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틸다 스윈턴-온고잉>(이하 <온고잉>)은 데릭 저먼의 전시로부터 시작한다. 당신은 늘 데릭 저먼에게 작품에 동등하게 기여하는 작가성(Authorship)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 작가성이 당신의 배우 활동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나.
카메라 앞에서의 나로 논의를 한정하자면, 해석 또는 몰입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기술이나 기교를 진심으로 거부한다. 작가가 되려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부 시절 더 이상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한 이후에 퍼포먼스(스윈턴은 언제나 스스로를 배우(Actor)라 지칭하길 거부하고, 자신의 작업을 연기(Act)가 아닌 퍼포먼스라 지칭한다.-편집자)를 시작했다. 그때 퍼포먼스는, 종이 위에 단 한자도 적을 수 없던 시기의 내가 한동안 선택한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였다. 그리고 학부에서 실험극을 함께한 스티븐 언윈, 데릭 저먼, 루카 구아다니노, 조애나 호그,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올리비에 사이야르, 짐 자무시,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나와 협업한 수많은 감독들은 나를 작품의 공동 작가로 신뢰해주었다.
- 당신이 늘 극찬하는 <당나귀 발타자르> 속 당나귀나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속 로저 리브시의 퍼포먼스도 작가성을 지닌다고 보는지.
발타자르를 연기한 당나귀들은 관객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개방 공간을 제공한다. 그들은 궁극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우리를 등에 태워 영화 속으로 실어나른다. 로저 리브시는 한 인물의 전 생애를 표현하며 연기의 정의를 넘어선 존재감을 굳힌다. <삶과 죽음의 문제>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 또한 리브시의 본질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영화였다. 이 두 존재야말로 퍼포먼스가 구현할 수 있는 궁극의 작가성이다. 내 관점에서 이는 연기(Act)의 대척점이다. 당나귀와 리브시의 퍼포먼스엔 어떠한 가장(假裝)도 없다. 자신을 배역에 온전히 개입해 미덥게 목격하고, 정직하게 반응한다.
- <온고잉>에서 당신은 출연작과 어울리는 단편영화를 직접 큐레이팅했다. 이 역시 당신이 견지하는 작가성의 일환인가.
예술의 협업을 두고 각 기여를 명확히 구획하려는 발상 자체가 늘 당혹스럽다. 나는 글을 쓰는 화가, 음악을 만드는 영화감독, 정원을 가꾸는 시인이 공존하는 집단에서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곳에서 우리의 기여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한번도 한 적 없다. 큐레이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데뷔 초기부터 제작자, 배급자, 프로그래머, 큐레이터와 회의하며 성장하는 행운을 누렸고, 작가성이 인접해 있는 영화계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큐레이션은 이 모든 집단 행위의 기반이며 맥락이 작품과 함께하고, 작품은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진리를 인정하는 세계다. 큐레이션은 우리의 작업을 연결하는 균사체이며, 이를 역사적 서사 속에 위치시켜 관객에게 새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큐레이션에 대한 나의 경험은 <온고잉>을 통해 더욱 확장됐다. ‘세상에 낡은 영화는 없다’는 나의 신념에 비추어볼 때, 나의 출연작을 아이 필름뮤지엄 수장고의 보석들과 짝지어보는 일은 기대치 않았던 깊은 ‘통합’(Integration)을 가져다주었다.
- 통합을 언급해 생각난 건데, 며칠 전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요즘 가장 골몰해 있는 단어가 통합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나.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길잡이다. 이에 관해 사색한 지는 1년 정도 됐다. 특정 생애주기에만 느낄 수 있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화해와 귀향에 관해 고민하다 나온 결과이니까. 특히 <온고잉>을 준비하며 나는 지난 인생을 회고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지난 40년은 분명 하나의 삶을 따라 진행된 ‘진보’였지만, 동시에 과거로부터 이어진 파트너십이 연속적으로 발전해 이른 성과라는 걸. 쓰다 버려지는 관계는 거의 없이 서로를 깊이 지탱하는 친구들과 삶을 꾸려왔다. 여기서 느낀 유대감이 이 전시를 낳았다. <온고잉>을 기획하는 내내 젊은 날을 되새기니 그때의 내가 겪었던 분열과 소외가 녹아 사라졌다. 나는 과거와 화해한 채 집으로 귀향했다. 그 집엔 내 의지로 꾸린 가족이 나의 뿌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렇게 통합된 우리는 서로를 품에 안는다.
- 이전에 당신이 기획했던 전시로는 1995년 런던 서펜타일 갤러리와 2013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연 행위예술 <더 메이비>(The Maybe)가 있다. 유리 상자 속에서 잠든 당신을 전시했다. 그래서인지 영화감독들이 유독 당신이 잠드는 장면을 찍길 즐기는 것 같다. 로테르담에서 공개한 <빛의 심장-피지를 위한 노래 열한곡>을 포함해 <메모리아> 등에서 당신이 잠든 숏을 줄곧 접했다.
아피찻퐁과 나는 수면을 매개로 친해졌다. (웃음) 2006년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에세이를 기고한 적 있다. 영화관에서 잠드는 관객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에 관한 글이었는데, 아피찻퐁으로부터 직접 자신도 동의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메모리아> 속 제시카가 잠드는 장면은 나와 아피찻퐁 각자의 경험이 융합돼 만들어진 결과다. 내가 워낙 게을러서 감독들이 자는 숏을 넣나 싶지만(웃음) 잠자는 신이 많은 건 우연이 꽃피운 필연이다. <올란도> 속 잠에서 깨어나면 상태가 변하는 설정은 이미 버지니아 울프가 원작 소설에서 묘사한 부분이고, <카라바지오> 속 죽은 레나가 막달라 마리아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은 16세기의 사료에 기초했으니까. 그나저나 <더 메이비>의 잠은 내가 기획했으므로 그 의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잠이라는 부재의 상태에서 타인의 시선을 받을 때 우리가 얼마나 취약해지는지 찾고 싶었다. <더 메이비>의 완성은 잠든 나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반응으로 완성됐다.
