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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현재의 시간성에 집중한 사례도 있다. 트리플에스(tripleS)는 1명의 멤버부터 24명의 멤버가 모두 모이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을 유튜브 콘텐츠로 노출했다. 특히 데뷔 전 멤버들의 숙소에서의 일상을 그날 밤에 바로 데일리 영상으로 게재해 팬들과 공유하는 극한의 현재지향형 소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트리플에스의 현재지향적 태도는 역시 그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대거 표현됐다.트리플에스는 2022년 10월 공개한 첫 타이틀곡 <Generation> 뮤직비디오에서부터 틱톡, 인스타그램 유의 SNS 인터페이스를 화면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곤 그 화면에 셀프 좋아요를 누르면서 자신을 틱톡 시대의 표상으로 천명했다. 이후 <Rising> <Girls Capitalism> <Girls Never Die>의 뮤직비디오에선 요즈음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로 일컬어지는 속칭 지뢰계 이미지를 경유하여 가출 청소년, SNS 및 게임 중독
[기획] 트리플에스, 오로지 지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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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반대편엔 미래지향형 에스파가 있다. “사건은 다가와 Ah Oh Ay”라며 도래할 미래를 한껏 포용하려는 <Supernova>의 가사를 살피면 방향성의 차이는 더 확실해진다. “우린 어디서 왔나 Oh Ay, 원초 그걸 찾아”라며 언뜻 과거에 시선을 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찰나 이어지는 가사는 “거세게 커져가, 질문은 계속돼”다. 과거의 사건을 짚더라도 그것을 매개로 계속 나아가려는 미래 지향적 벡터가 바로 에스파의 정수다. 애초 ‘광야’라는 세계관 속에서 멤버의 아바타인 ‘ae’(아이)들과 조력자 ‘naevis’ (나이비스) 등 SF 요소를 그룹의 전반적인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더하여 전세계 최초의 VR 콘서트인 <링팝: 더 퍼스트 브이알콘서트 에스파>를 극장 개봉하며 다분히 미래파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기존 세계관의 확장을 목표한다고 밝히며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Armageddon》에도 미래를 지시하는 듯한 요소는 한층 풍부
[기획] 에스파, 죽어도 나아가는 초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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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관이란 말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모두가 알 법한 예시를 들면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걸 그룹 뉴진스는 과거지향적이다. 뉴진스의 멤버들이 90년대의 어느 시간을 헤매는 시간 여행자라거나 하는 세계관이 있진 않다. 그럼에도 <Ditto>에 이어 최근 까지 뉴진스엔 시기 미상의 아련한 과거 혹은 90년대의 청춘, 뉴트로, Y2K 같은 수사가 함께했다. 저화질의 캠코더 영상에서 교복을 입고 춤추던 <Ditto> 뮤직비디오 속 소녀들의 모습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겠으나 뉴진스의 전략은 더 전방위적이고 섬세하다. 80~90년대 유행한 음악 장르의 소스를 기반으로 곡을 만든다거나, 단독으로 출시한 소통 애플리케이션 ‘포닝’에 피처폰 이미지를 활용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도 더 감각적인 톱니바퀴들이 뉴진스의 시간관을 만든다.
뮤직비디오의 도입부, 플레이어에 비디오테이프가 하나둘 꽂히고 나면 뉴진스 멤버들은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기획] 뉴진스, 과거를 바라보는 캠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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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작품인가? 상품인가?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 뮤직비디오를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음악을 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신우석 감독, <씨네21> 1392호) 뉴진스의 <Ditto> <OMG>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신우석 감독이 뮤직비디오의 의미에 관해 던진 질문이었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특정 예술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정답을 내리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일련의 4세대 K팝 걸 그룹의 뮤직비디오는 시청각적 아름다움과 각 그룹 고유의 세계관을 표현하던 결과를 넘어 그룹 특유의 ‘시간관’을 드러내며 뮤직비디오가 엄연한 작품임을 입증했다. 세계관은 음악, 앨범, 뮤직비디오, 글 매체 등 각종 시청각 콘텐츠에서 거시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룹 고유의 서사성을 뜻했다. 그러나 서브컬처의 일종이었던 K팝이 한국의 주류문화이자 세계 단위의 문화산업으로 거듭났고, 세계관으로의 진입장벽은 점차 높아졌다. 여기서
[기획] 세계관에서 시간관으로, 4세대 K팝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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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기간 작업해오던 영화를 마침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 매일 생각이 달라진다. (웃음) <원더랜드>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2016년 정도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2~3년, 작품 준비하는 데 2~3년이 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맞물려 촬영 및 후반작업이 엄청 길어졌다. 한달 동안 새롭게 편집해도 다시 보면 예전 버전이 나은 것 같고, 발전이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다 다시 뒤로 가고, 일부분은 포기하기도 하는 과정이 동반됐다. 개봉 전주까지 계속 음악을 바꾸고 사운드를 믹싱했기 때문에 영화가 공개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쁘다. 한편으로 나는 이 이야기가 재밌는데, 과연 다른 사람도 재밌어할까라는 걱정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크게 들었다.
