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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2009] 해운대에 ‘영화 쓰나미’가 몰려온다

10회 영화제가 엊그제 같더니 어느덧 14회까지 왔다. 하긴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했다. 이에 <씨네21>의 추천작들을 엄선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상용 프로그래머의 리뷰부터 올해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경향을 짚어보고, 올해 부산을 찾는 홍콩영화계 최후 거장 두기봉에 대한 홍콩 영화평론가 사이먼 신의 시선을 엿보며, 끝으로 영화제 기간동안의 날짜별 스무편의 추천작을 골랐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8일 개막하며 예매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부산에서 만나자!

단순한 낭만성을 벗어 던지고

상영작을 통해 본 한국영화의 새로운 혹은 진행 중인 물결에 관하여

<씨네21> 독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두명의 평론가가 만든 영화가 올해의 한국영화 중 가장 중요한 목록일지도 모른다.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와 김소영(‘김정’ 감독으로 소개된다)의 <>은 비평을 통해 말하던 영화를 어떻게 가리키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눈길을 끈다.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는 영수라는 인물이 네명의 여인과 얽히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과 어긋남은 정성일이 말하는 숏의 만남과 어긋남을 떠올리게 하며, 5명의 관계는 영화와 현실 혹은 영화와 정치의 관계와 짝을 이룬다. 김정의 <>은 무수한 프레임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동생을 찾으러 온 누이의 행적을 따라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접속하는 인터넷, 카메라, 휴대폰 등에 이르는 다양한 프레임을 제시한다. 그것은 트랜스 시네마의 이미지이다. 이들 작품은 냉정히 보자면 담론 안에 있다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비평’이라는 자리가 변화하는 시대에 이들이 만든 ‘비평의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스럽게 던질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감독 자신의 고유성을 확장하다

올해 한국영화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 흐름이 있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의 기개봉작 이외에도 새로운 영화를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들은 앞으로 펼쳐질 한국영화의 고유성을 귀띔해준다. 우리 시대 ‘일과 사랑’의 이야기를 다뤘던 권칠인 감독은 좀더 작은 규모이지만 자신의 테마를 좀더 자유롭게 다뤄내면서 <러브 홀릭>이라고 명한다. 그에게 사랑은 일종의 도취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완고해지는 인간의 운명적 법칙으로 작동한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로 로드무비를 선보였던 김태식 감독은 <도쿄 택시>를 통해 현해탄을 넘나드는 여행담을 제안한다. 그의 택시는 점점 더 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끝과 시작>의 민규동은 점점 더 섬세해지는 인물들의 감정 싸움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아내와 정부의 동거라는 설정은 유령으로 등장하는 남편만큼이나 환상적인 설정이다. 이러한 환상성을 돌파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현실의 기억이며, 그들은 기억을 나누면서 죽은 이를 애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기억은 민규동 영화의 핵심이다.

<카페 느와르>

<탈주>

<파주>

<페어 러브>

이송희일의 <탈주>는 여전히 신경질적인 그의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퀴어의 색깔을 많이 걷어내기는 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탈주 계획은 후회하지 않으려는 선택적 외침에 가깝다. 황철민 감독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는 <퍽 햄릿> <프락치>를 통해 선보였던 배신의 드라마를 다시 선보인다. 이번에는 중학교 동창이었던 두 여성이 성인이 된 뒤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기업 비서로 만난다. 도식적이라고 할 만한 출발이지만 황철민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적 차이와 우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붙잡느냐는 것이다. 한결같다는 점에서 7년 만에 두 번째 장편을 내놓은 박찬옥처럼 흥미로운 경우도 드물 것이다. 형부와 처제의 미묘한 감정 아래 파주의 현실적 상황들을 뒤섞는 이 작품은 박찬옥의 개인사적 통과의례를 집약해놓은 듯 보인다. 과거의 장면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의 편린처럼 보이기도 하며, 현재의 장면들은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물들의 방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김승옥의 유명한 단편 <무진기행>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회화·음악·연극 등 다양한 영역 인용

이제 새로운 영화들을 보자. 새로운 감독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 중 하나가 신연식 감독이다. <좋은 배우>라는 세 시간짜리 장편으로 부산을 비롯한 몇몇 영화제에 등장했던 그는 <페어 러브>라는 영화로 찾아왔다. 50대 독신 남자와 20대 여대생 사이의 사랑 이야기는 의외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 전편에 깔린 구원의 문제와 현실의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라는 점에서 <좋은 배우>에서 보여주었던 인물들 사이의 연극 혹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긴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새로운 감독들의 영화는 좀더 다양한 영역을 끌어안는다.

