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황폐한 땅에서 어렵게 수확한 식량으로 한해 한해를 넘기는 빈촌에 살고 있다. 이 빈촌엔 보리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산적들이 찾아와 모든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간다. 싸워도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던 촌장의 결단으로 사무라이들을 모집하는데, 이들은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가진 감병위(勘兵衛)를 포함한 7명이었다. 감병위의 지휘하에 마을은 방위태세를 갖추고 전투훈련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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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던 촌장의 결단으로 사무라이들을 모집하는데, 이들은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가진 감병위(勘兵衛)를 포함한 7명이었다. 감병위의 지휘하에 마을은 방위태세를 갖추고 전투훈련도 시작한다.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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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사람들은 영화를 게임처럼 만든다. 1954년의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를 전쟁하듯 만들었다. 구로사와는 스탭과 배우들을 이끌고 이즈의 산속에 지은 오픈 세트장에서 1년 이상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치른 끝에 <7인의 사무라이>를 완성해냈다.more
제작과정에서 수많은 사고들이 잇따라 일어나는 가운데 심지어 마지막 빗속 전투장면을 촬영하다 스탭 한명이 사고로 죽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게임을 그만두고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화면 안의 인물들은 아바타가 아니다. 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배우들은 비를 맞아야 한다.
말이 쓰러질 때 그 위에 탄 인물은 정말 쓰러져야 한다. 아무리 연기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육체의 사실주의, 피와 뼈의 리얼리즘, 상처와 먼지의 리얼리티가 있다. 화면에는 늘 눈속임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화살이 날아갈 때 정말 누군가가 다칠까 조마조마해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정말 그러할 때 얻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조잡한 게임 스펙터클 영화들이 넘쳐나는 이 순간, 리얼리즘영화의 시대로 우리를 되돌려 보낸다. 그런 다음 영화가 지니는 그때 거기 현장에서의 리얼리티를 체험하게 만드는 위대한 타임머신이다.
이건 분명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와는 다른 경험이다. 이 영화의 전투 규모와 화면에서 보이는 전투원들의 숫자는 <7인의 사무라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버추얼 리얼리티의 스펙터클은 눈을 즐겁게 하기는커녕 피곤하게 만든다. 수많은 전투원 하나하나를 각양각색으로 처리하고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은 놀랍지만 화면은 반지르르하면서 깊이가 전혀 없다(<반지의 제왕> 3부작을 보고 나서는 더이상 CG로 떡칠한 영화를 보기가 싫어졌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영화란 결국 무엇일까? 앙드레 바쟁은 ‘미라 콤플렉스’를 이야기한다. 영화를 포함한 조형예술의 기원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방어로서 시간에 방부처리를 하여 시간을 그 부패로부터 지키려는 욕망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의 인물들은 칼과 죽창을 들고 싸우고 쓰러지고 땅바닥에 나뒹군다. 키쿠치요 역의 도시로 미후네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뛰어다니다 총을 맞고 진흙탕에 쓰러진다.
그는 분명 세상을 떠났지만, 카메라 렌즈에 의해 방부처리 된 그는 그때 그 장소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 그들이 비를 맞으며 진흙탕 속에서 헐떡거릴 때 다만 연기를 하는 차원을 넘어선 노고와 고통, 삶의 흔적들이 전해진다. 말이 쓰러질 때조차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안쓰러움을 갖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승리 또는 패배와 관계없이 전쟁 자체가 고통이라는 메시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는 수십, 수만의 생명체가 스러져가도 그저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아니라 단지 화면에 그려진 것들이기에 감정의 교류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전쟁은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의 유희이며 게임일 뿐이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건 버추얼 리얼리티의 감정이 현실로 넘어올 때이다. 우리가 걸프전 이후의 전쟁을 대하는 태도는 바로 할리우드 스펙터클 영화를 구경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 네명의 희생 속에서 결국 도적떼는 전멸되고 농민들의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던 늙은 사무라이 캄베이는 살아남은 심복에게 “우리는 또 살아남았지만 패배했다. 농민들이 이긴 것이다”라고 말한다.
농민들은 모내기를 하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지만,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에게는 죽은 사무라이들의 무덤만 보인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사무라이 정신은 사라져갈 것이다. 구로사와는 그들을 통해 사라져가는 세상을 보려고 하면서 탄식한다.
그럼에도 이제 막 사무라이에 입문한 젊은이를 죽이지 않고 캄베이 곁에 놓아둠으로써,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 싸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캄베이의 입을 빌린 구로사와의 말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영화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김경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