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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리퀄인가
프리퀄은 불리한 게임이다. 권리금을 지불하지 않고 전작의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시퀄보다 따르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본편’이라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말을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라는 역사적 걸작이 결말인 영화다. 다시 말해 <퓨리오사>가 보여주는 액션 시퀀스들의 결과물, 예컨대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고 누가 어디를 얼마큼 다치는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승패 결과와 스코어를 알고 보는 스포츠 경기만큼 김빠지는 게 없는 것처럼, 어차피 우승자가 정해진 <퓨리오사>라는 카 체이싱 경주를 <분노의 도로>만큼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어렵
[비평] 위대한 역사가의 일 - 결말을 아는 프리퀄에 주인공을 ‘다시’ 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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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기는 아우가 있을까.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두고 따져봐도 좋겠다. 김철홍 평론가는 형 못지않은 아우가 “전편의 자장에서 벗어났다”라는 상찬부터 올렸다. 반면 송경원 평론가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안정적 서사를 택하면서 <매드맥스> 시리즈의 고유한 광기를 잃었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의 설왕설래를 읽은 뒤 어느 쪽에 손을 들 것인가.
*이어지는 기사에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비평이 계속됩니다.
[기획] 새로운 탄생 설화 VS 느슨해진 광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찬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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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아드리아나 파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조이 살다나, 설리나 고메즈 공동 수상) 2관왕을 수상했다. 작품이 상영된 뒤로 기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평단의 평점 또한 높았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인공인 마니타스는 어릴 때부터 여성이 되길 꿈꿔왔다. 그러나 자신이 자라온 환경 상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 어려웠고, 마약 카르텔의 수장으로서 아내와 결혼해 두 아이를 슬하에 둔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한편 유색인종이며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던 변호사 리타는 마니타스로부터 성전환수술을 해줄 의사를 비밀리에 섭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엄청난 보수가 보장된 제안에 리타는 결국 마니타스의 손을 잡는다. 프리미어 상영 이틀 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선 인기를 방증하듯 기자들의 열띤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자크 오디아르
[칸영화제 특집] 진지하고 비극적인 주제라면 노래와 춤으로, <에밀리아 페레즈> 자크 오디아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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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 정치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삶을 그린 <리모노프: 더 발라드>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칸영화제를 찾았다. <레토> <차이콥스키의 아내>에 연이은 경쟁부문 초청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특정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자기 영역에 혁신을 일으킨 실존 인물에 주목해왔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제작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영화이긴 하나 “리모노프는 1990년대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대단했던 사람”이라는 점에 감독 역시 동의했다. “그는 항상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거나 ‘소련을 재건하자’라고 말하곤 했다. 극우 성향이 강했고 록 스타 같은 에너지를 지녔었는데 그런 그의 활력과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주의, 반서방주의적 태도에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매료되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그의 포스터를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모노프의 전기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감독의 목표는 아니었다. “리모노프의 실제 생을 옮기
[칸영화제 특집] 관념적 죽음에 이르렀던 하나의 방식, <리모노프: 더 발라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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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코네트>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주연배우 노에미 메를랑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셀린 시아마가 함께 시나리오를 쓴 호러 코미디다. 주인공은 TV영화에서 마릴린 먼로 역을 연기 중인 배우 엘리스(노에미 메를랑), 캠걸로 활동 중인 루비(수헤일라 야쿠브), 잘생긴 남자를 훔쳐보며 로맨틱코미디 소설을 구상하는 작가 지망생 니콜(산다 코드레아누) 등 세 여자친구다. 영화는 이들이 강간 가해자 남성의 시체를 은폐하느라 벌어지는 요란한 소동을 담는다. 전반적으로 남성적 시선(male gaze)이 아닌 평등한 관계를 담은 카메라를 보여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연장선상에서 읽어낼 거리가 많다. 카메라 앞에서 가슴이나 음부를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엘리스지만 그도 부부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여성의 자기 신체 긍정과 젠더 기반 폭력이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 <더 발코네트>는 어떻게
[칸영화제 특집] 변화를 위한 질문, <더 발코네트> 노에미 메를랑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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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8일째 강풍이 몰아치는 칸 크루아제트 해변의 호텔 테라스에서 만난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인상은 한마디로 표표했다. 하얗게 풍화한 화강암처럼 창백한 얼굴은 백발과 동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감상과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을것 같은 이 노장은, 2017년 창작 파트너이자 동반자였던 캐롤린 제프만을 암투병 끝에 여읜 정념 가득한 경험을 모티브로 <수의>(The Shrouds)를 만들었다. 애도와 상실을 다룬 무수한 영화를 보았지만 이런 식의 진혼곡은 처음이라는 말을 <애프터썬>(2022)을 보고 했던 나는 <수의>에서 그 감상을 하릴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수의>에 등장하는 시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무덤이 실제로 있다면 이용하겠나.
