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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기도 했던 소설가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라 말했다. 그의 단편 중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가 상상한 도서관은 육각형 모양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열실로 구성되고, 그곳에 비치된 책들은 모두 410쪽의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책의 글자들은 쉼표, 마침표, 여백을 포함한 알파벳으로 조합되어 있는데, 이 책들은 가능한 모든 알파벳의 조합을 망라하고 있다. 결국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책은 물론이고 장차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책이 이 도서관에 있게 된다.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의 수는 아마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의 모든 원자의 수효보다 많으리라. 이러한 보르헤스의 발상을 확장해보면, 세상의 모든 음악, 세상의 모든 미술, 세상의 모든 영화를 소장한 아카이브를 상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엄청난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작품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이러한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바벨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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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마루코는 아홉살>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던 <치비마루코짱>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20여년에 걸쳐 방송되고 있는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마루코와 언니, 부모님, 할아버지 등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아홉살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과 가족의 모습이 꾸밈없이 그려진다.
KBS와 투니버스에서 방송되고 있는 <파파독>은 이 <마루코는 아홉살>을 떠올리게 한다. 한 소녀를 중심으로 캐릭터가 파생된다. 초등학생 유별이가 겪는 학교생활의 다양한 모습- 반장 선거, 왕따, 소풍 등- 을 그리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3인조 걸그룹 ‘큐티스’를 좋아하는 철없는 어른, 유봉구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가 우연한 계기로 개(진짜 ‘멍멍개’다)가 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파파독>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체가 어딘가 익숙하다면 캐릭터 디
[김호상의 TVIEW] 가족 시트콤식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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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거의 모든 일간지가 보도했던 기사의 한 토막. “올해 일곱살 난 어린이 중 65%는 현재 없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제목은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다소 윤색한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전세계 일자리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15개국에서 향후 5년 안에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대신에 2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약 5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 때문이다. 초기 산업혁명에서 인간의 생산직을 빼앗았던 기계가 2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인간의 사무직 노동마저 빼앗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이 자아를 인식한다면
다 떠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봤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공급해주는 디제이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 음원 사이트, 인터넷-디지털 방송국 모두가 소비자가 설정해놓은 범주 안에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그들은 우리 밖에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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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짝꿍에게 기쁜 일이 생겼다. 오빠가 감옥에 가게 됐다, 만세.
사정은 이랬다. 고등학교를 중퇴할 때까지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그 애의 오빠는 시내 두 번째 조직이었던 **파에 스카우트되면서 갑자기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장한 청년이 되었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형님을 대신해 “한 1년 정도만 살고” 나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경사인가, 그랬다. “아무나 가는 감옥이 아니거든.” 그건 나도 알아.
