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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토크] “전 세계 시트콤 작가의 교본이 될 법한 작품이에요”

김혜리 “<심슨가족, 더 무비>는 평균치 <심슨 가족> 에피소드를 4배로 늘려놓은 인상이에요” 이동진 “욕심 부리지 않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해냈다는 느낌이에요”

내 이름은 김심순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써머 탑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써머 탑님(이하 써머)의 말: 요즘 진짜 덥네요. 더위도 절정이고, 오늘 이야기할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마이클 윈터보텀(winterbottom, 겨울의 밑바닥) 감독에 대한 오마주도 담아 대화명을 지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이름 같지 않수? ^^

내 이름은 김심순님(이하 심순)의 말: 네. 해설없이는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다는 면에서…. -..- <심슨 가족, 더 무비> 이야기는 간단한 퀴즈로 시작할까요? 먼저 난이도 하. <심슨네 가족들> 속 인물들의 손가락 수는?

써머: 엥? <심슨네 가족들> TV시리즈를 한번도 본 적 없는데 어찌 알겠어요? 몰라 몰라.

심순: ^_^ 네개입니다. 예전 TV에피소드 중 바트의 출생 당시 회상이 나온 적 있는데, 의사가 손가락 수를 확인하고 안심하죠. “네개 맞습니다.” (기뻐하는 가족들). 물론 바로 아빠 넥타이에 불을 붙였던가, 말썽을 개시하지만요. 그럼 난이도 중! 바트 머리의 요철 숫자는?

써머: -_-# 공자처럼 대답해보면, 난이도 하를 모르는데 중을 알겠수?

심순: 아홉개랍니다. 리사나 매기보다 한개 많죠.

써머: 그래서 녀석이 늘 문제를 일으키는구랴.

심슨: 난이도 상. 미국에 있는 스프링필드 마을의 숫자는?

써머: 그건 안다. 자료 봤걸랑. 42개.

심순: 앗, 제가 알기론 71개인데요?

써머: 헉, 미국 42개주에 스프링필드란 도시가 있다는 것과 혼동했네요. - -; 거 참. 오늘 토크, 영 ‘황’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심순: 하긴, 심슨 가족 피부는 몽땅 황(黃)이죠. ^^ <심슨네 가족들>에 관해 검색해보니 대중문화는 물론, 심리학, 언어학, 심지어 수학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해요. 다 좋은데 수학은 뭘까요? 혹시 4진법?

써머: “다음의 숫자의 합은 얼마일까요. 미국 내 스프링필드 마을 수. 바트 머리 요철 수. 스프링필드 사람들 손가락 수.” 뭐 이런 수학 아닐까요. ^^

심순: 농담도 잘하셔. 보통 애니메이션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완성도를 비교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심슨가족, 더 무비>는 전혀 그런 욕구가 안 들었어요. 아마도 <심슨가족, 더 무비>는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특정한 스타일의 유머이고, 시트콤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겠죠.

써머: 그 자체로서 매우 독창적이어서 TV시리즈 <심슨네 가족들>과 비교하면 몰라도, 다른 애니메이션과 비교하게 되진 않죠. 시리즈를 본 적이 없는 저로선 이번이 <심슨네 가족들>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본 계기였습니다. 자기 반영적인 유머가 상당하더군요. 도입부에서 극장에 간 호머가 “왜 TV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걸 극장에서 돈내고 보냐?”라고 외치는 대사부터요.

심순: 관객의 불평을 미리 자기가 선수쳐버리는 센스…. ^.~

써머: 그렇죠. 먼저 말해버리면 나중에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우습게 되니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 자막도 나왔죠. <폭스TV>에서 TV시리즈 <심슨네 가족들> 한다는 걸 알리는 광고 자막을 넣은 장면도 있었고.

심순: 모태인 <폭스TV>를 비웃는 건 TV시리즈에서도 단골 농담이랍니다.

