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찬란한 젊은 날, 모두가 꿈꾸던...
편의점 점원, 사랑에 빠지다!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변두리, ‘술 담배의 본거지’ 역할을 하는 작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월트. 어느 날 그는 죠니라는 손님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죠니는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멕시코인 불법체류자인데다가 월트에겐 관심조차 없다. 심지어 월트와 단둘이 만나는 것도 꺼리는지 항상 그의 친구 로베르토와 함께 나타난다.
월트가 꿈꾸던 ‘나쁜 밤(Mala Noche)’의 결말은…?
어떻게든 죠니와 가까워져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월트에게, 죠니는 짓궂은 장난이나 일삼고 술과 밥을 얻어먹는 게 전부이다. 죠니에게 푹 빠져버린 월트가 그와의 ‘나쁜 밤’을 위해 내민 카드는 단돈 15달러로 로베르토를 구슬리는 것.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나쁜 밤의 결말은 월트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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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그 모든 것의 시작 <말라노체>more
1991년 <아이다호>, 2003년<엘리펀트>, 2005년<라스트 데이즈>로 이어지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주옥 같은 작품들. 하지만 정작 그의 첫 영화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미국 포틀랜드 오리건 출신의 전설적 시인으로 알려진 월트 커티스의 동명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말라노체>가 바로 1985년에 만들어진 그의 첫번째 장편영화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로 비평계는 물론 퀴어 커뮤니티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말라노체>의 성공에 힘입어 다음 작품인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를 만들게 되면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는 초석을 쌓았기에, 이 저예산 퀴어영화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인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보물과도 같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21년 후인 2006년 칸영화제에서 마치 전설처럼 묻혀져 있던 이 영화가 리마스터링된 35mm 필름으로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드디어 2007년 봄, 한국 관객들에게도 열어 보일 준비를 끝냈다. 이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받아왔던 호평의 실체를 직접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기회가 온 것이다.
<아이다호>와 <말라노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하나의 이야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가 주었던 젊은 날의 불안과 순수, 비틀린 열정과 가슴 저려오는 아련함, 그리고 흐르는 구름과 길의 이미지에 매료되었던 사람이라면,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한 이 영화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거친 흑백의 화면 속 황량하기 그지없는 포틀랜드의 거리를 누비는 월트와 죠니의 모습은, <아이다호>에서 역시 포틀랜드의 뒷골목을 헤매던 리버 피닉스와 키에누 리브스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비에 젖은 유리창에 휘갈겨 쓴 이 영화의 크레딧처럼 거칠고 신선했던 그의 뿌리가 바로 <말라노체>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모든 감독들에게 데뷔작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 있다. 구스 반 산트의 첫 영화 역시 솔직하고 거침없으며 그런 순수함과 열정 속에서 빛나는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나가버린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영화 속 차 창 밖 풍경처럼 스쳐 지나갈 때, 영화는 이미 당신 가슴 속에 있다.
프랑스판 <말라노체>, 구스 반 산트의 <사랑해, 파리> ‘마레지구’
<말라노체>는 미국인 월트가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멕시코 소년 죠니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애틋하게 보여준다. 구스 반 산트는 <말라노체>를 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 영화 <사랑해, 파리> 중 ‘마레지구’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인 남자가 한 프랑스 남자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또 한 번 카메라에 담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로 한참을 떠들다 나간 프랑스 남자를 찾아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하는 미국인 남자의 모습은 영화 <말라노체> 속 월트와 죠니의 사랑과 비슷한 출발이지만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감독이 갖고 있는 ‘사랑’과 ‘언어’라는 컨셉이 20년을 뛰어넘으며 어떻게 달리 표현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