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대충 초등학교 시절이겠거니 하고 검색을 해보니, 1976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 KBS에서 방영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깄다…’를 흥얼거리게 되는 주제가도 한몫했다. 폴이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을 두드리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어른들은 모르는’ 것이었다고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평범한 고3 학생인 장단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노답’인 인생을 매운 편의점 짬뽕과 컵 떡볶이로 달래면서, 곧 치러야 할 수학능력시험은 ‘폭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여고생이다. 수능 당일 비가 내리는 놀이터를 걷다가 우연히 밟아본 물구덩이가 그녀에겐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이 되는데…. 그 이상한 나라는 조선시대고, 기우제를 지내는 세종대왕의 앞에 ‘단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세종대왕과 고3 단비의 우정이, 또 사랑이 갖가지 시
[김호상의 TVIEW] 웹드라마의 가능성
-
대체로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과정을 기승전결의 서사로 풀어낸다. 물론 그렇지 않게 보이는 소설과 영화도 있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일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는 소설이나 플롯과 스토리보다는 비주얼과 무드가 주가 되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라 해도, 처음 수수께끼를 내고서 나중에 문제를 무효로 해버리는 방식 자체는 어쨌든 자문자답이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시작과 끝은 곧 문제와 답이며, 이것은 작품 안과 밖에서 시간의 지배를 받는 서사 예술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최소한의 형태다.
모든 영화는 어떠한 문제를 푸는 어떠한 연산이다. 낼 수 있는 문제가 다양한 만큼 할 수 있는 답에도 한계가 없다. 문제는 작가 마음대로 낼 수 있지만 그 답은 관객의 마음에 도달해야 한다. 정해진 답을 향해 달려가는 편협한 작위의 영화가 있고, 문제를 풀다보니 도착하는 불가해한 삶 같은 영화가 있다.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결국 중력의 영향을 받는 영화는, 이기적인 인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실패한 수색자들
-
대한민국에 요리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1990년대에 이미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남자였고 학생이었고 자취를 했다. 다시 말해 힘과 시간은 남아도는데 돈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강제로 주머니 털어 나온 돈으로 장을 봐서 돈 주고는 못 먹을 음식을 먹는 거.
요리의 나라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아이는 산동네 자취방에 월계수 잎과 가쓰오부시,곰국 끓이는 들통을 두고 있었다. 다진 고기와 야채와 토마토를 볶다가 월계수 잎을 곱게 띄워 약한 불에 끓여 미트소스를 만드는 그 애를 보며 아, 조기교육의 힘이란 굉장하… 긴,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몽땅 조기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프랑스 살았다고 다 요리 잘하면 나는 고향(무려 전주다)에서 한정식 배워 상경했겠다. 우리 엄마는 집에 가면 즉석국 사줘, 그게 더 맛있대, 너도 아까운 고기 버리지 말고 그냥 인스턴트 소스 써.
그의 도전이 낳은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맛의 비밀은 기다림일까 조미료일까
-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가끔 서로 다른 버전의 개봉영화가 존재했다. 유쾌한 ‘광동빵’ 뮤지컬 장면으로 유명한 <도협2: 상해탄도성>(1991)은 주성치와 공리가 주연한 영화지만, 공리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주인공인 다른 버전의 같은 영화가 있다. 중국 본토 출신의 공리가 광둥어에 능숙하지 못하기에 거의 대사도 없다. 마찬가지로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에 출연한 중국 본토 출신 왕정문의 대사가 별로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무튼 공리가 중국 배우이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다른 여배우가 출연한 버전의 <도협2>가 개봉한 것이다.
