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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한국/2023년/93분/새로운선택 이우빈
초등학생 김동춘(박나은)은 대입 준비로 바쁘다. 수학, 영어는 말해야 입 아프고 중국어, 태권도, 논술, 코딩까지 섭렵 중이다. 친구는 없고,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이제는 대입 특별 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페르시아어가 동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다. 우연히 막걸리 한병을 주웠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기포가 페르시아어를 활용한 모스부호인 것이다. 동춘은 막걸리가 보내는 모스부호의 지시에 따라 복권도 사고, 어디론가 끌려가기도 한다. 분명 만화적이고 엉뚱한 상상력의 연속이지만, 영화의 기반은 지독한 현실성에 있다. 좁게는 기괴한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를 비판하는 모양새다. 크게는 배움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인간은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지만, 무언가를 그릇된 목적으로 수용하고 맹신하는 순간 삶은 크게 뒤틀리게
[기획] 제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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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대의 삶
임정환/한국/2023년/99분/개막작 이우빈
민주(김새벽)가 리투아니아를 떠돈다. 목적은 실종된 남편을 찾는 것이다. 남편은 비트코인 비슷한 것에 손을 대더니 홀연 자취를 감췄다. 남편의 편지를 단서 삼아 헤매던 민주는 여러 곤경을 겪는다. 숙소엔 가전 기기와 난방이 말썽이고, 남편의 발자취는 오리무중이다. 민주는 도움을 얻고자 대학 후배 오영(심달기)을 만난다. 오영은 준화(박종환)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셋은 술판을 벌인다. 그리고 민주가 잠에서 깬 즈음부터, 영화는 아예 다른 세계(들)로 바뀐다. 오영과 준화가 민주를 모른다고 한다거나, 민주와 준화가 커플인 상황이라거나, 준화가 인터폴이라며 민주를 찾아오는 등 여러 에피소드가 나열된다. 감독의 전작 <국경의 왕>처럼 변화무쌍한 서사와 인물이 특정한 공간을 매개 삼아 갖가지로 흐트러진다.
특별한 고정축 없이 산개하는 것만 같은 영화의 순간들을 하나로 꿰는 것은 유머다. 전작보다 가볍고 재기 넘치는
[기획] 제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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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의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한해 한국영화의 흐름을 갈무리하는 중요 행사다. 당해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대규모 영화제와 해외 영화제를 거치며 명성을 떨친 주요 작품들을 비롯해 독립영화의 특색을 지닌 새 총아들이 일제히 집합한다. 이에 <씨네21>이 올해 서독제에서 상영되는 130편(단편 87편, 장편 43편) 중 9편의 장편과 3편의 단편을 소개한다. 먼저 <국경의 왕> 임정환 감독의 신작이자 올해의 개막작인 <신생대의 삶>이 있다. 그리고 본선 장편경쟁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두편의 작품을 다룬다. 안선경, 장건재 감독의 협업으로 눈길을 끈 <최초의 기억>과 김광인 감독의 <뿌리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세편의 단편도 골고루 실었다. 80~90년대 독립애니메이션을 조명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21세기 시네아스트들의 7개 작품을 모은 해외초청 프로그램도 안내한다. 1999년
[기획] 2023년, 우리가 사랑한 독립영화,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과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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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지 1년이 훨씬 넘었고, 피칭이나 마켓에도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TCCF에서 화제를 모은 까닭은 대만 내 <시맨틱 에러>의 인기 때문이다. 작품의 바탕이 된 웹소설과 웹툰은 대만 최대의 프랜차이즈 서점인 성품서점의 번역문학 판매 순위에서 10위권을 기록했고, 포토 에세이북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밖에 주연배우의 생일 카페가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등 한국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작품에 참여한 김수정 감독, 이하은 기획 PD가 TCCF를 찾았다. 마스터클래스의 연사로 선 이들은 BL 드라마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시맨틱 에러>를 성공시킨 전략을 들려주었다.
- <시맨틱 에러>를 향한 대만의 반응이 뜨겁다. 인기를 체감하나.
김수정 나는 오늘 울 뻔했다.
