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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관계에 희망을”
<자전거 경주>의 박은교 감독
<자전거 경주>는 현재의 딸이 과거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독특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이 시나리오를 쓴 박은교(27)씨는 막연히 영화일을 하고 싶던 고등학교 시절 겁은 많고 욕심은 없어서, 부모님 몰래 영상원에 응시했다가 2차에서 탈락하고 순순히 법과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영화 동아리 활동만으론 목마름이 달래지지 않아 결국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전했다. 그리고 지금 영상원 연출 전공 졸업반이다. 일상에서 갑자기 받는 깜짝 선물처럼 지극히 리얼한 영화가 주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그는, 졸업작품을 염두에 두고 공모 마감 전날 후딱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당선돼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작품을 구상한 계기는.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이신데다 자기 생각이 확고한 분이다. 그런 아버지한테 내가 딸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부분들이 항상 섭섭하고 속상했다. 그런데 한번은 엄마가 “너 어릴 때 아버지가 무척
제6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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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는 음지에서 자란 나를 닮았다"
<빵과 우유>의 원신연 감독
철도원 노동자의 하루를 그린 <빵과 우유>의 원신연(35)씨는 <피아노맨> <깊은 슬픔> <카라> 등의 상업영화에서 무술감독으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던 그가 독립단편 연출로 진로를 바꾼 것은 “액션을 위한 액션만 하는 것이 싫어”졌기 때문. 99년부터 매년 한편씩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전작들 가운데 부모의 학대를 받는 여고생의 이야기 <세탁기>(2001)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어머니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 <자장가>(2002)를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각각 소개한 바 있다. 현재 한국독립영화협회 극분과 회원으로 활동 중인 원신연씨는 훗날 “사람 냄새 나는 액션영화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에 부천영화제 가는 길에 노동자 한 사람을 우연히
제6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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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회사도 불타버렸으면 좋았을걸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1994년 8월 ~ 1997년 6월 고행의 제작일지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가 6년 만인 2003년 한국 극장가에 도착했다. 제작비 240억원, 제작기간 4년을 투자한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에서 만 1년 넘게 롱런하며 142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화제를 뿌려 당시 합법적인 경로로 작품을 접할 수 없었던 이웃나라 영화팬들까지 설레게 한 바 있다. 드디어 소문의 그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우리의 의문은 여전하다. 위대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진기한 기록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그래서 우린 지브리 스튜디오 선반 한구석에서 이제 제법 두터운 먼지를 둘러쓴 <모노노케 히메>의 제작기를 입수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를 주축으로 1985년 설립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 그대로 <천공의 성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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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촬영 시작96. 3. 19 | <모노노케 히메>를 작업하는 동안은 디지털페인트 기계를 CG부에 두기로 한다. 시아게(완성작업)부에 기계의 사용방법을 숙지시킨다. <모노노케 히메> 이후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더욱더 디지털화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이 정도의 작업은 CG부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96. 4. 4 |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가-나이젤 강의 이동어민>의 상영회가 열린다. 신입사원을 포함해 20명 이상이 관람한다. 사전에 미야자키 감독이 강제성이 다분히 엿보이는, 참여 권유 안내문을 붙였기 때문이다.96. 4. 10 | 미야자키 감독이 정오 이후에 출근한다. 자택 근처에서 벚꽃을 관찰하고 왔다고 한다.96. 4. 13 | 러시 체크에서 리테이크 분량이 다수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브에나비스타에 넘기게 될 그림 콘티의 카피를 부탁했더니 “복사만은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며 가버렸다. 그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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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 변경담쟁이 덩굴과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업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산고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를 내놓았다97. 1. 6일 | 어젯밤 11시30분, 드디어 <모노노케 히메>의 그림 콘티가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룻밤 더 생각해 일부를 수정한다. 정말로 완성이다. 어제 1월5일은 미야자키 감독의 56살 생일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스탭들의 축하 인사에 “55살 안에 완성하고 싶었다”며 약간 시무룩해진다.아침부터 그림 콘티의 카피를 시작하려 했으나 카피기의 상태가 안 좋다. 점심시간 직전 드디어 카피기가 고장난다. 수리 기사를 불렀다. 