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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창간호를 1억원에 삽니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오래전 1989년 <로드쇼> 4월호 창간호를 2권 샀었더랬다. 한권은 소장용, 한권은 자유롭게 오려서 코팅 책받침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표지 모델이 소피 마르소였는데, 기억에 남는 기사는 배우 박중훈과 함께 이른바 ‘스크린 카페’를 탐방했던 기사, ‘데이트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홍콩 배우 주윤발과 한국 배우 이혜영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영화월간지 <스크린>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경쟁지 <로드쇼>가 그렇게 등장했다. 1억원 이벤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가 만든 창간호를 되돌려 삽니다. 1989년 4월호 창간호는 10년이 지난 뒤에는 1,000,000원이 됩니다. 가급적 파손을 피해주시고 10년 동안 보관하시면 횡재를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당첨자는 경찰관 입회 아래 공정하게 100명을 추첨하여 각각 1,000,000원씩을 드린다”고 했다. 1억원을 다 준다는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영화잡지 생명연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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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씩 웃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로 음악 얘기를 많이 했는데, 록/메탈 신봉자였던 나와는 반대로 포크적인 음악에 주로 반응했던 게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고, 그 조용했던 사람이 뮤지션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아톰북’이라는 밴드를 했고, 이후에 솔로로 나와서는 ‘빅베이비드라이버’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때부터였다. 세상이 그의 음악에 서서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에 그의 음악이 쓰였고, 평단의 호평도 이어졌다. 특히 2014년에 발매된 《A Story of a Boring Monkey and a Baby Girl》은 정말이지 좋은 소리를 담고 있었다. 과한 구석이나 모자람 하나 없이 포크와 컨트리를 따스하고 포근하게 오갔다. 그런 그가 동료와 함께 막 밴드를 결성해 또 다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의 《bbdTRIO
[마감인간의 music] 편곡의 묘 -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 《bbd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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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있다는 ‘산자루’라는 조각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각각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으로, 그 의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세법의 근간을 이루는 “말하지 마라, 듣지 마라, 보지 마라”라고 들었다. 이 조각이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비례물언, 비례물청, 비례물시에서 유래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마라”라는 뜻이었다.
그 후 제법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게 되었고,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스스로 귀와 입을 막아버리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짧게나마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진다. 내가 편하고 볼 일이라는 가짜 믿음을 유지하는 동안, 꽤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부서지고 깨졌다. 그리고 내가 외면하는 동안, 적어도 내가 볼 수 있었던,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보고, 듣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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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물었다. 난 이제 겨우 서른일곱살이야. 인생의 영화라니, 좀 가혹하지 않나. 영화를 즐겨보진 않지만 앞으로 만날 영화가 족히 100편은 될 것이다. 친구가 대답했다. 아홉살에게도 인생이 있는걸. 그렇지, 그건. 두꺼운 책 하나가 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군데군데 해진 곳도 있고, 몇몇 군데는 귀퉁이가 접히기도 한 그런. 꽤나 멋진걸. 그런 생각을 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떤 당위도, 논리적 연계도 없이 떠올랐지만 분명, ‘그 때문’이었다.
집요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찾아드는, 회상(回想)이다. 나는 잔디밭, 이라기보다는 잡초들 위에 누워 있고, 살포시 잠이 들었나. 내 생일이었다. 왜 혼자 누워 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멀리 친구들이 놀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특별한 이들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다. 그 애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
[내 인생의 영화] 유희경의 <그레이트 뷰티> 일생을 서성이게 만들 위대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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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테네를 배경으로 한 <제이슨 본>의 첫 액션 세트피스는, 구제금융 찬반을 둘러싼 그리스 국민들의 시위와 뒤섞여 있다. 본은 의도치 않게 진압경찰과 충돌하고 물대포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며 전진한다. 군중의 깃발에 가려져 CIA 시야를 간간이 벗어나기도 한다. 세팀의 적을 차례로 격퇴하고 따돌리는 이 시퀀스는 <본 얼티메이텀>의 워털루역 장면과 탕헤르 추격전을 교배한 듯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본 시리즈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을 처음 스카우트하게 만든 북아일랜드 시위 참사를 그린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엔터테인먼트 판본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07/27
