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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뮐러짐 자무시, 빔 벤더스,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팀을 이루어온 명촬영감독. 별다른 액세서리가 붙지 않은 기본 장비를 선호하면서도 영화마다전혀 다른 그림을 뽑아내는 재능으로 유명하다. <고스트 독> <데드 맨> <브레이킹 더 웨이브> <댄서 인 더 다크> <탱고 레슨> 등이그의 작품이다. 예산 부족으로 공항 가는 택시와 베를린행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촬영을 했던 첫 장편영화 <도시의 여름>부터 벤더스의 카메라를잡고 전신주, 철로, 거리를 찍어온 로비 뮐러는 <페널티킥을 맞이하는 골키퍼의 불안> <도시의 앨리스> <길의 왕> <미국인 친구> <파리,텍사스> <구름 저편에> 등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의 영화들을 통해 파트너십을, 벤더스와 그의 이름을 불가분의 짝으로 묶었다. “아마 내가그의 꿈을 (이미지로) 잘 번역하고 트래블링 숏을 잘 찍기 때문에
벤더스의 동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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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무대>(Schauplatze)1968 <클라펜필름>(Klappenfilm)1969 <실버 시티>(Silver City) <앨라배마:2000 광년>(Alabama:2000 Light Years)1970 <도시의 여름>(Summer in the City)1971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Die Angst der Tormannes beim Elfmeter)1972 <주홍글씨>(Der Scharlachrote Buchstabe)1974 <도시의 알리스>(Alice in den Stadten) <잘못된 움직임>(Falsche Bewegung)1976 <시간의 흐름 속에서>(Im Lauf der Zeit)1977 <미국인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1980 <물 위의 번개>(Lightning Over Water)1982 &
빔 벤더스 주요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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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에서>(1976)의 후반부에서 로베르트는 기차역 근처에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노트에 적고 있다. 철로, 하늘, 구름, 가방을 든 남자, 검은 눈, 주먹, 돌 던지기…. 영화 속에서는 아주 잠깐 등장하는 이 장면은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꽤 중요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 소년의 사소한 행위란 바로 빔 벤더스 감독 자신이 영화를 구축하는방식, 영화에 대한 견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벤더스의 영화란 마치 어린아이가 무언가 난생 처음 보는 어떤 것을 접해서 기뻐하고그것을 자기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애쓰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그런 ‘순수한’ 시선을 가지려고하는 것. 벤더스가 정의한 영화의 속성이란 일차적으로 바로 그런 것이었다.영화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벤더스는 기본적으로 영화란 (물질) 세계를 ‘발견’하고 또 ‘탐구’하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
빔 벤더스를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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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출생, 1951년 인민군 31사 정찰대원 소속으로 철원지구 정찰도중 유엔군에 체포, 1952년 15년형 확정, 1953년간첩죄가 추가되어 사형선고, 1954년 무기감형, 1995년 석방, 2000년 북송.’ 김선명의 삶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택>은 이중51년에서 95년까지 김선명씨의 수감생활만을 그린다. 홍기선은 “핵심은 감옥 안을 얼마나 잘 그려내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폐쇄된 공간에서맺는 특별한 인간관계들이 극영화로서 <선택>이 갖는 매력이다. 기본적으로 강압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사회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대립관계를그리지만 단순한 선악대결은 아니다. 그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시대의 희생양이 된 현실에 주목하며 성자도, 현자도, 투철한 공산주의자도아닌 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강압에 저항하는 다분히 평범한 인간 김선명에 주목한다. 물리적 폭력에 좀처럼 반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과달리 화가 나면 완력을 쓰는 일도 서슴지 않는 김선명은 교도소의
<선택>은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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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10년, 차기작 <선택>으로 재기 꿈꾸는 홍기선 감독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찍은 92년에서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간 시간이다. 불운일까? 영화가엔터테인먼트상품으로, 벤처산업의 유망주로 각광받게 된 그 세월 동안 홍기선 감독은 결코 두 번째 영화를 찍지 못했다. 외도를 하지도 않았다.94년 동학 100주년 기념 미니시리즈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각본을 쓴 일은 있지만 새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떠난 적은 없었다.지금 그가 붙잡고 있는 시나리오는 세계 최장기수로 알려진 김선명씨의 삶을 다룬 <선택>이라는 영화다. 97년 부산국제영화제 PPP에 처음내놓은 <선택>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극영화제작지원작에 선정되면서 홍기선 감독을 설레게 했다. 10년 만에 얻은 기회라면 누군들 흥분하지않겠는가. 그러나 유니코리아에서 제작을 맡기로
