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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청취자와의 전화연결 시간에, 며칠 뒤 시댁으로 갈 예정이라는 한 여성이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시댁에 가는 것이 너무너무 싫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런 극심한 명절 스트레스 때문인지 “맏며느리인가 봐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급기야 “아뇨, 맏며느리는 아니고요, 남편이 그냥 장남이에요”라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식의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지표가 그렇게 나를 향해 있을지라도, 결코 맏며느리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솔직히 나 또한 지난 한달 동안 그런 마음이었다. “편집장이세요?”라는 질문에 “아뇨, 편집장은 아니구요. 그냥 최종 데스크를 봅니다”라고 답했을지 모른다. 1월1일이 지났지만 설 연휴가 오지 않았기에 아직 2016년은 아니라는, 그래서 당당하게 공표할 만한 새해 계획은 아직 미뤄둬도 된다는 일종의 안심 말이다. 그런데 이제 진짜 2016년이 열린 것이다. 편집장이 된 지도
[에디토리얼] 이제 21주년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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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처러스 스리(Treacherous Three)는 1978년 결성된 힙합 크루다. 구성원 중 스페셜 케이를 제외한 쿨 모 디, 엘에이 선샤인, 디제이 이지 리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1980년, 그들의 첫 싱글 <뉴 랩 랭귀지>(New Rap Language)는 피처링으로 참여한 스푸니 지가 프로듀서인 삼촌 바비 로빈슨에게 소개하여 당시 메이저 힙합 레이블 인조이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첫 싱글이 괜찮은 반응을 보인 이후 1981년, 힙합계 초거성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the Furious Five)가 있던 슈거힐 레코드(Sugar Hill Records)로 옮겨 지금 소개하는 《The Treacherous Three》를 발매한다. <Whip It> <Yes We Can-Can> 같은 수록곡은 초창기 힙합 신의 비트와 라임을 느낄 수 있는 명곡이다. 특히 1984년 발매한 이 음반
[마감인간의 music] 초창기 힙합 신의 비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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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트레이더가 영화 해설 패널로 초청된 시사회에서 <빅 쇼트>를 보았다. 마침 장소가 여의도여서인지, 금융업 종사자들이 단체관람을 와서인지 극장 분위기가 색달랐다. 앞뒤에서 “선배님, 저는 코스피는 손대지 않은 지 오래돼서 호흡을 잊어버렸습니다”라든가 “그래서 변동성이 약화되면 그 영향은…” 하는 점잖은 대화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양도성 예금증서 약자가 뭔지 매번 새로 찾아봐야 하고, 오랫동안 선물 시장이 아트박스와 관련된 무엇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빅 쇼트>는 적당히 친절했고, 금융 용어가 어려운 것은 보통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애초에 고안된 말들이므로 당연하다는 대사로, 나의 열등감까지 다독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보통 사람의 이해를 차단하는 알파벳 퍼즐 같은 경제 용어가 만드는 문턱은, 바로 <빅 쇼트>가 묘사하고 있는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의 원흉이기도 하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자본주의가 어쨌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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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영화감독조합 송년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방은진 감독님이 무대에서 날 불러냈다. 상업영화 개봉작 중 여자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게 <특종: 량첸살인기>라는 거였다. 그날 처음 뵌 감독님은 날 응원하며 선물을 하나 주셨는데, 미리 참석 의사도 밝히지 않고 갔던 자리라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때론 존재만으로도 응원을 받는다.
