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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10월의 초입은 매년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낮엔 여름 같은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밤의 야외극장은 바닷바람 탓인지 불현듯 쌀쌀하다. 매년 <씨네21>이 부산에서 만나는 사람,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영화인들과의 첫 만남, 그리고 재회는 매번 예상 못한 감흥으로 찾아온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씨네21>이 만나고 온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얼굴들을 소개한다. 부산과 꾸준히 연을 맺어온 <녹야>의 한슈아이 감독, <강변의 착오>의 웨이슈준 감독, <간니발>의 배우 야기라 유야는 올해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심지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끝없는 일요일>의 알랭 파로니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후일을 약속했다. 7인의 한국 감독과도 만남을 청했다.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의 장건재 감독, 발굴의 미덕을 보여주는 뉴 커런츠 섹션의 <부모 바보&
[특집] 제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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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작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로 딸 경은을 잃고 단기 기억 상실이 온 아버지 병호가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그들 사이의 갈등, 그리움과 함께 사는 삶을 안산, 진도, 목포라는 세곳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곡진히 담아낸다. 신경수 감독이 연출하고 박원상 배우가 병호 역을 맡은 작품은 지난 5월 촬영을 마쳤으며 내년 4월 OTT 공개를 목표로 후반작업 중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의 지지 속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가족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영화 최초로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촬영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 관한 희곡을 쓰고 연극 연출을 해왔던 구두리 작가는 이번 당선으로 시나리오작가로도 불리게 됐다.
- 첫 시나리오 작업이라 어려움이 따랐겠다.
= 정말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는 신 번호를 붙이고 날씨 같은 구체적 상황을 적어야 한다는 기본 작법부터 익혀야 했다.
- 수상 소감에서 시나리오
[인터뷰] 세월호의 공간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입선작 <목화솜 피는 날> 구두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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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영광은 세 여성 다큐멘터리스트에게 돌아갔다. 주현숙, 한영희, 오지수 감독이 공동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세월호 10주기 옴니버스 프로젝트>(가제)는 개별성을 강조한 언론, 유족, 생존자 중심의 3가지 에피소드를 묶은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을 멈춘 적 없는 감독들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시작으로 혐오를 작동시킨 세월호 참사 보도를 시간순으로 톺아보고, 참사로 아들을 잃고 사회운동가가 된 어머니의 복원되지 않는 삶과 사회 초년생이 된 희생자 친구들의 그리움을 곁에 둔 삶을 기록하며 “9년의 세월이 가지는 무게와 두께, 의미를 묻고자”한다.
- 프로젝트 착수 과정을 들려준다면.
주현숙 영상하는 사람들 중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끼리 매년 관련 작업을 해왔는데 10주기를 앞두고는 더 깊이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할 만한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한영희 감독이 속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총대를 메고 팀을 구성했다.
한영
[인터뷰] “어떤 작품을 만들든 세월호를 기억할 것 같다”, 대상작 <세월호 10주기 옴니버스 프로젝트>(가제) 주현숙, 한영희, 오지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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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5일 2023년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시상식이 열렸다. 행사 장소인 4·16재단은 안산 단원고등학교 인근 고잔역에서 도보로 20분쯤 걸리는 곳에 있다. 쾌청한 날씨에 세월호를 생각하며 걷다가 재단 건물 1층 커뮤니티 공간에 들어서자 일찍이 도착한 수상자들과 관계자들로부터 다정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어서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는 열댓개의 손들에 부리나케 빈자리를 찾아 앉아 그들의 담소를 들었다. 10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으나 안전 사회로 주제가 넘어가자 정적이 일기도 했다.
2019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5회를 맞은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은 4·16재단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문화적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행정안전부의 국고보조금 지원 사업을 통해 진행됐으며 <씨네21>이 후원했다. 접수 기간은 올해 6월1일부터 21일까지였으며 공모 부문은 장편 극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기획] 멈춰 버린 세월, 흘러가는 세월, 제5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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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출가해 ‘도맹 스님’이 된 지나(이연), 유망한 조각가였으나 현재는 생업을 우선시하는 윤철(박종환), 그런 윤철의 연인 영지(강경헌). 세 인물의 행보를 좇는 영화 <절해고도>를 연출하기 전 김미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이후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 소속으로 경험을 쌓은 뒤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각자가 편하게 느끼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며 김미영 감독은 인물들에 관해 애정하는 지인을 묘사하듯 이야기했다.
