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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꿈꾸는 영화축제, 서울영화제 가이드 [1]
김수경 2006-09-07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서울영화제가 일곱살이 됐다. 9월8일(금)부터 17일(일)까지 열리는 올해 서울영화제의 섹션은 7년 전보다 다섯에서 아홉으로, 참여 국가는 14개국에서 30개국으로 늘었다. 작품 수는 대동소이하지만 출품작들의 다양함은 한층 더해졌다. 포문을 여는 누리 빌게 세일란의 HD영화 <기후>는 ‘디지털’에 집중해온 뚝심을 떠올리게 하고, 신설된 국내경쟁부문 ‘퍼스트컷’을 장편 데뷔작으로 한정한 요소나 심야상영에 구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를 비롯한 영화작가들의 첫 작품을 배치한 것은 지속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패기로 느껴진다. 야심차게 준비한 데라야마 슈지 회고전과 ‘춤과 신체’로 다가서는 ‘이미지독’ 섹션에 시선을 맡겨보자. 물론 심야상영과 댄스파티에서 인도영화, 뮤지컬영화, 미러볼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스텝을 밟는 것도 기본 코스다. 핸드폰, 모니터, 극장, 갤러리에서 만나는 서울영화제로 당신을 초대한다.

일곱 번째 서울영화제가 온다. 지난해부터 세네프영화제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영화제는 9월8일 개막작 <기후>를 시작으로 17일까지 열흘 동안 종로 서울아트시네마, 스폰지하우스에서 30개국 140편의 출품작을 상영한다. 올해 서울영화제는 국내경쟁부문 ‘퍼스트컷’과 아시아 비평가 및 영화제 프로그머들의 추천작을 수용한 ‘아시아 인 포커스’ 섹션을 신설했다. ‘퍼스트컷’은 국내 장편영화 데뷔작을 대상으로 하며 ‘아시아 인 포커스’에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타이의 평론가들이 작품을 추천했다.

<아우라>

서울영화제의 국제경쟁부문 ‘세네피아06’에는 12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비묵티 자야순다라의 <버려진 땅>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영화들이 다수 포함됐다. 다쓰시 오모리의 <게르마늄의 밤>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하나무라 만게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하나무라 만게츠의 소설은 국내에서 청소년유해소설로 판정되어 큰 논란을 빚었다. 살인자 루가 수도원에 와서 폭력과 음행을 저지르고 신에게 도전하는 <게르마늄의 밤>을 연출한 다쓰시 오모리는 <박치기!>를 감독한 이즈쓰 가즈유키의 조감독 출신. 두편의 아르헨티나영화 <시간은 흐른다>와 <아우라>도 눈길을 끈다. 이네스 드 올리베이라 세자르의 <시간은 흐른다>는 한 가족이 하루 동안 벌이는 일상의 여정을 따라간다.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소한 놀이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관조한 <시간의 흐른다>는 삶과 시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파비안 비엘린스키의 <아우라>는 영화감독인 주인공 에스피노자가 박제사로 직업을 바꾸며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렸다. 몽환적인 느낌의 <아우라>는 파비안 비엘린스키가 지난 6월29일 사고사하면서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루카스 벨보의 <약한 자들의 음모>와 제니퍼 샤이닌의 <누구도 모르게>도 소개된다. 10대들의 방황과 선택을 다룬 에른스트 홀저의 <불타는 집>, 다섯 젊은이의 꿈과 사랑을 그려낸 후지와라 도시의 <우린 돌아갈 수 없다>는 젊은 관객이 선호할 만한 영화들. 이 밖에도 <인터코스모스> <회복> <성스러운 가족> <떠나간 여인의 초상>이 이 부문에 포함됐다.

19편의 장편영화를 선보이는 ‘오버 더 시네마’에는 대표적인 영화작가들의 신작이 대거 배치됐다. 히틀러에 관한 <몰로크>, 레닌에 대한 <타우르스>를 연출한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독재자 시리즈의 세 번째 연작 <더 선>을 출품했다. <더 선>은 히로히토 천황의 2차 세계대전 항복선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클로드 샤브롤과 이자벨 위페르가 함께한 정치스릴러 <코미디 오브 파워>, 장 클로드 브리소가 에로영화의 안과 밖을 파고든 <죽음의 천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던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대단한 젊음>, 피터 그리너웨이의 미술감독 출신 소피 피엔스의 영화에 관한 영화 <지젝의 기묘한 영화강의>, 실험영화감독 마리 멘켄의 삶과 작품을 거슬러 오르는 마티나 쿠들라섹의 <마리 멘켄에 대한 노트>, 라다크의 풍광을 HD로 잡아낸 김응수의 로드무비 <천상고원>이 ‘오버 더 시네마’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이미지독’ 섹션은 ‘영화, 풍경, 그리고 춤과 신체’라는 주제로 한 영화와 미술의 다양한 특성을 공유하는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첫 번째 주제 ‘영화와 풍경’에서는 영화를 조각으로 환원하는 매튜 바니의 <구속의 드로잉9>, 루이 아라공의 텍스트를 원작으로 한 스티븐 드워킨의 <망각>, 유럽 전위영화의 대표작가 커트 크렌의 단편 <6/64 마마 앤 파파>를 비롯한 다양한 실험영화를 만날 수 있다. ‘춤과 신체’를 다루는 두 번째 주제에서는 프랑스 댄스시네마테크의 댄스필름을 통해 현대무용의 거장 이사도라 던컨, 머스 커닝엄, 스티브 팩스턴, 피나 바우쉬 등의 안무와 영화작업이 소개된다. 댄스필름의 역사를 댄스시네마테크를 통해 경험한다면 <풍경의 안과 밖>에 담긴 단편들은 유럽 댄스필름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미국 전위 영화작가 마리 멘켄의 단편 여섯편도 ‘이미지독’에 포함됐다. ‘오버 더 시네마’의 <마리 멘켄에 대한 노트>와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춤과 노래로 채워진 인도영화 3편과 헐리우드 뮤지컬영화 3편이 특별상영된다.