‘여자감독’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순간은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할 때다. 여자감독이라서, 여자감독이기 때문에, 여자감독은 등등의 얘길 듣다보면 아, 이렇게도 내가 여자였구나 하고 자각하게 된다. 여자임을 잊고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를 보고 세상을 볼 때 내 눈은 여자 눈이 아니라 그냥 눈이다. 말을 할 때 여자 입이 아닌 그냥 입으로 말하고 시나리오를 쓸 때나 악수를 할 때 난 여자 손이 아니라 그냥 손으로 그 모든 것을 한다. 난 여자 몸이 아니라 그저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흔한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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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선배가 왜 나를….” 이렇게 시작한 대화의 대부분은 “너 좋아하는 거 아냐?”로 이어진다. 의문에 사로잡힌 이가 일방적으로 편집하고 확대한 단서로 사실관계를 추론하기엔 한계가 있고, 여기엔 가장 확률이 높고 무난한 대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의 주인공 홍설과 친구 모나의 대화도 그랬다. 자신을 싫어하는 게 분명했던 유정 선배가 갑자기 밥을 먹자고 따라다니는 까닭을 몰라 머리를 쥐어뜯는 홍설에게 같은 소리를 하던 모나는 결국 “아 그런 거 알게 뭐야”로 일축한다. 모나가 무심해서가 아니다. ‘왜’를 궁금해하는 것은 다만 너의 관심사라고 한정하는 타인이고, 덕분에 신경 쓰이는 누군가를 관찰하는 예민한 나, 누군가로 인해 당황하는 나에 대한 서술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홍설의 세계는 일기장을 벗어나 상호적인 관계로 보정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는 홍설(김고은)과 유정(박해진)이 사귀게 되는 시기를 앞당긴다. 사귀면서 경험하
[유선주의 TVIEW] 거참, 2% 부족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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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다. 조반니 보카치오에 따르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피렌체는 축복받은 땅이다. 호메로스에 의해 그리스가,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로마가 불멸의 땅이 됐다면, 이탈리아는 바로 단테 덕분에 영원에 이를 것인데, 피렌체는 ‘계관시인’을 낳은 ‘엄마의 땅’이라는 이유에서다. 신화와 사실 사이의 이야기이겠지만, 실제로 시인의 모친은 월계수 아래서 사내아이를 낳는 태몽을 꿨다고 전해진다(<단테의 삶>, 보카치오 지음). 어두운 눈빛, 매부리코, 검은 피부, 깡마른 얼굴, 아래턱이 앞으로 나온 불균형적인 인상은 시인이 세상과 싸운 갈등을 충분히 짐작게 한다. 피렌체는 시인의 고향이긴 하지만, 세상사가 종종 그렇듯, 어느 순간 단테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 뒤, 죽기 전까지 단 한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단테는 숭고한 소수의 성인들처럼, 고향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고향에서 매장되지도 못했다. 고향의 영웅을 이역에서 죽게 만든 죄의식 때문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단테의 고향, 예술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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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헛갈리는 게 있다. 빤한 사실인데도 헛갈린다. 뭐 그런 게 다들 한두 개씩은 있지 않던가. 나는 언제나 <페드라>가 <싸이코>보다 먼저 나온 영화라고 생각해버린다. 히치콕의 <싸이코>가 줄스 다신의 <페드라>보다 2년 먼저 나왔는데도 말이다. 그래 <싸이코>는 1960년이고 <페드라>는 1962년이지, 그런데 <페드라>가 <싸이코>보다 먼저야, 이런 식이다. 앤서니 퍼킨스 때문이다. <페드라>와 <싸이코>의 주연은 모두 앤서니 퍼킨스다. <페드라>에서 앤서니 퍼킨스는 새엄마 페드라와 사랑에 빠진 아들을 연기한다. 모든 게 망가져버린 그 순간 앤서니 퍼킨스는 은빛 애스턴 마틴에 몸을 싣고 그리스의 해변도로를 달리며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를 미친 듯이 따라부르고 새엄마의 이름을 비명지르듯 외치다가 끝내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앤서니 퍼킨스라는 이름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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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합본호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일단 특집은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넷플릭스’다. 주무를 맡은 장영엽 팀장이 힘겹게 저 멀리 말레이시아까지 드라마 <마르코 폴로> 현장 취재를 다녀왔고 김성훈, 김현수 기자는 편하게 서울에서 기사를 썼다. 입문자들을 위한 가이드부터 장차 국내 콘텐츠 업계에 미칠 영향까지 꼼꼼히 분석했다. 대체휴일까지 포함하여 기나긴 연휴를 위해 더없이 유용한 기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무료가입 한달 동안 넷플릭스에 빠져 지냈다. 가장 몰입해서 본 것은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였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주인공은 거짓 자백을 해서 충분히 가석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나중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그는 자신을 범인으로 내몬 피해자를 탓하지도 않는다. 피해자의 진술을 자기들 뜻대로 유도한 경찰의 잘못
[에디토리얼] 넷플릭스, 부산…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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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큰 기대 없이 이 음악을 들었다. 평론가의 의무감으로 모니터링 차원에서 신보들을 쭉 훑다가 처음 듣게 되었다. 그런데 1절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였다. 특히 편안하고 아늑한 편곡과 사운드가 훌륭했다.
재진은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다. 예전에 ‘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통해 샘 쿡의 <Nothing Can Change This Love>를 부르는 영상이 퍼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에 잠깐 화제가 됐던 가수다. 재진은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판 ‘허핑턴포스트’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재진의 가장 독특한 이력은 무려 13년 동안 암과 싸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계기로 삶에 대한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이 머금고 있는 위로는 다른 위로의 음악들보다 더 리얼하게 와닿는다.
