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제작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숀이 미키 코헨 역을 제안받고 거절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작자가 나에게 미키 역할을 제안했는데, 나보다는 숀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숀이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숀과 내가 친구 사이라서 가능하기도 하지만, 영화에 출연할 때 나는 배역에 맞는 배우들을 추천하고 출연하도록 설득하는 걸 종종 거드는 편이다.
-당신이 연기한 존 오마라의 후손들을 만났다고 들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만났고 그의 친구도 만났다. 그는 80살 된 노인이었는데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기운이 센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느낌을 캐릭터에 넣고 싶었고, 결국 내가 연기한 존 오마라는 복합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1940년대 갱스터영화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무척 좋아한다. 너무 많이 봐서 그 영화와 나 사이에 특별한 유대가 있다고 믿을 정도다.
감독 때문에 선택했다
-
-젊은 감독으로 숀 펜이라는 대배우와 함께한 경험이 어땠나.
=꿈이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내가 원한 유일한 미키 코헨이 숀이었다. 물론 처음에 숀은 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고작 영화 3편을 만들었을 뿐이고 대부분이 코미디영화였으니 아마도 숀도 내가 <갱스터 스쿼드> 같은 스케일의 영화를 다룰 수 있을까 의심했던 것 같다.
-어떻게 설득했나.
=아마도 내가 가진 이야기에 대한 열정을 믿어준 것 같다. 숀을 만나 미키 코헨에 대한 생각들을 말했다. 나는 미키가 무겁거나 두렵기보다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작고 뚱뚱하고 대머리였다. 하지만 숀은 그런 외양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미키를 만들었고, 숀의 얼굴에 보형물을 집어넣어 색다른 느낌을 주려고 했다. 또 실제로 미키는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이었다. 숀은 그 사실에 관심이 있었고 영화에서 복서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했다.
-1940년대
꿈은 이루어 졌다
-
-<갱스터 스쿼드>는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준다. 이 시기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지.
=어린 시절 부모님은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영화만 보여줬는데, 오래된 고전영화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처럼 10대 때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게 되면 언제 어디를 가도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체감한다.
-프로덕션 디자인이 실감난다.
=촬영장에 나가면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모든 소품들이 1940년대에서 빌려온 것들 같아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곤 했다. 촬영장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내게 “꿈 꾸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16살 때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했으니 영화를 연출한다는 게 나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겠다.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감독 데뷔작이었던 <더 빌리버>에서 유대인 나치 역을 맡았었는데, 그런 이중성에 관심이 많다. 나는 데릭 시네프랑스처럼 현실에 기반을 둔 영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서 있다
-
<갱스터 스쿼드>는 1949년 LA를 주름잡은 갱 두목 미키 코헨(숀 펜)을 소탕하기 위해 정의감으로 무장한 LA 경찰들이 뭉치는 범죄영화다. 자경단 같은 LA 경찰들이 미키 코헨의 조직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도시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모습은 여러모로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의 서부극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숀 펜을 비롯한 라이언 고슬링, 조시 브롤린, 에마 스톤, 닉 놀테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출연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됐다. 김효선 영화평론가가 <갱스터 스쿼드>를 소개하고, 안현진 LA 통신원이 루벤 플레셔 감독, 라이언 고슬링, 조시 브롤린 인터뷰를 보내왔다. <갱스터 스쿼드>처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직행한 여러 편의 영화도 함께 덧붙인다.
배리 레빈슨의 <벅시>(1991)는 갱스터계의 ‘위대한 개츠비’, 벅시 시겔의 무모한 꿈과
악당이 만든 천사들의 도시
-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포스터를 기억하는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간을 찌푸린 채 먼 곳을 응시하는 해리슨 포드의 얼굴을, 혹은 깊은 눈매와 멋스러운 잔주름을 기억하는가. 클래식한 화풍으로 표현된 <스타워즈> 시리즈나 <E.T.>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어떤가.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헬보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떠올려도 좋다. 다만 당신이 정말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 숱한 명작들을 관통하는 이름, 드루 스트루잔이다.
하룻밤 만에 스케치한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
1947년 오리건주에서 태어난 드루 스트루잔은 몹시 가난한 유년을 보냈다. 대학에 갈 때가 되어 전공을 정해야 했던 그는 정통 미술과 상업 일러스트 사이에서 갈등했으나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길을 택했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나는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였다. 가족들은 나의 꿈이나
80년대 할리우드 포스터들을 낳은 손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스타 게이트 신을 기억하는가. 우주비행사 보우먼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열쇠를 쥔 모노리스에 다가가는 순간, 스타 게이트가 열리면서 기이한 빛들이 우주의 암흑을 뚫고 뿜어져 나온다. 이 장면은 어떠한 인간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공을 넘어 미지의 공간으로 도약하는 찰나의 순간을 초월적인 영상미로 그려낸다. 이 전설적인 장면을 가능케 한 것은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감과 시각효과의 장인 더글러스 트럼블의 기술력이었다.