- 잠은 죽음과 연결된 관념 아닌가. 당신이 지금껏 퍼포밍한 배역을 거칠게 양분하면 영생에 놓인 인물과 죽음에 놓인 인물로 나눌 수 있다. 근래 들어 관객과 함께 죽음의 의미를 고찰, 자문하는 배역을 맡게 되는 건 우연인가.
작품 선택 당시의 문제의식이 나를 촬영 현장으로 이끈다. 규정 없이 유동하는 젠더에 관심이 많던 80, 90년대엔 앞서 언급한 <올란도>나 연극 <맨 투 맨>에서 죽은 남편으로 둔갑해 여생을 사는 여자로 분했다. 아이들이 커갈 때는 모성을 다각도로 해부하는 <딥 엔드> <줄리아> <아이 엠 러브> <케빈에 대하여>에 이끌렸다. 그리고 당신이 알아차렸듯, 최근의 나는 죽음을 넘어 ‘죽어감’을 사유하는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 중이다. 지금의 내가 가장 몰두하는 주제에 대해 어느 예술가가 말을 걸어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동료가 돼 공명한다.
- <온고잉>에 참여한 감독들 중 당신과 수차례 작업한 이들에 관해 묻고 싶다. 먼저 루카 구아다니노는 당신과 여러 영화로 협업한 감독이다.
루카와 나는 호기심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다. 본능의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호기심을 추적해간다. 이 호기심은 영화를 향한 경외에 기원한다. 루키노 비스콘티, 자크 드레이, 다리오 아르젠토에 대한 존경이 각각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서스피리아>를 만들었다. 루카와 나는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 불빛들을 머리 위에 둔 채 자유방임 상태로 춤을 췄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처럼 서로를 사랑해왔다.
- 짐 자무시는 유머 감각이든 스타일이든 자기 취향이 명확하지 않나. 이토록 감독의 인장으로 꽉 짜인 세계에서 배우는 어떤 식으로 자기 통찰을 개진할 수 있나.
대학생 때 <천국보다 낯선>을 보고 충격받았다. 미국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해 놀랐거든. (웃음) 미국인도 길모퉁이에서 소외돼 어정쩡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짐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는 짐을 사랑한다. 그의 세계에서 나는 언제나 이방인으로 분하지만 그는 카메라 뒤에서 늘 나를 환대해준다. 짐은 내가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현존하길 원하고, 기교를 부려 캐릭터를 창조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오래 관찰한 뒤 나와 닮은 캐릭터를 선물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5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대본을 받았을 때 나는 영화 속 이브가 5년간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의 반영이라 느꼈다. 일본도를 휘두르며 좀비를 사냥하는 외계인 장의사(<데드 돈 다이>)는 나와 다르지 않냐고? 이름이 젤다 윈스턴이고, 스코틀랜드인인데?
- 당신의 첫 영화라 할 수 있는 단편 <카프리스>, 그리고 30여년이 지나서야 <수베니어: 파트 Ⅰ,Ⅱ> <디 이터널 도터>로 만난 조애나 호그는 어떤 동료인가.
조애나와 나는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카프 리스>와 <수베니어: 파트 Ⅰ,Ⅱ>사이에도 우리는 줄곧 연락하며 지냈다. 우리는 묘하게 같은 사고방식을 통해 서로에게 기묘하게 동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가 함께일 때만 접근 가능한 미지의 길을 계속 탐색할 터다.
- 스크린 밖 당신은 슬하에 남녀 쌍둥이 자녀를 두었지만 스크린 안의 당신은 <딥 엔드> <썸서커> <케빈에 대하여> 등 유독 ‘아들’의 엄마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이 엠 러브>에서는 남매의 어머니로 분했지만 강렬한 드라마는 아들과 있을 때 발생했고. 이는 생물학적 아들의 보호자뿐만 아니라 당신보다 어린 세대의 남성과 짝패를 이루어 공연한 <나니아 연대기>시리즈, <프라블러미스타> 등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나의 멋진 스크린 아들들을 알아봐주어 고맙다. 참고로 지금으로서 내 마지막 아들은 <디 엔드>를 함께한 조지 매케이다. (웃음)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가 형제들 중 외동딸인 나보다 아들 셋을 양육하는 데 훨씬 사력을 다한다고 느꼈다. 그걸 보고 자라서인지 아들의 어머니를 퍼포밍하는 게 나로선 접근하기 쉽고, 편한 동시에 나와 덜 얽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일반론으로 단정하진 않으려 한다. 조애나 호그와 작업한 모든 작품에서 내가 딸이자 어머니로서 경험한 모녀 관계를 모두 투영했으니까.
- 다시 <온고잉>으로 돌아가자. 당신은 <온고잉> 폐막 이후 어디로 ‘온고잉’할 예정인가.
나는 언제나처럼 바람에 실려, 본능에 코를 킁킁대며 살 것이다. <온고잉>은 앞으로 몇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할 예정이다. <온고잉>이 어디에 도착하든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 어떤 힘인가.
전시장을 떠나며 읊조리면 좋겠다. “이게 다야? 예술이 이렇게도 단순해? 편하고, 돈도 안 드는데 함께할 수 있으니 누구나 도전할 수 있네. 우리도 시작해보자.” <온고잉>이 과정에 대한 기쁨을 심어 (힘 준 목소리로) 유용해진다면, 그제야 나는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