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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산골영화제에서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 야외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을 때 관객이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라든가 강의 흐름에 대해서까지 끈질기게 질문을 해서 놀랐고 그 테마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무주 특유의 환경이라 가능했던 건지 한국 관객의 성향이 철학적인 건지 약간 궁금해졌다. (웃음)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오가사와라 게이코의 자서전 <지지 마!>를 픽션화한 작품이다. 원작 도서의 영화화 혹은 자서전의 픽션화를 시도하면서 세운 나름대로의 기준이나 원칙이 있었다면.
= 절대 재연 드라마식 구현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첫 번째 바람이었다. 누군가의 실제 인생에 대해서는 조금만 달라져도 거짓말이 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가급적 기본적인 설정은 지키려고 했다. 가족 구성을 섣불리 바꾼다든가 하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쓸 때 편의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캐릭터성이라고
[인터뷰]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야케 쇼 감독, 평범하지만 유일한 시간을 필름에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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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에서의 승패와 상관없이 자기 삶의 시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힘을 기르고 있는 농인 복서 게이코(기시이 유키노)의 한 시절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속에서 흐른다. 웃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웃지 않거나 찡그림에 가까운 웃음을 겨우 짓고, 애처롭게 슬퍼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는 외려 굳세지는 게이코라는 여자에 대해서 이 영화는 거의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녀의 눈과 몸을 본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의 꼭짓점 사이에서 미묘한 왕복 운동을 즐기는 미야케 쇼의 인물들은 배우의 잠재력을 발산할 최적의 팔레트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시이 유키노가 그 눈빛의 웅숭한 깊이뿐 아니라 사실상 배우 자신이 장면 속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육체적 현존을 보여주면서 적확한 찬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짐작할 수 있는 대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복싱영화지만 스포츠영화다움에 몰두하지 않는다. 경기 결과보다 잠재적으로 더 극적인 자세
[기획]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마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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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일본 독립영화의 경향을 묻자 미야케 쇼 감독은 “혹여나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한국 관객이나 비평가가 보기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요청에 응하기 위해 최근의 일본 독립영화를 범주화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며 그와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사토리 세대
동시대 일본 독립영화계에 흐르는 주제 의식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흔적을 빼놓을 순 없다. 이들의 기수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도호쿠 기록영화 3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재해의 상흔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에 내놓은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같은 주제의 연장으로 여겨진다. 고모리 하루카의 <하늘에 귀 기울여> <더블 레이어드 타운>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6월 개봉한 나카가와 류타로 감독의 <이윽고 바다에 닿다>는 극영화 방식으로 재해의 흔적과 죽음이란 주제를 정면
[기획] 일본 독립영화계에서 당신이 주목해야 할 작품 및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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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 영화산업이 호황이라고 진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성공시킨 도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은 제작비 6천만달러의 10분의 1 정도에 그치는 월드와이드 매출을 올리며 쓴맛을 봐야 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과 달리 제작사에 충분한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일본의 시스템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인디영화의 작가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대부분의 일본영화는 영화사, TV 방송국 등 콘텐츠 기업이 임의로 조합을 만들어 특정 작품에 공동 투자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흥행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들이 안전한 기획에만 투자하는 한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영화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이유를 제작위원회의 보수성과 폐쇄적인 시스템에서 찾는 비판도 거세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후카다 고지 등의 이름이 새롭게 호명되고 유의미한 비평
[기획] 일본 독립영화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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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9회차. 여기에 풍경숏 촬영만 마지막 하루 덧붙여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중 최고작이래도 그다지 논쟁적이지 않을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완성됐다. 농인 복서 게이코(기시이 유키노)가 링 안팎에서 자신의 두발로 오롯이 서는 한 시절을 그리는 16mm 필름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 <와일드 투어>(2019)를 만든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이다. 따지고 보면 미야케 쇼에게 이번 영화는 기획과 캐스팅이 완료된 프로덕션에 고용감독으로 합류한 것이어서,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작업 방식과 규모를 확장해가는 길목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는 독립영화가 곧잘 상업영화로 가는 징검다리로 기능하는 한국의 상황과 궤를 달리한다. 대학교와 지역 극장, 커뮤니티 워크숍에서 태동한 일본영화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독립된 판을 키워나가면서 불황의 산업 속에서도 역동을 일궈내고 있다. 부족한 자본에 적응
[기획] 일본 독립영화의 재도약,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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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한 영화와 드라마에도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흘렀다. 선우정아가 부른 여러 O.S.T 중 그가 직접 주석을 달아준 몇곡을 소개한다.