-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 관계에 대한 인물들의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연출자가 오랜 시간 같은 고민을 해왔기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 원래 알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됐을 때 우리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부족한 나일지라도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김애란 작가의 <
[인터뷰] 앞으로 계속 걸어가자, <절해고도> 김미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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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각가라기보다는 태양계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 같다.” 태양계 모형을 만들던 윤철의 내레이션에는 일말의 자조가 섞여 있다. 한때 촉망받는 조각가였지만 아내와 이혼한 후, 생계를 위해 본업보다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데에 치중한 까닭이다. 그러던 중 대학 강사인 영지(강경헌)와 가까워진 윤철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윤철의 딸 지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미술에 재능을 보이며 미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살인과 혈흔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지나의 작품에 비판이 가해지면서 학교에서도 지나를 문제아로 인식한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지나는 출가를 선언한다.
영화의 제목인 ‘절해고도’는 ‘육지에서 떨어진 외로운 섬’을 의미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엮어 지칭하기에 이처럼 좋은 제목도 없을 것이다. 윤철과 지나, 심지어 영지마저도 개별적인 섬과 다름없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는 이혼한 아내와 사는 딸을 서먹하게 대하고 영지와의 불화를 매끄럽게 제어하지 못하는 윤철의 태도 외
[리뷰] 육지에서 떨어진 외로운 섬, <절해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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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박종환)과 지나(이연)를 중심으로, <절해고도>는 헤맬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김미영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절해고도>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관객들을 만났고, 한국영화감독조합상-메가박스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으며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절해고도> 리뷰와 함께 김미영 감독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절해고도> 리뷰와 감독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인간은 섬이며, 섬이 아님을’, 김미영 감독의 <절해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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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가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획 공모전에서 <지구 위 블랙박스>가 1등을 해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들었다.
구민정 출발은 공모전을 위한 기획이 아니었다. 전작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연출하며 환경에 관한 프로그램을 한번 더 만들고 싶었고, 기후 변화라는 현재 가장 중요한 의제를 다루고 싶었다. 여기에 음악을 활용한다면 시청자들의 마음이 쉽게 동할 것 같았다. 환경 이슈와 음악 퍼포먼스가 결합한 예능성 기획은 없던 터라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 음악인들이 전 지구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연합한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해외에선 <We Are the World>나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같은 프로젝트가 있었고 국내에서도 <내일은 늦으리> 콘서트나 <하나되어> 같은 사례가 있었다. 기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음악을 활용한 이유가 있나.
[인터뷰] 음악으로 기후 변화를 말하다, ‘지구 위 블랙박스’ 김윤아, 구민정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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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10월9일부터 매주 월요일 밤 9시40분 KBS2에서 대기획 <지구 위 블랙박스>를 선보인다. <지구 위 블랙박스>는 기후 위기로 인한 생태 파괴를 겪는 남극, 스페인, 제주도, 서울 등에 윤도현, 김윤아, 최정훈, 호시, 르세라핌 등의 뮤지션이 방문해 노래한 영상을 30년 후의 인류 윤(김신록), 50년 후의 인류 한스(박병은), 100년 후의 인류 니오(김건우)가 거주 불능한 지구의 데이터 보관실 ‘블랙박스’에서 열람한다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결합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구 위 블랙박스>의 키를 쥔 총사령관은 2021년 배우 공효진이 출연한 환경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시작으로 꾸준히 환경 이슈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구민정 PD다. 그리고 환경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온 뮤지션 김윤아가 지난 10월 이 사령선에 합류했다. 뮤지션 김윤아와 구민정 PD가 <지구 위 블랙박스>와 기후
[기획] 지구를 고려하는 삶의 방식 어때요?, ‘지구 위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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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의 매력은 인물들의 초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에 있다. 인물들의 초능력이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사소한 행위 속에 슬쩍슬쩍 드러날 때마다 <무빙>은 단순한 스펙터클의 드라마에서 벗어난다. <무빙>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두식(조인성)과 미현(한효주)의 키스 장면에서 두식의 발이 땅에서 떠오른다. 우리가 상투적으로 ‘하늘을 날 만큼’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그 순간 두식의 몸은 실제로 하늘을 난다. 상투적인 언어적 표현이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변환된다. 인물들의 강력한 초능력이 과시적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대신 인물의 감정 속에 녹아들고, 그때마다 <무빙>은 특별해진다. 비 오는 늦은 밤, 홀로 걸어갈 여자 친구의 길동무가 되어주기 위해 서툴게 하늘을 나는 봉석(이정하)의 몸놀림이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길동무가 되어주고 싶은 바로 그 마음, 그 상투적이고 평범함 속에 깃든 비범한
[기획] 분열의 부모 세대에서 벗어나기, 안시환 평론가의 ‘냉전 드라마로 보는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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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랑 애 하나 가지고 사업을 벌여?” “그래봤자 겨우 둘?” <무빙> 15화에서 민용준(문성근)의 수행 비서인 여운규(김신록)는 국가재능육성사업을 시작하자는 조래혁(유승목)의 의견에 반발하며 이런 말을 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초능력을 지닌 아이 몇명만을 바라보며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굴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결국 국정원이 육성사업을 진행함에 따라 이와 같은 여운규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하지만 여운규가 사용한 ‘겨우’와 ‘꼴랑 OO 가지고’라는 표현만큼은 완전히 틀린 말로 느껴지지 않는데, 그건 이 말이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이제 막 접한 사람들의 첫 반응과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꼴랑 이런 초능력을 가지고 히어로물이라고 한다고?’ ‘겨우 이것밖에 없다고?’