= 잘 모르겠다. 앞서 만난 기자들은 전혀 의향이 없다고 하더라. (웃음) 그런데 전세계를 돌아보면 희한한 매장 문화가 많다.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매장 풍속을 리서치했다. <수의&
[칸영화제 특집] 이것은 테라피가 아니다, 경쟁부문 상영작 <수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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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심사위원대상은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에 돌아갔다. 샤지 카룬 감독의 <스와함> 이후 30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인도영화가 거둔 쾌거다. 칸영화제가 그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것은 다큐멘터리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TV 배우이자 우파 정치인을 대학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에 반대한 학생 파업을 다룬 <무지의 밤>(A Night of Knowing Nothing)은 2021년 칸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영작 가운데 수여하는 골든아이상을 받았다. 그러니 뭄바이에서 쓸쓸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치장 없이 포착하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태도를 두고 다큐멘터리적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성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는 뭄바이의 두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아누(디브야 프랩하)를 경유해 도시의 쓸쓸한 불빛을 시적으로 담아내며 현대 인도에서 여성이 삶을
[칸영화제 특집] 누구에게나 다양한 교차성이 존재한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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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없는 결과였다. 제77회 칸영화제는 <스크린 데일리> 등 유력 매체의 별점 평가와 큰 괴리 없이 영화제 기간 화제작들에 골고루 상이 돌아갔다. 2014년에 제인 캠피언에 이어 칸영화제 역사상 두 번째, 미국 여성감독 중에서는 최초로 심사위원장이 된 그레타 거윅의 영향으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거나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아노라>의 가능성과 안전한 선택들
“이 황금종려상은 세상의 모든 성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나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편견을 없애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노라>가 사람들이 성 노동자를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돕기를 바란다.”(숀 베이커의 수상 소감) 황금종려상을 받은 숀 베이커의 <아노라>는 (오드리 헵번이 콜걸 역이었다는 것을 아예 사람들이 까먹은 듯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나 (줄리아 로버츠를 단숨에 스타
[칸영화제 특집] 영미권 영화 강세 이어가다, 제77회 칸영화제 결산 - 숀 베이커의 <아노라> 황금종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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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4일 막을 올린 제77회 칸영화제가 5월25일 폐막했다. 초반엔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등 경쟁부문에 오른 거장들의 신작이 이목을 끌었고 후반부엔 코랄리 파르자, 파얄 카파디아와 같은 젊은 여성감독들의 손에 트로피가 전해지며 차세대 창작자들의 이름까지 조명하는 자리가 됐다. <씨네21>은 12일간 이어진 취재를 마무리하며 칸영화제 결산 기사를 준비했다. 먼저 올해 황금종려상 주인공인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를 비롯한 수상작들과 미투(#Metoo) 폭로를 비롯한 정치 이슈들을 정리했다. 김혜리,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연재한 칸 다이어리와 함께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도 한자리에 모았다. 심사위원대상작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파얄 카파디아 감독,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 석권한 <에밀리아 페레즈>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 경쟁부문에 초청된 <수의>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과
[칸영화제 특집] 선택은 안전했고, 발견은 귀했다 - 제77회 칸영화제의 화제작들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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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크리에이터는 환경(Eco)과 창작자(Creator)를 합친 말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친환경적인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환경재단은 GS리테일과 함께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환경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하는 에코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에코크리에이터 사업을 통해 환경 교육을 다양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9년 처음으로 1기 에코크리에이터를 배출한 이래 지금까지 환경과 영상 제작에 관심 있는 청소년과 사회적 기업, 유튜버 등 306명의 그린리더가 참여해 기후 위기, 쓰레기, 자원, 도시개발 등을 다루는 총 157편의 우수 영상을 제작했다.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2023년 제작된 우수 영상 8편을 특별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
서윤수 / 한국 / 2024년 / 17분 / 한국경쟁, 에코단편선2, 특별상영: 에코크리에이터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렀다. 영남은 고향집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특별상영: 에코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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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김지원 / 한국 / 2023년 / 27분 / 한국경쟁, 야생의 세계 단편
새벽이생추어리에는 국내 최초의 구조 돼지, 새벽과 잔디가 살고 있다. 운 좋은 두명의 돼지와 보통의 돼지들, 혹은 이름 있는 돼지와 이름 없는 돼지들. 동시적으로 흐르는 이들의 6개월이 정반대의 양극에서 숨과 비명으로 공명한다. 어떤 여섯달이 현실이고 꿈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
드라이브
박새연 / 한국 / 2023년 / 3분 / 한국경쟁, 야생의 세계 단편
뜬장에서 자란 하얀 강아지는 개장수 트럭에 실려 팔려가는 길에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한다.
