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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관심 있는 부분은 차세대 콘텐츠다. 제작자 중심 콘텐츠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현재진행형의 위기감 때문이고,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웬만한 공중파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팟캐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의 기획의도와 정확한 타기팅에 매력을 느낀 마니아들이 그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후가 그(또는 그녀)의 덕력을 직업에서 발휘한다는 뜻의 ‘덕업일치’ 또한 이미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다.
4월에 론칭했지만 이미 네이버 TV캐스트에서 120만뷰를 기록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뷰를 늘려가는 콘텐츠가 있다. 마운틴TV의 <천하무림기행>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거둔 성적이라 더욱 놀랍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 40, 50대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았음직한 <사조영웅문>의 ‘무림 오절’ 화산논검이라든지 아미파나 화산파 등 무림 대문파의
[김호상의 TVIEW] <천하무림기행> 덕업일치와 핀포인트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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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강렬한 감정은 대부분 무지 혹은 미지에서 온다. 대표적으로 공포심이 그렇다. 내 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때 공포는 어둠 속에서 숨통을 조이며 다가온다. 반면에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대명천지에서 모든 것을 파악할 때 상대는 내 심정 안에 포섭된다. 설사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무섭지 않다. 그 느낌은 공포보다는 체념에 가까울 것이다. 체념은 공포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를 때 불현듯 찾아온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매우 제한적인 단어다. 오랜 세월 동안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쌓인 그런 감정,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방을 위하고 싶은 그런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은 이해심, 친밀함, 우정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두근거림 혹은 그리움이다. 만나면 가슴이 뛰고 만나지 못하면 하루 종일 그리게 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한다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백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등장하는 사랑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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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제임스 딘의 이 이야기를 전주국제영화제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변기 앞에서 만났다. 차가 많이 막혀서 너무 늦게 휴게소에 들렀던 관계로, 문장 속 ‘살’이 ‘쌀’로 보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기억했다. 이후 서울로 와서 <곡성>을 보고난 뒤 저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나홍진, 이 사람은 매번 진짜 이번 영화 만들고 죽을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구나. <황해>를 준비하며 중국 연변 지역으로 떠난다는 그를 만났을 때(아마도 그때는 <추격자>의 영향 때문인지 <황해>가 ‘살인자’라는 제목을 갖고 있던 때였다) 그는 ‘그냥 간다’고 했다. 한동안 글 쓰고 생활하면서 그쪽 동네의 기운을 느껴보고 돌아오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 특유의 ‘취재’ 방식이라 할 것이다. 장영엽 기자가 인터뷰한 이번호 기사를 봐도, <곡성>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토속신앙을 연구하기 위해 어느 산속 암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곡성>과 <해피 아워>를 동시에 만난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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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21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이 매년 기억할 것이다. 팝의 황제로 불린 마이클 잭슨에 비견되는 유일한 음악가 프린스가 세상을 등진 날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를 비교하는 건 사실 그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활동한 시기가 1980년대로 겹치는 데 따른 호사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하나 분명한 것은 프린스가 남긴 광범위한 음악과 철학, 스타일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는 점이다. 올해 57살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던 음악가가 별세했다는 비보에 사람들은 지극히 당황하고 안타까워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마돈나는 물론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16년까지 쉴새 없이 음반을 낸 프린스답게 수많은 음반이 명반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그중에는 세간의 혹평을 받은 음반도 있다. 여기서 소개할 음반은 프린스가 1995년 발매한 《더 골드 익스피어리언스》다. 그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이지만, 사실 발매 당시 프린스는 ‘예전
[마감인간의 music] 별이 진 곳에 남은 전설 - 《더 골드 익스피어리언스》,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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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윤대녕의 소설 <피에로들의 집>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명우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다. 명우는 극장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영화로 옮긴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을 보다가 ‘마마’라 불리는 노파와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호퍼의 그림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는다. 얼마 후 명우는 그녀의 집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한다. 그 집의 각 방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은신해 있다. 그런데 어째서 호퍼였을까. 그의 그림 속 인물들, 특히 여성들은 무표정하게 각자의 방에서 창문 너머의 세계를 응시한다. 안팎을 나누는 창이라는 경계. 그 안쪽의 방은 안온하기보다는 창백하다. 여자들은 열린 창 너머로 멀찍이 시선을 던져보지만 그들의 몸은 그 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자들의 적요했던 또 다른 방들…. 폐가옥에서 홀로 밤을 나야 하는 거리의 소녀, 도시의 난민 <스틸 플라워>(2015)의 하담(정하담)이 생각났다. 열리지 않
[정지혜의 숨은그림찾기] 그 여자의 방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프란시스 하> <스틸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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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5주년 파티를 앞둔 부부에게 스위스에서 편지가 날아온다. 남편 제프(톰 코트니)의 옛 애인 시신이 얼음 속에서 발견됐다는 통보다. “우리 이 일로 (같이)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아내 케이트(샬롯 램플링)는 성숙하게 대응하지만, 죽은 라이벌은 이기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케이트가 이 결혼에서 어머니/보호자 역을 맡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은퇴한 교사인 그녀는 늘 고쳐주고 타이르는 쪽이다. 한편 제프는 반항하는 10대처럼 보란 듯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다락방에 틀어박혀 추억을 뒤적인다. 한밤중 다락에 있는 남편을 발견한 케이트는 화가 나 옛 여자의 사진을 내놓으라고 재촉하지만 몸에 밴 ‘계도자’의 품위를 버리진 못한다. 그녀는 사진을 찢지도 남자의 손에 돌려주지도 못한 채 사다리 위에 애매하게 얹어두고 돌아선다. <45년 후>는 이렇게, 뉘앙스의 축적으로 나아가는 드라마다.
