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비틀스가 등장하는 스무개의 장면이 있다. 비틀스가 직접 출연한 영화, 비틀스를 소재로 한 영화, 그리고 비틀스를 언급하고 패러디한 영화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비틀스를 얘기하고 추억했다. 비틀스의 첫 번째 장편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부터 나카무라 요시히로의 <골든 슬럼버>에 이르기까지 비틀스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총망라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또 다른 비틀스의 장면은 언제인가.
불멸의 음악
<아이 엠 샘>(2001) 지적장애로 7살의 지능을 지닌 샘(숀 팬)은 자신의 딸 이름을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와 루시(다코타 패닝)라 짓고, 갓난아이인 루시에게 비틀스의 배지를 달아준다. 숀이 친구들과 루시의 신발을 사러 가는 장면에선 비틀스의 << Abbey Road>> 앨범 재킷을 흉내내기도 한다. 남들이 지적장애를 탓할 진 몰라도 비틀스에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전문가다. <아이 엠 샘> O.S.T가 순전히 비틀스의 음악만으로 채워진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Two of Us> <Blackbird> <Across The Universe> <Strawberry Fiel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등 비싼 저작권료 때문에 비틀스의 원곡이 아닌 다른 가수들이 편곡해 부른 노래들이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변하는 건 아니다.
바흐? 비틀스? 아니면 너?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 <러브 스토리>(1970) 영화 속 비틀스는 20세기 최고의 밴드를 넘어 고전 음악가와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레코드 가게 주인인 롭(존 쿠색)과 종업원 베리(잭 블랙), 딕(토드 루소)은 톱5 순위 매기는 걸 중요한 일과로 삼는다. 그 중 베리는 “80년대 최악의 톱5는 스티비 원더의 다섯곡”이라 말할 정도로 까다로운 음악적 취향을 지녔다. 이들이 앨범 1면의 첫 번째 곡 톱5를 꼽을 때의 일이다. 흥미로운 명단이 나오지 않자, 베리는 (너무 당연한 걸 꼽으면 안된다는 의미로) “비틀스처럼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밴드의 곡을 슬쩍 집어넣으면 고상해지냐? 그럼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어때?”라며 흥분한다. 비틀스는 너무나 뻔한 명예의 전당의 고유명사인 것. <러브 스토리>의 제니(알리 맥그로)도 “모차르트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겠어? 바흐? 비틀스? 아니면 너?”라고 올리버에게 속삭인다. 순간 바흐와 비틀스는 동격인 셈이다.
험난했던 함부르크 시절
<백비트>(1993) <노웨어보이> 후일담으로 보면 무척 흥미로울 영화다. <노웨어보이>가 함부르크로 떠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라면 <백비트>는 그렇게 막 떠나던 시점부터 그 이후 함부르크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환락의 홍등가에서 지내고 카이저켈러 클럽에서 프레루딘(각성제)으로 버티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말하자면 비틀스가 가장 뜨겁던 시절의 기억이다. 그 중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섯 번째 멤버이자 요절한 화가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스티븐 도프)가 있다. 존 레넌(이언 하트)이 리버풀 미술대학에서 만난 그는 비틀스의 베이시스트였고, 함부르크에서 만난 아스트리드(셰릴 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아예 독일에 머물렀다. 그가 빠지면서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를 맡으며 비틀스는 4인조 밴드로 자리잡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비틀스가 성공가도를 달리기 직전인 1962년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조지와 링고에게 관심을
<바닐라 스카이>(2001), <500일의 썸머>(2009) <바닐라 스카이>의 데이빗(톰 크루즈)은 정신적 공황상태 속에서 커티스 박사(커트 러셀)와 얘기를 나눈다. 커티스는 비틀스를 언급하며 “예전엔 존이 좋았는데 이젠 폴이 좋아”라고 얘기한다. 나이가 들면서 어딘가 좀 현실주의자가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데이빗은 “전 늘 조지가 좋았어요”라고 답한다. <500일의 썸머>에서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라는 탐(조셉 고든 레빗)의 얘기에 썸머(주이 드샤넬)는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라며 <<Abbey Road>> 앨범에 실린 링고 스타의 노래 <Octopus’s Garden>이 비틀스 노래 중에 최고라고 말한다. <바닐라 스카이>와 마찬가지로 좀더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찰나 그들은 곧장 성인영화 DVD를 빌리는 것으로 서둘러 논쟁을 마무리한다. 어쨌건 두 영화 모두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딘가 ‘묘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건 사실.
