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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3부작은 21세기 홍콩 영화계의 첫 사건이 됐다. 마치 지난해 봄 <살인의 추억>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조폭코미디의 유행을 확실하게 마감짓자 충무로 제작자들이 “잘 만든 영화가 흥행도 된다”는 걸 모처럼 보여준 사실에 안도감을 내쉰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홍콩에 감돌고 있다. 유위강 감독은 “영화를 보지 않던 홍콩섬의 중산층 화이트칼라가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함으로써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70년대 중·후반 뉴웨이브가 일어나기 직전 다양하게 존재했던 영화클럽들이 이 영화는 왜 이런가 하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었으나 차츰 그게 사라졌다. 요즘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면 좋겠다”며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의 각 대학에서 특강 요청이 오고 있는데 그때마다 영화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고 문학적 요소가 생각보다 많고 좀더 주의깊게 봐야 할 점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연구주임이자 영화평론가인 웡
유위강, 맥조휘와 떠나는 무간도 투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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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디자이너, 화가, 사진가, 작가, 뮤직비디오 제작자, 패션 사업가이기도 했던 소피아 코폴라는 “캘리포니아적인 세련됨을 갖춘 다재다능한 아가씨”로서의 명성을 업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그간 거쳐온 이력을 영화에 녹여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0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최고의 처녀작”으로 선정된 <처녀자살소동>은 아름다운 다섯 자매의 비극적인 죽음을 이웃집 소년들의 판타지와 노스탤지어의 필터로 투사하는데, 안개를 드리운 듯 아련하고 몽환적인 영상과 일렉트리카 듀오 에어의 애잔하고 나른한 선율로 사라져간 순수에 대한 그리움을 통렬하게 자극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마찬가지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들은 침묵이나 음악으로 채워진 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분홍색 팬티 차림으로 모로 누운 어린 신부의 작은 등, 밤거리 네온 속을 응시하는 중년 남자의 텅빈 눈, 가라오케 복도에서 어깨를 맞댄 짧은 휴식 같은 것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소피아 코폴라에 열광하는 까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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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어떻게 두 번째 장편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평단을 쓰러뜨렸나
이제 관록의 행사가 된 최악의 영화상 ‘래즈베리 어워드’는 몇해 전 <씨네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공적 중 하나로 “소피아 코폴라가 다시 연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한 일”이라고 답한 바 있다. <대부3> 때의 이야기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로 태어났다는 우연이 메리 콜리오네라는 중요한 역할을 떠안을 만한 특권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믿은 반대파들은 쾌재를 불렀다. 소피아 코폴라의 연기는 정말이지 너무나 어설펐다. 아버지는 분별이 없고, 딸은 재능이 없다고, 평단도 관객도 몰아세웠다. 래즈베리 어워드는 소피아 코폴라에게 그해 최악의 신인스타상과 최악의 여우조연상, 두개의 트로피를 선사했다. 래즈베리 어워드의 자부심대로, 이후 소피아 코폴라는 카메오 출연 이상의 연기는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올해,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소피아 코폴라에 열광하는 까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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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의 대표스탭이 말하는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과정 8고지 점령기
“이건 내 영화 아니야.” 강제규 감독을 포함해서 <태극기 휘날리며>에 참여한 스탭들이 항상 뇌까리는 말이다. 제 혼자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는 것. 팀워크가 없었다면 300일 동안의 사투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들의 말은 현장을 한번쯤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아니, 영화를 보면 이들의 말이 엄살이나 과장이 아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기, 200명의 스탭들을 대표하여 9명의 ‘태극인’들이 모였다. 워낙 바쁜 영화인들이라 가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이들과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장면 코멘터리를 꾸며 내놓는다. 지난하고 수고로운 제작과정을 담기엔 너무 작은 그릇이지만.
<인터뷰 협조해준 제작진>
감독 강제규 I 촬영 홍경표 I 프로덕션디자인 신보경 I 특수효과 정도안 I CG 강종익 I 무술 정두홍, 김민수 I 사운드 김석원
강제규의 대단한 혹은 대담한 도전, <태극기 휘날리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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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아닌 전쟁을, 그 살떨리는 느낌을 담았다
-<쉬리> 이후 4년 만에 만든 영화다. 마침 <실미도>가 한창 1천만을 향해 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태극기 휘날리며>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기분이 어떤가.