이럴 수가! 올여름 할리우드발 대형 속편 <도리를 찾아서>와 <제이슨 본> 사이에는 뜻밖의 평행이론이 성립한다. 두 영화 모두 전편이 세워놓은 기준치가 높고, 스튜디오 또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이 큰 기대를 조성했다. 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자필반(去者必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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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차면 기울고 활짝 핀 꽃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땅에 떨어진다. 1950년대와 60년대 일본 만화의 대명사와 같았던 데즈카 오사무도 7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드넓은 자기 집 마당에 건물을 보란 듯이 세우고 제2의 월트 디즈니를 꿈꿨던 애니메이션 사업을 접어야 했고, 무시 프로덕션도 부도를 맞아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만화잡지의 연재도 끊어졌다. 데즈카 오사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자신의 어시스턴트들에게 <소년 매거진>에 연재 중이던 가지와라 잇키 원작, 가와사키 노보루 만화의 <거인의 별>을 펼쳐 보이며 이런 만화가 어떻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던 일은 이 시기의 유명한 일화다. 60년대 중반부터 반(反)데즈카 오사무를 외치는 만화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만화를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와 구별해 극화라 이름 붙였다. <생존게임>과 <고르고 13>으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오가 그 선두 주자였다. 50년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고 자란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처절한 고통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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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의 오연주(한효주)가 웹툰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 강철(이종석)을 돕는다. 이 무슨 유치한 설정이냐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의 MBC 드라마 <W>는 초기 설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즐길 수 있는 여타 판타지 드라마처럼 시청자를 호락호락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와 현실을 오간다는 설정의 드러나지 않은 나머지를 곱씹고 추론할 여지를 던진다. 초반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연배우의 기묘한 앙상블이었다. 이종석은 웹툰 주인공 강철을 마치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의 스테레오타입을 복제하듯 연기하고, 한효주는 현실의 웹툰 독자 오연주를 만화의 양식화된 감정표현과 과장된 동작으로 표현한다. 이들이 서로의 세계를 절충하는 공간은 진짜 현실세계를 모사하는 드라마 속이고, 이는 웹툰 바깥 또 하나의 프레임, TV모니터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자신을 창조한 만화가쪽으로 정확하게 시선을 맞췄던 강철의 각성은, 어쩌면 오연주와 더불어 또 한겹의 레이어를 각성하는 전
[유선주의 TVIEW] 각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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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지난주 한 지상파 뉴스에 소개되는 일이 있었다. 보통 모 잡지라고 하거나 제호를 가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예 <씨네21>이라는 제호와 표지 인물까지 클로즈업으로 담고 있었다. 한 멀티플렉스에 취재를 나간 뉴스 기자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관객과 평론가의 별점(<씨네21>의 별점평)이 ‘정반대’라며 영화에 호평만 늘어놓는 두 시민의 인터뷰를 소개한 뒤, 언제나 스스로 ‘독립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어떤 영화를 연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한 독립영화감독의 멘트도 덧붙였다. <씨네21>에서 <인천상륙작전>에 낮은 별점을 준 기자와 평론가들을 “이념에 빠진 영화평론가”라 말하는 것 같았고, “반공영화라는 자체를 놓고 역사적으로 쭉 뒤져보면 반공영화는 나쁜 영화는 아니에요”라고 마무리했다. 당연한 얘기였다. 역사적으로 쭉 뒤져보면 반공영화가 나쁜 영화라고 하면 끌려가거나 심각한 불이익을 당했을 테니. 그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우리의 살길은 우리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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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최근 몇년간 그를 주목해왔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1)랩을 잘한다. 한국말 랩의 플로를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자신의 아트 크루(IAB)가 있다. 청각과 시각을 늘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3)래퍼로서 그간 당연시되던 ‘타협’을 하지 않고도 큰 성공을 이루어낸 ‘아이콘’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의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태도’다. 먼저 <Always Awake>에서 그는 꿈을 위해 항상 깨어있는 세상의 모든 젊은이에게 악수를 건넨다. “우리는 늘 젊고, 꿈꾸고, 깨어 있어야 해!” 한편 그의 다른 노래 <Dali, Van, Picasso>는 자신의 예술가적 영감과 열정을 세 위대한 화가(살바도르 달리, 반 고흐, 피카소)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빈지노는 “절대 훔칠 수 없는 내 아이덴티티/ 예술가들은 이게 뭔지 알겠지”, “아마도 내가 그렇듯 예술에 미친 애들은/ 느끼고 있겠지 칼에 찔린 듯이” 같은
[마감인간의 music] 젊고, 꿈꾸고, 깨어 - 빈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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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무언가 확인할 게 있다는 듯 그는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다. 거미줄을 걷고 날파리떼를 쫓으며 따라 들어간 그곳에 작은 터가 있었다. “아직 멀쩡하네!” 남자는 웃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회한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쳤다.