<너는 내 운명> & <두 얼굴의 여친>
선우정아는 고 방준석 음악감독이 작업한 영화 <너는 내 운명>과 <두 얼굴의 여친>에 각각 왁스의 <오빠>와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가창했다. 선우정아는 방준석 음악감독과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0살 즈음 재즈 클럽에서 노래할 당시 클럽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던 언니가 <너는 내 운명> 세션에 합류해 얼떨결에 선배님을 알게 됐다. 참 다정한 분이셨다. 어린애가 만든 이상한 음악을 끝까지 다 들어주시고, 격려와 피드백 등 많은 말씀을 편하게 전해주셨다. 고기도 많이 사주셨고!”
<공항 가는 길>
선우정아가 직접 작사, 작곡한 <City Sunset>은 그에
[기획] 그 작품, 이 노래- 선우정아가 참여한 O.S.T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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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를 섭외하기 위한 메일을 쓰던 중 고민에 빠졌다. 으레 감독이나 배우를 부를 땐 ‘감독’, ‘배우’ 등의 호칭을 붙이는데 뮤지션을 부를 땐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한 호칭은 ‘아티스트 선우정아’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무색한 고민이었다. 아티스트 선우정아야말로 ‘감독’이자 ‘배우’이기 때문이다. 선우정아는 김의석 감독과 단편영화 2편(<오늘은 내가 요리사>(2009), <구해줘!>(2011))과 장편영화 <죄 많은 소녀>(2017), 그리고 드라마 <시네마틱드라마 SF8–인간증명>(2020)을 함께하며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정가영 감독의 <연애 빠진 로맨스>(2021)를 통해 상업영화에도 발을 담갔다. 또한 선우정아는 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의 공동 주연배우 ‘콜걸’이었다. 그는 <오늘은 내가 요리사>에서 배우로 데뷔한 뒤 음악에만 집중하리라 다짐했지만 최근 웨이브 오
[인터뷰] 전천후 아티스트, 선우정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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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은 196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민 갔던 피터 손 감독의 부모로부터 시작한 영화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정체성이 영화 전반에 투영돼 있다. 물, 불, 공기, 흙 등 각기 다른 원소가 사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을 담당하는 앰버(리아 루이스)는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아웃사이더다. 앰버가 엘리멘트 시티의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물 원소 웨이드(마무두 아티)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피터 손 감독이 한국인이 아닌 여성과 결혼한 사연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지만 피터 손 감독은 <엘리멘탈>이 보다 보편적인 테마를 담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피터 손 감독을 만나 <엘리멘탈> 제작의 비하인드를 들었다.
- 한국에서 온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영화의 시작점이 된 것으로 안다.
= 어릴 적 나는 나의 부모가 이민자라는 것을 몰
[인터뷰] 작은 변화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엘리멘탈’ 피터 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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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은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앰버(리아 루이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주를 결정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제한적인 시야에 익숙하다. 시내에서 불 원소를 위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물 원소 손님을 앞에 두고도 “물을 잘 감시해야 돼! 물 튀기면 변상해야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고, 물 때문에 불씨가 꺼질까 두려운 앰버는 늘 불의 마을(파이어 존) 안에서만 안전하게 이동한다.
언뜻 보기에 엘리멘트 시티는 네 원소가 뒤섞여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원소별 지역 점유도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돼 있다. 마치 이민자가 모여 과거의 미국을 완성했듯, 4원소는 ‘원소 N차 대이동’에 맞춰 엘리멘트 시티로 모여들었다. 그중 상대적으로 늦게 들어온 불은 정착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민자 1세대
[기획] ‘엘리멘탈’, 디즈니·픽사가 선택한 공존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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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의 27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인 <엘리멘탈>은 엘리멘트 시티의 불의 원소 앰버와 물의 원소 웨이드의 로맨스를 다룬다. 이민자 1세대인 부모의 식료품점을 이어받을 예정인 앰버는 시청 조사관 웨이드의 불법 신고를 막기 위해 부리나케 그를 따라간다. 지하철을 타고 두 주인공이 추격을 벌이는 시퀀스에서는 앰버의 부모는 왜 제도권 밖에서 무허가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지하철에는 앰버와 같은 불의 원소가 아무도 없는지 등 도시가 숨긴 다양한 차별을 묻게 된다. 삶의 역사와 배경, 성향까지 너무 다른 두 인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엘리멘탈>이 선택한 공존의 방식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자전적 이야기에서 <엘리멘탈>을 시작한 피터 손 감독을 만나 이민자 서사에 관해 나눈 대화도 함께 전한다.