=시사 직전까지 작업을 하느라고, 아직 반응을 접수할 마음이 안 생긴 것 같다. 아직은 별 마음이 없다. <실미도>는 영화 자체의 미덕과 함께 <쉬리> 이후 계속 성장해온 영화계의 정점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잖은가. 신뢰를 주고, 어떤 가치를 던져주고, 쌍방의 호흡에 의해서 시장이 계속 성장해온 것이다. 더욱 발전해야겠지만 고무적인 일이다. 어떤 단계를 뛰어넘는, 한계선들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한국전쟁 당시의 유골을 찾는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그런 모티브를 포함해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것을 말하고 싶었는가.
=내가 어떤 장점이 있고, 한국
강제규의 대단한 혹은 대담한 도전, <태극기 휘날리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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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과 멜로, 폭발하다
지금 한국영화는 죽은 자들의 세상이다. 유골로 남은, 아니 뼛조각조차 찾을 수 없는 역사의 흔적들이 원혼이 되어 스크린을 떠돌고 있다. 지난해 <살인의 추억>에 이어 최근 <실미도>가 그랬고 이제 <태극기 휘날리며> 차례다. 마침내 공개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관객은 다시 과거의 유령과 만나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악마가 됐던 형의 귀환은 결코 추억이 될 수 없던 망각의 세월을 불러낸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는 슬픈 역사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이름으로 지금 이 자리로 불려온 것이다.
감정적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형제의 멜로드라마
실제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사회장에는 눈이 빨개지도록 훌쩍이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 보는 초대형 전쟁액션영화’라는 간판을 내세우고 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의 대단한 혹은 대담한 도전, <태극기 휘날리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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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살인의 추억>에 대한 내 불만을 말하는 게 좋겠다. 이 영화의 뛰어난 만듦새에 대해선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먼저 혼란스러웠던 건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된 박현규(박해일)가 너무 아름답게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아하면서도 짙은 우수가 깃든 얼굴과 부드러운 손, 그리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좋아하는 풍부한 감수성, 게다가 무식한 세 형사의 강압과 폭력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결기와 강단의 소유자다. 혼자 살고 있는 그는 길을 잘못 찾아 이 시대에 도착한 고독한 이방인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터널 속으로 사라질 때, 비장한 반영웅의 풍모까지 느껴진다. 내게 권한이 있다면 2003년 최고의 캐릭터와 배우상을 박현규와 박해일에게 주고 싶을 정도로 그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가 진범인지는 영화 속에서 확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교묘한 트릭이지만 어느 쪽이라도 문제가 남는다. 먼저 박현규가 진범일 경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차승재라는 화두에 대한 근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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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로부터 발원한 영화와 그 주역인 소년소녀들에게 응원가를 보냈던 정성일(<씨네21> 436호), 지난해 한국영화 문제작들의 미학적, 정치적 성취와 한계를 분석했던 김소영(<씨네21> 437호)에 이어 영화평론가 허문영이 ‘한국영화에 고함’ 시리즈의 마지막을 맡았다. <살인의 추억>에 대해 비평계가 단조로운 열광을 보내고 차승재식 패러다임이 영화계를 제패하는 사이에 "2003년의 가장 중요한 영화"인 <선택>이 비평적으로 실종되어 버린 것을 교차시켜 분석했다. <씨네21>의 전 편집장이 <씨네21>에 보내온 메타 비평의 정수.
나는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보다 더 뛰어나진 않아도, 그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유령>보다 훨씬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은 <유령>보다 더 흥미진진하지 않다. 왜 그럴까. 무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차승재라는 화두에 대한 근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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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EWARE! 10 MYTHS ABOUT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CIRCUIT
For the past 30 years, film festivals have increasingly become the launch pad into distribution for non-English language cinema. But festivals are a western (more specifically, European) invention, which still set the rules and dominate the game, even with the huge rise in the past 20 years of events elsewhere in the world. South Korean cinema first started making an impression at festivals - as part of the West's general "dis
국제영화제 서킷, 그 진실의 문 [3] -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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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6. 토론토와 선댄스는 북미 시장으로 진입하는 통로이다.