존 레넌이 간달프를?
<고무인간의 최후>(1987) 주인공들의 차 앞 유리에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당시 것으로 보이는 비틀스의 패널 사진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을 비틀스가 그보다 더 오래전에 영화화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비틀스는 UA사와의 계약에 의해 <하드 데이즈 나이트>와 <헬프!>(1965) 이후 한편의 영화에 더 출연해야 했고, 비틀스의 애플 필름스 공동책임자 중 하나였던 데니스 오델은 <반지의 제왕> 영화화를 제의했고, 인도 리시케시에서 마하리시 요기의 명상수업을 받던 비틀스를 찾아가 설득까지 했다. <반지의 제왕>에 매혹된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존 레넌은 간달프 역을 하고 싶어 했다. 감독으로 염두에 뒀던 스탠리 큐브릭과 비틀스의 만남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못했는데 궁금한 것은 영화 그 자체보다 그들의 O.S.T다.
비틀스 노래를 부르다
<페리스의 해방>(1986), <레인맨>(1988) 때로 배우들은 영화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한다. <페리스의 해방>에서 매튜 브로데릭은 비틀스의 <Twist & Shout>를 부른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10대들의 고민을 담은 청춘오락영화에서 매튜 브로데릭이 1960년대 아이콘인 비틀스의 노래를 부르는 게 흥미롭다. <레인맨>에서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먼은 비틀스의 <I Saw Her Standing There>를 부른다. 어릴 적 자신에게 비틀스의 노래를 불러준 레인맨의 존재가 바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자신의 형(더스틴 호프먼)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생(톰 크루즈)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데 섞인 묘한 감정에 휩싸이는데, 그때 이 노래가 쓰인다. 두 배우가 비틀스의 대단한 팬임을 알고 보면 노래는 더 뭉클하다. 이 노래는 비틀스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의 첫곡으로, 무명 시절부터 비틀스가 고정 레퍼토리로 부르던 곡이다.
폴 매카트니와 오노 요코가 닮았나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1984), <아임 낫 데어>(2007)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은 잠깐이나마 비틀스와 어울려 논다. 실제로 비틀스에 큰 음악적 영향을 미친 그는 1964년 미국 투어 중이던 비틀스에게 마리화나를 권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임 낫 데어>가 실제 사건의 유머러스한 재현이라면 모큐멘터리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가짜 인물들의 실제적인 재현이다. 레드 제플린, 더 후, 롤링 스톤스를 모두 패러디하지만 그 중심은 비틀스다. 블랙 앨범은 화이트 앨범을 떠올리게 하고, 데이빗과 지닌은 누가 봐도 존 레넌과 오노 요코다. “회의하는데 왜 저 여자가 있냐”고 따지는 매니저 이언에게 “지닌은 이미 밴드의 일원”이라며 언제나 함께하는 데이빗, 그리고 서로 다른 음악적 취향으로 갈등하는 데이빗과 나이젤의 모습에서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런데 데이빗은 “사실 나이젤과 지닌은 상당히 닮았다”고 말한다. 폴 매카트니와 오노 요코는 지금도 서먹한 사이로 알고 있는데, 존 레넌이 생전에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던가.
비틀스의 첫 번째 장편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 1964년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뒤 비틀스는 미국에 다녀왔다. 그리고 첫 장편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에 출연하며 그들의 성공시대는 활짝 열렸다. 게다가 인기에 편승해 조잡하게 만들어진 기존 스타들의 영화와는 달랐다. 팬들을 피해 도망다니고, 활기차게 공연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따분해하는 등 그들의 바쁜 일상이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채로 펼쳐졌다. 그 속에서 존 레넌은 무려 12번 정도의 기가 막힌 애드리브를 만들어냈고, 가장 조용한 멤버로 알려져 있던 조지 해리슨의 숨은 유머도 빛났다. 영화평론가 앤드루 새리스는 “음악영화에서의 <시민 케인>”이라며 격찬했고, 이 작품을 무려 25번이나 봤다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사랑은 비를 타고>와 견줄 만한 작품”이라 말했다.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영화역사상 가장 뛰어난 로큰롤영화의 고전이 됐다.