또 대만 내에서도 외성인(外省人)과 내성인(內省人)의 갈등이 있다. 대표적인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1985)가 자신의 외성인으로서의 소년 시절을 회상한 영화라면, <연연풍진>(1986)은 시나리오를 쓴 우니엔진의 내성인으로서의 소년 시절 이야기다. 내성인이란 청조 이후 오래전부터 대만으
[에디토리얼] 허우샤오시엔과 쯔위
-
-
어떤 음악에 매혹당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아니, 그 이전에 매혹이란 어떤 성질의 현상일까를 고민해봤다. 그건 아마도 ‘되돌아갈 수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매혹당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려 아무리 애써봤자 별무소용인 상태. 매혹은 또한 ‘출구 없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매혹이란, 당신이라는 세계 속에서 내가 속수무책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최근에 이런 유의 노래를 만났다. 방백이 부르는 <동네>라는 곡이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음반을 쭉 듣다가 거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 곡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도 나는 이 곡을 듣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으며, 꽤 오랫동안 이 곡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을 거라는 예감이 머릿속을 쓰윽 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이 곡이 일궈낸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 방백이 인터뷰에서 밝힌 ‘어른의 음악’이라는 고백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 먼저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할 수 있다. “눈 시린 한밤중에/ 우린 사라지는
[마감인간의 music] 어른의 자세
-
※<헤이트풀8>의 결말을 포함한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처음으로 공주 아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픽사가 이제 문화적 다양성에도 시선을 돌리는 것일까? <굿 다이노>와 묶어 상영 중인 단편 <산제이의 슈퍼 팀>은 인도계 소년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백인 아닌 인간 캐릭터가 주역인 픽사 최초의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산제이 파텔 감독의 자전적 회고담인 <산제이의 슈퍼 팀>은, 가족의 힌두교 전통에 거리감을 느끼던 인도계 미국 소년이 아빠의 신을 친근한 애니메이션 우주로 끌어들여 슈퍼 히어로로서 사랑하게 되는 일화를 그린다. 부모에게는 신앙인 종교가, 자식들에겐 문학일 수도 있다. 한 거실에서 화목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겠냐고 파텔 감독은 묻는다.
01/05
<헤이트풀8>에 대한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한다. 일단 <헤이트풀8>의 앙상블이 여덟명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풀 하우스
-
나이 든 사람들의 개는 뚱뚱한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롭기 때문에 개에게 먹이를 지나치게 많이 준다는 거였다. 나와 9년을 같이 사셨던 할머니는 틈만 나면 내게 먹을 것을 주셨지만 나는 딱히 할머니가 외롭다고 생각지 않았다. 실은 잘 모르겠다. 굳이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로봇 청소기에 말을 거는 사람들은 아마 할 수만 있다면 청소기에 먼지가 아니라 음식을 먹이려고 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는 늘 개를 길렀다. 이상하게도 가족들이 전부 개를 좋아했다. 그 덕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몇년 전까지 늘 개와 함께 지냈다. 개는 일종의 접착제 구실을 했다. 할 말이 없는 사이라도 개를 기른다면 얼마든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세 마리의 개를 동시에 키운 적도 있다. 주워오거나 얻어온 개들이었다. 개들은 차례대로 죽었다.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막내이자 적장자의 구실을 하고 있다. 가족들의 카톡방에서는 늘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개와 우리
-
일요일 아침 TV를 보다 눈물을 줄줄 흘린다면, 아마도 SBS <TV동물농장> 때문일 테다. 안타까운 사연이나 심하게 다친 동물의 기적 같은 재활에 감격하지만, 이를 돕는 여러 사람들의 인내와 애정, 책임감이 감정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반대로 방치되거나 유기된 동물의 사연에도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 외에 인간을 향한 분노와 혐오를 함께 느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일수록 배후의 인간에게서 감지되는 덕목이나 윤리에 더 예민하고 엄격해진다. 동물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 또한 출연자 무리에 단기 임대 동물이 투입되는 형식의 문제점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의 ‘상근이’가 ‘국민견’으로 인기를 끈 이래 같은 종의 유기견 증가가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동물과 함께하는 삶의 일부만 전시하거나 특정 종에 대한 선망을 부추기는 예능은 더이상 고운 눈으로 보기 어렵다.
JTBC <마리와 나> 역시 강호동식 호형호제 예
[유선주의 TVIEW] 반려인 맞춤 프로그램
-
아버지가 몇해 전, 마당에 깔아놓은 잔디가 누렇게 죽어가던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마당 한 귀퉁이의 그네에 어머니와 세련된 투피스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미인이었는데 두 사람은 아주 진지하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저 여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해서 기웃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집과 우리 동네의 내 또래 아이들 집에 교학사의 아동 도서가 배달되어왔다. <세계 전래동화 전집> <어린이 자연 과학 만화 전집> <어린이 글짓기 교실>, 이렇게 세 가지 전집이었다. 우리 집 앞집에 살던 친구 집에도 나와 비슷한 구성의 교학사 전집들이 배달되었는데, 친구의 책들 중에는 나에게 없는 <우주 소년 아톰>이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우주 소년 아톰>을 보다가 가슴이 저릿저릿하는 이상한 감정을 경험했다. 그것은 슬프기도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이것이 만화가의 길이다
-
하루를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 카페에 앉아 뭔가 정리해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슴이 텅 비어 자그마한 진동에도 천둥이 치듯 쿵쾅거릴 것이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야 비교적 선명한 사실관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실과 기분이 적당히 분리되고 나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때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수가 있다.
