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하는 여자의 손에는 리볼버가 들려 있다. 이 리볼버는 2년 전 하수영(전도연)이 연인을 대신해 비리를 덮어쓸 때 7억원의 보상을 약속하는 구두계약이 녹음되어 있던 핸드폰과 맞바꾼 것이다(두 사물이 직접 교환된 건 아니지만 리볼버는 여자가 데이터 복구에 실패한 핸드폰을 버리고 빈손이 되었을 때 찾아온다. 리볼버는 과거를 냉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만이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일을 쉽게 해결해줄 힌트 대신 일을 더 어렵게만 만들게 될 무기다. 앞으로 그녀와 대면하게 되는 모두가 그녀를 골치 아파할 것이다. 수영은 스치는 인연마다 사사롭게 얽혀 있고, 정윤선(임지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적대감을 비친다. 실연, 원망, 동경, 동질감 그게 무엇이든 총구 앞에서는 평등해지는 것처럼. 그러나 이들이 사나워지는 것은 반대로 수영의 반응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영은 자신의 요구를 순진하게 관철하면서 탑을 오르는 사람이다
누아르의 재현과 불발된 멜로, <리볼버>의 과도한 경직이 감추는 것
-
<리볼버>의 종결부에서 오승욱 감독은 스스로 “1990년대 중반 연출부 일을 할 때 최대의 관심사”였다고 밝힌 충무로의 선대 감독 김기영의 한 장면에 접근한다. 하수영(전도연)이 한손에 돈가방을 들고 결말의 무대인 화종사를 내려갈 때, 그녀 옆에선 그레이스(전혜진)가 앤디(지창욱)의 휠체어를 힘겹게 밀고 있다. 하수영이 휠체어에 탄 앤디를 산 위에 올려둔 것처럼 그레이스도 방향을 뒤집어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하지만 절 앞마당에 깔린 파쇄석 때문에 잘 밀리지 않는다. 휠체어 바퀴가 자꾸만 헛돌고 그레이스의 하이힐은 돌밭 사이에 박혀버린다. 그 와중에 그레이스와 앤디가 실은 모자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범죄영화의 클라이맥스라기엔 좀 황당한 광경이다. 돈을 건네받은 쪽의 정서는 생각보다 건조하고, 돈을 넘겨준 쪽은 엉뚱한 곳에 힘을 쏟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여자는 지금 손에 인생의 무거운 짐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리볼버>에 깃든 김기영의 흔적은
다시 돌아갈 순 없으리, <리볼버>와 아파트
-
오승욱의 <리볼버>는 드라마의 성질과 장르의 본질을 따르는 척하면서 거스른다. 드라마의 얼개는 있지만 극적인 충격은 없다. 대신 묘사가 있다. 시각적 층위에서 드라마의 극성이 사라진 부분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극적 수사를 대신한다. 그게 상당수 관객의 심기를 건드렸다. 폼을 잡으며 허세를 부리는 재수 없는 영화, 겉만 그럴싸하며 알맹이는 없는 인물들만 나오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삶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겸손한 통찰을 품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통로인 극적 장치, 클리셰, 선입견 등을 동원하면 안된다는 강박감의 발로로서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명쾌한 방법론을 거부하고 궤도를 이탈한 채 인간의 이해는 클리셰를 넘어서는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신중한 묘사를 취한다. 굉장한 척 보이지만 실은 시시한 것들을 묘사하면서 이 영화는 영화적 품격이라는 걸 성취하고 있다. 그 수법이 치밀하고 성실하며 다양한 장인적 기예를 포함하고 있어 연출과 연기, 촬영
허세가 자세가 될 때, <리볼버>의 영화적 품위
-
<리볼버>가 25만 관객(8월20일 기준)을 모으며 지난해 추석 <거미집>의 충격적인 흥행 부진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형 장르물의 대들보처럼 여겨지던 감독들의 야심작이 관객에게 냉담히 외면받고 있다. 한국영화가 불쌍하다거나 이 상황이 안타깝다는 이유만으로 <리볼버>를 다시 호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리볼버>를 보며 느낀 모종의 이상함과 엇나감, ‘오승욱은 영화를 왜 이렇게 찍었지?’라는 관객으로서의 응어리, 그래서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곤란함을 지금이나마 다소 해소해보고 싶은 영화 주간지의 욕심이 이번 특집기사를 불렀다.