그렇다고 해봤자다. 북미 시장에서 외국어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고, 그마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비율에서나 관객 접근성에서나 유럽이 더 비옥한 시장이다. 선댄스는 본래부터 미국영화를 위한 자아도취성 미국 행사라 국제부문은 홍보도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토론토는 기본적으로 “영화제의 영화제”라 유럽영화제(베니스, 로카르노)에서의 소개와 연동해서 북미 진출의 기반으로 유용할 수는 있지만, 단독으로 외국어영화의 세계 프리미어를 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토론토는 워낙 규모가 커서(정선된 작품이 250편이 넘는다) 북미 언론은 주로 새로 나온 미국영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토론토영화제가 2002년 한국영화 특별전식으로 매년 개최하는 국가별 소개부문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오해7. 경쟁부문에 오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에 따라 다르다. 언론의 관심은 영화제의
국제영화제 서킷, 그 진실의 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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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 이것이 함정이다
지난 30년 동안 영화제는 비영어권 영화에 배급망을 터주는 도약대가 되어왔다. 그렇지만 영화제란 서양, 특히 유럽에서 창안해낸 것인 만큼, 지난 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행사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구가 여전히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영화제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서구가 비일본권 동아시아영화를 ‘발견’하게 되면서) 80년대 초 임권택, 이두용 같은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5년여 동안에야 새로운 영화제작 붐이 일어나면서 한국이 서양의 이목을 다시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한국 영화계에 이 강력한 메커니즘을 타는 것에 대한 신선한 흥분의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다. 그런데 여느 설레는 여정이 그렇듯, 요령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그만큼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사반세기 동안 기자로서, 그리고 평론가로서 겪어온 관점에서 ‘영화제 서킷’으로 알려진, 제멋대로
국제영화제 서킷, 그 진실의 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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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짜리 '여성'
유은정 감독의 <흡연모녀>는 지난해 이스트만 코닥 제작지원 마지막 심사까지 올랐다가 아쉽게 낙방한 영화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영화는 좀더 견고해졌고, 올해에는 드디어 결실을 거뒀다. “초등학교 과외를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들의 심리는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는 유은정 감독은 혼란스런 가정환경에 놓인 담배 피우는 일곱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개인적인 유년 시절의 기억 어딘가에서 이런 맥락이 흘러나왔다고도 말해준다. 중앙대 대학원 3학기째를 다니는 지금, “장편을 빨리 입봉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장편 시나리오에 대한 아이템은 있다”는 것이 미래를 향한 그녀의 다짐이다.
-<튜브> 연출부를 했다.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다른 공부를 좀더 하던 중에 현장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구 소개로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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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짜로 안다는게 뭐야
<단속평형>의 손광주 감독은 연세대를 나와, 다시 부전공이었던 전산학으로 옮겨 포항공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여 5년이라는 시간을 영화와 등지고 버텼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일을 덮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다시 이번 설 직전에 귀국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개념을 영화의 제목으로 정할 만큼 이론적 욕심이 있어 보이는 그녀가 꿈꾸는 상은 고다르처럼 되는 것인 듯싶다. 분석하는 투로 쓰여진 <단속평형>의 기획의도는 내러티브와 거리를 두면서 실험적인 형식에 집중하겠다는 야심을 보인다. “어느 여피족의 문화적 취향에 대한 우화. 현실, 영화 그리고 관객에 대한 진화론적 독해. 상호텍스트성에 기반한 형식실험”이 그것이다.
-언제부터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나.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충무로에 나가겠다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즈음에 배용균 감독의 &l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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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에 바치는 애가
<빨간 메니큐어>는 도시에 살고 있는 딸이 시골에서 죽어간 어머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애가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의 출신답게 권지연 감독은 “산문적이기보다는 시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타국에서의 오랜 유학생활 중에 이야기가 떠올랐고, 한국에 돌아와서 제작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과 <얼굴값>에서도 연출부를 한 경험이 있는 권지연 감독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매력” 때문에 영화에 빠져든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항상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또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 캐릭터를 잡으려고 한다”는 그녀의 첫 번째 한국에서의 출발이 바로 어머니와 딸에 관한 영화 <빨간 메니큐어>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22살 때, 3학년을 마친 1997년에 러시아에 가서 2002년에 졸업했다.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