비틀스가 구원해준 사람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2001), <패닉룸>(2002) <패닉룸>에서 엄마(조디 포스터)와 딸(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한 강도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몸을 옮긴다. 당뇨병 환자인 딸은 패닉룸 안에서 점점 지쳐가고 힘을 내기 위해 주문을 외운다. <<Help!>> <<Rubber Soul>> <<Yesterday & Today>> <<Magical Mystery Tour>> <<Let It Be>>… 바로 비틀스의 앨범 제목들. 비틀스가 영험한 약효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패럴리 형제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선 윌슨(제이슨 알렉산더)이 존 레넌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윌슨은 두 번째 발가락이 길다는 이유로 여자친구 린디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데, 그런 린디가 윌슨에게 비틀스 재결합 공연에 가자는 미끼를 던진다. “멤버는 달라. 폴, 조지, 링고, 존 대신에 에릭 클랩턴!” 존 레넌 때문인지, 여자친구의 두 번째 발가락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윌슨은 “난, 에릭은 별로”라며 거절한다. 존만 있었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
<물랑루즈>(2001), <러브 액츄얼리>(2003) <All you need is love>를 <러브 액츄얼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들도 많으리라. 혹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멤버들의 노래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러브 액츄얼리>의 마지막,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사랑을 확인할 때 흘러나오는 “럽~럽~럽~”은 바로 비틀스의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앨범에 수록된 <All you need is love>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물랑루즈>에서도 샤틴(니콜 키드먼)과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All you need is love>의 가사를 인용해 노래 부른다. 비틀스뿐 아니라 키스, U2 등의 유명한 러브송들을 모아 부르는 이 사랑의 세레나데 첫 문장이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에요”다.
존 레몬, 오렌지 해리슨, 폴 맥아이스티, 망고 스타!
<심슨 가족> TV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는 비틀스를 패러디한 에피소드가 수없이 등장한다. 기획자이자 각본가인 맷 그로닝이 비틀스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Abbey Roa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커버 패러디는 물론이고 멤버들의 이름으로 장난치는 건 예사다. 음료수 캔에 쓰인 이름이 존 레몬, 오렌지 해리슨, 폴 맥아이스티, 망고 스타라니! 비틀스를 패러디한 밴드 비샵스도 등장하고, 비틀스의 옥상 라이브를 패러디한 장면도 있다. 게다가 존 레넌을 빼고 세 멤버는 모두 <심슨 가족>의 목소리 더빙에 참여했다. 폴 매카트니는 에피소드 <리사 더 배지테리언>에서, 조지 해리슨은 에피소드 <호머의 바바라숍 쿼텟>에서, 링고스타는 에피소드 <브러시 위드 그레이트니스>에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존 레넌이 살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미국 대 존 레넌
<존 레넌 컨피덴셜>(2006) 존 레넌은 언제나 당대 대중문화 논쟁의 중심에 있어왔다. 1966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예수보다 더 인기있다”는 발언으로 미국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게 그 시작이었다면, 그가 오노 요코를 만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베트남전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정치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부당하게 수감된 운동가를 위해 석방 촉구 공연을 했고, 사재를 털어 “전쟁은 끝났다”(War is Over)라는 문구를 전세계 11개 도시의 옥외광고판에 노출시켰으며, <Give Peace A Chance> 등 몇몇 노래는 당시 반전운동의 구호가 됐다. 그러면서 그의 전화는 도청되기 시작했고 다급해진 닉슨 정부는 급기야 강제 출국 조치까지 내렸다. 원제가 ‘미국 대 존 레넌’(The U.S. vs John Lennon)인 <존 레넌 컨피덴셜>은 언론 혹은 미국 정부와 대립했던 그의 존재나 가치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컸음을 보여준다.