04/08
오늘 일기는 어느 때보다 영화로부터 멀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의 브루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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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 마감에 맞춰놓은 다른 주제의 칼럼을 폐기하고 이 글을 쓰고 있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 나의 분노는 넷플릭스에 대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행태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넷플릭스에 가입해놓고 첫달만 반짝 보고 그 뒤로는 다달이 돈만 내고 있는 부르주아 가입자다. 가장 큰 이유는 대표 콘텐츠들이 이미 접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어쨌든 가입한 이상 그곳에 가면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을 터이니 내가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됐던 이유도 있다. 그런 와중에 잠 안 올 때 짬짬이 보던 <브루클린9-9>이 내려갔단 소식을 들었다. 이미 해치워버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도 내려갔다는데 영등위에서 재심사에 들어갔다니 뭐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절차상 착오가 있었나보다. 하지만 내 분노는 블러가 등장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어렸을 때 했던 경험 중엔 그런 게 있다.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다 느닷없이 야한 장면이 나왔을 때 침조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영등위가 내게 모욕감을 줬어 - 넷플릭스에 대한 영등위의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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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매력적인 본부장을 꼽아보니 남자 얼굴만 떠오른다. 유독 여성 본부장이 없는 까닭이 뭘까? 평사원으로 출발해 올라갈 수 있는 실무의 꼭대기이자 위에서 떨어진 낙하산의 출발점이 겹치는 그 자리는 유리천장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많은 일이 ‘이번에 새로 오신 본부장님’에게서 출발하니 드라마에선 가장 역동적인 직책인 셈이다. 러블리 코스메틱에 새로 온 본부장 욱다정(이요원)은 황금화학에서 팀장 이상으로 승진할 기회를 빼앗기고, 실적을 가로채는 이사와 대립하다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의를 참지 않고 원칙을 따지는 성품은 욱하는 성격으로 평가되고, 출중한 업무 능력의 결과임에도 소파 승진이란 추문이 뒤따랐던 그녀의 이직은 “마누라가 나보다 못난 놈이랑 바람난 기분”이라거나 “자부심을 찾으려면 얼굴에 보톡스나 한방 맞을 일이지” 따위의 저열한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업계 관행과 직접적으로 싸우는 욱다정 때문에 하청 일감이 끊기자 러블리의 남정기 과장(윤상현)
[유선주의 TVIEW] <욱씨남정기> 싸울 줄 아는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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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밀라노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함께 왔다. 밀라노에서의 하룻밤을 그린 <밤>(1961)을 통해서다. 패션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밀라노는 보통 세련되고 화려한 공간으로 각인돼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밀라노의 너무나도 눈부신 대성당을 떠올려보라. 그렇게 휘황찬란한 곳이 진정 신을 위한 성전(聖殿)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안토니오니의 영화에도 밀라노의 화려함과 세련미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밤>은 밀라노의 또 다른 성격을 창조했고, 각인시켰다. 바로 소외와 체념이다. <밤>의 고립된 인물들은 세상과 벽을 두고 있지만, 굳이 그런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체념한 채, 소외를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있다. 안토니오니의 인물들은 베르메르 혹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초상들처럼 대단히 고립된 채 체념하고 산다.
