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반이 음악으로 가득 찬다.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오는 8월13일부터 18일까지 6일간 제천시내와 청풍호반에서 열린다. 지난해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해 ‘음악영화제’로서의 개성을 살렸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도 35개국 89편의 영화를 통해 영화와 음악의 흥겨운 만남을 주선할 예정이다. 물론, 매일 밤 청풍호반 무대에서 열릴 라이브 공연도 제천의 밤을 들썩이게 만든다.
5주년을 맞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은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솔로이스트>다. 특종을 좇는 일에 지친 <LA타임스> 기자와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정신 분열로 거리의 악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우연한 만남을 그린 영화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촘촘히 수놓던 전작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충분한 기대작이다. <어톤먼트>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참여했다. 무엇보다 제천영화제의 메인 식단은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장르의 구분없이 음악을 소재로 한 세계 최신 음악영화를 모은 ‘세계음악영화의 흐름’이다. 80년대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앤빌의 현재를 다룬 <앤빌의 헤비메탈 스토리>, ‘아프리카의 목소리’로 불리는 세네갈 출신의 팝가수 유쑨두의 이야기(<아프리카의 목소리 유쑨두>) 등 실존 음악가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콘돌리자 라이스를 짝사랑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뮤지컬 다큐 희비극’이란 복합장르의 음악영화도 있다. 발리우드의 노래자랑에 출전한 남녀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극(<볼리우드 아이돌 선발대회>),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뮤지컬로 묶어낸 <유니버설러브>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좀더 가볍고 유쾌한 음악영화를 찾는다면 시네심포니와 패밀리 페스트 섹션을 눈여겨보자. 시네심포니는 극의 전개에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된 동시대 극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이다. 인생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었던 포르투갈 최고의 파두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즈의 이야기(<파두의 전설 아말리아>), 헝가리에 상륙한 로큰롤의 실화에 기반한 뮤지컬 <메이드 인 헝가리아>, 시골 처녀와 도시 총각의 사랑을 춤과 음악으로 묘사한 발리우드영화 <비바>가 눈길을 끈다. 어린이 관객에게는 개구리 알을 찾아나선 소년의 모험을 뮤지컬로 그린 <개구리와 두꺼비>, 바이올린 연주로 상처를 치유하는 소년의 이야기인 <소년과 바이올린>을 추천한다. 물론 제천에서는 극장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음악을 만난다. 기타리스트 게리 루카스가 독일 무성영화 <골렘>(1920)에 음악을 입히고. ‘세계음악영화의 흐름’ 상영작인 <유니버설러브>도 라이브 공연과 함께 상영된다. 이 밖에도 부활, W & Whale, 오브라더스, 고고스타, 김장훈, 김창완밴드, 언니네이발관 등의 뮤지션이 밤새도록 놀아준다.
이 6편은 놓치지 마시라
<콘돌리자 구애소동> Courting Condi 미국/2009년/107분/감독 세바스천 도거트/세계음악영화의 흐름
아들은 사랑에 빠졌다. 엄마는 누구냐고 묻는다. “음, 쉰네살인데… 콘돌리자 라이스야.” 스스로를 ‘뮤지컬 다큐 희비극’으로 명명한 <콘돌리자 구애소동>은 그녀를 향한 한 남자의 영상편지다. 아역배우 출신 뮤지션인 데빈 레트레이는 콘돌리자 라이스의 발자취를 쫓는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이웃인 그녀를 만났을 때만 해도 데빈은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부른다. 그러나 부시 정권의 국무장관인 그녀를 알게 되면서 데빈의 세레나데는 눈물로 부르는 헤비메탈이 된다. 한 남자의 집요한 사랑을 통해 부시 정권을 비웃는 묘한 반어법의 영화다.
<유니버설러브> Universalove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세르비아/2008년/83분/감독 토마스 보쉬츠, 네이키드 런치/세계음악영화의 흐름
여러 나라의 사랑 이야기를 동시에 담은 패키지다. 마르세유의 여자는 거리에다 목숨을 내놓고 사는 남자 생각에 가슴이 뛴다. 도쿄의 남자는 우연이 알게 된 라면집 점원에게 마음을 뺏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여자는 탤런트에게, 룩셈부르크의 점잖은 신사는 매력적인 젊은 남자에게 눈길이 머문다. 영화는 각각의 사랑 이야기를 독일의 4인조 밴드인 네이키드 런치의 음악으로 수놓는다. 말하자면 네이키드 런치의 다국적 영상앨범이자 뮤지컬영화다. 이번 제천영화제에서는 <유니버설러브>의 상영과 함께 네이키드 런치의 라이브 공연이 함께 열릴 예정이다.
<뮤지카> Muzika 슬로바키아, 독일/2008년/99분/감독 주라즌 보타/시네심포니
8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는 지금의 한국과 비슷하다. 조금만 수상해 보여도, 밤 늦은 시간에 연주에 심취하기만 해도 경찰이 달려든다. 식구들에게 치이고 동료들에게 놀림받으며 살던 한 남자는 재즈 연주로 일상을 탈출하곤 한다. 그에게는 재즈만이 시대의 억압과 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구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연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현실은 그의 꿈과 다르다. 음악을 통해 자유를 찾는 남자의 모험담이지만, 꼭 음악이 아니어도 될 보편적인 이야기다.
<풀섬 감옥의 쟈니 캐쉬> Johnny Cash at Folsom Prison 미국, 스위스/2008년/87분/감독 베스토 크램/뮤직 인 사이트
조니 캐시의 풀섬 감옥 실황음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황음반 중 하나다. <풀섬 감독의 쟈니 캐쉬>는 이 공연의 뒷이야기다. 당시 조니 캐시의 노래하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실망한다. 조니 캐시의 동료와 당시 관객의 증언을 담을 뿐이고, 조니 캐시의 모습은 사진작가 짐 마셜의 기록으로만 보여진다. 아무렴 어떤가. 모두가 모르던 이야기다. 그때 조니 캐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콘서트에 이르게 된 과정과 희귀한 자료들. 한 위대한 음악가의 또 다른 초상을 그린 다큐멘터리이자 사료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소년과 바이올린> 필리핀/2008년/98분/감독 엘렌 옹게코 마르필/ 패밀리 페스트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을 쌓는 건 음악영화의 전형이다. 아버지의 심한 학대로 말을 잃은 소년이 음악을 통해 발화한다는 <소년과 바이올린>도 다르지 않다. 아동보호시설에서 살게 된 소년은 우연히 연인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닫고 사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게 된다. 소년은 그의 연주에 매혹되고 바이올린을 배운다. 바이올린의 선율을 통해 목소리를 갖게 된 셈. 또한 그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남자도 자신의 상처와 직면한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필리핀이란 공간적 배경은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색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춤추는 동물원> Dancing Zoo 한국/2009/127분/김효정, 박성용/세계음악영화의 흐름
두 남녀를 만나게 한 건 음악이다.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사랑한다. 헤어짐과 재회가 반복되는 가운데에도 그들의 목소리에 실린 음악은 영화 내내 들려온다. <원스>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지만, <춤추는 동물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실제 인디신의 가수인 몽구스와 한희정이 두 남녀를 연기했고, 영화의 배경은 홍대다. <원스>의 더블린 거리가 <춤추는 동물원>에서는 홍대 주차장 골목인 셈. 사랑에 대한 섬세한 풍경이 애잔한 작품이라기보다는 한희정과 몽구스의 화음이 귓전을 먼저 울리는 말 그대로의 음악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