이것은 ‘모모노케(원령)’의 저주가 아닐까. 완성한 그림 콘티를 베이스로 러닝타임을 계산해본 결과 130분을 넘어버렸다. 엔딩도 넣지 않았는데 말이다. 으아…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뭐라고 말하나.97. 1. 8 | “콘티, 이대로 괜찮을까?”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심쩍다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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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2> LA 시사기돌연변이들의 고뇌와 반란, 그리고 진화2000년 여름 블록버스터 레이스에서 <엑스맨>은 영광의 다크호스였다.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입은 영웅의 발차기를 예상했던 우리의 허를 찌른 이 마블 코믹스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 무리 가운데 우뚝했다. 3년만에 1편이 착륙한 자리에서 2편이 시작된다. <엑스맨2>의 새로운 진화가 궁금하다. 그래서 전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김혜리 기자가 미국 LA으로 날아갔다. - 편집자LA=김혜리 vermeer@hani.co.kr스톰(날씨를 다스리는 엑스맨)에게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26개국 기자들을 초청한 <엑스맨2>의 시사 및 회견이 열린 4월13일의 LA는 종일 궂은비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캘리포니아 하면 비치 보이즈부터 상상했던 방문객의 시무룩한 눈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번쩍 뜨였다. 후줄근한 검정 점퍼에 때묻은 운동화, 소품 조수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엑스
미리보는 <엑스맨2> X - Men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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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분을 너무 많이 섭취한 간수. 매그니토의 희생자가 된다.좀더 야하고 좀더 피를 많이 보는 <엑스맨2>는 여전히 <스타워즈>보다는 <스타 트랙>에 접근한 ‘캐릭터 블록버스터’다. 오리엔테이션 단계를 통과한 인물들은 성장한다. 울버린은 얼마간 과거의 결박을 풀고 현재에 고개를 돌리고, 진 그레이는 자꾸만 커가는 자기의 초능력에 위화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수성보다 인간성을 부쩍 가꾼 미스틱은 울버린에게 적극 대시하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고 인간을 회의했던 스톰은 나이트크롤러의 천진하고 성스러운 선의에 감화된다. 로그의 남자친구 아이스맨이 울버린과 다가갈 수 없는 여인들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과 부모에게 돌연변이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시퀀스는, 전편의 오프닝에는 미치지 못하나 긴 여운을 남긴다.슈퍼 모델과 미인대회 여왕, 오스카 수상자와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베테랑들로 우글거리는 <엑스맨2> 군단은 여전히 울버린을 선두에 세우지만, 1편에서 관객
미리보는 <엑스맨2> X - Men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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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라이언 싱어 인터뷰"스트레스로 늘 통증에 시달린다."<유주얼 서스펙트> <죽음보다 위험한 비밀> 같은 인디영화를 했고 지금은 <엑스맨> 같은 거대 예산 프랜차이즈영화를 만들고 있다. 계획한 것인가.(영화규모 문제가 아니라) 나는 늘 SF판타지에 매료됐다. <스타워즈> 등 SF영화는 어린 시절 극장 앞에 세 시간씩 줄을 서게 만들었다. 그들은 인간의 이야기를 장대한 스케일과 환상적인 시점으로 들려준다. 동네 도서관에서 아버지가 16mm <지구가 저항한 날>을 보여준 9살의 어느 날부터 SF판타지의 힘을 깨달았다.30대의 무려 6년을 <엑스맨>에 바쳤다.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은가. 더 작은 영화도 하고 싶지만, 엑스맨들의 우주와 워낙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웃음) 상황에 따라 정할 것이다. 3편 연출은 고려 중이다. 생각할 게 뭐 있냐고? 한마디로 기진맥진한 일이다. 시나리오 다듬고 프리 프로덕션에 지칠 무렵
미리보는 <엑스맨2> X - Men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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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치사하다<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 비굴하고 쪼잔한 욕망의 대변자시트콤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로 매일 브라운관에서 만났던 배우 박영규, 그가 이번에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주인공 우남 스님으로 돌아왔다. 10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라 관객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초조해하는 그를 개봉 2주 전에 만났다.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던 미달이 아빠로 시작해 우남 스님까지, 그가 살아온 궤적에서 우리가 그의 코미디 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짚어본다. - 편집자“어머, 미달이 아빠야, 얘.” “어디 어디?” 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박영규(50)씨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미달이 아빠’라고 불렀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가 낳은 숱한 인기 캐릭터 가운데도 가장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인물, 미달이 아빠. 장인 눈치 보기, 남의 집 냉장고 뒤지기, 밥값 안 내고 도망가기, 사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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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럭키한 사람“만일에 <순풍산부인과>랑 만나지 않았다면 박영규라는 배우의 인생이 그냥 그런 배우로 지속됐을지도 몰라요. 럭키한 거지. 하지만 누구나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친다구. 그런데 미달이 아빠는 내가 한번 나를 부숴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 왔어. 그게 절묘한 거야. 운명이. 코미디를 난 극단 목화에서 오태석 선생님하고 할 때 다 공부했다구. 