써머: 그나저나 요즘 하도 3D 디지털애니메이션만 보다가 2D 셀애니메이션을 보려니까 뭔가 안온한 푸근함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좀 생경하더라고요.<토이 스토리> 볼 때 생경했던 기억이 불과 10년 전인데 이젠 눈도 디지털애니에 맞춰졌나봐요.

써머: 배경 그림에는 3D 효과가 간혹 있더군요. 캐릭터들의 그림자도 보이고요. 극장판은 표현 수위나 위트의 예리함이 특별히 높아진 것 같진 않아요. 딱 평균치 <심슨네 가족들> 에피소드를 4배로 늘려놓은 인상입니다. 다만 장편답게 이야기의 포물선에 기승전결을 갖추려고 좀더 신경쓴 정도예요.

써머: 저는 <심슨네 가족들> 시리즈가 패러디로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았는데, 이번 영화를 보니 대단하긴 하더군요. 욕심 부리지 않고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해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린데이의 콘서트 장면에서 수상무대가 침몰할 때 바이올린을 켜며 물속으로 빠지는 묘사로 <타이타닉>을 패러디한 장면이나, <펄프 픽션>의 가위춤이 나오질 않나. <러브 스토리>에 <백설공주>까지 인용되더군요.

심순: 바트가 호머와 내기에 지지 않으려고 누드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장면은 <오스틴 파워>의 시퀀스를 역전시켰죠.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순간 중 하나일 거예요. (성기 노출 경고!)

써머: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한 장면이기도 하죠. ^_^ 사실 그런 식으로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영화가 <오스틴 파워> 말고도 많은데 그런 유머 코드를 일거에 뒤집어버렸으니 대단한 센스죠.

심순: <심슨네 가족들>은 한줄짜리 유머의 속도와 분포 밀도가 굉장히 높아요. 방송계에 ‘시바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드라마에서 이야기 연결을 위해 스쳐가는 배경 상황 정도를 가리키는 일본어 잔재예요. 인물이 귀가하면 거실에 앉아 있던 가족들이 주고받고 있는 대화 같은 거죠. <심슨네 가족들>은 그런 상황처리가 허투루 지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번 영화에서 예를 들면, 심각하게 환경이 오염된 스프링필드에 종말이 다가오자, 이웃한 교회와 술집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교회 신도는 술집으로, 술집 손님은 교회로 들어가는 장면이 짧게 스쳐가는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죠. 전세계 시트콤 작가의 교본이 될 법한 작품이에요.

써머: 흠. 그렇죠. 사실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건 기둥 줄거리의 재미라기보다는 그런 별 필요없는 것 같은 배경 묘사의 생생함이죠. 이창동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은 그런 걸 아주 잘하는 분들이고요.

심순: 그런 영화들을 두고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라거나 “여러 가지 레벨에서 다르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심슨가족, 더 무비>의 전체 줄거리는 오히려 극장의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활용하려고 고안한 듯한 인상도 있어요. 오염된 스프링필드 전체에 뚜껑을 덮어 360도 화각을 보여주거나 심슨네를 알래스카로 이주하게 만드는 것도 화면발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횃불 든 성난 군중이 환경오염의 주범 호머를 잡으러 몰려오는 장면도 영화다운 스펙터클인데, 뭐 스프링필드 주민들이 호머를 잡으러 오는 사건이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서. -_-

써머: 그 장면은 1930년대 프리츠 랑의 영화 <분노>와 완전히 똑같더군요. 웃음을 준 장면은 아까 이야기한 바트의 스케이트 보드가 단연 최고였는데, TV뉴스 앵커가 물자부족으로 보톡스가 떨어지자 얼굴이 처지는 장면도 웃겼습니다.

심순: 늘어진 살을 당겨서 뒤통수에 집게로 집어놓았죠? 전 폭탄 제거하는 로봇이 색깔 다른 전선을 앞에 놓고 부담감에 괴로워할 때 재미있었습니다.