문제는 하루가 아니라 평생을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영화는 프레임과 컷이 아닌 냄새와 질감으로 기억되고, 구체적인 서사가 아닌 뭉쳐진 이미지 그 자체로 동공 저 안쪽에 조각칼로 새겨지듯 각인된다. 그런 영화들에 관해서는 좀체 글을 쓰기 어렵다. 썼더라도 나중에 읽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인생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투명하기 때문에 ‘삶’을 뒤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여름, 종로2가의 (지금은 없어진)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그 모든 혼란과 혼돈의 서막
-
지난 몇년간 데이비드 보위를 종종 떠올리게 된 계기는, 그가 직접 작곡하고 불러 1969년에 싱글로 발매된 <Space Oddity>를 통해서였다. 일단 들을 일이 많았다. 우주로 발사된 탐사선에 문제가 생기고 톰 소령(Major Tom)이 우주 미아가 되어 사라져버린다는 내용의 노래다. 고장난 우주선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마음을 교신으로 전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한 낡은 바에서 <Space Oddity>가 흐를 때였다. 도전을 망설이는 월터(벤 스틸러)에게 환상으로 나타난 셰릴(크리스틴 위그)이 이 노래를 불러주고, 그는 헬기에 오른다.
사실상 10년 만의 장편을 만든 프루트 챈의 홍콩영화 <미드나잇 애프터>(2014)에서도 <Space Oddity>를 들을 수 있었다. 운전기사(임설)를 필두로 팻(임달화), 잉(혜영홍), 치(
[에디토리얼] Ground control to David Bowie
-
뮤지션이자 화가이기도 한 기린은 지난 몇년간 꾸준히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그는 뉴잭스윙과 알앤비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90년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기린은 90년대를 유행이나 향수가 아니라 ‘멋’으로 대우하고 체화한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인류 대다수에게 그렇듯 기린에게도 세상은 살기 힘들었다. 혈혈단신으로 투지를 불태웠으나 그는 가끔씩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쳐갈 때쯤 다행히 마음 맞는 동료를 규합하기에 이르는데,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에잇볼타운’(8BallTown). 기린이 재규어중사, 플라스틱키드(Plastic Kid), 위키즈(WEKEYZ), 요요(Yoyo) 등 자신과 음악적 색깔이 맞는 뮤지션과 함께 설립한 레이블이다. 뭔가 무협소설의 첫장 같지만 대충 사실이니 그냥 넘어가자. 레이블 설립 후 처음 발표하는 단체곡인 이 노래는 그동안 기린이 드러낸 음악적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은 물론
[마감인간의 music] 낭만 그대로
-
※<헤이트풀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이트풀8>의 오프닝이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작 <괴물>(The Thing)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세 가지다. 광활한 설원의 스코프와 배우 커트 러셀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서부극보다는 호러의 배음처럼 들리는 이번 음악은 지금까지 팝송 컴필레이션만으로 사운드트랙을 엮어온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최초의 오리지널 스코어이기도 하다. 기억이 희미해 다시 꺼내본 <괴물>은 짐작보다 더 깊이 타란티노의 의식에 촉수를 뻗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눈보라 속에 고립돼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들, 느긋한 듯 긴장된 공동휴게실 풍경, 간헐적인 하드 고어와 마지막 장면의 톤까지 <헤이트풀8>는 <괴물>과 은근슬쩍 평행선을 그린다.
01/03
‘타란티노 감독 여덟 번째 작품.’ <헤이트풀8>의 웅장한 오프닝에 폼나게 박힌 자막을 보고 흠칫했다. 겨우 여덟편? 열댓편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도중(途中)의 집
-
오랜만에 이사를 했다. 서가를 정리하다 20년 전에 구입한 <삐딱하게 보기>를 펼쳐본다. ‘자본주의에 가장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라는 모순된 명성을 가진 슬라보예 지젝, 그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무렵의 책이다. 지젝은 소설이나 영화 또는 농담 따위에서 그럴듯한 예를 끌어오는 재주가 있는데, 이 책에 인용된 여러 이야기 중 두 가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나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쓴 <조너선 호그의 불쾌한 직업>이라는 과학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우리의 우주는 존재하는 우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우주들을 창조하는 우주의 예술가들과 그렇게 창조된 우주에 파견된 예술비평가가 등장한다. 주인공 부부는 파견된 예술비평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후 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그에게서 절대로 차창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듣는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목격한 부부는 경고를 어기고 차창을 내린다. 그들은 열린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무정형의 세계와 지연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