움막이었다. 아름드리나무에 줄을 묶고 대나무와 비닐을 엮어 만든 초라한 움막. 몸을 뉘일 만한 너비조차 안 되는 곳이었다. 저기서 누가 지냈냐고 묻자 그는 다시 웃었다.
“우리들의 뒷간이었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 산 319번지 덤불숲에 해고노동자 이인용과 동료들의 뒷간이 있었다. 앞산은 거대한 석회석 광산이었다. 동양시멘트 소유 49광구. 2015년 2월21일, 이곳에서 암석 파쇄 장비를 보수하던 예순한살의 노동자가 쇳덩이에 맞아 숨졌다. 유령 도급업체 소속,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 ‘진짜 사장’은 동양시멘트 사장이었고, 불법을 저지른 자도, 죽음을 쉬쉬하던 자도 그 사장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 직접 고용 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숲, 아스팔트, 49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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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가 “정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말하며 뜻을 꺾자, 아들은 법과대학에 못 가겠다고 한 것이 막연한 반항임을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아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소박한 부모님은 공부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이는 자식이 거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지 대단한 출세를 소망하지 않았다. 몇년 후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바로 변호사로 나서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많은 친구들이 겪었던 가족의 반대나 실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입학한 30년 전 법과대학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았다.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온 학생, 미달이었던 그해에 배짱 지원으로 합격한 학생, 대단한 노력 없이도 여러 시험을 유유히 통과한 기이한 수재, 인문대나 예술대에 갔어야 할 낭만파, 철학에 심취한 괴짜가 고루 있었다. 정치상황이 심각했던 만큼 사회파 학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는 대학 졸업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목표를
[조광희의 디스토피아] 3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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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어떤 것 중 굳이 우선순위를 가리거나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 자체를 힘겨워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내 인생의 영화’를 소개해달라니 정말이지 어려운 미션이 아닐 수 없다.
동네에서 ‘비디오 가게 아들’로 불리며 반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신작 비디오를 가장 먼저 보던 초등(국민)학교 시절부터 어쩌다 보니 (아마도 최후의 물리 매체로 예상되는) 블루레이를 직접 만드는 ‘비디오 제작 업자’로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당시를 살아온 시대의 풍경과 함께 박제된 듯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이른바 ‘인생 영화’를 꼽는다면 대부분의 할리우드 키드가 그렇듯 스티븐 스필버그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들로 리스트가 채워지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굳이 ‘인생’을 거론하면서까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영화로 더 집요하게 범위를 좁혀보자면 역시 <멜랑콜리아>(감독 라스 폰 트리에, 2011)라는 작품이
[내 인생의 영화] 백준오의 <멜랑콜리아> 블루레이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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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 <칠전팔기 구해라>라는 드라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슈퍼스타 K> 김용범 PD의 기획.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시선을 끌었던 건 기획의도였다. <슈퍼스타 K>가 되지 못한 사람들, 즉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드라마에서 다시 흐른다. 아예 새로운 기획이 아님에도 조금만 뒤집고 설정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tvN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흥미로운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타이틀 이후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들이다. 사랑하는 연기를 하고 나면 사랑이 싹트는가,의 실제 예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이 점에 주목한다. 어긋난 사랑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를 배치하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감정선의 변화를 추적한다. “연인 역할을 하고 나면 실제 연애 감정이
[김호상의 TVIEW]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사랑하는 연기 후엔 사랑에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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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책상물림이라고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 과소평가였지.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 또한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 하셨으니, 이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자 일군의 교수들이 분연히 일어섰다. 미학과 교수들이 인문대 구역 환경 미화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이 미학이 그 미학이 맞는지는 논외로 치도록 하자).
문제는 이거였다, 나 하고 싶은 거 하자고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기로 교수 뺨치는 직업은 사장밖에 없다는 것. 교수들의 노예주 근성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청소부 청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몸소 잡역부 사무실까지 행차한 다음 보석과 정신과 진료까지 주선하는 <굿 윌 헌팅>의 착한 교수도 명함 한장 주머니에 챙기기가 귀찮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조교한테 넘기더라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초대형 명함 지갑인 줄 착각했어.
어쨌든 노예를 부려먹으려면 일단 노예가 있어야 한다. 미학과 교수들은 묘목을 옮기고 땅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교수의 도(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