써머: 전반적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상상력이 대단해요. 호머와 바트의 지붕 수리 장면이 대표적이죠.

심순: <심슨네 가족들>의 작가들은 회의에서 하나의 조크를 수백번 반복해보고 124번째 되니 지겹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답니다. 꼭, 공산품 내구성 테스트하듯이.

써머: 허허, 다들 힘들게 사시누만.

심순: 생각해보면 이 극장판은 매주 TV쇼를 제작하는 와중에 만들어졌는데, 이거야 마치 주간지 기자가 틈틈이 장편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한 고역이었겠죠? -..-

써머: 그런 비유를 하다니, 혹시 그러고 계신 거 아니에요? ^^ 그럼 장편영화 만들면서 틈틈이 매주 관련 TV쇼 만드는 거랑 반대랑 어느 쪽이 더 힘들까요?

심순: 조삼모사잖아요. -..-

써머: 본업이 어디냐의 문제죠. 주간지 기자가 소설을 못 쓰면 그건 용서되겠지만 소설가가 주간지 기사를 못 쓰면 용서받지 못할 거 같지 않아요? ^^ 이 영화에 톰 행크스가 직접 목소리 출연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내용상 정부의 뻔한 홍보물에 실제 인물로 출연하는 건데 그 풍자의 칼끝이 겨냥한 대상을 뻔히 자각하면서도 받아들인 점이 흥미로웠어요.

심순: <심슨네 가족들>에서는 카메오 목소리 출연을 하지 않은 명사를 찾는 쪽이 빠를 거예요. 토니 블레어를 비롯해 끝도 없죠. 그보다 훨씬 심한 욕을 본 유명인사도 많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에서 대통령으로 나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직접 목소리를 연기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놀라웠어요.

써머: 슈워제네거는 외국인 출신으로 어차피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자신이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에 울화통이 터져서 안 나왔나…. -.- 그런데 전체적으로 <심슨가족, 더 무비>는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던걸요? <사우스파크> 수위까지는 몰라도, 전 아주 독할 줄 알았거든요. 알고보니 매우 아름다운 내용이더라는. -..-

이동진 “<두사람이다>는 모티브는 강력한데 스토리텔링은 약해요. 이야기 자체를 관객에게 잘 납득시키지 못하죠.” 김혜리 “강경옥 작가의 원작은 마음의 심연에 대한 이야기에요. 이 영화는 ‘의심’이라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거죠.”

심슨: 풍자 수위도 평소 <심슨네 가족들>의 딱 중간 정도였어요. 사실 이 시리즈는 코 묻은 돈을 우려내는 광대 크러스티와 원자력발전소 소유주인 재벌 반즈의 역할 비중이 클 때 풍자의 정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번 극장판에서는 두 캐릭터의 몫이 미미하죠.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다음 영화인 <두 사람이다>는 올 여름의 마지막 한국 호러인가요?

써머: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저는 이 영화에 거는 기대가 큰 편이었는데 좀 실망했어요. 공포영화로서는 정말 드물게 깊은 모티브라고 생각했거든요.

심순: 좋은 소재죠. 원작자인 강경옥 만화가의 많은 작품이 그렇지만, 마음의 심연에 관한 이야기예요. 말하자면 이 영화의 ‘귀신/악’은 침전된 감정이죠.

써머: <밀양>이 신을 빌려 인간을 말하는 작품이듯 이 영화도 그런 셈이죠. 성동격서(聲東擊西) 호러라고 할까. ^^ 사실 <두 사람이다>는 누구의 가슴속에나 살의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영화죠. 더구나 그 살의가 내 주변의 가장 가깝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거라면 그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이냐는 거죠. 극중 존속살인은 바로 그런 것을 시각화한 것이겠죠. 뒤집어서 은유적으로 말하면 <두 사람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야말로 나를 가장 깊게 해칠 수 있음을 말할 수도 있는 영화였어요.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게 정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는 없는 거니까요.