#충돌없는하늘 Bird-Window Collisions
쏭청잉, 후츠나야 / 대만 / 2023년 / 24분 / 국제경쟁, 에코단편선 1
빠른 속도로 나는 새들은 건물이나 유리창을 인식하지 못해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두명의 대학원생이 새들의 유리창 충돌 사례를 기록해가며 사체를 수거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기록.
아감뼈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추천 단편 - 동물과 인간의 공존, 나만 없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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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에스더 Esther and the Law
타티아나 스헬테마 / 네덜란드 / 2023년 / 72분 / 지구 비상
에스더 키오벨의 남편은 1995년 에너지 회사 셸의 나이지리아 오고니랜드 기름유출 사건에 항거하다 사형당한 9명, 이른바 ‘오고니 나인’(Ogoni Nine) 중 한명이다. 25년이 지난 후 키오벨은 셸을 네덜란드 법정에 세운다.
오?! 미쉐린 스타 2: 북유럽의 자연에서 Michelin Stars II-Nordic by Nature
라스무스 디네센 / 덴마크, 스페인 / 2021년 / 65분 / 슬기로운 음식 생활
세상의 끝에서 어떻게 최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을까? 페로 제도는 흥미로운 토산품, 북유럽의 역사, 설화, 안개와 발효를 뜻하는 37개의 단어, 번성하는 해산물 산업, 아름다운 폭포, 독특한 개성, 원주민 언어 그리고 진주 같은 미식 공간인 ‘콕스’ (KOKS)가 있는 고대 소우주 같은 곳이다. 이곳의 요리는 바람이 많이 불고 습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소개하는 30편의 영화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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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극장 상영과 더불어 온라인, B tv에서도 6월30일까지 환경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극장에서는 볼 수 없고 온라인상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있고 오로지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6월 한달간 부지런히 액션!
기후재판 3.0 Duty of Care-The Climate Trials
닉 발타자르 / 벨기에 / 2022년 / 57분 / ESG: 자본주의 대전환
정부와 거대 석유 기업을 상대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역사적인 기후 재판을 이끈 유일무이한 변호사 로저 콕스의 비화를 독점적으로 다룬다. 네덜란드 정부와 석유 대기업 셸을 법정에 세워 권력자들이 기후변화의 재앙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법조계는 물론 각국 정부와 기업들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Greenwashing: The Climate Killer
클레어 테송 / 프랑스 / 2023년 / 54분 / ESG: 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소개하는 30편의 영화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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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의 보물 찾기 그리고 하늘을 나는 강 Curious Tobi and Treasure Hunt to the Flying Rivers
요하네스 혼셀 / 독일 / 2023년 / 92분 / 에코패밀리
토비는 송버드 부인에게서 굳게 잠긴 상자를 소포로 받는다. 토비는 상자를 열기 위해 어린 시절 친구 마리나를 찾아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롱베이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상자를 열기 위해 송버드 부인이 남긴 단서를 따라 몽골과 아마존 등을 누빈다. <토비의 보물 찾기 그리고 하늘을 나는 강>은 얼핏 이색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굳게 닫힌 상자처럼 숨겨진 의미를 품고 있다. 제목인 ‘하늘을 나는 강’(flying river)은 엄청난 양의 물을 뿜어내는 아마존을 의미하는데, 항손둥 동굴, 울란바토르, 브라질 열대우림까지 두 사람이 여행하는 지역은 모두 자연 파괴라는 심각한 이슈를 안고 있다. 재미난 관광지로 인식되던 곳의 아름다운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씨네21>이 꼽은 21편의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추천작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