홍기선의 7전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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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리 엘리어트>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 발레리노로 성공하는 이야기이다.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성 발레의 힘찬 아름다움을 듬뿍 감상할 수 있다. ‘발레’라는 말만 보고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남자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 편견을 고집한다면 아까운 영화 한편을 놓치게 된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사람의 성공담이기도하다. 이 영화에는 비굴한 사람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2. 그 탄광촌의 학부모들은 과외로 남자아이들에게는 권투를 여자아이들에게는발레를 배우게 한다. 내가 어렸을 적, 서민 가정에서 흔히 남자아이들을 태권도 도장에 여자아이들을 한국무용 학원에 보냈듯이. 빌리는 열한살,아버지와 형과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살고 있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광부이다. 현재 파업중으로 마을에서는 극렬한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그래서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살림이 더욱 어렵다. 크리스마스에 땔감이 없어서 빌리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피아노를 부숴 장
시인 황인숙이 빌리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떠올린 8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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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주관적인 감상문을 써보라는 요청을받았다. 그날 나는 신이 났었다. “필(feel)이 팍 꽂히네요”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영화를 재미나게 본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중.) 할말은 무지하게 많은데 마치 취객의 걸음걸이가 꼬이는 것처럼 머리 속과 손가락이 꼬였다. 쉬 마려운 강아지마냥 오락가락하며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아프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다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창 밖을 쳐다보았다. 하늘 위에서 홀연히 생각 하나가둥실 떠올랐다. “길들여져 있었구나….” 나는 ‘비평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 길들여질 만큼 오래도록 애써왔던 것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환경, 자세, 준비물(나는 작은 수첩과 형광불빛이 나오는 볼펜을 휴대한다), 태도와 보는 각도 등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자동으로 ‘스탠바이’시킨다.여기서 꼬리를 문 생각이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으로 흘러들어갔다.영화의 첫머리에서 LP레코드가 올려지고 난 뒤, 열한
영화평론가 김소희가 돌아본 성장기의 ‘빌리’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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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 대설경보와 함께 보낸 겨울의 끝자락에서 안부를 묻습니다. 1년이 넘은 뉴욕 생활은 견딜 만합니까. 두 아들 녀석에게는 자주 연락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오늘이 하길종 감독 기일이기에 나도 김지하 시인이 유학생 하길종에게 보낸 ‘반역의 열광’ 같은 문구의 격문을 띄우고 싶지만, 이번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거든요. 마르쿠제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선언이라도 따르려는 걸까요. 요즘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옥에 갇힌 피트 포슬스웨이트의 강인한 표정,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 아들에게 남긴 씩씩한 걸음걸이, <아름다운 시절>에서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안성기가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김승호 선생이 타계한 뒤 우리 영화에는 ‘한국인의 아버지’로 부를 만한 얼굴이 보이질 않는군요.
<빌리
영화평론가 박평식이 이명세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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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식, 김소희, 황인숙이 <빌리 엘리어트>에 띄운 연서한아버지가 있었다. 광부로 평생을 살았으나 탄광촌도 그의 삶도 이제 마른 석탄조각처럼 부서져갈 것이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년은 발레리나를꿈꾼다. 꿈꾸지만 번번이 가로막힌다. 태어나긴 했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불친절을 거둔 적이 없다. 희망이 있을까. <빌리 엘리어트>는 상처를쓰다듬으며 삶을 껴안는 영화다. 상처없이 삶을 포옹하는 길은 없다고 아프게 말하는 영화다. 결국 희망을 말하지만 그래서 슬픈 영화다.같은배급사의 폭탄 같은 오락영화 <한니발>의 개봉 일정이 밀린 덕에 힘겹게 극장 한켠을 지키고 있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진심어린 위안이다.영화는 결국 두 시간짜리 오락일 테지만, 어떤 오락은 많은 시간이 지나도 오랜 이명을 남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 끝자락에찾아와,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 이 착한 영화에, 두 평론가와 한 시인이 따뜻한 편지 세통