*계속해서 <엘리멘탈> 기획 기사가 이어집니다.
[기획] ‘엘리멘탈’, 물과 불이 사랑에 빠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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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는 새로운 만남과 발굴의 장이다. 신인배우가 첫 영화로 칸의 레드 카펫을 밟는 건 흔한 경험은 아닐 테지만 올해는 유달리 한국 신인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띈 한해였다. <화란>의 김형서, 홍사빈 배우는 자신들의 첫 장편영화를 들고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으로 칸의 문을 두드렸다. 경쟁부문에서도 한국 배우의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브라이터 투모로>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한국인 통역사 역할로 처음 연기에 도전한 피아니스트 유선희도 배우로서 처음 칸에 도착했다. 칸에서 데뷔한 한국 배우들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타고난 영리함과 타는 듯한 목마름, <화란> 배우 김형서
“첫 연기, 첫 영화가 <화란>이라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가수 비비로 활동 중인 배우 김형서는 <화란>의 하얀 역할로 자신의 첫 번째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김형서가 맡은 하얀은 연규
[기획] 칸에서 데뷔한 한국 배우들, 더 밝은 내일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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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미집>은 배우들의 호흡에 관한 영화”이자 “스크루볼 코미디의 리듬 위에서 춤추는 영화”이며 궁극적으로는 앙상블의 영화다.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동극 속에서 배우들은 각자의 리듬을 더해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나간다.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을 중심으로 혼란스러운 듯 아름답게 조율된 이들의 활약과 뒷이야기를 전한다.
박정수
‘거미집’의 시어머니 역이자 노장 배우인 오 여사 캐릭터를 맡아 극의 무게를 잡아준다.
“설마 칸에 올 줄이야. 지금도 비몽사몽이다. 드라마도 5년 정도 쉬고 있었는데 캐스팅 제안이 와서 거의 16년 만에 영화 현장에 돌아왔다. 김지운 감독에게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었더니 발음이 좋아서라고 하더라. 그러고 나니 대사가 입에 안 붙는다는 불만을 말할 수가 없었다. (웃음) 드라마 현장이 익숙하고 요즘 영화 현장은 잘 몰라서 처음엔 헤맸는데 익숙해질 만하니까 끝나버렸다. 70년대 현장에 대해 더 말할 수 있는
[기획] ‘거미집’의 배우들- 박정수, 임수정, 오정세, 장영남, 전여빈, 정수정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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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은 1970년 초 검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한 영화다. 감독 김열(송강호)은 ‘걸작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촬영이 끝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고자 한다.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데, 영화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재능과 욕망이 불일치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루 동안의 촬영 현장에서 김열 감독, 아니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질문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계속 영화를 할 수밖에 없는가.
- <조용한 가족>(1998)부터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하 <놈놈놈>), <밀정>(2016), <거미집>까지 다섯 작품을 함께했다.
김지운 (송)강호씨와 함께했던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성과를 남겼다. 그런 시너지들이 기본적인 믿음으로 자리했다. 어떤 작품이든 송강호라는 배우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욕심
[인터뷰] ‘거미집’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 우리는 영화라는 거미집에 불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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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성장하고 영화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감독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몇해째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마티 디옵의 <애틀랜틱스>(2019), 레주 리의 <레 미제라블>(2019),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알리스 디오프의 <생토메르>(2022)가 있었고 올해 칸에서는 경쟁부문의 유일한 신인으로 이름을 올린 세네갈계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감독이 <바넬과 아다마>로 불씨를 이어받았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감독의 작품을 아프리칸 시네마라 할 수 있느냐는 반문도 존재하나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감독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재현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스크린에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넬과 아다마>는 지극히 사랑하는 남녀가 부부로 맺어졌지만 공동체를 떠나 둘만의 새 삶을 시작하기 바라는 바넬의 꿈이, 아다마에게 촌장의 책임을 계승시키려는 마을의 압력과 갈등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 당신
[인터뷰] ‘바넬과 아다마’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감독, 타는 목마름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