-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걱정이 되나.
= 나로서도 질문이 많은 영화였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뭘까, 그리워하는 상대를 만나는 게 정말 좋을까, 어떤
[인터뷰] 알기 위해 믿는 것일까, 믿기 위해 아는 것일까,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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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일지라도. ‘원더랜드’ 서비스는 죽은 사람, 혹은 죽음에 준하는 상태에 놓인 환자들을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해준다. 해당 서비스가 보편화된 세계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의식을 잃기 전 원더랜드로 넘어가거나 원더랜드를 통해 보고 싶은 이를 만난다. 죽음으로 인한 단절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 원더랜드의 이점이지만, 그것이 축복과 굴레 중 무엇으로 귀결될지는 사용자 개인의 시선에 달려 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 <만추> 등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이 오랜 공백을 깨고 신작 <원더랜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을 기용하며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주목도가 높았던 작품이다. 다수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의 관계성과 감정선을 다루는 건 <가족의 탄생>에서 김태용 감독이 이미 시도한 구성이다. 이번 작품에서
[기획] 그리움을 연결하시겠습니까?, <원더랜드>의 인공지능이 죽음을 수용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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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개봉하는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줄곧 그로테스크한 감각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렸던 조너선 글레이저가 역사의 표층을 자신다운 언어로 파헤친 충격적 시도라 할 만하다. 유대계 영국인인 글레이저 감독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 할리우드 청중이 보내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판했듯,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일상을 해부하는 위험한 길을 걷는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영화가 국내 개봉한 것은 <언더 더 스킨>(2014) 이후 무려 10년 만. <섹시 비스트>(2000), <탄생>(2004), <언더 더 스킨> 이후 네 번째 장편을 내놓은 과작의 감독 글레이저에게 기다림은 곧 영화 전반을 압도하는 장악력을 축적하는 시간에 다름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선사한 충격파를 시작으로 일찌감치 문제작으로 떠오른 <존 오브 인터레스트
[특집]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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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내일로>는 감독의 이름을 모르고 감상해도 난니 모레티의 신작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 풍경부터 죽음, 상실 같은 묵직한 소재를 과감하게 포획하면서도, 시네마에 대한 발랄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모레티의 인장이 뚜렷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힘겨운 제작 환경과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 분투하면서 영화를 계속 찍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찬란한 내일로>는 희망 어린 시선으로 그리는 메타 시네마다. “‘이제 막 시작된’ 커리어의 이정표를 찍고 싶었다”는 난니 모레티를 화상으로 만났다.
- <찬란한 내일로>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이런 형식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 몇해 전에 1956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각본을 쓴 적이 있다. 한동안 준비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중단하고 <일층 이층 삼층>(2021) 촬영에 돌입했다. 그런데 <일층 이층 삼
[인터뷰] 여러 소재와 시간, 차원이 공존하는 영화, <찬란한 내일로> 감독 난니 모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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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이를 영화를 만들어본 적 없는 관객도 수많은 ‘영화 만들기 영화’를 통해 학습해왔다. <찬란한 내일로> 속 영화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영화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5년 만에 만드는 제목 미상의 신작 영화는 프로덕션 내내 난항‘만’ 겪는다. 처음 함께한 제작자 피에르(마티외 아말릭)는 가끔 현장에서 이상행동을 하고 주연배우 베라(바르보라 보뷸로바)는 대부분 감독과 상충하는 해석을 내놓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생 조반니의 영화를 제작한 아내 파올라(마르게리타 부이)는 조반니에게 별거를 선언하고 딸 엠마(발렌티나 로마니)는 부모보다도 연상인 폴란드 대사 예지(예지 스투흐르)와 열애 중이다.