이하은 <시맨틱 에러>의 팬들이 선물과 편지를 잔뜩 건네주셨다. 작품의 팬덤이 기획 PD의 선물까지 챙겨주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대만 팬들로부
[인터뷰] 장르 확장으로 BL 드라마의 대중화를 꿈꾼다, <시맨틱 에러> 마스터클래스 연사 김수정 감독, 이하은 기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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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온 마스> 등에 참여하며 미국 TV드라마 작가 겸 프로듀서로 오랫동안 활약해온 아델 림 감독은, 할리우드 아시안 웨이브의 서막을 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2021)의 각본을 쓰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올해 초 결함투성이인 20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린 <조이 라이드>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까지 마친 아델 림 감독이 TCCF 인더스트리 섹션의 토크 프로그램 ‘아시안 라이징 파워 인 할리우드’의 연사로 참여해 현재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스토리텔링이 가진 위상을 들려주었다. 아델 림 감독과 단독으로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 한국 콘텐츠를 포함한 아시아 문화의 달라진 위상을 현지에서 체감하나.
= 지금껏 할리우드에서 영화와 TV 드라마를 쓰고 제작해오며 한국 드라마를 각색해보자는 시도를 제안받기도, 제안하기도 했다. 근래 들어 수많은
[인터뷰] 내가 속한 세계를 그릴 때의 해방감이란!, ‘아시안 라이징 파워 인 할리우드’ 토크 참여한 아델 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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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대만은 동양 국가와 서양 국가의 교차점에 자리했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 속에 흐르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만이 지닌 강점이다.” 2023년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Taiwan Creative Content Fest, TCCF)의 개막식 주빈으로 참석한 정원찬 대만 행정원 부원장의 개회사 일부다. 동서 문화의 교섭지 대만은 콘텐츠 강국으로의 비상을 준비 중이다. 올해 대만은 국가 차원의 문화 콘텐츠 산업에 투자한 기업에 투자금을 세액공제해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문화 콘텐츠 산업 융성에 그 어떤 나라보다 열을 올리는 중이다.
TCCF는 문화 특구로 발돋움할 대만에 추력을 제공하는 계기로 기능하기 충분하다. 올해 개회 4년차를 맞는 TCCF가 11월7일부터 12일까지 타이베이의 쑹산 문화창의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TCCF는 대만 내 문화 업무를 전담하는 행정기관인 문화부 산하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이 주최하는 대규모 콘텐츠 교류의 장이다. 올해 TCCF는 29개국에서
[기획] 아시아 문화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만나다,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TCCF)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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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컵 속의 물과 같아서
송강호 그나저나 이번에도 변함없이 아역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펼칩니다. 그게 참 미스터리해요. 아무리 오디션을 통해 아역배우를 캐스팅했더라도 어떻게 저렇게 어린 배우들이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지. <브로커> 촬영 때도 제가 계속 이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번 더 여쭤봅니다. <괴물>의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한 아역배우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 두 사람을 어떻게 캐스팅했으며, 어떻게 연기 지도를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번엔 기존과 다른 기준으로 아역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괴물>의 두 주인공 캐릭터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안고 있는 갈등이 상당히 깊으면서도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천진한 면이 있습니다. 깊이 있으면서 굉장히 순수한 내면을 표현해야 하기에 이제까지와 달리 성인배우와 같이 시나리오를 미리 읽게 하고 리허설도 했습
[특집] “감정은 컵 속의 물과 같아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배우 송강호 <괴물> 마스터스 토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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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10월8일 일요일 오전 9시30분, 한일 국경을 초월해 오랜 시간 영화적 우정을 쌓아온 두 영화인이 대담에 나섰다. 신작 <괴물>로 부산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사장 공석,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어수선한 부산영화제를 위해 호스트가 되어 손님들을 맞이했던 송강호 배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두 사람은 함께 호흡한 <브로커>로 제75회 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송강호 배우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올해도 나란히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2018) 이후 오랜만에 일본에서 촬영한 영화 <괴물>로 칸영화제 각본상이란 결과를 낳았고, 송강호 배우는 1970년대 충무로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거미집>이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칸에서 시간을 보냈다. 따로 또 같이 칸의 바닷가를 찾은 두 사람은 그곳에서도 시간
[특집] “시선과 구조,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괴물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배우 송강호 <괴물> 마스터스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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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유지는 일본의 각본가를 말할 때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이름이다. 1988년 단막극의 각본가로 데뷔한 그의 수식어는 스타 작가였으나 이제는 사회파 작가로 바뀐 지 오래다. 영화로 영역을 넓힌 사카모토 유지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공동 각본을 거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 이르러 가장 그답다고 부를 수 있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래서 사카모토 유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각본을 맡았다는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본질을 한가운데 둔 채 등장인물의 대화로 그 주변을 에둘러 간다. 반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는 차마 언어로 건드리지 않고 침묵으로 남겨진 부분에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고 믿게 되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괴물>에서 위로 향하여 뻗은 두 소년의 손은 보이지 않는 무엇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온 사카모토 유지의 화법과
[인터뷰] 어쩌면 진실은 이야기 바깥에, <괴물>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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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구성과 인물에 관한 고찰
일본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콰르텟>으로 친숙한 사카모토 유지 작가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브로커> 등 가족의 얼굴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났다. <괴물>은 이유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보온 도시락에 돌을 채워두는,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미나토를 수상하게 여긴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미나토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추궁하고, 담임교사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아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미나토가 같은 반의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 가해자라는 것.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영화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두 번째 장의 문을 연다. 이번엔 담임교사 미치
[특집] 다른 이의 시선을 빌려야 했던 이유는, ‘괴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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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지난 10월8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마스터스 토크를 단독 진행했다. <괴물>의 3부 구성과 아역배우를 발굴하는 고레에다 감독만의 방식, 고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과의 협업 등 다양한 제작기가 담겼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괴물>의 리뷰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단독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가 응시한 아이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할 시간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화 <괴물> 특집이 계속됩니다.