오늘날 박영규의 세계는 그분이 만들어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그때 만약 그런 공부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안 됐을 거라구. 사람이 자기가 투자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승화될 타이밍이 온다고. 자기가 바친 만큼 반드시 온단 말이지. 하지만 그때 훈련을 안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거야. 그래서 내가 굉장히 럭키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의 김병욱 PD는 당시 캐스팅 1순위로 박영규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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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처럼. 단순하고 순진하게<보리울의 여름><라이터를 켜라>“내가 우남 스님이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갖고 갔던 거는 종교인 하면 연상되는 관념적 딱딱함 같은 걸 깨고 싶었던 거야. 저 스님은 수녀님하고도 연애할 수 있는 사람, 아이들하고 어울릴 때는 동심의 세계에서 막 놀 수 있는. 대사도 있죠. 어린애 같은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다. 우리 인간은 그걸 다 잊어버리잖아. 그러니까 우남 스님은 어른이 잊어버리고 있는 어떤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 난 성경도, 불경도 공부 안 했지만 근본교리를 보면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 그런 거잖아. 내 마음에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없으면 행복이 없어져버린다구. 애들은 조금만 행복해도 자지러진다구. 조그만 일에 웃겨서 참지 못하고. 어른은 못 그런다구. <보리울의 여름>은 어른이 잃어버리고 있는 마음과 생각을 다시 생각해보는 거라구.”마음속에 아이가 살고 있는 어른, 그건 미달이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빠 못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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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이 말하는 배우 박영규"억울하게 당하는 연기, 당대 최고다"김병욱 | <순풍산부인과> <똑바로 살아라> PD<순풍산부인과> 첫 녹화를 하던 날을 기억한다. <순풍산부인과> 전에 박 선배를 알던 사이가 아니라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첫 녹화를 하면서 느낌이 팍 오더라. 혼자 마늘을 까면서 아내인 미선이가 “왜 그러고 있냐”고 말하면 “장모님이 까래잖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장인, 장모 앞에선 끽 소리도 못하면서 미선이한테는 큰소리치는 건데 코미디를 잘 아는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게 나왔으니까. 처음에 미달이 아빠를 생각한 건 시트콤의 인물이 대부분 착한 사람뿐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고 느낌이 들어서였다. 처음부터 치사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불쌍한 사람, 삶에 찌든 사람을 그리려 했는데 하면서 점점 발전한 캐릭터다. 그건 박 선배가 그런 연기를 무척 잘하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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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를 엿먹인 “꼴통” 반골 아저씨카메라와 펜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클 무어 스토리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마이클 무어는 놀라운 인간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직설적인 발언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우아하고 고상한 자리에서, 너무나 직설적인 언어로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그건 마이클 무어의 평소 하던 행동 그대로다. 무어는 결코 참지 않는다. 무어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시상식장에서 환호와 야유가 함께 쏟아진 것처럼, 마이클 무어는 논쟁과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그가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비난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때로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애초부터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와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건, 찰턴 헤스턴이건 마이클 무어는 고개를 뻗대고 정면에서 치받는다. 그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본질에 파고들기를 원하고, 자신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그가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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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와 ‘압수’의 일생그런 환경이었으니, 마이클 무어가 어린 시절부터 반골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마이클 무어는 어린 시절부터 곳곳에서 ‘금지’와 ‘압수’의 수난을 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든 학교 신문은 압수당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쓴 크리스마스 연극 대본은 공연 금지를 당했다. 어떤 내용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발표 시간에는 지역 내 환경오염 현황을 슬라이드쇼로 만들었고, 고교를 졸업하기 직전 18살의 나이로 출마하여 지방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학교 시절부터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글로 쓰고 강력하게 타인에게 주장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무어는 대학을 나온 뒤 신문기자로 일하면서도 사사건건 부딪쳤고, 주간지 <미시간 보이스>를 직접 발간하기도 했다.1986년 마이클 무어는 샌프란시스코의 정치 잡지인 <마더 존스>의 편집진으로 참여하지만, 5개월 뒤 ‘사상적 이유’로 해고된다. 마이클 무어는 누구의 밑에서, 타
<볼링 포 콜럼바인>과 마이클 무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