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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7일 첫 방송된 JTBC의 <비정상회담>이 100회를 맞았다. 위클리 프로그램으로서 100회라면 2년 남짓, 프로그램의 인기도와 지속 가능성을 가늠할 만한 담금질이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일종의 스핀오프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까지 성공적으로 론칭되었다. <비정상회담>으로 쌓아올린 그들과의 친밀도, 궁금증, 캐릭터가 동시에 버무려져 시너지를 만들어낸 프로그램. 벨기에 줄리앙의 집에서, 중국 장위안의 집에서 우리는 비정상들의 가족과 어린 시절을 만나며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영국, 미국, 일본, 중국, 노르웨이, 이집트, 벨기에, 프랑스, 브라질, 그리스, 네팔, 캐나다, 가나, 러시아, 폴란드…. 대충 기억나는 비정상들의 국적만 헤아려봐도 이 정도다. 이들은 우리말 구사뿐 아니라 우리 문화와 생활 습관에도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비정상회담>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역시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여과지를 통
[김호상의 TVIEW]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 200회를 바라는 나, 비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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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고등학교 재단은 버스 회사였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남들 다 가는 제주도 대신 버스 타고 갈 수 있는 설악산과 서울로 가야 했지만(서울 구경이라니, 수치스러웠다) 그렇다고 버스 대여비를 안 받은 것도 아니었으니 대체 누구를 위한 수학여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들도 제주도 가고 싶었을 텐데.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수학여행을 교복 입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어, 근데 우리 학교는 교복이 가지색이지, 꿈돌이 보러 단체로 교복 입고 대전 엑스포 갔다가 우리가 구경거리 됐다고. 그 소식을 듣고 성난 소녀들은 주동자도 없는데 입실을 거부하며 운동장에서 생애 최초의 침묵 시위를 벌였고, 첫날만 교복을 입기로 재단쪽과 대타협, 그렇게 하나로 뭉친 민중의 힘을 경험했다고 믿었으나… 정말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골 버스 회사가 관광버스를 수십대씩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당연히 버스가 모자랐다. 게다가 때는 봄날, 1년에 두번 있다는 버스 회사의 대목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택시 기사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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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1954)였다. 박찬욱 감독이 비스콘티의 열렬한 팬인 데다가, 일제강점기를 무대로 한 <아가씨>처럼 <센소> 또한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때를 배경으로 금지된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차이는 있지만, <아가씨>에서 조선과 일본의 경계처럼 <센소>에서는 이탈리아 귀족 여성과 오스트리아 점령군의 젊은 장교가 사랑에 빠진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센소>를 추천, 상영하면서 ‘비스콘티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 평하기도 했고, 그즈음 서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해서는 전용관 건립과 자료 보존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센소>의 예를 들기도 했다. <센소> 도입부에 베니스 펠리체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공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박찬욱과 비스콘티, 나홍진과 코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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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 이십대 후반의 십분의 일 정도는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바쳤을 거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 1편을 처음 접한 날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내 고등학교 성적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범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였지만 블리자드 게임 중 내가 가장 사랑했던 건 단연 <워크래프트> 시리즈였다. 요컨대 나는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대해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 북미의 처참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미덕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연루자의 심정으로 영화를 봤고, 이 장면 하나를 건진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정신승리해본다.
나는 두껍고 뭉툭한 손가락을 좋아하나 보다. 어릴 적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얼굴을 한번에 덮는 게 좋았고, 사촌 형이 뭉툭한 손가락으로 프라모델을
[송경원의 덕통사고]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대한 원작 게임 팬의 편파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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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먼저 던져본다. ‘제이. 로’ 하면 당신은 누구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나. 만약 제니퍼 로렌스를 연상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그래도 늙지 않았다. 그런데 제니퍼 로페즈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면? 역시나 축하한다. 옛날 사람. 옛날 사람. 어쨌든 1990년대 라틴 열풍의 주역이었던 제니퍼 로페즈가 신곡 <Ain’t Your Mama>로 돌아왔다. 곡은 도입부부터 자신이 제니퍼 로페즈산(産)임을 숨기지 않는다. 극도로 절제되었지만 들썩이는 라틴 비트가 딱 제니퍼 로페즈 음악에서 들어왔던 시그니처 사운드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니멀한 신시사이저와 드럼, 퍼커션 연주는 그가 음악도 음악이지만 ‘메시지’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를 설계했음을 말해준다. 기실 사람들(적시해서 말하자면 남성들)은 제니퍼 로페즈의 보험 든 엉덩이로 대표되는, 그의 섹시한 이미지만을 거의 폭력적인 시선으로 소비해왔다. 그는 비욘세의 1990년대 버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비욘세가
[마감인간의 music]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 제니퍼 로페즈, < Ain’t Your M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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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될 일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었으니 발 뻗을 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뜻은 고마우나 돌아가라는 얘기였다. 입이라도 맞춘 걸까. ‘두 어른’의 말씀이 같았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허나 우리 고집도 셌다. 예술이 별건가. 완고한 세상에 금을 내려는 몸부림이 예술이라면, 당신들의 삶은 온통 불순하였고, 거리에 내던진 말과 몸짓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우리의 작가가 되어 달라. 두 어른. 어찌 모르겠는가. 빨갱이 타도와 애국결사를 외치며 버르장머리 없는 이 땅의 자식놈들에게 2만원짜리 회초리를 휘갈겨대는 어버이들의 나라에서 두분의 존재는 이미 가냘프다는 것을. 어쩌면 평생 종이호랑이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고함이 포효가 아니었는가.