그렇다면 조금 구체적으로 다시, <리볼버>는 왜 다시 말해져야 하는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답은 <리볼버>를 향한 원색적 비난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출하게 말하자면 <리볼버>는 이상하다. 어쩌면 사실 그냥 잘 못 만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아르의 비
모난 돌이라 어여쁘다, <리볼버>의 이상함이 반가운 이유
-
-
<리볼버>는 굳이 돌아봐야 할 영화일까. 별달리 흥행하지 못했고 공개 당시 평단의 압도적 지지도 없었으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번 <리볼버> 특집기사는 그 이유가 있지 않냐고 제언하는 자그마한 항변에 가깝다. 우선 이우빈 기자는 <리볼버>의 이상함이 근래 한국영화가 진정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주장하며 논의의 기반을 닦았고, 김영진 평론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화적 성과로 길이 평가받을 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병규 평론가는 “비로소 오승욱의 두 번째 챕터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영화”라며 <리볼버>가 한국영화의 아파트란 공간을 어떻게 변주했는지 살폈다. 그리고 김예솔비 평론가는 리볼버를 든 하수영(전도연)의 이미지를 불발된 멜로의 변형으로 흥미롭게 간주했다. 개봉 시기가 지난 영화를 뒤늦게 지면에 불러오는 욕심을 통해서라도 <
[특집] 총알은 남아있다, <리볼버>로 돌아보는 ‘한국영화’
-
1999년 세기 말, 거제상고에 재학 중인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춤꾼이다. 가수 엄정화의 백댄서가 되려면 안무실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필선은 전학생 세현(조아람)을 내세워 치어리딩부를 창설한다. 어쩌다 모여든 9명의 부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오합지졸, 얼렁뚱땅, 좌충우돌, 우당탕탕이다. 짜장면과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게 최대 행복인 시절, 순박한 청소년들은 서로의 웃음소리만으로 데굴데굴 웃는다. <빅토리> 프리미어 시사 이후 인터뷰가 진행될 공간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배우 이혜리, 박세완, 조아람이 서로의 얼굴을 부비며 머리를 매만져주고 있었다. 완두콩 세알처럼 똑 붙어 있는 얼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어버렸다. 어쩌면 모두가 <빅토리>의 무해한 세상 안에서 데굴데굴 웃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 개성 강한 고등학생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과업이었을 것 같다. 각 친구들을 어떤 인물로 바라보았나
[인터뷰] ‘응원할게, 앞으로의 나를, 그리고 함께 걸어갈 우리를’, <빅토리> 이혜리, 박세완, 조아람
-
네이버웹툰에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연재된 <정년이>는 서이레 작가가 스토리를, 나몬 작가가 작화를 담당해 완성한 웹툰이다. 1950년대 전쟁 직후 한국에서는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모든 배우가 여성인 국극이 큰 인기를 얻었다. 어릴 때부터 소리를 잘한다는 말을 들은 목포 태생의 정년이는 여성 국극단의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상경한다. 당당하게 매란국극단의 단원이 되지만 매란국극단의 스타 배우 옥경과 혜랑, 에이스 영서 사이에서 정년이는 자신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실감한다. 자신의 야심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여성들과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주제는 꾸준히 호평받으며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국립극단 창극으로도 제작됐으며, 올 하반기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정년이>의 방영도 앞두고 있다. 정지인 감독, 서이레·나몬 작가와 나란히 앉아 웹툰과 드라마 <정년이>의 비하인드 스토리
[기획] 아마도 이건 불가항력 - 드라마 <정년이> 미리보기
-
120편에 달하는 소설과 영화비평가로서 남긴 부지런한 궤적들을 아울러 듀나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키워드를 정리해보았다. 듀나 스타일 혹은 듀나의 문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미래 사회 미리보기
그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흩어진 초기 단편들을 모은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그레타 복음>이다. 인문학 연구와 인공지능(AI)이 긴밀하게 얽힌 미래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에 끼치는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이처럼 듀나는 PC통신 이후의 인터넷 중심 사회나 정상성 바깥의 인물들이 겪는 가중된 차별 등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상을 SF의 중심 의제로 일찍이 다뤘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 대한 테마도 1990년대 말부터 건드려왔다. 2024년에 듀나의 초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상상력이 오늘과 정확히 맞닿는 지점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의 연속이다.
#바로 여기, 한국에서
듀나의
이것이 듀나 스타일 - 키워드로 읽는 듀나의 소설들, 문장들
-
- 데뷔 30주년 축하드립니다. 데뷔 30주년 기념 포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듀나’가 열렸는데요, 그에 앞서 몇달간 콜로키엄도 진행되었습니다. 행사들을 어느 정도 팔로업했나요.
=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했고 콜로키엄 자료 PDF를 받아서 봤어요.
- 창작자이자 평론가로 긴 시간 활동해오셨는데요.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들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글쎄요. 전 제 과거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난 30년 동안 자연인인 저에겐 정말 특별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듀나에겐 자잘한 마감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거 같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동안 엄청난 도약이나 변화를 겪은 거 같지는 않아요.
- 90년대의 창작 환경에 대해서 포럼에서 다각도로 다루어졌는데요. 처음 글을 쓰던 때가 기억나는지요.