<빌리 엘리어트>에 바치는 세 가지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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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27일, 코펜하겐의 외곽, Avedøre에서 라스 폰 트리에가 덴마크의 영화인들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제작은늘 미스터리의 베일에 싸여 있다. 스튜디오, 아티스트 그리고 제작 환경들은 항상 외부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왔다.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마술과 동일시되던 시대의 유물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알듯이, 마술가들의 비밀은 항상 숨겨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마술의 트릭들은 아주 고전적인 것들이다. 실질적으로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 그리고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현저히 무의미한 것들이다….’라스는 ‘필름은 그렇지 않다’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영화는 너무나 중요하게도 고전적으로 불가능했던 개인의 표현형식과 광범위한 소통을다루고 있으므로 색다른 자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화, TV, 이미지, 사운드 등 이 모든 메시지들의 발달은 문명화의 진전과 동격인것이므로 이것들이 몇몇 선택된 이들의 손에 의해 먼지 쌓인 방에 갇혀 이
오픈 필름 타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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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이 만난 라스 폰 트리에, 그리고 ‘왕국’ 젠트로파 스튜디오어떤 이에게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 있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그 두번째 이야기>를 만든 민규동 감독에겐 라스 폰 트리에가 그런 사람이다. 지난해 6월30일부터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민 감독은 지난해연말 코펜하겐의 젠트로파 스튜디오를 방문해 그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올해 1월 셋째주에는 일주일 동안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폰 트리에의차기작 <독빌> 테스트 촬영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씨네21>은 민 감독에게 이 두번의 방문에 관한 글을 부탁했고, 민 감독은 부탁한분량의 2배가 좀 넘는, 그리고 다소 예상 밖의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은 감독의 눈이 아니라면 발견하기 힘든 예민한 통찰이 담긴 작가론이었다.동시에 “세트 주변 아무 데서나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 것조차 정겨운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의 위대한 인물”에게, 새로운 영화에의긴 여정에
라스 폰 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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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전에 세계 5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번성했던 베를린은 전쟁 기간에 연합군의 방침에 따라 “평지가 될 때까지 때려부수어졌다”. 몇년 뒤 베를린은 부서지다 만 채 침침한 표정으로 남아 있는 시계탑 주변에 극장을 짓고 국제영화제를 시작했다. 50년째 되는 지난해, 성수기 손님을 잃어 울상이 된 중국식당 ‘양자강’의 주인아저씨를 뒤로 남기고 영화제의 주무대는 포츠담 광장쪽으로 이전했다.통일 이전 동서독을 나누었던 경계선(어처구니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그 하얀 선) 위로 포츠담광장 지하철역이 들어섰고 서쪽에 바로 잇대어서 웅장한 영화제 센터가 자리를 잡았다. 동쪽으로는 사무용 및 아파트 건물들이 독일 특유의 육중하고 질서정연한 느낌으로 속속 건축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 센터 한가운데의 자그마한 공간을 마를레네 디트리히 광장이라고 이름붙였으니, 정치와 영화의 결합이라는 메타포는 통일 이후 베를리날레의 공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메인 상영관을 등지고 서면 고급 호텔과 쇼핑몰
`칸` 부럽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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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이랬어야 했는데!”밸런타인 데이 해질녘에 멀티플렉스 극장 씨네맥스에서 비경쟁 특별상영된 쿠스투리차의 세미 다큐멘터리 <슈퍼 8 스토리>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1986년 쿠스투리차가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밴드 ‘노 스모킹’ 의 공연 실황과 감독의 홈비디오 그리고 무대 뒤의 사연들을 흥겹게 엮은 이 영화는 언제나 한판의 굿, 한바탕 퍼포먼스 같았던 쿠스투리차 영화의 ‘정령’처럼 보였다. 1980년대 초 결성된 ‘노 스모킹’은 보통의 록밴드 편성에 세르비아 트럼펫, 집시 음악 등 모든 발칸 음악의 얼굴을 뭉뚱그린 음악- 쿠스투리차가 ‘운짜운짜 음악’이라고 부르는- 을 마을 결혼식장부터 파리 콘서트장까지 연주하고 다니는 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음악도 맡았던 이 밴드에 대해 쿠스투리차는 “발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음악을 한다”고 소개했다. 공연 실황과 함께 사춘기 소년 같은 유치한
“발칸은 지금, 쿵짝 쿵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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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제목의 <리틀 세네갈>(Little Senegal)은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의 정반대 방향에서 노예제의 역사와 그 여진을 그려낸 영화다. 올해 베를린 경쟁부문에서 인종갈등이나 서구사회의 소수민족이 느끼는 현기증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뱀부즐드>와 필리포스 치토스의 <마이 스위트 홈>이 있었으나, <리틀 세네갈>의 어법은 나머지 두편의 영화에 비해 나직하면서도 한결 신선했다.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라시드 부샤레브(48) 감독은, 노예 박물관에서 은퇴한 60대 세네갈 남성 알론이 노예로 팔려간 조상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미국 여행을 통해, 역사의 흉터와 그것을 아물리는 가족애, 그리고 아프리카인과 아프로-아메리칸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의식을 포착했다.이런 스토리를 왜 다큐멘터리로 찍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알론이 탄 배가 캘리포니아에 다다르면서 서서
“팔려간 선조들의 발자국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