특수효과 전문가로서 더글러스 트럼블이 서 있는 지점은 앞서 소개된 여러 거장들의 위치와 사뭇 다르다. 레이 해리하우젠부터 스탠 윈스턴에 이르는 계보를 기계적 특수효과라고 부를 수 있다면, 더글러스 트럼블의 영역은 광학적 특수효과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그는 피사체가 되는 사물의 정교한 연출은 물론, 빛을 이용한 카메라 본연의 마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테크니션이다.
트럼블이 영화계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64년
우주도 미래도 그의 손에서
-
<터미네이터2>(1984)의 공포스런 액체로봇 T-1000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쥬라기 공원>(1993)의 흉포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어떤가. 마지막으로 <배트맨2>(1992)의 음산한 고담시와 그곳에 출몰했던 기괴한 캐릭터들을 떠올려보자. 80, 90년대 할리우드가 창조해낸 가장 환상적인 피조물 뒤에는 언제나 스탠 윈스턴이 있었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 팀 버튼의 비전을 실현시킨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특수효과 감독이었다. <에이리언2>(1986)의 거대한 퀸 에일리언과 <프레데터>(1987)의 섬뜩한 외계인 사냥꾼, 그리고 <가위손>(1990)의 주인공 에드워드 시저핸드 역시 모두 이 명장의 손을 거쳐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
<쥬라기 공원>, 공룡들이 살아오다
그는 할리우드의 으뜸가는 인형술사였던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고 적용하는 데에 개방적인 혁신가였다. 재래식 특수분장과
터미네이터의 창조주
-
앨프리드 히치콕의 <새>(1963)에서 멜라니가 전화 부스에 갇혀 갈매기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의 압도적 공포를 기억하는가. 수백 마리의 새가 등장하는 장면은 기술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였고, 실제 새들과 시각효과들이 스크린 위에서 제대로 합쳐진 성취는 당시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전작 <싸이코>의 흥행으로 모든 관심이 <새>에 몰려 있었던 때였고, 히치콕의 도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실험이었다. 모든 스탭을 불안에 떨게 만든, 이 까다로운 장면의 한가운데 히치콕의 파트너로 알려진 프로덕션 디자이너 로버트 F. 보일이 함께하고 있었다.
로버트 F. 보일은 ‘히치콕의 리얼리즘’을 구현해내는 데 없어서는 안될 일원이었다. 그는 히치콕의 작품 중 <새>를 비롯하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마니>(1964) 등에 참여했는데, 첫 인연은 <파괴 공작원>(1942)이었다. <파괴 공
히치콕의 조력자
-
<스타워즈>(1977)에서 오비완 캐노비를 찾아 황량한 모래행성에 떨어진 로봇 C-3PO와 R2-D2를 기억하는가. 영화 속 C-3PO는 “우릴 공장에 보내 고철로 만들 거야”라며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에 나온 마리아의 형태를 기반으로 한 황금색 로봇 C-3PO와 동그란 깡통로봇 R2-D2는 SF영화사의 기록을 새로 쓰던 기념비적인 비주얼의 탄생을 뜻하는 사건이었다. 모래행성에 앞선 우주선 장면에서 위용을 드러낸 다스베이더와 함께, 이들은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된다. 그리고 그 돌풍의 핵에 컨셉 아티스트 랠프 매쿼리가 있었다.