심순: 잠재적 살의가 ‘적’이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살의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점도 포인트죠. 이 점 때문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연상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두 사람이다>를 본 관객이라면 일단 이야기의 짜임새에서 누구나 두개의 구멍을 지적할 겁니다. 첫째는 원작과 다르게,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영화가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원작 만화는 의식적인 살의가 있는 한 사람이 살인을 방조하고, 다른 한 사람의 무의식적 살의가 방조자의 신호에 감응해 살인을 직접 실행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데요. 영화는 원작의 이 설정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아예 바꿔버린 것도 아니에요. 두 번째 구멍은, 이야기가 무정형의 살의가 만들어내는 비극을 계속 따라가다가, 별안간 명백한 원한과 이해 관계에서 비롯된 계획적 살인이 클라이맥스를 탈취해버린다는 점이죠. 이 구멍은 보는 이에게 큰 혼란을 야기합니다.

써머: 그 클라이맥스는 그때까지 영화가 딛고 서 있던 근거 자체를 부수는 격이죠. 이 영화는 모티브가 강력한 반면 스토리텔링은 상당히 약해요. 이야기 자체를 관객에게 잘 납득시키지 못하죠. 살인장면의 설정은 충격적인데도 살인의 파장은 언제나 흐지부지해서 매 시퀀스가 용두사미가 됩니다. 이를테면, 담임선생이 갑자기 주인공 가인(윤진서)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의 마무리는 기껏 가인의 친구가 “야, 괜찮아? 니 담임이 미친 거 아냐?”란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로 정리되잖아요.

심순: 파도처럼 계속 몰려오는 끔찍한 사태에 대해 가인이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그와 관련해 인물 묘사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다시 원작 이야기를 하면 강경옥 만화의 큰 매력은 여주인공의 성격입니다. <별빛 속에>의 시이라젠느나 <라비헴폴리스>의 하이아, 그리고 <두 사람이다>의 주인공이 다 그렇지만, 담백하고 무심한 성격의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들은 어디서 읽거나 배워서가 아니라 경험에서 발견한 소박한 진실을 믿고 밀고나가요. 가인에 해당하는 원작의 인물도 영화처럼 담담해 보이지만 그런 모습이 성격과 연결되어 설득력이 있거든요. 무서운 일을 겪으면서도 “저주에 걸렸건 아니건, 죽을 때까지 움직이고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며 대처하죠. 그러나 영화의 가인은 그저 덤덤할 뿐이어서 연기가 평면적으로 보이는 데에 그쳤어요.

써머: <두 사람이다>의 연기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것은 영화 자체의 디테일이 약해서라는 생각을 했어요. 워낙 인물들이 딱딱하게 축조된 상황이니까요. 예를 들어 전 <폭력써클> 이후 배우 연제욱씨의 차기작을 기다려왔는데, 이 영화에선 꽤 비중이 있는데도 우정과 질투만 가진 캐릭터로 빚어져서 아쉬웠어요.

심순: <두 사람이다>의 많은 살인 이야기 중에서 저는,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서 있는 환각을 보고 살해한 친척 아저씨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인물이 기억을 돌이키다가 “지금도 정말 아내가 바람을 피웠는지 가끔 궁금하다. 수십년간 답없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저주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죠. 이 영화는 ‘의심’이라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거죠.

써머: 그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디테일이 풍부한 부분이었어요. <두 사람이다>는 피해자의 피해의식도 가공할 폭력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죠. 특히 종반의 장면들이 그랬습니다.

심순: 그런데 저는 영화와는 별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과 실제로 죽이는 것 사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여기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경계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한테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잖아?”라는 식의 추궁이 그런 결론으로 비약할까봐 불안했고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동이 아니라 그것을 걸러내는 과정인지도 모르죠.

써머: 앗, 그거 제가 ‘시네마레터’ 칼럼으로 쓰려고 생각 중인 아이템인데요. ^^

심순: 앗, 고대하겠습니다.