문정현은 일흔여덟살이다. 1975년 인혁당 수형자들이 사형선고 하루 만에 형장의 이슬이 되고 시신마저 탈취당할 때, 영구차를 가로막고 몸을 던진 젊은 사제였다. 1976년 박정희 영구집권에 반대하는 3•1구국선언 사
[노순택의 사진의 털] 종이호랑이 두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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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다시 읽으려다가 같은 책에 실린 다른 단편에 눈길이 갔다.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였다. 얼마 전 작가의 이름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늘 읽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대개 마구잡이로 책을 읽게 된다. 계통 없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떤 틀이나 중심축을 바라게 된다. 지난 몇년 동안 내가 중심축으로 삼은 주제는 이동, 좀더 구체적으로는 근대를 배경으로 이동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이동하는 여성 서사는 생각보다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현대가 배경이라면 사정이 조금 낫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점이 없을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제인 에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제인 에어가 비참하게 죽지 않고 이동을 종료할 수 있었던 까닭은 기본적으로 동화에서처럼 숙부의 유산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혜석을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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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선으로 감상하기에 <러브 스토리>(감독 아서 힐러, 1970)는 신파적인 측면이 다분할 것이다. 경제적 배경이 다른 두 집안의 남녀가 가정을 꾸린 뒤 궁핍한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는 가운데, 돌파구를 찾아갈 무렵 아내에게 찾아온 병환과 그로 인한 쓸쓸한 결말. 이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을 꼽는다면 아마 짧은 순간에도 몇몇 영화와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보면 관객의 입장에서 이만큼이나 피로도가 높은 소재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감상은 영화 속 이야기나 분위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어떤 환경에서 관람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리 만들어지는 듯싶다. <러브 스토리>가 국내에서 개봉됐던 70년대 초반은 국내 영화보다 외화가 대세인 시기였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영화와 외화는 서로 사뭇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외화의 인기가 월등히 높아 <벤허> <대부>와 같은 영
[내 인생의 영화] 첫 기억 - 류재림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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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나 자신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부조리한 죽음의 상황은 무엇일까? 그 상황의 이유와 결과에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어 허무하고 허탈하고 허깨비 같은 죽음. 멀쩡히 가게에서 파는 제품을 구입하여 쓴 결과로 사람이 죽고 성별이 살인의 이유가 되는, 이미 상상 따위 필요 없는 현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와 시인 자크 드뉘망이 말했듯 자연사란 없고 그래서 모든 죽음은 자연사이지만. 그래도 부득부득 더욱 부조리한 상황을 찾는다면 나는 결국 전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땅이 아직도 공식적으론 휴전 상태임을 고민하며 살지 않는다. 북의 사회주의 지옥과 남의 자본주의 지옥, 양쪽 모두 세습의 나라에서 각자의 입장으로 지옥을 버티느라 애써 전쟁까지 상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전쟁인가? 어쩌면 나는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할 나 자신의 부조리함이 더 두려운 것인지 모른다. 동원령에 따라 정해진 집결지에 순순히 모일 나와 우리의 모습. 거절할 용기보다 더 큰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전쟁의 부조리함을 그린 영화들 <지옥의 영웅들> <고성을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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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덜,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가 익숙하다. 새삼스럽지만, 또 여행이다. 케이블과 종편이 지상파보다 유연한 편성을 이용해 출연 멤버를 바꾼 시즌제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간판 예능으로 삼은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여행의 고생담을 뽑아내기 위한 주요 설정이 지상파 국내여행 프로그램 시절에 머물러 있던 탓에 여기가 아닌 곳의 고생은 저기까지 가서 대체 왜? 라는 짜증을 낳기도 한다. 무리하게 경비를 제한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자고 해당 장소에서 제한되는 행동이 무시될 때도 있다. ‘할배’들이 취사가 금지된 호텔 객실에서 찌개를 끓여먹고, ‘청춘’들은 여럿이 앉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만 시켜 마시거나 공용 수영장에서 알몸 수영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만 있기엔 어색할 부자간 해외여행기. 별 기대 없이 시청한 tvN <아버지와 나>의 첫회는 쾌적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른바 민폐라고 부를 행동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초반이라 일곱 팀의 부자가 다 출연하진