바람과 대척을 이루는 현실 앞에서
관객은 조반니의 신작을 두고 찬란한 내일을 낙관하기 어렵다.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결말을 비관하게 된다. 희망을 놓지 않고 영화제작의 투지를 불사르는 작중 캐릭터는 조반니가 유일하다. 감
[기획] 과거에 서서 영화의 미래까지 사랑하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픽션 페르소나는 어떤 변화를 관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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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탈리아 시네마의 거장 난니 모레티가 국내 개봉작으로는 9년 만에 신작 <찬란한 내일로>로 돌아왔다. <찬란한 내일로>는 난니 모레티가 또 한번 감독 본인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와 만든 영화다. <나의 즐거운 일기>(1994)부터 시작된 그의 픽션 페르소나 조반니가 어김없이 영화에 등장하고, 5년 만에 현장에 출근한 조반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의 개념에 상대가 뜻을 같이하길 바라며 누굴 만나든 ‘영화란 무엇인가’를 설교한다. 그리하여 <찬란한 내일로>는 모레티가 21세기에 만든 그 어떤 작품보다 미우나 고우나 영화를 향해 경애를 한껏 바치는 작품이 된다. 산전수전 속에 영화를 만들었고 또 만드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시네마의 화창한 앞날을 바라는 난니 모레티의 신작을 돌아보았다. 난니 모레티와 나눈 인터뷰는 영화를 사랑하는 길로 향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
[기획] 미우나 고우나, 영화를 만든다 - <찬란한 내일로> 리뷰와 난니 모레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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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는 스크린에 물리적으로 구현 가능한 시청각적 쾌감, 그 지평선 너머를 향해 질주해온 시리즈다. 하지만 의외로 이번 신작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는 ‘보여주는 것’만큼 ‘들려주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매드맥스 사가’라는 부제답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가의 내레이션으로 문을 여닫는 형식은 마치 모닥불 옆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퓨리오사’라는 전설을 설화로 풀어낸다. 바로 이 점이 <퓨리오사>의 빼어난 성취이자 동시에 아쉬운 점이다. <퓨리오사>는 (예상 밖으로) 서사적인 완성도가 탁월해진 반면 (기대보다) 직관적인 쾌감은 옅어졌다. 한마디로 전작들과 달리 도파민이 무작정 분출되진 않는다.
광기에서 이성으로
어쩌면 이 아쉬움이야말로 조지 밀러의 명확한 의도로 보인다. 영화 말미 복수의 천사로
[비평] 지옥에도 도파민이 필요하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있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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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리퀄인가
프리퀄은 불리한 게임이다. 권리금을 지불하지 않고 전작의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시퀄보다 따르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본편’이라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말을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라는 역사적 걸작이 결말인 영화다. 다시 말해 <퓨리오사>가 보여주는 액션 시퀀스들의 결과물, 예컨대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고 누가 어디를 얼마큼 다치는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승패 결과와 스코어를 알고 보는 스포츠 경기만큼 김빠지는 게 없는 것처럼, 어차피 우승자가 정해진 <퓨리오사>라는 카 체이싱 경주를 <분노의 도로>만큼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어렵
[비평] 위대한 역사가의 일 - 결말을 아는 프리퀄에 주인공을 ‘다시’ 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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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기는 아우가 있을까.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두고 따져봐도 좋겠다. 김철홍 평론가는 형 못지않은 아우가 “전편의 자장에서 벗어났다”라는 상찬부터 올렸다. 반면 송경원 평론가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안정적 서사를 택하면서 <매드맥스> 시리즈의 고유한 광기를 잃었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의 설왕설래를 읽은 뒤 어느 쪽에 손을 들 것인가.
*이어지는 기사에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비평이 계속됩니다.
[기획] 새로운 탄생 설화 VS 느슨해진 광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찬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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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아드리아나 파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조이 살다나, 설리나 고메즈 공동 수상) 2관왕을 수상했다. 작품이 상영된 뒤로 기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평단의 평점 또한 높았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인공인 마니타스는 어릴 때부터 여성이 되길 꿈꿔왔다. 그러나 자신이 자라온 환경 상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 어려웠고, 마약 카르텔의 수장으로서 아내와 결혼해 두 아이를 슬하에 둔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한편 유색인종이며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던 변호사 리타는 마니타스로부터 성전환수술을 해줄 의사를 비밀리에 섭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엄청난 보수가 보장된 제안에 리타는 결국 마니타스의 손을 잡는다. 프리미어 상영 이틀 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선 인기를 방증하듯 기자들의 열띤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자크 오디아르
[칸영화제 특집] 진지하고 비극적인 주제라면 노래와 춤으로, <에밀리아 페레즈> 자크 오디아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