써머: 살의와 살인 행위를 혼동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노릇이죠. 전 이 영화의 대사들이 주제를 직접적으로 함축하고 있긴 한데, 그 대사들이 영화적 상황 속에 잘 녹아 있지 않고 조급함을 드러낸다고 느꼈어요.

심순: 그런 경우 메모하지 않은 관객은 메시지를 금방 잊게 되죠. ^^

써머: 처음 가인의 남자친구가 “신경쓰지 마. 찌르는 사람이 있으면 찔리는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말하잖아요. 이 말은 나중에 다시 등장해 결과적으로 중요한 복선이 되는데, 그게 처음 발언되는 상황에선 너무 안 어울리는 대사거든요. 또 장례식에 온 형사가 “사실 이 사건은 큰 사건도 아니에요. 온 세상이 다 저주에 걸렸나봅니다”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이 영화의 사회비판적인 주제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지만, 아니, 형사가 장례식장에서 처참하게 존속살해된 피해자의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치에 닿는 이야기냐고요. -_-#

심순: 가끔 인물들이 감독의 대사에 입을 빌려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영화들이 있죠. 저만 시사를 본 <죽어도 해피엔딩>은 시체의 수로 치면 <두 사람이다>에 꿀리지 않는 영화인데, 잠깐 언급하고 갈까요? <죽어도 해피엔딩>은, 제목 그대로 사람이 많이 죽는데 엔딩은 해피합니다. 제목 한번 깔끔하죠? ^.~

써머: 허허, 완벽한 요약이네요. 리메이크의 원작인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란 아리까리한 제목에 비하면 쌈박하기까지 하다는. ^^

심순: 꼼꼼한 플롯과 코미디 타이밍, 소품을 이용한 재미가 원작의 핵심적 장점이라는 것을 잘 파악한 리메이크였습니다. 그런 기본틀을 다치지 않은 채, 한국식의 농담과 문화를 갈아끼웠더군요.

써머: 원작은 세트의 색감이나 소품 같은 미술적 측면에서도 좀 인상적인 측면이 있었습죠. 제한된 공간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니까요.

심순: 이 영화 역시 세트에 공을 들였습니다. 예지원씨가 분한 여배우의 집이죠. 그곳에서 그녀에게 구혼하러 온 조폭 두목, 대학강사, 재미동포, 영화감독이 줄지어 변고를 당하게 됩니다. 밖에는 절도범을 잡으러 온 형사들이 있고요. 소품으로는 한국 식문화를 반영한 동태와 김치냉장고가 나오죠. ^^

써머: 동태라, 뭔가 으스스한데요. 예전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 생선이 살인에 사용되는 인상적 장면이 있었습죠.

심순: 김치냉장고도 연상시키는 영화가 있죠? ^.~ 손재곤 감독의 <달콤, 살벌한 연인>이요. <죽어도 해피엔딩>은 그 작품의 성공에 고무된 바가 클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달콤, 살벌한 연인>과 마찬가지로 싸이더스FNH의 HD 프로젝트더군요. 아, 약간의 화장실 유머가 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말로만 듣던 “똥물에 튀겨 죽일”이라는 표현을 아주 잠깐 실사로 볼 수 있죠. T-T

써머: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시각적 표현이네요. -.-

심순: 정리하자면, 여배우에게 구혼하려고 몰려든 다른 유형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화법이 충돌하는 재미가 있었고요.

써머: 추측건대, 그게 전반부의 승부수였겠죠? ^^

심순: 맞아요. 그리고 카니발은 카니발로, 광란은 광란으로 해결하는 소동극의 묘미가 잘 살았습니다. 도저히 수습 불가능해 보이던 난장판이 감쪽같이 수습되는 모습이 구경거리죠.