이것이 <무빙>을 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콘텐츠를 ‘히어로물’이라고 규정했을 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비
[기획] <무빙>의 히어로들이 지닌 최고의 능력은…, 김철홍 평론가의 ‘슈퍼히어로물로 보는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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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제일 싫어하는 사연팔이?” 다방 사장은 주원/구룡포(류승룡)의 여관방에 다녀온 지희(곽선영)에게 티켓 좀 팔았는지 묻는다. 지희는 그냥 이야기 좀 했다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사연팔이 말고 무협지 이야기, 프로레슬링 이야기.” 그리고 덧붙이는 말. “무협지가 아니래, 멜로 소설이래.” 무협과 멜로. 구룡포와 지희 파트의 핵심 테마는 <무빙> 전체를 관통하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좀더 정확한 설명은 구룡포의 입을 빌려야겠다.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무협이 아닌 게 아니다. 무협이면서 멜로일 수 있다. 무협은 장르적으로 동사이고, 멜로는 형용사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멜로를 전달하고 보니 무협이 되었다고. 무협이 행동의 표출 방식이라면 멜로는 마음의 형태다.
신파는 죄가 없었다.
근래 ‘세상 모든 이야기는 멜로드라마’라는 명제를 <무빙>만큼 성실하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작품을 보지 못했다. 멜로드라마는 단순히 말하자면 인력과 척력에
[기획] 유일무이하고 보편적인 마음의 형태, 송경원 기자의 '멜로드라마로 보는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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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 가족 멜로드라마, 하이틴, 냉전물 등이 골고루 뒤섞인 장르로 완성됐다. 작품 방향과 리듬을 잡아가는 초반에 특히 돋보이는 건 고어한 연출이었다.
=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스파이 키드> 같은 느낌은 피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고어함이 내 취향이니까. 작업량이 훨씬 늘어나는 괴로운 선택이었지만 셀 특수분장팀은 물론 제작진이 다 재밌어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10대들이 나오는 학교 신이 품은 하이틴스러움이나 멜로드라마쪽은 평소에 취향이 닿는 곳이 아니라 깨끗하게 공부하려고 했다. 콘티 그리기 전에 <러브레터>를 다시 봤을 정도다. 시노다 노보루의 촬영을 좋아해서인데 특히 역광을 쓰는 방식을 참고했다. 10대들이 끌고 가는 부드러운 빛감의 장면을 지나 갑자기 프랭크(류승범)가 나타날 때 충돌의 감각이 느껴졌으면 했다. 색으로 치면 갑자기 붉은 원색이 끼얹어지는 것 같은.
- <특별시민>에서 변종구(최민식)의 선거캠프를 구현할 때 ‘독일 파
[인터뷰] 311개의 퀴즈를 풀었다, ‘무빙’ 박인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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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빙> 마지막 회가 공개됐을 때는 태국으로 가족 휴가를 갔다고 들었다.
=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태국에서는 디즈니+가 나오지 않아 드라마를 바로 보지는 못했는데, 대신 피날레 시사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인터넷 반응을 계속 검색했다. 내가 본 것은 몇달 전 CG나 색보정이 완성되지 않은 버전이라 완성본이 궁금했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무빙> 얘기를 하지 않나.
= 추석 연휴에 집에 놀러온 친구들도 자꾸 <무빙> 이야기를 해서 “이제 쉬고 싶은데 그만하면 안되냐”고 했다. (웃음) 내가 웹툰 작가였지만 정작 인터넷과는 친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달 동안 핸드폰을 본 횟수가 1년 동안 본 것보다 더 많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기사를 검색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엇인지도 처음 알게 됐다. 나한테는 <무빙> 영상만 잔뜩 뜨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던 거지. (웃음)
[인터뷰]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가 좋다, ‘무빙’ 강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