 [쿤둔]은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망명 티벳 정부의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에 강제 편입된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쓴지도 벌써 반세기가 가까워 옵니다. 그가 아직 입적하지 않았기에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영화로 만드는게 어리석은 일 인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티벳 불교에서는 그는 "살아있는 神" 입니다. 生佛에대한 이야기 -더군다나 티벳의 찬란했던 시절의 얘기도 아닌 망명과정- 를 만든다는게 불경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죠.
노벨 평화상 수상이 말해주듯 그가 비폭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지구촌 인구에 회자 된다지만, 반대편 중국측 입장으로 볼때도 그는 반란세력의 수괴일 뿐이니 또한, 그의 영화를 반길리 없겠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도 중국의 힘이 무서워 선뜻 그의 방문을 승낙시키지 못하는데, 세계인을 상대로 티벳의 독립이냐, 중국의 계속된 보호(?)냐를 놓고 표결을 해도 12억 인구와, 강대국의 힘을 앞세운 로비에 티벳이 지지 않을까요?
현재로선, 자비와 평화의 화신도 공산주의란 신흥 종교로 무장한 12억 중국의 물리력에 난감해 하는것 같습니다.
영화속 쿤둔은 "난 전쟁을 믿지 않는다", "결국 선은 흥하고 악은 망한다" 라고 生佛로서 초월한듯한 말씀을 하시지만, 공산주의자들의 협박에 어찌 할바를 몰라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비치며, 수발드는 아랫 사람에게 '내가 어찌 해야 하나', 고 물어보기도 하고, " 가장 슬픈건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것" 이라며 나약한 소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神性을 가진 인간, 아니, 神의 고뇌하는 모습이라...음-_-;...미국의 어느 감독이 좋아할 만한 주제 아닙니까?
초월한 인간과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충돌...
수난과 부활 그리고, 구원에 대한 영화...
추악한 속세의 욕망과 분열증에 가까운 정신적 공백상태에서서 방황하는 인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비열한 거리], [택시드라이버]를 만든 바로 뉴욕 출신 그 감독 말입니다.
2. 마틴 스콜세지와의 인터뷰
[쿤둔]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시사회 후, 인터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위 주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하는군요. 영화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에 실어보렵니다.
"나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사람, 물질을 넘어선 정신의 세계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항상 나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는 즉각적인 만족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정신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육체에서 내재한 정신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물질, 육체, 정신과 같은 구분 말입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비열한 거리]를 만들면서 가졌던 의문들과 상통합니다.-- ..네, 난 이런것들에 항상 끌립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많은 정신적 위안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에서 전해주고자 한 메세지와 화두를,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군요. 더 들어보시죠. ^^..
"물질적 욕구가 채워지더라도 무언가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지요. 그것이 무엇이며, 왜 그럴까요? 어떤이는 종교가, 또 다른 이는 다른 그 무엇이 채워줍니다.-
-달라이 라마는 정신적인 영역에서 살아가면서도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의해 물질적 문제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티벳 불교에서 그는 부처의 환생이며 모든 생물을 사랑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겁니다.-
-그건 정말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건 그 어두운 면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라온 곳에서는 두 가지 모두가 공존 했기 때문입니다. 난 선과 악 모두를 느끼며 자라왔습니다. 뉴욕이란 도시가 원래 그랬죠. (웃음)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의문점은 과연 우리는 어느쪽에 속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티벳인일까요? 아니면 중국 공산당 일까요.(웃음) 내 생각에는 그 둘의 조합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둘 중 어느쪽이 궁극적으로 살아 남을까요?"
3. 골동품 거리를 걷는듯한 전통성, 山寺의 선(禪)에 빠지는 철학성.
마틴 스콜세지의 96년작 [쿤둔]은 전편에 걸쳐 흐르는 라마승들의 득도(得道)를 향한 장중한 념 소리처럼 묵직한 영상미로 다가오는 리듬있는 詩였습니다.
詩는 영화속 형형색색의 모래로 지은 만다라처럼 찬란한 티벳의 전통미를 뽐냄니다. 인사동의 고색창연한 골동품가(街)를 지나는것 같이 평소 대하기 어려운 물건을 보는것 처럼, 흥미있게 세월이 만든 아름다움을 만져보고 싶기도 합니다.
삼라만상의 위대한 만다라는 순식간에 쓸려 쟃빛 모래로 돌아가, 집착을 버리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교적 담론을 담고 있어, 현세의 현란함에 연연하는 제가 더욱 만져보고 싶어했는지도 모릅니다.
티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밀집한 히말라야 산맥지대가 만든 세계의 지붕입니다. 그 고원 위에 생불이 거처하는 포탈라 궁이 절벽위에 서있고, 쿤둔이 그 끝에서 광막한 세상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사는 아래 땅, 황량한 티벳은 고통 받는 속세입니다.
티벳은 종교적 영상과 잘 어울리는 황량함과 고색창연한 화려함이 공존하는 곳으로 유려한 카메라웍에 의해 붉은 이데올로기와 초월한 인간의 충돌, 혹은 인간정신의 묵상의 고뇌를 담은 철학적 장소로 재탄생 합니다.
[쿤둔]은 작가 멜리사 매티슨이 달라이 라마와 수많은 대화 끝에 완성했다는 수준높은 시나리오의 덕도 있지만, 서양인이 바라본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그 전 동양을 그린 영화들과는 질적인 차이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필 마로코의 미술과 의상도 종교적 정신의 무게와 티벳전통에 풍부한 색감을 덧칠해 주었습니다. 영화속 배우들도 모두 아마추어라지만,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스콜세지는 실제 티벳불교와 티벳민의 의식에 많이 접근한것 같습니다. 그는 함축적이지만 읽기 편하며(불교를 형상화한 타 작품보다는), 전통적이지만 모던한 주제로 고풍스런 영상시를 만드는데 성공한것 같습니다.
4. 쿤둔의 생애(영화내용).
태어날때 울지도 않았으며, 까마귀가 눈동자처럼 지켜준 아이, 4년간의 흉년끝에 복을 물고 태어난 아이 라모('수호자'란 뜻)는 아버지의 수염 붙잡기를 즐기고, 밥상 상석자리 마저 차지하려는 버릇없는 아기입니다.
이 장난꾸러기 2살짜리의 행동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있는바, 왕처럼 행동하려던 연유가 14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아나선, 방랑중인 라마승에 의해 밝혀집니다. 아이와 스님은 눈으로 말하고 듣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좌우할 시험을 받습니다.
아기는 섭정인 레팅 란포체의 14대 달라이 라마 증명 시험에 합격하고, 관세음 보살의 화신으로 인정받습니다. 환생을 예언하고, 중생을 사랑으로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의무를 지닌채 태어난 쿤둔은 처음엔 어두운 궁안에서 엄마가 보고파 우는 모습도 보이지만, 결국 불, 법, 승에 귀의하여 열반을 얻는데 노력합니다.
어린 군주는 BBC라디오를 듣고, 서양 영화를 보고, 기계에 관심이 많은 소년으로 자랍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의 침략에서 도와 달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순진한 생각을 하는 어린군주의 모습을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깨인, 쿤둔도 저럴진대, 일반 주민은 얼마나 열강에 무지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무지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에 대해 우려의 생각이 깊게 듭니다. 일제 식민지의 조선도 생각나고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납니다.
붉은무리의 핍박이 시작된겁니다. 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