캐릭터부터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디자인까지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버지는 조지 루카스였지만, 랠프 매쿼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모양새는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스타워즈>를 착안할 당시 조지 루카스는 <청춘낙서>(
다스베이더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다
-
<아르고 황금대탐험>(1963)의 일곱 해골 병사를 기억하는가. 땅에서 솟아나온 해골병사들이 칼과 방패를 들고 스톱모션으로 공격해올 때, 실제 배우들은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이미 자신들의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자연스런 움직임뿐만 아니라 한숏 내에서 실제 배우와 해골병사의 칼과 칼이 부딪치고, 방패로 칼을 가로막고 발로 걷어차며, 해골병사의 목이 뎅강 날아갔다. 그저 괴물이 등장하고 그걸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도망다니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한숏 내에서 함께 움직이며 부대꼈다. <반지의 제왕>(2001)의 골룸의 선조라 부를 만한 진짜 ‘디지털 액터’는 그렇게 태어났다. <쥬라기 공원>(1993)과 <반지의 제왕>의 원조가 바로 거기 있다. 곧 개봉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의 거대한 괴물도 레이 해리하우젠이 작업한 <심해에서 온 괴물>(1953)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핵실험을 통해 태어난 괴물을 보고 이
경이의 피조물들
-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아버지 레이 해리하우젠이 지난 5월7일 93살로 세상을 떴다. <심해에서 온 괴물>(1953), <아르고 황금대탐험>(1963), <신밧드의 대모험>(1974)등을 통해 선보인 스톱모션 기술은 ‘꿈의 공장’의 시작을 알렸다. 단언컨대 그가 없었다면 <스타워즈>(1977)도 <쥬라기 공원>(1993)도 <반지의 제왕>(2001)도 없었다. 이제 실사영화의 거의 모든 라이브 액션 장면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지는 시대, 레이 해리하우젠의 죽음은 오랜 세계 영화사에 있어 ‘수공업의 종말’을 알리는 거대한 상징과도 같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장인들이 하나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의 창조주이자 아이언맨 슈트를 제작한 스탠 윈스턴은 지난 2008년 세상을 떴고, ‘히치콕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로버트 F. 보일은 지난 2010년 100살로 세상을 떴으며, <스타
꿈의 공장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
▶ 카메라와 아버지
김우형(가운데)_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많이 갖고 놀았다. 형이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즐겨서 그 덕을 좀 본 셈인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8mm 영상 카메라도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폭력물’을 찍으며 재미를 붙였다. 영국의 인터내셔널 촬영스쿨을 졸업하고 난 뒤 메이킹 필름의 스탭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촬영부를 거쳐 <거짓말>에서 처음 메인 카메라를 잡았다. 그 작품을 시작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상 카메라를 옆에 두고 지내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장성호(오른쪽)_나도 나름대로의 히스토리가 있다. 아버지께서 국방영화 촬영감독이셨다. 총을 잘 쏴서 특등 사수로 임명됐을 때 원하는 부대로 배치해주겠다고 하니까 편해 보여서 촬영을 시켜달라고 하셨단다. 김우형 촬영감독처럼 프로가 되지는 못하셨다. 그래도 굉장한 시네필이셨다. TV는 못 보게 해도 영화와 뉴스는
기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
-
창간 18주년을 맞아 <씨네21>이기에 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쉽게 만날 수는 없었던 영화 제작의 숨은 주역들과 함께하는 토크쇼다. 5월3일엔 주성철 기자의 진행으로 김상범 편집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을, 5월6일엔 이화정 기자의 진행으로 김우형 촬영감독과 장성호 모팩 스튜디오 대표를 게스트로 모셨다. 현장에서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디테일한 에피소드부터 영화 제작 작업에 끌리게 된 사적인 이유까지, 스탭들이 전하는 상세하고 내밀한 이야기에 함께 귀기울여보자. 말하자면, 선배가 후배에게 부치는 다정한 편지다. 행사 진행에 있어 많은 도움을 준 명필름과 명필름 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도전하라, 부딪히고, 이겨내라
<씨네21> 창간 18주년 기념 토크쇼 1편: 김상범 편집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 어떻게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류성희(가운데)_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영화미술을 시작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영화 장인들의 편지
-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에 대한 바즈 루어만의 가장 큰 재해석은 음악에서 드러난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에는 재즈 음악이 흘러넘쳤으나 루어만은 그 음악을 복원해 원작 팬들을 기쁘게 하기보다 새로운 감흥을 주길 원했던 것 같다. “1925년 독자들이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의 감정을 관객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소설 안에는 재즈가 흐른다. 위험하고 사람을 취하게 하고 스릴이 넘치고 섹시한, 그게 바로 재즈였다.” 바즈 루어만이 생각하기에 위험하고 매혹적인 21세기의 ‘재즈’는 힙합이었다. 트럼펫과 심벌즈 소리보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리듬감있는 비트가 현대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루어만의 재해석에 따라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총괄한 이는 힙합 뮤지션 제이-지다. 영화에 앞서 공개된 <위대한 개츠비> O.S.T의 면면을 보면 마치 ‘그래미 어워드 컴필레이션’ 음반 같다. 제이-지를 비롯해 비욘세, 카니예 웨스트, 윌 아이 엠, 퍼기,
힙합, 21세기의 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