<밤>은 전반부의 낮과 후반부의 밤으로 양분돼 있다. 낮에 볼 수 있는 밀라노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사막에서 낙원까지 - <밤> <로코와 그의 형제들> <아이 엠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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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11월의 황량한 캠퍼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과 동기가 군인한테 차였다, 그것도 일병한테, 아무리 카투사라지만.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모두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마 묻지 못한 건 아니었다. 신이 나서 각다귀떼처럼 왱왱거리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우리 덕분에 그 애는 하루아침에 그냥 민정이에서 ‘군인한테 차인 민정이’가 되어 대학원생과 조교들의 동정까지 한몸에 받고 있었으니까. (그중 다수는 훗날 기자가 되었으니….) 문제는 캐물을 당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집이 망해서 몇달째 방세가 밀린 탓에 주인아줌마를 피해 야밤에만 자취방에 들어가던 그 애는 군인한테 (그것도 애인이 근무하던 부대 행정실로 전화해서 제발 바꿔달라며 몇번이나 매달린 끝에) 차였다는 수치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유리걸식을 하며 강원도로 떠나버렸다. 근데 강원도에 군인 많은데. 아무튼 차비가 없어 걸어서 이동하기를 여러 날,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군인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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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첩방은 전주의 나라, (중략) 얼굴이 이렇게 쉽게 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_-;) 전주국제영화제로 출장을 떠나기 전 문득 윤동주의 시가 떠오른 것은, 2000년 제1회 영화제를 찾았을 때의 숙소가 아직도 잊히질 않기 때문이다. 먼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당시 영화제로부터 제공받은 숙소가 아니었음도 밝힌다. 지금도 그 여관(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여인숙에 가까웠던)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예약한 조그만 방에는 침대도 커튼도 없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창은 컸고 열대지방처럼 너무나 햇빛이 잘 들었다. 방구석 어디에도 비처럼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방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대낮까지 잤더니, 정말 하루 만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 있었다. 만나는 지인들마다 “전주 오기 전에 어디 좋은 데로 휴가 다녀왔나봐?”라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선크림을 바르고 자라, 창 바로 아래 벽에 딱 붙어서 자라, 같은 빤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영화제 마지막날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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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내한하는 디스클로저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최근 송라이팅보다 샘플링을 이용한 몇 가지 클럽 트랙들을 작업 중이다.” 무슨 얘기냐면 보컬 위주의 대중적 하우스 말고 그루브 위주의 클럽용 하우스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디스클로저는 샘 스미스, 위켄드 등의 팝 슈퍼스타들과 콜라보해 인지도와 대중성을 높여왔다. 그들이 점차 클럽쪽으로 비중을 옮기겠다는 뜻이다.
고르곤 시티의 신곡 <Blue Parrot>도 같은 맥락이다. 고르곤 시티는 디스클로저와 마찬가지로 팝 하우스로 성공한 팀이다. 제니퍼 허드슨 같은 주류 스타와 콜라보해 영국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보컬이 아닌 그루브 중심의 음악을 발표했다. 어쩌면 얼마 뒤 발표될 앨범 《Kingdom》은 더 ‘클럽’ 지향의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 <Blue Parrot> 같은 곡이 빌보드에서 먹힐 가능성은 전혀 없다. 주류 음악계
[마감인간의 music] 다시, 마니아를 위하여 - 고르곤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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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어질 새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을 거라는 소식에 누군가가 이젠 같은 패턴이 지겹다고 댓글을 달았다. 2천년 전에도 존재했을 그 댓글이 달리거나 말거나 나는 <그랜마>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미니의 19금 일기> 블루레이를 주문했다. 모두 공교롭게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인 데다 극장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첫 연재의 소재로 <미니의 19금 일기>를 골랐다. 15살 소녀가 엄마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한 뒤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새벽 2시, 모두 잠든 후에 재생 버튼 클릭. 공원을 걷는 소녀의 엉덩이로 시작하는 영화의 배경은 1976년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는 남자애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있고 그 옆에선 반라의 여인이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영화의 첫 대사는 “나 방금 섹스했다!” 처음 보는 여배우다. 아니, 굉장히 낯이 익다. 크리스티나 리치 닮은꼴? 아니면 클로이 머레츠
[김현수의 야간재생] <미니의 19금 일기> 소녀의 섹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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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결말 스포일러가 4월4일 일기에 있습니다.
<테이크 쉘터>의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종말의 계시를 받고 방공호를 짓는다.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하워드는 음모론을 신봉해 같은 일을 한다. <테이크 쉘터>는 커티스가 본 멸망의 이미지가 계시인지 환각인지 관객이 고민하게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왜 꼭 둘 중 하나여야만 하냐고 의표를 찌른다. 존 굿맨이 연기한 하워드는 그래서 링거와 족쇄를 같이 주는 복합적인 악역이다. <바톤 핑크>의 찰리처럼 위압적으로 등장하지만 용의주도하다기보다 어설프다. 맥주병으로 자기를 공격한 당사자에게 상처를 꿰매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이다. 그의 방심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확신에서 나오고 이 점이 무시무시하다. “거절은 거절한다”가 그의 모토다. 하워드를 폭발하게 만드는 버튼은, 첫째도 둘째도 배은망덕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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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맞을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