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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단요 작가의 세계를 접한 이들에게 <수능 해킹>은 이례적인 선택처럼 여겨질 것이다.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이하 <수능 해킹)>을 통해 단요 작가는 문호진 공저자와 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한국 교육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다각도로 고발한다. ‘단요’라는 필명이 보드게임 용어에서 따왔다는 것 외에 작가 개인에 관해 밝혀진 정보는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러나 <수능 해킹>을 계기로 그가 SF 장르 외연으로 집필 범위를 넓혀갈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 주말마다 영화감상회를 운영한다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주로 어떤 영화를 보는지 궁금하다.
= 영화감상회는 비정기적으로 운영된다. 내가 줌으로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면 시간 맞는 사람들이 와서 화면 공유로 같이 영화를 관람한다. 최근작보다는 2000년대 이전의 명작 대중영화나 B급 컬트영화 위주로
[인터뷰] 자유롭게, 엉뚱하게, 쉽게 굴하지 않게,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 단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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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겠구나.” 김화진은 소설로부터 타인의 가능성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쓴다.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나주에 대하여>로 등단한 김화진은 뜻밖의 관계에까지 각별한 탐구심을 발휘하는 내면의 서술자다. ‘일하고 우정하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속 웅덩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는 남자 친구의 전 애인을 회사 동료로 마주하는 <나주에 대하여>, 네명의 20대 여성들이 서로의 마음을 횡단하는 궤적을 그린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경로>를 지나 첫 장편소설 <동경>에 이르렀다. 인형 리페인팅이라는 독특한 직업 세계에서 만난 세명의 30대 여성이 서로의 깊이와 이면의 두고 신중한 접합 지점을 모색해나가는 이야기다. 편집자에서 유튜버, 체온을 머금은 듯한 감정 묘사로 주목받는 소설가로 역할을 확장하는 사이 그의 작중 인물들도 함께 30대를 통과하며 성숙해졌다. 지난 6월, <동경>과 함께 칙릿
[인터뷰] 당신의 ‘좋음’을 생각하다가, <동경> 소설가 김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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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필명인 ‘멜라’는 ‘멜르다, 멜라지다’라는 ‘찌그러지다’, ‘찌그러뜨리다’라는 제주도 방언에서 따온 것이다. “내가 스킨십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애인으로부터 ‘멜르지 마!’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웃음) 내겐 멜를 사람이 있다. 그러니 소설을 쓰든 쓰지 않든 나는 항상 행복할 거다, 라는 마음으로 필명을 지었다.” 그의 필명은 집필 기간 동안 이어져온 사랑과 몸에 관한 탐색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등단한 이후 김멜라 작가는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제 꿈 꾸세요>를 펴냈고, 2021년부터 출판사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을 4년 연속 수상했다. 올해로 데뷔 10년차를 맞이한 그는 글로 느낀 것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소설과 삶, 세계를 아우르고 있었다. 10대 인물의 모험기부터 60대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에 관해 들려주는 김멜라 작가의 말을 들으며 덩달아 시야가 트이는 듯했다.
- 2021년부터 한해도 빼놓지 않
[인터뷰] 사랑과 슬픔이 주는 복, <이응 이응>으로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한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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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는 확실히 ‘보편 교양’의 작가다. 동시대의 세태를 정확하고도 풍부하게 조망하는 김기태의 소설은 지금 우리의 생활 반경을 거침없이 휘젓는다. 연애 예능 출연자의 욕망(<롤링 선더 러브>)과 K팝 팬의 딜레마(<세상 모든 바다>), 고등학교 교사의 곤경(<보편 교양>)과 성실한 직장인의 불안(<전조등>)을 가로지르는 동안 일상의 표면은 유행가 가사와 밈을 달고 한껏 경쾌해지거나 덜컥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자기 생의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에 대해 배우는 역도 소녀(<무겁고 높은>)와 다리가 세개뿐인 식탁을 펼친 채 기뻐하는 곤궁한 변두리의 연인(<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도 이 세계에 함께 산다.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뒤죽박죽, 와글와글, 결국은 한데 존재한다”는 것이 9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안기는 ‘인터내셔널한’ 감각이다. 그들 각자가 생의 어느 국면에 서 있든 간에 “좋거나 싫거
[인터뷰] 혼란 앞에 정직해지기 위해 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소설가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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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젊은 소설가를 만났다. ‘젊은’이란 수식은 그들의 물리적인 나이를 따진 것이 아니다. 문단에 등장한 시점, 그리고 지금 시대의 문학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그들을 묶어냈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내놓은 김기태 작가,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뒤 최근 발표한 <이응 이응>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4년째 거머쥔 김멜라 작가, 2021년 <나주에 대하여>로 <문화일보> 신춘문예와 제47회 민음사 오늘의작가상에 당선된 이래 첫 장편소설 <동경>으로 찾아온 김화진 작가,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수레바퀴 이후> 등으로 독자적인 SF 세계를 구축 중인 단요 작가, 문학 비전공자 출신임에도 2016년 각종 장르소설 공모전을 휩쓸었고 최근 <입속 지느러미>를 공개한 조예은 작가가