써머: 이런 영화엔 <올드보이>의 오대수 같은 인물이 나올 순 없겠네요. ‘오늘도 대충 수습’해선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될 테니. ^_^

김혜리 “<관타나모로 가는길>을 보면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지배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갑갑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요” 이동진 “재연 장면도 ‘팩트’처럼 받아들여지게 연출했어요. 정치적 영화로서 강력한 무기일 순 있지만 프로파간다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고 봐요”

심순: 자, 그럼 이제 관타나모로 가볼까요?

써머: 넵, 가보죠. 별로 거기 가고 싶진 않습니다만.

심순: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같은 영화에는 담뱃갑 문구와 비슷한 경고문이 필요할 거 같아요. “이 영화는 울화, 갑갑증, 광장/폐소 공포증, 이명 등 각종 증세의 원인이 되며 특히 미국의 최근 대외정책에 유감있는 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

써머: 그 담뱃갑 문구엔 부시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붙어 있어야 할 듯. ^_^ <쏘우> 이후 요즘 호러 하위 장르로 고문영화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진짜 고문영화죠. -.-

심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파키스탄계 영국 청년들이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러 파키스탄에 갔다가 가벼운 충동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탈레반으로 오인돼 미군에 넘겨져 2년간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을 하는 이야기인데요. 무엇보다 실제 인물의 인터뷰와 재연을 섞는 마이클 윈터보텀과 매트 화이트크로스 감독의 연출 방식이 눈에 띕니다. 이런 방식은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이 <인 디스 월드> 등 전작에서도 구사한 연출인데 어떻게 보셨어요?

써머: <웰컴 투 사라예보> <인 디스 월드>, 이 영화까지 윈터보텀의 사회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전부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 있죠. 그런데 윈터보텀의 이런 사회적 영화들은 점점 더 다큐멘터리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써머: 그런 선택은 프로파간다로서는 매우 강력한 처방이지만, 문제제기가 가능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건, 어떤 다큐멘터리도 감독의 선택은 개입하게 마련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와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선택이니까요.

써머: 이 영화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잖아요? 뉴스 자료 화면, 실존 인물 인터뷰 장면, 그 인물을 대역 배우가 연기하는 재연장면. 그런데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방식이 혼재돼 있음에도, 뉴스 자료 화면과 인터뷰 화면이 나온 다음, 그 둘이 언급한 장면을 극적으로 재연한 장면이 어김없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재연이 극화된 장면임에도 ‘팩트’로 받아들여지게 하고 있죠. 그것은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영화로서 강력한 무기일 순 있지만 프로파간다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고 봐요.

심순: 그렇습니다. ‘진술’에서 ‘사실’로 슬쩍 미끄러지는 것이죠. 한편 관객의 입장에서는 인터뷰를 하는 실제 인물과 그를 연기하는 재연 부분의 배우를 제대로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몇몇 상황은 미처 이해되지 않은 채 넘어갔고요.

써머: 이를테면 생존 인물의 인터뷰만으로 만든 <쇼아> 같은 작품과 이 영화의 화법을 비교해보면 사건을 보는 시선의 각도가 얼마나 크게 차이나는지 알 수 있죠.

심순: 갑자기 <쇼아>의 클로드 란츠만 감독이 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아우슈비츠를 기록한 당시 필름이 손에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쓰지 않겠다. 쓸 수 없다.” 윈터보텀 감독의 접근방식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란츠만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군요.

써머: 필름이 없는데도 만들어서 쓰는 윈터보텀의 방법론과 날카롭게 대조되는 발언이죠. 마이클 무어 이후에 다큐멘터리의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한 신화는 이제 확실히 무너진 것 같아요. 윈터보텀도 극영화냐 다큐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전 이 영화에 심지어 재연 플래시백까지 등장한다는 게 놀랍더군요. 주인공인 아시프가 온갖 고생을 다 겪는 도중에, 런던에서 피자를 맛있게 먹는 꿈을 꾸는 장면까지 보여주잖아요? 수용소에서 고초 겪을 때 즐거웠던 과거를 상상하는 플래시백도 나오고요.

