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야지’ 아님, ‘삐돌이’ 아님
“형, 감독님이 차 지나가는 거 하나 더 찍자고 하시는데요.” 최영환(31) 촬영감독은 현장에서 ‘형’이라 불린다. 에피소드 하나. 지난해 겨울, <피도 눈물도 없이>의 수색 촬영 때였다. 감독과 배우들, 모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복기하고 있고, 그는 팔짱낀 채 그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만은 몸상태가 좋지 않은 터라 막내를 불렀다. “내 의자는 어딨냐?” “형, 있잖아요. 짐이 많아서 그냥 제작사에 놔두고 왔는데요… 쩝.” 심하게 말하면, 그는 촬영현장에서 ‘기사님’ 대접을 못 받는다. 하지만 스탭들 모두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 스탭들 대부분 그가 현장에서 좀처럼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오야지는 아니다. 조금 무거운 책임을 진 팀원일 뿐이다.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 최영환 촬영감독은 소문에 시달렸다. “감독과 사이가 안 좋다면서?” 심지어 곧 크랭크인할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 “마음이 가 있다”는 수군거림까지 나왔다. 시댁에 처음 발을 들인 새색시의 마음이 그랬을까. 단편 <악몽>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죽이 맞은’ 류승완 감독은 그가 가끔 고단한 심신을 맡길 만한 ‘친정’ 같은 존재이긴 했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을까? “앵글 거는 것만으로 서로의 의중을 알아채는 사람들과 작업하다가 낯선 상황을 만나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안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하면서 감독과 커뮤니케이션 훈련이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점은 반성한다.” 입문? 창조에의 이끌림 그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고() 유영길 촬영감독을 ‘훔쳐봤던’ 몇달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동기였던 친우 김용흥이 군 제대 뒤 빈둥거리던 그를 꼬신 장본인. 당시는 유영길 촬영감독 아래 있던 김성복, 석형징 등 촬영부 스탭들이 데뷔와 유학을 준비하면서 인력 충원이 필요했던 때였다. 연출 전공이지만, 카메라라곤 도통 모르는 그에게 김용흥은 연출에도 요긴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고, 그는 홀딱 넘어갔다. 장선우, 박광수 감독 등과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그를 촬영현장으로 이끈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의 촬영부 막내로 뛰면서 촬영에 맛을 들일 무렵, 유영길 촬영감독은 그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했다.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고, 혹시 기량이 출중하니 하산?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배우면서, 뛰라”는 뜻이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은, 그래서 수업이 없는 주말이나 야간 촬영 때마다 빠지지 않고 현장을 찾은 작품. 그때도 유영길 촬영감독의 의자를 챙기는 막내급 조수였지만, 그는 생생한 현장수업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활용했다. “보조 라이팅이 왜 이리 어둡냐”고 묻고, “여기서 왜 카메라가 움직여야 하는지”를 물었다. 기회가 나면 질문을 해댔으니, 유영길 촬영감독도 ‘이상한 놈’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뭘 시키기만 하면 함흥차사가 되는 그를 선배들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유영길 촬영감독은 “내가 30년 일했지만, 너처럼 당돌한 막내는 처음 본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시점 이동의 타이밍, 캐릭터의 감정 포인트, 카메라 무빙의 원칙 등 다 그때 유영길 촬영감독의 ‘열띤 강의’를 통해 들었다. 그는 그때 ‘지식’을 얻은 게 아니라 “촬영 또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한명이라도 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예고 원서를 써주지 않았던 중3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화가의 꿈이 시들고, 높디높은 대학 입시의 문턱을 넘지 못해 현실적으로 품었던 전자공학도의 꿈을 잃고 난 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책 한권만을 달달 외워 서울예대에 입학했던 청년은 그때서야 비로소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되기로 단단히 맘먹는다. 스타일? 공간을 보라 5년 넘는 충무로 생활 동안 그에게도 버릇이 생겼다. 고정 숏을 찍을 때 틸트와 팬의 잠금장치를 풀어두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 앵글이 배우를 구속하는 걸 원치 않아서”라고 말한다. 학창 시절 연기를 해봤으니, 생리적인 부정반응을 고려한 배려일 수 있다. 사실 “감정에 몰입하면, 배우의 몸은 제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간의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독불이를 망원렌즈로 잡는 신. 정재영이 일어서는 장면은 따로 찍어 붙이기로 하고, 5번이나 앉은 자세로 테스트 촬영을 했다. 그런데 정재영씨가 정작 ‘슛’에 들어가자 벌떡 일어섰다. 카메라를 고정해놓았으면 놓쳤을 아까운 표정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장면을 무리없이 잡아내고선 그는 “아, 이제서야 이 영화에 동화됐구나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습관의 기원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극중에서 류승범이 패싸움 끝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며 눈밭을 걷는 장면. 촬영 도중,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니 류승범이 몸에 중심을 잃는 순간에는 그의 카메라마저도 현기증을 느꼈는지 덜컹거리더라는 것. 