<용서받지 못한 자>

<죽음의 천사>

‘아시아 인 포커스’에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추천한 <필리핀 가족의 진화>가 눈에 띈다. 라브 디아즈가 만든 필리피노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상영시간만 10시간30분, 촬영기간만도 8년에 달한다. ‘퍼스트컷’에는 <용서받지 못한 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모두들, 괜찮아요?> <방문자> <썬데이 서울>이 새로운 관객과 만남을 시도한다. ‘디지털 익스프레스’ 섹션은 ‘한국영화 디지털 쇼케이스’와 ‘디지털 초이스’로 재정비됐다. ‘한국영화 디지털 쇼케이스’에는 남기웅 감독의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를 포함, 7편의 한국영화가 배치됐다. ‘디지털 초이스’는 HD전문 영화제 HDFEST에서 상영된 3편의 장편영화를 소개한다. <크눗 라스무센의 알래스카 탐험> <12월이 끝나다> <화성 식민지>가 그 주인공. 회고전 마니페스타의 얼굴은 데라야마 슈지다. 전방위 예술가로 유명한 데라야마 슈지의 장편영화 5편과 단편영화 9편이 상영된다.

해마다 관객의 호응이 높았던 서울영화제의 심야상영은 여전히 흥미롭다. ‘음악의 밤’에는 돈 앨런 펀베이커가 만든 밥 딜런의 다큐멘터리 <뒤돌아보지 마라>와 10주년을 맞이한 에든버러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이자 뮤직비디오 모음집 <미러볼 나이트>가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이 밖에도 나카가오 노부오의 괴담영화 4편과 구스 반 산트의 데뷔작 <말라노체>가 포함된 거장들의 첫 번째 장편영화 4편이 영화제의 밤을 뜨겁게 달군다. 서울영화제의 특징인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상영 및 삼성미디어라운지의 퍼포먼스 필름 상영도 계속된다. 지난 5월15일에 개막해 7월31일에 경쟁부문 심사를 마친 서울넷페스티벌은 영화제 동안 경쟁부문 수상작과 특별언급작들을 인터넷으로 재상영하며 열기를 이어간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모바일&DMB 페스트는 9월30일까지 13개국 50여편의 영화를 휴대폰으로 선보인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는 ‘삼성미디어라운지’는 9월5일부터 12편의 퍼포먼스 아트 필름을 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일본 괴담영화의 대명사, 나카가와 노부오를 만나는 시간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 외 4편 심야상영

이번 서울영화제에서는 일본 괴담영화의 대표감독 나카가와 노부오의 대표작 4편을 심야에 상영한다. 1905년 교토에서 태어난 나카가와 노부오는 ‘일본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키노 쇼조의 아들 마키노 마사히로의 도제로 영화를 시작했다. 1984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97편의 영화를 연출한 나카가와 노부오는 1950년대부터 괴담영화에 주력하면서 일본 B급영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이번에 상영되는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과 <지옥>은 일본 공포영화의 대표작들.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은 거장 기노시타 게이스케를 비롯해 수많은 감독이 다섯번 이상 영화화했지만 현재까지는 나카가와 노부오의 연출작이 최고로 평가된다. 18세기 쓰루야 남보쿠의 가부키극을 원작으로 하는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주신구라>의 외전 격인 작품. 가난한 사무라이 이에몽이 결혼을 반대하는 오이와의 아버지를 죽이고, 다시 한번 신분 상승을 위해 아내 오이와마저 죽이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은 복수극인 원작을 기반으로 특수효과를 통해 괴기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일본식 호러 ‘괴담’을 장르영화로 정착시켰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주인공과 그의 주변인물들이 모두 지옥으로 추락하는 내용의 <지옥>, 늙지 않는 여자의 비밀을 다룬 뱀파이어물 <여자 흡혈귀>, 요양을 위해 이사간 저택에 얽힌 끔찍한 뒷이야기를 흑백과 컬러를 병행해 보여주는 <망령의 괴묘저택>도 나카가와 노부오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