심순: 저 역시 그 대목에서는 화들짝 놀랐어요.

써머: 이 영화의 화법은 아주 직설적이에요. 비판의 칼날 역시 아주 직접적으로 겨누죠.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고 말한 뉴스장면 바로 뒤에 개 끌리듯 끌려가는 포로들의 재연장면을 넣어서 비판하는 방식이죠.

심순: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서도 역시나 부시 대통령이 한몫하죠. “거기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유아적인 표현으로.

써머: 영화의 첫 대사가 부시의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란 것은 확실해요”잖아요? ^ 뒤에서 “여기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살인자이며 우리와 다른 가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라는 인터뷰도 하고요.

심순: “그래서 뭐?”라고 되묻게 하죠.

써머: 한마디로 부시의 그 발언들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과,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바로 현재의 국제적 갈등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지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완전히 타자화하는 단순하고도 무서운 발언이죠.

심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직접적 폭력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더 크게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라는 행위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갑갑증이었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하는가. 저런 야만이 테러를 줄이는 데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저라면 사방이 뻥 뚫린 ‘엑스레이 감옥’에서 햇볕조차 가리지 못하고, 독방으로 끌려가 묶인 채 헤비메탈 음악만 듣는 고문을 당한다면 진짜 테러범이라고 해도 자기 행동을 반추하긴커녕 복수심과 적개심만 고취되어 더 테러를 신봉하게 될 것 같거든요.

써머: 헤비메탈 음악은 정말 쓰임새도 다양하지.^^ 그런 점과 관련해서 암시가 있죠. 이 영화 끝에서 주인공들이 수염을 기르잖아요? 원래 주인공들은 종교-정치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는데 관타나모의 경험을 통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발터 베냐민의 말이 생각났어요. “정치적으로 옳아야 미학적으로 옳다.” 전 윈터보텀이 “정치적으로 옳으면 미학적으로 옳다”는 작법을 가졌다고 봤어요.

심순: 거기서 “정치적으로 옳다”라는 말의 해석에 오해가 없어야겠죠.

써머: 또 한 가지 생각나는 말은… ^^(잡생각이 많기도 하지. -.-) “삶에는 살아야 할 때와 증언해야 할 때가 있다”는 카뮈의 말. 말하자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나 이 영화 같은 작품은 윈터보텀이 증언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는 단계에서의 영화들이라는 거죠.

심순: 음, 그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본 적은 없었네요. 근데 실제적인 문제로서 주인공들이 앵글로색슨계 영국인이었다면, 이렇게 2년 동안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과연 지속됐을까 싶더군요.

써머: 그게 이 이야기의 핵심 중 하나죠.

심순: 같은 시민권자라도 이민 2세들의 권리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는 허술하게 보호된다는 실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써머: 그나저나 저는 윈터보텀이란 감독이 참 신기하긴 해요.

심순: 다산성이?

써머: 아뇨. 다양성이요. <관타나모로 가는 길>과 <코드46>과 <쥬드>와 <24시간 파티피플>은 정말 서로 너무나 다른 영화들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한 감독이 만들 수 있냐는 거죠. 이건 존 휴스턴 감독 같은 장인 감독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다 잘 만드는 것과는 다른 문제예요. 윈터보텀의 영화들은 전부 장르영화들인 것도 아니잖아요? <코드46> 같은 실패작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일정 정도 이상의 성취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심순: 감독으로서 여러 개의 자궁을 가진 걸까? *.* 영화들은 달라도 인간성에서 주목하는 측면은 비슷한 것 아닐까요? 이를테면, 붕대에 배어나오는 피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들요.

써머: 적절한 비유인 듯.^^ 어쨌든 윈터보텀 감독은 영국인답지 않게 내면이 상당히 뜨거운 사람인 것 같아요.

심순: 이름이 겨울의 엉덩이인데도 말이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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