[특집] ‘괴물’의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X 배우 송강호 대담, <괴물> 리뷰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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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이 운명처럼 만난 작품과 함께 돌아왔다. <서울의 봄>은 12·12에 관한 실제 기억이 있는 감독이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헤치는 내밀한 작업이다. 무국적성을 지향한 안남시(<아수라>)에서 1979년 서울시(<서울의 봄>)로 옮겨온 김성수의 세계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육박하는 카메라와 장근영 미술감독의 집요한 터치로 전과 다른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전두광이라는 불편한 캐릭터에 도전한 황정민과 꿈이 없던 <비트>(1999)의 민이에서 목적의식 뚜렷한 군인이 되어 김성수 세계에 복귀한 정우성의 격돌하는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이번 영화로 <아수라>의 드림팀과 다시 뭉친 그는 감독의 비전을 정확히 이해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계속하고 싶은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 19살 때 그날의 총성을 직접 들은 뒤 12·12가 인생의 오랜 의문으로 남았다고.
[인터뷰] 욕망과 신념이 자아낸 사건을 제대로 포착하고자 했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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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과 1980년. 한국 현대사에서 ‘핵심 권력의 전면적 교체’와 ‘독재 체제의 연장’이 동시에 이뤄진 것은 이 시기가 유일하다. 드라마와 영화로 수차례 다뤄진 것은 당연하다. 1980년 5·18을 그린 영화는 <꽃잎>(1996) 이후 여러 편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람들>(2005)이 개봉한 지도 18년이 넘었다. 그런데 1980년 12·12를 집중해서 다룬 영화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TV드라마에서 10·26, 5·18과 함께 다뤄진 수준이었다. 절대 권력이 기습적으로 붕괴된 10·26은 묘한 뒷맛을 남긴다. 5·18의 경우는 잠시 악마적 권력이 승리했지만 시민 항쟁이 영원한 승자로 새겨졌다. 영화화 자체로 애도의 의미가 있고, <스카우트>(2007), <26년>(2012)처럼 가상 인물을 내세워도 당대 민주 시민에 대한 헌사가 된다. 반면12·12
[기획] 12·12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회는 어떻게 신군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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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사태 이후 정국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은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이태신 소장(정우성)에게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긴다. 12·12 사태의 수사를 지휘하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오른 뒤 기고만장해진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야욕을 품은 전두광은 12월12일, 10·26 사태와의 연관을 빌미로 정 총장을 강제 연행하고자 한다. 그가 하나회를 거느리고 대통령(정동환)을 찾아가 강제적인 재가를 받아내려는 사이 이태신은 그의 계략을 눈치챈다.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루는 <서울의 봄>은 반란군이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하며 공관에 들어가 총성을 울린 오후 8시부터 대통령이 총장 연행을 어쩔 수 없이 재가한 다음날 새벽 5시10분까지 약 9시간을 집중 조명한다. 여기 <서울의 봄>으로 진입하기 위한 두개의 시선을 소개한다.
[기획] '서울의 봄'을 기억하라, 김수민 정치평론가가 말하는 12·12 사태와 김성수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