[유선주의 TVIEW] <아버지와 나> 평범한 척하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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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의 마지막 장면. 머리에 심한 충격을 입고 코피를 줄줄 흘리는 유덕화가 우체통으로 웨딩숍 유리를 박살내고는, 오천련과 함께 각각 턱시도와 드레스를 맞춰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성 마거릿 성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만의 결혼식. 하지만 달콤한 순간도 잠시, 유덕화는 오천련을 이곳에 남겨두고는 복수를 위해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센트럴의 가스등 계단으로 떠난다. 지갑도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유덕화를 따라나왔을 그녀를 심야에 택시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남겨두고 떠났다는(-_-;)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애절하게 원봉영의 <천약유정>이 흘러나오는 그 장면은 <나의 소녀시대>에도 오토바이를 탄 왕대륙의 모습으로 패러디될 만큼 홍콩영화의 추억의 명장면이다.
“철없는 시절 꿈을 좇길 사랑했고, 단지 앞을 향해 날아가고 싶어 했지”라고 노래했던, 역시 유덕화의 노래 <망정수>(忘情水)는 또 어떤가. <영웅본색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나의 소년시대,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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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문구들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 있는 ‘살려 달라’는 포스트잇. 그 하나하나가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 많은 아찔한 순간들을 돌아보았고, 그게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는 확인에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지난 몇주간, 여성들은 맞았고(부산 동래구 폭행사건), 공식 행사를 중단당했으며(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주최 ‘마이리틀여혐-여혐러에게 고하는 사이다 토크쇼’ 제지 사건), 집단 성폭행(브라질의 16살 소녀 성폭행 사건)을 당했다. 현실의 여자들이 크고 작은 고초를 당하는 동안, 영화 속 여자들은 성녀로 추앙되었다가 (배신감이라 여기는 감정을 못 이긴 남자들에 의해) 창녀가 되는 나락에 빠졌다. 돌아보면 상당수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여성은 남성의 성장에 등장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어떤 이물질로 취급당하기 일쑤였고, 사춘기 소년들은 그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성장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강남역 살인’이라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하여, 여행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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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여름이 왔다. 아직 안 왔나? 아무튼 왔다고 치자. 난 벌써 에어컨을 틀고 있다. 온도는 20도로 맞춰놨다. 여름이 오면 듣는 음악도 달라진다. 플레이리스트가 바뀐다. 요즘 가장 많이 재생하는 노래는 바로 토이의 <여름날>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찾아보니 노래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2008년에 난 뭐하고 있었지? 확실한 건 그때도 여자들의 엉덩이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이 노래는 노래 자체로도 훌륭하다.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든 기타 팝이다. 유희열과 신재평의 조합이 기대만큼의, 아니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노래에는 슬픈 사연이 있어… 는 아니고, 이 노래에는 모티브가 있다. 바로 만화 <H2>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노래라는 게 신의 한수인 것. <H2>는 고교야구만화를 가장한 청춘만화다. ‘여름’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테마이기도 하다. <H2>
[마감인간의 music] 청춘 링거 - 토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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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김종필씨를 만나고 안동 하회마을을 가는 등 대선행보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즐비하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하고 있다. 왜 하필 독재자가 수십년째 집권 중인 우간다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수교를 맺었고, 우간다가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이해 정도가 아니라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4대악 근절에 1970년대에나 어울릴 ‘불량식품 근절’이 포함된 것을 본 이후로는 여간해서 놀라지 않는다. 모두 ‘애도의 정치’일 뿐이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주어와 술어의 일치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 정치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의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그것은 알다시피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며,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불명예스럽게 살해된 지도자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사람들의 애틋한 감정’ 때문이다. 그 인간적인 감정은 수백만명의 표로 응고되어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애도의 정치,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