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놈 죽어도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또 한 번 공안 사건이 꿈틀거리던 무더운 여름.정체가 드러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 도시의 변두리 여관방에 숨어있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몇 평 짜리 방에 갇힌 채, 식사도 배달에 의지하며 답답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 놀잇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 때 우연히 여관방에 뒹굴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각본으로 둘은 연극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히 옆방의 투숙객인 한 소녀가 이 놀이에 합류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는데...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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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치>는 무려 7년 만에 완성된 영화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1996년 말, 황철민 감독은 귀국 준비를 할 무렵 만났던 실제 학원 프락치를 소재로 시나리오를 썼다. 프락치로 지목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독일로 도망 온 그는 황 감독에게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안겼는데, 그 안에는 운동권 학생들의 결혼식 장면을 비롯해서 안기부 기관원과 함께 여관방에 숨어 지내던 시절이 담겨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그런 생활에 대한 한탄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는 후덥지근한 여름, 정체가 드러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 세상의 눈을 피해 여관방에서 함께 장기 투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영화 <프락치>의 모티브가 됐다.more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은 더뎠다. 1997년, <낙타> <선택> 등과 함께 제1회 PPP에 선정됐지만, <프락치>에 필름을 내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프락치>를 속으로 삭이는 동안 그는 <옥천전투>,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 등의 다큐멘터리와 <삶은 달걀>, <그녀의 핸드폰> 등의 극영화를 만들면서 누구나 소유 가능하며 또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날렵하게 포착할 수 있는 디지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프락치>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을 받아 디지털로 촬영되었다. 감독은 3천만 원으로 15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 효율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좁은 여관방에서는 35mm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었고, 연출과 촬영을 겸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조금만 움직여도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키네코 작업을 거쳐 35mm 극영화로 탄생한 <프락치>는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국제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로테르담영화제는 국제 비평가상의 수상 이유를 인권의 중요성을 제기, 정치적인 주제에 근본적인 탐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벤쿠버와 런던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자 세계적인 영화평론가인 토니 레인즈는 <프락치>에 대하여 10여 년간 한국 독립영화계에 몸담아 왔던 황철민 감독의 독창성과 역량이 입증된 영화이며 2004년에 만들어진 가장 강렬하고 완성도 높은 한국의 독립 영화일 것 이라고 평했다. 또한 <프락치>는 미스테리 스릴러로 매우 정치적이고 심리학적인 영화이며, 영화를 만드는 것은 물리적인 소재들이 아니라 상상력과 지적 능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