[특집] 사랑하고 앓고 보듬는 눈동자에 관하여,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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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졸업>은 ‘드라마’를 봤다는 느낌을 제대로 안겨준 작품이었다. 16부작의 호흡으로 차곡차곡 빌드업되는 이야기, 자기 서사를 부여받은 주변 인물들, 시대가 반영된 문학적인 대사,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제거되지 않은 풍경 스케치까지. “드라마는 곧 문학”이라고 말하는 안판석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선 슬로 템포의 드라마를 여전히 고집스럽게 만드는 안판석 감독님은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하셔야 한다. 감독님은 내가 당장 이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물으면 배우의 자세에 대해 답하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장에 적응할수록 뭐랄까, 이게 맞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근본에 대한 디렉션을 받고 이해한 뒤에 슛을 들어가니 대사를 어떻게 치고 어떤 표정을 짓든 내가 서혜진이라는 것에 흔들림이 없었다. 허투루 찍을 분도, 대충 넘어갈 분도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 하나하나가
[인터뷰] 운명과 분기점, <졸업> 정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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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사랑에 쪼그려 앉아 울던 여인(<내 이름은 김삼순>)이기 한참 전에 배우 정려원은 동네 떡집의 막내딸(<색소폰과 찹쌀떡>)이었다. 막내딸 자남은 기록적인 트렌디 드라마의 서브 여주와는 전혀 다른 아침드라마의 작은 역할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에서 내려온 걸 그룹 샤크라의 서브 보컬 ‘려원’은 ‘정려원’이란 본명을 되찾은 뒤 스포트라이트 바깥의 인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에피소드가 매번 바뀌는 시트콤에 출연해 별의별 얼굴을 보여줬다. <똑바로 살아라>의 새침데기 정 간호사와 <안녕, 프란체스카>의 유아독존 뱀파이어 엘리자베스는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에서 울고불고하다가도 까르르댔다. 기본기와 개인기를 고루 쌓는 현장을 데뷔 초에 경험한 정려원은 다중인격을 가진 여자(<두 얼굴의 여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히키코모리(<김씨표류기>), 안하무인의 대기업 손녀(<샐러리맨 초한지
[기획] 이토록 매혹적인 단단함, <졸업>의 정려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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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과 분단을 중심으로 한국·북한 영화사를 연구해온 한상언 영화연구소 소장(<영화 운동의 최전선> <해방공간의 영화·영화인> <조선영화의 탄생>, 월북 영화인 시리즈 <문예봉 전> <강홍식 전> <김태진 전>)이 고서 수집의 아지트인 천안 노마만리 책방을 떠나 잠시 폴란드로 향했다. 헝가리 출신의 북한 영화연구자 거보르 셰보와 뜻을 맞춰 폴란드의 한 영화촬영소에 보관된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을 보기 위해서다. 그로 하여금 “뻔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북한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크게 바꿔” 놓은, 폴란드에서 만난 세편의 북한영화를 소개한다.
지난 4월 헝가리 출신 북한 영화연구자인 거보르 셰보에게서 1959년 북한에서 제작한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이 폴란드의 한 영화촬영소에 보관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작품은 1959년 제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하여 사회주의권 국
[기획] 북한 영화를 보다, 폴란드에서 <춘향전> 보고 돌아온 영화연구자 한상언의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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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을 TV 앞이 아닌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광경은 어쩐지 낯설다. 분명 그의 필모그래피엔 <번지점프를 하다> <비열한 거리> 등 21세기 초반 한국영화의 주요한 작품이 자리하지만 중국에서 촬영한 영화 <월색유인>(2015)과 단편 연출작 <라이트 마이 파이어>(2016) 이후엔 좀처럼 그를 극장에서 접할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흐름과 시리즈 시청 환경 모두가 변한 2024년에도 남궁민의 필모그래피엔 OTT 시리즈가 없다. 현재 시나리오 개발에 몰두 중인 남궁민은 작가로서, 제작자로서 또 배우로서 어떤 꿈을 꿀까. 걸출한 배우이자 좋은 이야기를 알아보는 감식안을 지닌 남궁민에게 현재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스토리텔링에 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8년 전 단편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만들며 영화 연출이나 시나리오 개발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에 이미 탈고한 장편영화 시나리오가 2개 있다고
[인터뷰] 논리와 공식을 넘어선 감성의 협업, 배우 남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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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계의 눈이다. 기계인 나는 당신에게 나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나 자신을 인간의 부동성에서 해방시킨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물에 가까이 갔다가 다시 멀어진다.” - 지가 베르토프, <키노아이 선언문>