그 애 말만 들으면 감옥이란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조직에서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지(그런데 감옥에서도 노동은 한다더라), 1년을 놀다와도 경력은 남들 두세배로 쳐주지, 사회로 나오면 어느덧 형님의 오른팔이 되어 있지. 그 애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우리 오빠 이제 성공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다, 홍콩영화 보면(아직 한국에는 조폭영화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감옥 갔다가 따거한테 배신당하고 칼에 찔려 죽는 게 다반사던….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거나 혹은 받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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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가 물었다. 처음 영화기자 일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냐고. 나는 주저 않고 답했다. ‘검색’이라고.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기사 쓸 때 누구나 인터넷을 검색해서 참고하는 것 아니냐고. 왠지 내가 정말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인데, 2000년경 영화잡지 <키노>에서 영화기자 일을 막 시작하던 때에는 인터넷 환경이 원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씨름해야 했다. 사내의 일부 컴퓨터에서만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검색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메모를 해뒀다가, 그 컴퓨터를 사용할 시간을 기다려 잽싸게 검색을 하고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사내 기사 인트라넷 같은 시스템도 없어서, 원고를 작성하면 정성스레 프린트를 하여 정성일 편집장님의 책상에 올려두고 빨간펜을 기다렸다. 이세돌 바둑기사가 알파고에게 충격의 2연패를 당한 지금,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몇해 전 <씨네
[에디토리얼] 그냥 쓰지 말고 찾아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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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인 세바 준을 거꾸로 쓴 음악 프로듀서, 누자베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초•중반 일본 TV애니메이션 시리즈 <사무라이 참프루>를 본 직후였다. 퓨전 시대극이었는데 재즈 힙합을 일본식으로 해석한 배경음악이 신선했다. ‘대체 누가 만들었지?’ 하면서 사운드트랙을 찾다가 음악감독 중 한명이 누자베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힙합’에 기반을 둔 그의 강점은 오래된 음악 속, 누구도 발견 못한 재즈와 솔을 샘플링하여 소개하는 능력이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랩의 조화는 강하고 남성 우월주의적인 모습을 힙합의 전부로 알던 사람들조차 푹 빠져들게 만든다. 미국 포크 기타리스트이자 솔 보컬리스트인 테리 칼리어의 명곡, <Ordinary Joe>가 지금 젊은이들에게 알려진 데는 누자베스의 영향이 컸다(물론 원곡도 무지막지하게 아름답다!). <The Final View> 역시 누자베스의 정규 음반을 들은 이래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누자베스의 음반
[마감인간의 music] 이름이 곧 장르가 된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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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랄리의 여름>의 주인공인 터키 바닷가 시골의 다섯 자매는 어느 날 남자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는 죄목으로 집에 갇혀 신부수업을 받고 집안 어른이 정한 중매결혼을 차례차례 강요받는다. 그러나 분방한 소녀들의 정신은 반동(反動)을 멈추지 않는다. 어린 동물들처럼 한데 엉켜 기운을 나누고 호시탐탐 탈주를 꾀한다. 감독은 도입부부터 랄리와 언니들의 모습을 가둘 수 없는 자연의 포스처럼 묘사한다. 좋아하는 교사의 전근으로 울음을 터뜨린 막내를 끌고 언니들은 흑해로 달려간다. 헝클어진 머리와 비쳐 보이는 속옷 따위 아랑곳없이 깔깔대고 몸을 부대끼는 동안 눈물은 날아가버린다.
02/13
주간지는 1년에 두번 명절을 틈타 휴간한다.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평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컴퓨터 디스크 폴더와 수납장 정리의 기회다. 이번 연휴에도 선반 몇칸을 차지하고 있는 VHS테이프들을 죄다 끌어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도로 집어넣었다. 개중에는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비디오가게를 지나야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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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한창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44시간을 돌파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여당이 무효를 제기한다 하고 선거구획정 문제도 있으니 오래가진 못할 듯싶다. 야당마저 어차피 질 싸움 싸우면서 지겠다는 심정이라는데, 어쨌든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누군가는 릴레이로 이어지는 캐릭터 쇼로 받아들이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신기록 경신을 기대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듯 국회방송을 시청하고 익살스런 댓글이 여기저기 재인용된다. 그렇다고 유쾌하게만 소비되지도 않는다. 냉정하고 분석적인 시선이 공존하고 이 새로운 정치 이벤트에서 테러방지법이라는 쟁점은 흐려지지 않는다.
무제한 발언이라는 단순한 룰. 토론자는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뿐이다. 관련 주제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만의 조건 때문에 형식적 시간 때우기는 불가능하다. 덕분에 텅 빈 국회에서 홀로 인간체력의 한계까지 버티는 모습은 밀도감 있는 모노드라마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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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즈음의 실제 국회를 희화화한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2013)은 의장 직권상정으로 언론법을 밀어붙이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의 대치상황 스케치로 시작한다. 여당은 장소를 바꿔 기습 표결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려 날치기를 시도하고, 야당의원은 당사 캐비닛에서 해머를 챙겨 회의장 문을 부수러 달려간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막고자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 이후 시점인 KBS 드라마 <어셈블리>(2015)에서는 이전 같은 본회의장 점거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국회의원 진상필(정재영)이 국회법에 의거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지연시킨다.