핸드헬드로 찍되, 이동차에 얹어놓은 느낌으로 밀고 들어가자던 애초 감독과의 합의는 깨졌지만, 정작 류승완 감독은 “느낌이 살아 있다”며 더 좋아했다. 그의 카메라를 두고 류승완 감독은 “동물적인 순발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1971년 서울 출생 1991년 서울예대 영화과 입학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촬영부1997년 <나쁜 영화> <러브러브> <쁘아종> 촬영부 1998년 <미술관 옆 동물원> 촬영부 2000년 <플란다스의 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촬영부, <커밍아웃> <다찌마와 리> 촬영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 현재 <굳세어라 금순아> 촬영중 인물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공간을 포착하는 후각에 비하면 다소 부차적이다. 세부적인 렌즈와 구도 결정이야 현장에서도 매번 달라지지만,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가졌던 공간에 대한 이미지와 몇 차례의 테스트 촬영을 거쳐 확인한 기본 색조에 대한 고집은 무척 강하다. 그의 이러한 고집을 대번에 알 수 있는 에피소드.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대번에 촬영하기로 결심한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였다. 정재은 감독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직까지 털어놓지 못했지만, 그는 대낮에 인천에서 야외신을 찍으면서 감독을 속였다. 그는 음영이 깊게 드리운 인천을 포착하려면, 플랫(flat)한 기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테스트 촬영 끝에 초콜릿 필터와 그린 필터의 조합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재은 감독은 텅스텐 필름에 85B라는 색온도전환필터라는 다소 안전한 기본 조합만을 원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해놓고서, 실제 촬영에 들어가선 감독의 요구를 어기고서 슬쩍 이중 필터로 갈아끼웠다. 충무로? 실험지대한때 그도 유학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외국을 다녀온 선배는 충무로에서도 배울 것이 아직 많이 남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실전에 뛰어들지 않는 한, 외국의 영화학교에 간다는 것만으로 욕구가 충족되진 않을 거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래서 남은 충무로는 더없는 실험학교이기도 했다. 유영길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를 깨우쳐줬다면, <러브러브> 때부터 함께한 조용규 촬영감독은 그에게 실험이 뭔지를 몸소 보여준 장본인. 정작 조용규 촬영감독은 “자신이 알려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지만, 최영환 촬영감독은 “주어진 공식대로가 아니라 어떻게든 새롭게 찍어내야 한다”는 걸 그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겁없이 여러 필터를 덧대서 찍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오랜 테스트 작업이 있었기 때문. 다만 현상 작업에 참여할 기회는 없어, 그는 부지런히 단편영화를 찍었고, 블리치 바이 패스 등의 작업 등도 모두 그때 해보았다. “사실 단편영화 감독들의 원성을 사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어쨌든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의도에 대해선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목표? 다리우스 콘지와 렘브란트를 넘어그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건 ‘밋밋함’이다. 모든 사물이 똑같이 보이는 그림은 죽어도 싫다. “강렬한 광선과 어두운 배경, 그리고 그 불안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 그가 언젠가 포착하고자 하는 ‘공간’은 다리우스 콘지와 렘브란트에게 가닿아 있다. “<쎄븐>을 보면, 공간 자체가 살아움직이는 듯하다. 거구의 시체가 코를 처박고 죽어 있는 침실 장면은 그중 백미다. 그 방을 지배하는 건 어둠이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은 어둠에 묻혀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과 미세한 벽 틈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빛만이 광원의 전부다. 그 빛에 의해 둘의 긴장한 얼굴이나 몸짓이나 시선은 간혹, 그것도 조금씩만 비춰진다. 하지만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그는 고지식한 ‘재현’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리얼리티’를 죽일 수도 있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 찍는다고, 남김없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일례로 언제나 “창의 위치에 따라 빛의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이 싫다. 카메라가 창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관객 어느 누구도 광원의 방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공간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광원을 의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게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이미지값이라면, 그는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김성관 조명감독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것도 그가 자신의 성향을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멜로영화는 죽어도 안 들어오겠다”는 그이지만, 그는 정말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직 그는 야생마’라고 비유한 한 감독의 말은 그래서 적확하다. 마이스터를 향한 질주의 궤적이 지속되길. 이영진 anti@hani.co.kr <<< 이전 페이지기사처음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