편지가 도착한다. <우리와 상관없이>의 한 장면에서 한밤의 골목을 걷던 정선(곽민규)의 바지 주머니엔 편지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정선은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받은 사람도 아니다. 그건 정선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이영(조소연)이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함께 찍은 영화의 기억을 잃어버린 화령(조현진)에게 건넨 편지다. 그는 편지의 주인이 아니며 이영이 화령에게 편지를 건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정선은 증세를 회복하고 퇴원한 화령의 집에 들러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화령을 사랑했고 그 문제로 인해 이영과 헤어졌음을 고백하고 오는 길이다. 편지를 매개로 연결된 화령과 이영의 이야기에 정선이
어둠에서 벗어나기 - 모험, 혹은 <우리와 상관없이>의 위태로운 실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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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미지수> <다섯 번째 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3~4월쯤 반려돌(돌멩이의 ‘돌’이다)을 키우는 사람들이 뉴스에 소개된 적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한국 청년들 사이에선 반려돌 문화가 유행 중이라 보도하면서 국내 뉴스들도 덩달아 이 사태를 주목한 것인데, 몇몇 연예인의 사례가 과대 포장되었단 느낌도 없지 않긴 하다. 여하간 청년들이 반려돌을 키우는 이유로는 한국 경제활동층의 과한 노동시간, 개인주의 만연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 맺음의 피로감 등이 따라붙곤 했다. 사람은커녕 동물과 보내는 시간조차 즐길 여유가 없으니 얌전한 돌과 교감하겠다는, 대한민국 고유의 흉흉한 청년 담론에서 파생한 이야기였다.
반려돌 관련 뉴스가 등장한 이후 2024년 2분기에 개봉한 일련의 한국 독립영화를 상기하면, 반려돌 이야기의 시대적 함의가 지금 창작자들의 영화적 고심에 보편적으로 녹아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돈
관계의 종말 앞에서 서성거리는 이들 - <늦더위> <미지수> <다섯 번째 방>이 찍은 자연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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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컨대 <이어지는 땅>과 <벗어날 탈 脫>과 <서바이벌 택틱스>는 몸이 없는 영화다. (중략)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테지만, 이미 기록된 영화의 증상을 목격했다면 우리는 거기에 응답해야만 한다.”(김병규, <씨네21> 1452호) 동시대에 개봉한 일련의 영화가 공통의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것에 응답하는 일은 영화 전문 주간지의 숙명이다. 영화를 글로 풀어 기록하는 매체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하지만 고백건대 <씨네21>은 종종 이 응답에 실패하곤 한다. 한정된 지면과 인력 등 주간지 일정의 여러 현실적 어려움은 목 끝까지 차올랐던 응답을 속으로 삭이게 할 때가 잦다.
그렇기에 <씨네21>은 우리를 찾았던 독립영화의 경향을 최소한 분기마다 정리하려 한다. 독립영화는 투자·제작부터 상영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상업영화에 비해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재빠르게 반응하거나 녹
[기획]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 2024년 2분기에 주목했어야 할 독립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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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위해 사람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신념을 지킬 수 있다면 대통령 시해도 괘념치 않는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와 그를 막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제 부총리 정수진(김희애). 국무총리의 계략을 한발 앞서 내다보며 강수를 두는 정수진은 가히 박동호의 대항마라 할 수 있다. <퀸메이커> <데드맨> 속 전략가의 모습으로 익숙한 시청자들 앞에, 배우 김희애가 최전선에서 정치 변혁을 일구려는 새로운 인물이 되어 돌아왔다. 섬뜩할 정도로 강단 있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정수진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에 대한 몰입을 강화한다.
- 김용완 감독이 김희애 배우가 “<돌풍>의 대본을 가장 사랑하는 배우”라고 이야기했더라. 실제로 박경수 작가의 팬이라고.
박경수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 참 귀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저력과 깊이가 있는데 그렇다고 글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돌풍>시나리오도 퀄리티가 굉장히 높
[인터뷰] 비극의 카리스마, <돌풍>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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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앞에서 배우 설경구는 두개의 질문과 씨름했다. 대기업과 손잡은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에 환멸을 느낀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는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대의 아래 대통령을 시해한다. 코마 상태에 빠진 대통령 대신 권한대행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 거침없는 남자를 두고 설경구는 우선 물어야 했다. “이런 사람이 정말 현실에 존재할까?” <추적자 THE CHASER> <펀치> 등을 쓴 박경수 작가의 뼈 있는 염원이 반영된 첫 번째 질문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른 배우의 고민은 이랬다. 신념과 명분에만 의지해 정치권에 자기 생을 투신하는 캐릭터를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매체 데뷔 30여년 만에 선보이는 첫 드라마 주연작이자 넷플릭스 시리즈인 <돌풍>을 두고, 세간은 그에게 달라진 산업 환경과 커리어의 전략에 관한 물음을 던지지만 설경구의 대답은 언제나 간명하다. “박동호를 그답게 만들기 위해선
[인터뷰] 초인의 기세, <돌풍> 설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