= 하이텔과 같은 통신망 시절의 분위기가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저의 대부분이 그 시절에 만들어졌을 거예요. 단지 언제부터 그 세계에
[인터뷰] 이미 우린 SF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듀나 인터뷰
-
올해는 듀나(이영수)가 PC통신 하이텔에 등장해 소설과 평론을 게시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씨네21>이 1995년에 창간되었으니, 듀나라는 아이덴티티의 탄생이 (짐작건대 가장 폭넓은 독자층에 듀나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매체인) 이 잡지의 탄생보다 조금 앞선 셈이다. 듀나가 창간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편집장이 수차례 바뀌는 와중에도 꾸준히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칼럼을 게재해왔음을 고려하면 <씨네21>이야말로 듀나의 30주년을 기념하기에 가장 적절한 지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대부분의 독자들은 듀나를 영화평론가로 알고 있겠지만, 정작 나는 SF를 애호하는 연구자로서 그의 소설에 더욱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재식 작가는 듀나의 단편집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2022)의 추천사에서 듀나를 소설가가 아닌 영화평론가로만 아는 세간의 인식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가 꿈꾸는
듀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소설가·영화평론가 듀나의 30년을 돌아보다 소수자적 감각을 바탕으로 쌓아가는 장르의 다양성
-
주나 반스(Djuna Barnes)의 이름에서 따온 필명과 토끼 프로필. 지금까지도 듀나의 프로필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게 전부다. 그러나 듀나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이제 정체성을 캐내는 일보다 작품의 효용과 재미에 집중한다. 1994년에 데뷔해 어느덧 30년. PC통신 작가로 데뷔한 그의 역사가 곧 한국 SF 소설의 계보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무대로 공상과학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 듀나를 따라 소수를 위해 존재했던 국내 SF 소설은 어느덧 메인스트림에 자리 잡았다. 지금껏 써온 약 120편의 장·단편 소설과 <씨네21>, 웹사이트 <듀나의 영화낙서판>, 개인 트위터 계정에 쓴 수많은 영화 논평으로 빼곡히 채워진 듀나 유니버스를 돌아본다. 우리가 기억하고 앞으로도 보고 싶은 그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굵직한 사건들이 한국 영화사에서 어떻게 재구성, 재현되었는지 총망라한 연대표는 역사는 물론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는 또 다른 프리즘이
[특집] 듀나라는 우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작가·평론가 데뷔 30주년 맞은 듀나에 관한 이모저모
-
정이삭 감독이 <트위스터스> 연출을 맡은 뒤 처음으로 캐스팅을 확정한 배우는 데이지 에드거존스였다. 제작 소식을 접할 때부터 “재난영화와 정이삭 감독의 만남이 흥미로웠다”고 밝힌 그는 영화에 합류하자마자 정이삭 감독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했다. <미나리>를 통해 정교하게 인물을 세공했던 정이삭 감독으로부터 “조용하고 세밀한 감정적 작업을 이어왔다는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원작과의 차이점을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케이트의 감정적 깊이와 비중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영화에 가장 중요한 소재인 토네이도를 두고 “내면의 상흔과 다투면서도 인물의 감정적 혼란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은유적 개념”이라고 표현한 답변에서 인물의 심연과 자연을 연결 짓는 데이지 에드거존스만의 연기관을 엿볼 수 있었다.데이지 에드거존스가 연기한 기상학자 케이트는 폭풍의 눈처럼 <트위스터스>의 모든 서사를 끌어당긴다. 그중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관계는 대담하고
[인터뷰] 두려움에도 고개 돌리지 않는 힘으로, <트위스터스> 배우 데이지 에드거존스
-
<미나리>를 통해 이민 1세대 가족의 희망과 고초가 깃든 땅의 이야기를 다뤘던 정이삭 감독의 시선이 하늘로 옮겨졌다. 굉음과 강풍으로 지면을 집어삼키는 토네이도가 그 주인공이다. 얀 드봉 감독이 1996년 발표한 영화 <트위스터>의 속편인 <트위스터스>로 돌아온 정이삭 감독은 “존경과 애정이 없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작을 향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냈다. 차기작으로 재난영화를 택한 그의 행보가 새로운 도전처럼 보이겠지만, 허망하게 헛간 속 희망을 모두 태워버린 <미나리>의 화마처럼 그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에 관심을 품고 있다. 짧은 화상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작업기를 두고 “상상했던 일”이나 “좋은 기회”라는 말을 아끼지 않던 정이삭 감독에게서 <트위스터스>가 생성한 흥미로운 궤적에 관해 들어보았다.
- 대학 시절 생물학을 전공했고, <미나리>에는 큰 화재가 등장한다. 차기작으로 재난영화 <트위스터스&
[인터뷰] 경외하는 만큼 두려워하고 또 사랑하기를, <트위스터스> 정이삭 감독
-
“느낌이 오면, 쫓아라!” (If you feel it, chase it!) 거대 회오리바람인 토네이도를 피해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쫓아 그 중심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미지의 영역을 면밀히 분석해 재난으로서 토네이도를 이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네이도가 펼쳐내는 매혹적이고 압도적인 광경을 두고 ‘자연이 빚은 걸작’이라 찬미하며 이를 즐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를 통해 크게 한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트위스터스>는 인류가 아직 그 존재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토네이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전작 <미나리>에서 미국 중남부 아칸소주의 목가적 풍경을 사했던 정이삭 감독은, 이번엔 배경을 바로 옆에 위치한 오클라호마주로 옮겨 다시 한번 그 땅에서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영화는 오클라호마 출신 케이트(데이지 에드거존스)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기획] 토네이도에 맞서는 한 인간의 서사시, <트위스터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