진상필이 임시국회 종료까지 25시간을 홀로 버텼다면, 현실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표결을 지연하려는 야당의원들의 릴레이로 엿새를 넘긴 참이다. 미디어법 당시 날치기를 막으려고 의장석까지 점프했던 ‘파이터’ 의원은 드라마에서
[유선주의 TVIEW] 서늘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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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다. 그 중심은 물론 피렌체다. 다른 도시들은 한때 피렌체와 패권을 다투다 그 세(勢)를 잃었거나, 또는 약화된 채 지금에 이른다.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다른 도시들은 피사, 시에나, 루카, 그리고 아레초 등인데, 이곳은 지금도 피렌체에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대학의 도시 피사와 예술의 도시 시에나의 경쟁의식이 대단하다. 중세 이후의 수많은 전투 때문인지, 간혹 이곳에선 피렌체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다. 피렌체에 밀리지 않겠다는 그런 경쟁의식이 이 도시들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검투사’의 기억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가 배경인 팩션(faction)이다.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 이 팩션은 상상의 인물인 막시무스(러셀 크로)의 기구한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현제(賢帝) 아우렐리우스의 총애를 받던 장군이었는데, 타락한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영국인 환자’가 죽어 누워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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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뽀로미’와 ‘반야바라밀’의 차이는 뭘까.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 연작에서 시간 이동을 하려는 주성치가 달빛 아래 월광보합을 들고 외치는 주문이 바로 뽀로뽀로미다. 실제 대사인 반야바라밀의 광둥어 발음을 보다 더 귀엽고 ‘주성치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이를 풀자면, 불교에서는 반야(지혜)를 최고의 바라밀(보살이 부처가 되는 과정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자 열반으로 가는 최상의 길로 설파하고 있다. 말하자면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이 수행을 하는 중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팩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주성치의 팬들이라면 오래전 VHS 비디오로 출시됐던 <서유기> 연작의 자막이었던 뽀로뽀로미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다.
그런데 일부 애호가들이 번역은 무조건 가감 없이 실제와 가까워야 한다는 이유로, 뽀로뽀로미를 정확하게 반야바라밀로 바꿔달라고 출시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었다고도
[에디토리얼] 뽀로뽀로미와 강백호 사이, 번역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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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 리파는 자신의 음악을 ‘다크 팝’이라고 규정했다. 아마도 저음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라나 델 레이 이후 가장 매력적인 저음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20살의 치기 어린 표정에 서늘한 누아르를 드리운다. <Last Dance>의 도입부가 특히 그렇다. 절창도 아닌 읊조림으로 한 소절 만에 귀를 사로잡는 노래는 드물다. <Last Dance>는 그런 드문 순간을 소유한 노래다.
두아 리파는 라나 델 레이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어두운 바이브와 몽롱한 질감은 공통적이지만 좀더 댄서블하고 비전통적이다. ‘갱스터 낸시 시내트라’로 불렸던 라나 델 레이가 과거의 크루너들을 모방해 스트링 편곡을 즐겼다면 두아 리파는 언더그라운드 댄스와 전자음을 즐긴다. 2015년 <New Love>로 데뷔한 두아 리파는 아직 정규 앨범도 내지 않은 신인이지만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올해엔 슈퍼스타 등용문으로 공인된 <BBC Sou
[마감인간의 music] 걸 크러시 유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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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O. 러셀 감독(<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은 언쟁 장면을 쓰고 찍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1:1 갑론을박부터 방 안의 모든 인물이 한마디씩 거들며 삼천포로 빠지는 수습 불가 논쟁까지, 러셀의 영화에서 말싸움은 액션 세트피스를 대신한다. 배우 제니퍼 로렌스와 세 번째로 손잡은 신작 <조이>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가 겸 감독은 영화 속 대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다. 데이비드 O. 러셀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보내왔다. “영화 속 대화의 제일 중대한 기능은 리듬과 감정(의 구현)입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읽어볼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도 ‘이 대화가 살아 있는가?’입니다.”
02/11
<대니쉬 걸>의 제목이 직접 지칭하는 덴마크 여자는 물론 에디 레디메인이 연기하는 트랜스젠더 릴리일 것이다(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 여부와 무관하게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자아 정체성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외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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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민망하고 남우세스럽다. 한국 야당 정치인들이 미 대선 돌풍의 주역인 버니 샌더스와 닮았다고 다투는 볼썽사나운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좋게 봐서 정치 마케팅이지 사실 그 어떤 정치적 비전과 가치도 없다는 자학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읽는 혜안이 없으니 저 선거 열기만 생선가게 고양이처럼 탐욕스럽게 곁눈질하는 표정들.
그러나 버니 샌더스 열풍은 곁눈질로 커닝할 수 없는 논술형 시험문제에 가깝다. 얼마 전,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르몽드>에 기고한 것처럼, 샌더스 현상은 레이건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오바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다른 형식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그 분석이 옳다. 미국 자본주의의 지층이 뒤틀리고 있다는 신호다. 대기업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갈 거라는 신자유주의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동안 최저임금은 40년째 동결되었고, 상위 1%의 부자들이 미국 전체 소득의 23.5%를 소유하는 미증유의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급기야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제 더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