<Don’t Fall Too Late>는 장르적으로는 팝 솔에 가깝다. 이때의 ‘팝’이란 말을 ‘평범
[마감인간의 music] 아늑하게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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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캐롤>의 테레즈(루니 마라)는 사물과 풍경의 사진을 즐겨 찍지만 사람 앞에서는 머뭇거린다. “프라이버시 침해처럼 느껴져서”다. 토드 헤인즈 감독도 테레즈와 같은 생각이다. 본다는 행위는 한없이 내밀해질 수 있다. <캐롤>은 테레즈와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숏까지, 응시의 연쇄로 사랑의 내러티브를 한줄 한줄 써내려간다. 두 여자는 군중 틈에서, 눈발 너머에서, 성에 낀 유리창 건너 기어코 상대를 찾아내고 시야에 담는다. 테레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고르는 캐롤을 향해 처음 셔터를 누른다. 캐롤은 테레즈가 자신을 보았으며 보았다는 사실을 필름에 새겼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나도 봤다”고 신호를 타전하기 위해 살짝 고개를 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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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시나리오작가 에런 소킨(<어 퓨 굿 맨> <웨스트 윙> &l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조물주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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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는 그 동영상에 대해 “굴욕적인 사과”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의 ‘자아비판’ 형식을 본뜬 사과라고 했다. 대만의 한 여성은 한글로 작성한 호소문에서 “총만 없다 뿐이지 흡사 IS가 인질을 죽이기 전에 찍는 동영상”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아이돌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멤버 쯔위의 사과 동영상, 근래 본 동영상 중 가장 끔찍한 영상이었다. 화장기도 없고, 핏기도 없는, 파리한 얼굴의 17살 소녀가 미리 준비된 사과문을 읽어내려가는 1분27초 분량의 영상 속엔 정작 쯔위의 진짜 목소리는 없었다. 그저 정치적 힘의 논리와 자본이 어린 소녀의 등을 떠밀어 연출한 복화술에 다름없었다. 나고 자란 조국의 국기를 흔든 게 그렇게 잘못인가. 쯔위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자기 나라 국기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게 잘 가르치는 일인가? 쯔위의 대만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잔혹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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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대충 초등학교 시절이겠거니 하고 검색을 해보니, 1976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 KBS에서 방영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깄다…’를 흥얼거리게 되는 주제가도 한몫했다. 폴이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을 두드리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어른들은 모르는’ 것이었다고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평범한 고3 학생인 장단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노답’인 인생을 매운 편의점 짬뽕과 컵 떡볶이로 달래면서, 곧 치러야 할 수학능력시험은 ‘폭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여고생이다. 수능 당일 비가 내리는 놀이터를 걷다가 우연히 밟아본 물구덩이가 그녀에겐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이 되는데…. 그 이상한 나라는 조선시대고, 기우제를 지내는 세종대왕의 앞에 ‘단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세종대왕과 고3 단비의 우정이, 또 사랑이 갖가지 시
[김호상의 TVIEW] 웹드라마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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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과정을 기승전결의 서사로 풀어낸다. 물론 그렇지 않게 보이는 소설과 영화도 있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일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는 소설이나 플롯과 스토리보다는 비주얼과 무드가 주가 되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라 해도, 처음 수수께끼를 내고서 나중에 문제를 무효로 해버리는 방식 자체는 어쨌든 자문자답이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시작과 끝은 곧 문제와 답이며, 이것은 작품 안과 밖에서 시간의 지배를 받는 서사 예술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최소한의 형태다.
모든 영화는 어떠한 문제를 푸는 어떠한 연산이다. 낼 수 있는 문제가 다양한 만큼 할 수 있는 답에도 한계가 없다. 문제는 작가 마음대로 낼 수 있지만 그 답은 관객의 마음에 도달해야 한다. 정해진 답을 향해 달려가는 편협한 작위의 영화가 있고, 문제를 풀다보니 도착하는 불가해한 삶 같은 영화가 있다.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결국 중력의 영향을 받는 영화는, 이기적인 인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실패한 수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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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요리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1990년대에 이미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남자였고 학생이었고 자취를 했다. 다시 말해 힘과 시간은 남아도는데 돈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강제로 주머니 털어 나온 돈으로 장을 봐서 돈 주고는 못 먹을 음식을 먹는 거.
요리의 나라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아이는 산동네 자취방에 월계수 잎과 가쓰오부시,곰국 끓이는 들통을 두고 있었다. 다진 고기와 야채와 토마토를 볶다가 월계수 잎을 곱게 띄워 약한 불에 끓여 미트소스를 만드는 그 애를 보며 아, 조기교육의 힘이란 굉장하… 긴,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몽땅 조기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프랑스 살았다고 다 요리 잘하면 나는 고향(무려 전주다)에서 한정식 배워 상경했겠다. 우리 엄마는 집에 가면 즉석국 사줘, 그게 더 맛있대, 너도 아까운 고기 버리지 말고 그냥 인스턴트 소스 써.
그의 도전이 낳은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맛의 비밀은 기다림일까 조미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