옥상 콘서트의 전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 마지막 옥상 콘서트 장면은 실제 1969년 1월30일 비틀스가 런던의 애플사 옥상에서 가졌던 즉흥 콘서트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옥상 공연 모습은 다큐영화 <렛 잇 비>에 담겨있다) 당시 멤버간의 갈등은 최고조였고 조지 해리슨은 밴드를 탈퇴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조지가 내건 조건들을 다른 멤버들이 수용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고 그들은 팝 역사에 길이 빛날 명장면을 연출했다. 이미 회복 불가능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날만큼은 완벽한 호흡과 연주력을 선보였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시민들은 감격했고 42분여 펼쳐지던 공연은 경찰들이 불법공연으로 규정하고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서 마무리됐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경찰들에 의해 옥상에서 쫓겨난 가운데 주드(짐 스터지스)는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를 향해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른다. 비틀스 역시 당시의 위기를 겪으면서 옥상 콘서트 이후 후기 최대 걸작인 <<Abbey Road>>를 완성했다.
인도에선 싸우지 말자
<워크 하드: 듀이 콕스 스토리>(2007) 영화역사상 비틀스를 가장 우스꽝스레 패러디한 영화일 것이다. 그가 인도에서 비틀스를 만난 날, “우린 한낱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폴 매카트니(잭 블랙)와 “명상으로 한계는 사라진다”는 존 레넌(폴 러드)이 저마다의 감상을 늘어놓는 동안 조지 해리슨(저스틴 롱)은 “난 그냥 앨범에 내 노래를 좀더 싣고 싶어”라고 말하고 링고 스타(제이슨 슈워츠먼)는 “난 명상이 별로야. 그냥 놀고 싶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앨범에 두곡 이상 싣지 못했던 조지는 늘 그런 불만을 토로했고 링고 역시 실제로 당시 1주일 만에 인도를 떠났었다. 존 레넌이 자신의 노래 <When I’m Sixty-Four>에 빗대 “내가 64살이 돼도 네가 더 잘나갈까?”라고 말하자, 폴 매카트니가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고 맞받아치며 주먹다짐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
진심을 전달할 땐 이 곡을
<골든 슬럼버>(2010) <Golden Slumber>는 비틀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 <<Abbey Road>>의 수록곡이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비틀스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따왔다. <골든 슬럼버>는 총리 암살범으로 몰리는 한 남자의 도주극이다. 그 과정에서 비틀스의 <Golden Slumber>는 중요한 열쇠를 쥔 노래다. 주인공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는 경찰을 피하는 과정에서 대학 시절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친구와 <Golden Slumber>를 함께 들으며 “비틀스는 마지막인데도 이런 명곡을 남겼지. 멤버들끼리 사이가 최악이었는데 말이야”라는 대화를 나눈다. 영화에서 딱 두번 들려오는(물론 리메이크한) <Golden Slumber>는 결백한 그리고 절박한 주인공의 진심을 깊이있게 전달해준다. 멤버들끼리의 불화로 12장의 음반을 낸 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비틀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그들이 미국을 점령한 날
<포레스트 검프>(199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1964년 2월7일, 비틀스가 케네디공항을 통해 미국에 발을 디디게 된 날 미국 신문들은 ‘비틀스의 미국 침공’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미국에 도착한 비틀스는 미국 <CBS>의 인기 토크쇼 <에드 설리번 쇼>에 첫 출연한다. 비틀스의 출연으로 <에드 설리번 쇼>는 미국 TV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 TV에 출연한 비틀스의 모습은 종종 영화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선 비틀스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해 <Twist & Shout>를 부르는 TV 방송장면이 나오고, <포레스트 검프>에선 존 레넌과 포레스트 검프가 함께한 토크쇼의 출연진으로 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미국 <ABC>의 유명 토크쇼인 <딕 카베트 쇼>에 1971년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출연한 장면에다 오노 요코 대신 톰 행크스를 앉힌 것이다.