임우성 감독의 <채식주의자>는 형부와 처제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파주>와 유사해 보일지 모르지만 완전히 다르다. 화가인 형부가 처제에게 매혹되는 것은 육식에 대한 거부 속에 잠재된 ‘삶의 욕망’이다. 그것은 화가의 세계를 자극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육식적 본능(수컷의 본능)을 일으킨다. 다양한 회화적 이미지가 전시되는 임우성 감독의 영화는 건조하면서도 풍요롭다. 한장의 음반을 따라 전개되는 박성오의 <친애하는 음악>은 다양한 음악을 활용하면서 재미를 제공한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이 선보이는 <꼭 껴안고 눈물 핑>은 대학로를 끌어 당겨 연극을 인용한다. 그것은 불륜에 빠진 남자의 심경 고백인 동시에 한국영화가 주변 매체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인용과 겹침의 맥락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홍상수가 만들어낸 춘천을 따라잡아간다. 청평사를 비롯한 여러 공간과 인물의 선택은 전계수의 흥미로운 패러디인 동시에 그의 도발적인 역량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계수가 이해한 홍상수의 세계인 동시에 그가 돌파해가는 충동의 사례가 될 것이다.

부산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를 다르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성장담(연애담)으로 구성해보는 것이다. 아카데미 장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뉴커런츠 상영작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근래 최고의 코미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류시인인 주인공의 연애담은 우디 앨런의 우아함을 사뿐히 즈려 밟는다. 류형기의 <너와 나의 21세기>는 최근 중요한 성장공간이 되는 ‘홍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인 동시에 뚜렷한 직업을 갖기 어려운 88만원 세대의 어딘가를 건드린다.

<뭘 또 그렇게까지>

<몽실언니>

이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이성한 감독의 <바람>은 전작 <스페어>와 달리 액션이 거의 없는 학원영화다. 부산의 상업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주인공을 맡은 정우의 자전적인 경험을 시나리오로 옮겼는데, 이성한 감독의 영화는 흥미롭게도 동시대 영화보다는 과거의 액션영화나 성장영화들과 맥을 같이한다. 그의 독특한 고집이면서도 이 시대의 감성을 애써 비켜가면서 점점 더 고유성을 획득하고 있는 눈여겨볼 시도이다.

사회와 역사 속의 이슈들 문제 제기

올해 한국영화는 대부분 안정된 연출력을 보여주며, 개인과 사회, 개인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의 고민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토끼와 리저드> <특별시 사람들> <집행자> <계몽영화> 그리고 이상우의 <작은연못>은 한국사회(역사) 속에 놓인 개인적인 상황을 통해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판자촌, 교도소, 여관, 삼대에 걸친 가족사, 한국 전쟁사를 관통하는 사회적 이슈들을 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영화들은 한국영화가 단순한 낭만성에 침윤되지 않고, 좀더 큰 스펙트럼을 지녔음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준다. 개인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처한 현실을 어떻게 호명해야 하는지 상업적인 감각과 긴장하면서 이들 영화들이 펼쳐내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중요한 건강성을 이룬다.

이외에도 <몽실언니>의 이지상 감독은 어쩌면 가장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한국의 대표적 감독이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지상은 <십우도>에서 보여주었던 건조한 시선을 도입하면서 권정생의 원작이 지닌 낭만성을 해체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몽실언니>는 새로운 해석이자 이야기다.

이처럼 올해 한국영화는 다양한 방식의 도전과 응전으로 구성된 새롭게 펼쳐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실험에서부터 상업성과 사회적 현실을 아우르려는 통찰은 한국영화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