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잊혀진 중앙아시아의 뉴웨이브 영화’ 특별전을 선보인다. 사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중앙아시아 영화 특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제5회 때 중앙아시아 영화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당시의 특별전이 카자흐스탄의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이나 키르기스스탄의 악탄 압디칼리코프 등 칸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국제영화제를 통해 널리 알려진 거장들의 작품들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특별전은 ‘잊혀진’에 무게를 싣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하고 화려하게 꽃피웠지만 이제는 잊힌 중앙아시아 뉴웨이브의 수작영화들을 발굴해 선보인다. 1988년부터 2004년까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4개국의 수작 8편이 상영된다. 이번 특별전은 해외에 덜 알려진 중앙아시아 뉴웨이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넘어서 중앙아시아 뉴웨이브 영화들을 다시 재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대자연의 원시성을 간직한 <수르제키-죽음의 천사> 다른 나라, 다른 자연환경, 우리와 다른 민족의 문화를 접했을 때 우리는 이질감과 낯섦을 느끼고 익숙하지 않음은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르제키-죽음의 천사>에서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대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들을 엿볼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고 성숙과 미성숙이라는 인간의 가치판단의 잣대를 넘어서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은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카자흐스탄의 다미르 마나바이 감독은 컬러와 흑백을 섞는다. 무채색의 풍경 위에 덧입혀지는 컬러의 색감은 그들의 문화가 만들어낸 무늬와 색감과 더불어 영화의 몽환적이고 신묘한 느낌을 더한다. 서사도 대자연에 정착하고 방랑하는 인간의 삶을 다룬다. 소비에트 체제가 확립되고 카자흐스탄도 사유지의 국유화가 진행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땅에서 죽을 것인지 이 땅을 떠나 가족을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아즈베르겐과 파크라딘 형제는 갈등한다. 학살과 집단 이주, 형제간의 갈등을 통해 영화는 땅과 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결국 비극으로 치닫지만 영화는 마지막 사막의 모래를 먹는 할머니의 모습과 모래바람 속에 묻혀가는 신발, 옷가지, 그리고 발자국을 보여준다. 그렇게 인간이 남긴 여러 자취들은 대자연의 흐름 속에 묻혀 간다.
스탈린 정권 이후 카자흐스탄의 풍경을 묘사한 <발코니> 카자흐스탄 칼리백 살리코프 감독의 <발코니>는 영화적인 시도와 실험을 다양한 유년의 이야기와 기억 속에 잘 버무려낸 작품이다. 외과의사인 아디아르는 수술 도중 환자의 손에 있는 20이라는 문신을 보고 그 환자가 어린 시절 친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1960년대의 알마티를 회상한다. 영화에는 유년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아디아르는 문학과 철학과 음악을 접하고 고민하고 질문도 하지만 또래 친구와 같이 싸움질도 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보인다. 친구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그 집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기도 하고 축음기를 틀어놓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이발을 하기도 한다. 영화는 스탈린 정권이 무너진 후 당시의 카자흐스탄의 풍경을 한 남자의 기억을 통해 재현한다. 그 기억 속엔 시대와 가족과 친구와 자신의 고민 등 한 남자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있다. 영화는 여기에다 갖가지 다양한 영화적 언어들을 버무린다. 여러 앵글과 구도, 핸드헬드를 비롯한 카메라의 다양한 움직임, 환상 장면과 음악 등 다양한 시도들이 영화의 에피소드들과 함께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재기발랄한 웃음과 풍자를 담은 <와일드 이스트> 라쉬드 누그마노프 감독의 <와일드 이스트>는 위트와 감독의 재기가 넘치는 작품이다. 난장이들은 오토바이를 모는 악당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난장이족의 지도자는 검을 지켜들고 우리 땅을 지키자고 외치지만 곧 때마침 나타난 오토바이족의 총에 죽는다. 오토바이족에 맞설 힘이 없는 난장이들은 그들을 지켜줄 전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7명의 전사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온다.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의 서사를 차용하지만 대단히 어설프다. 전사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뛰어난 전사를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아니며 전사들도 하나같이 다 변변치 못하다. 술에 찌든 알코올 중독자도 있고 오토바이가 부서진 스턴트맨에게는 오토바이가 필요하지 않냐며 데리고 오고 매를 손에 들고 있는 몽골인은 길을 가다가 그냥 차에 태운다. 그 몽골인은 말도 통하지 않는다. 영화는 여러 코드와 상징들을 끌고 와서 뒤섞고 버무린다.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재기발랄함과 웃음은 풍자로 이어지고 감독은 그 유희를 같이 즐기자고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실험성이 강한 <느린 바다, 빠른 강>과 <존재> 키르기스스탄 마랏 사룰루 감독의 <느린 바다, 빠른 강>은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를 먼저 이끄는 것은 이미지다. 푸른색이 가득한 빌딩 숲, 콘크리트 철골이 다보이는 빌딩 안에 여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남자도 거꾸로 매달리고 둘은 서로를 갈구하지만 매달려 있기에 쉽지는 않다. 바람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가득하고 둘은 결국 끌어안고 빙글빙글 돈다. 영화는 황색의 따뜻한 색감과 청색의 차가운 색감을 병치시킨다. 유년 시절엔 함께 했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형제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야기지만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와 환상을 교차시키고 같은 공간과 시간을 반복하고 같은 행위와 대사도 반복한다.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에 대해 영화는 읊조림과 상념과 사색으로 가득 채운다. 타지키스탄 탈립 카미도프 감독의 <존재> 또한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다. 영화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타지키스탄의 내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에서 전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은 많지 않다. 대신 영화는 여러 이미지들의 나열과 세 친구의 대화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잠자는 군인,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 빵을 받기 위한 손과 같은 소수의 전쟁 이미지들과 함께 채워지는 것은 <올랭피아>와 같은 여자의 누드 회화들, 냉장고, 병원에서 검사받는 장면, 칼로 남자의 몸을 애무하는 여자 등등 전혀 이질적인 이미지들과 칸딘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그들의 사상과 세 친구들이 나누는 인간과 존재에 대한성찰들이다.
언급한 작품들 외에 우즈베키스탄 자항기르 카시모프 감독의 <가난한 사람들>과 줄피코르 무소코프 감독의 <압둘라얀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바침>, 그리고 타지키스탄 바코 사디코프 감독의 <축복받은 부카라> 등 우리 삶에 대한 다양한 성찰들을 만날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영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