짐 캐리의 비틀스 패러디
<덤 앤 더머>(1994), <뻔뻔한 딕 & 제인>(2005), <예스맨>(2008) 짐 캐리가 출연한 영화에는 유독 비틀스가 자주 등장한다. <덤 앤 더머>의 두명의 바보 로이드(짐 캐리)와 해리(제프 대니얼스)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얘길 한다. “이거 몽키스 노래야. 비틀스에 영향을 준 그룹이지.” “나도 알아.” 몽키스는 비틀스를 카피한 미국 밴드다. 비틀스의 옷차림은 물론 노래까지 흉내냈다. 1966년에 결성됐다가 1969년에 해체됐으니 활동시기도 겹친다. 노골적으로 따라한 감이 있어서인지 인기는 얻었어도 인정은 받지 못했다. 그러니 위의 대화는 덤 앤 더머다운 화법이 적용된 결과다. 짐 캐리는 또 <뻔뻔한 딕 & 제인>에서 길고 검은 생머리를 늘어뜨린 오노 요코로 직접 변신했으며, <예스맨>에선 원형극장에서 비틀스의 <캔트 바이 미 러브>를 부른다. 짐 캐리의 비틀스 사랑은 끝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
<킬링 필드>(1984), <애니 레보비츠: 렌즈 저편의 인생>(2004), <에반 올마이티>(2007) 존 레넌은 수도 없이 패러디되고, 실제로 등장하며, 또 그 노래로서 수많은 영화에 존재해왔다. <에반 올마이티>에선 하루아침에 길게 수염과 머리가 자란 주인공(스티브 카렐)을 아들이 존 레넌이라 놀린다.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에 대한 다큐멘터리 <애니 레보비츠: 렌즈 저편의 인생>에선 그런 존 레넌의 실제 모습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나체의 존 레넌이 오노 요코를 감싸안는 사진이다. 애니 레보비츠가 존 레넌에게 요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표현해달라고 하자, 존 레넌은 옷을 벗고는 요코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킬링 필드>에선 존 레넌의 <Imagine>이 테마곡으로 쓰였다. 존 레넌이 스스로 “반종교적이며, 반민족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며, 진부함에 반대하는 노래”라고 한 <Imagine>이 사용된 것에 대해 마뜩잖아 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눈과 귀가 마비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섯 번째 멤버와 가상의 B
<댓 씽 유 두>(1996), <밀리언 달러 호텔>(2000) <밀리언 달러 호텔>에는 믿거나 말거나 존 레넌을 꼭 닮은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가 산다. 딕시(피터 스토메어)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온 FBI요원 스키너(멜 깁슨)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LP판을 꺼내들자 “비틀스는 창의성이 없었던 게 아니고, 명상에 깊이 빠져 있었죠. 녹음실엔 나 홀로였지만 내 곁엔 항상 조지 마틴이 있었어요. 조지와 난 그런 사이죠”라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조지 마틴은 비틀스의 프로듀서로, 조지 마틴이야말로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라 불린다. 톰 행크스의 감독 데뷔작인 <댓 씽 유 두> 역시 가상의 밴드 원더스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다. 원더스는 아무래도 비틀스를 닮았다. 드러머의 교체나 비틀스의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오노 요코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설정 등이 그렇다.
애비 로드에 가고 싶네
<트레인스포팅>(1996), <라디오 스타>(2007) <<Abbey Road>> 커버는 각종 만화, 드라마, 영화, 음반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됐다. 심슨 가족도, 스누피도 애비 로드를 건넜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존스우드에 있는 애비 로드 횡단보도를 4명의 비틀스 멤버가 건너는 모습 말이다. 박중훈이 88년도 가수왕 최곤으로 등장하고 안성기가 최곤의 매니저 박민수로 등장하는 <라디오 스타>에서도 <<Abbey Road>> 패러디 장면이 등장한다. 국내 4인조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이 아예 비틀스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박중훈에게 ‘한수 가르쳐줍쇼’ 하며 뒤를 졸졸 쫓아가는 장면 말이다. 이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은 영락없이 비틀스의 <<Abbey Road>> 커버다. <트레인스포팅>의 주인공인 이완 맥그리거, 노리 리 밀러, 로버트 칼라일, 케빈 매키드도 비틀스를 흉내내며 도로를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악기 대신 마약이 든 가방을 들었다는 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