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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한국영화의 발견, <소름>
2001-08-10

운명을 삼킨 리바이어던, ‘저주 위에 저주’를 낳다

오욕의 한국현대사 담긴 새로운 어법의 공포영화, 윤종찬 감독의 <소름> 탐구

1998년 7월 윤종찬은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영화전공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만 3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유학을 떠나기 전 봤던 표정보다 어두웠다. 당시 한국사회는 IMF 터널에 갇혀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 분위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무너진 도덕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도 없었고 뭔가 발언해야 할 사람들도 공격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실이 너무 어수선하게 느껴지고 사회 자체가 미스터리 같았다.” 불과 3∼4년 전 실재했던 이런 위기감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일까? 윤종찬의 장편데뷔작 <소름>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 병든 사회에 살면서 둔감해진 주민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한국사회에 대한 두려움에 치를 떤다. 그건 유학을 떠나기 전 본 한국의 마지막 풍경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의 한가운데 선 자신을 발견하다

1995년 6월29일에 일어난 사건을 사람들은 지금 기억이나 할까? 희생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면 언급마저 회피하는 일을. 그날 삼풍백화점은 무너졌다. 사망자 501명, 부상자 937명을 낳은 믿기 힘든 재난의 현장에서 그는 아내를 잃었다. 유학준비를 마치고 한달 뒤 미국행 비행기에 타는 일만 남은 시점이었다. <소름>의 등장인물들처럼 윤종찬은 불현듯 비극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그는 더이상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창문으로 성수대교가 보이는 곳에 살았다. 어느날 다리 중간이 없어진 걸 봤지만 그때는 큰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1년 뒤 삼풍사고가 나자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그건 천민자본주의의 잔해였고 누구도 자기 의지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상처와 폐허를 뒤로 하고 떠난 미국 생활은 영화로 대화하는 법을 배운 시기였다. 영화과를 졸업하고 1992년 <비상구가 없다> 조감독을 한 경력도 있지만 그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시러큐스대학을 다니며 만든 단편 삼부작에서 윤종찬이 천착한 주제는 ‘기억과 운명’이었다. 그건 ‘영화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첫 단편 <플레이백>은 이미지, 사운드, 자막을 낱낱이 뜯어내며 영화 속 시공간을 파괴한다. 두 번째 단편 <메멘토>는 <플레이백>에서 철저히 분해했던 요소들을 하나의 이야기, 복잡한 플롯에 짜맞췄다. 세 번째 단편 <풍경>에 이르면 단순하면서 지층이 두터운 영화를 볼 수 있다. 세 영화는 각기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과 그녀를 죽인 남자, 부모를 모르는 남자와 아들을 잃어버린 여자, 죽은 애인과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남자와 사라진 여자를 찾으려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의 바람은 모두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을 불러내는 것이며 이미지는 종종 현실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을 거슬러 그들의 소망을 실현시킨다. 물론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플래시백처럼 단순한 기법이 있다. 영화 전체가 플래시백으로 이뤄진 <플레이백>은 그런 면에서 소박하다. 그러나 <메멘토>에 이르면 확연히 달라진다. <메멘토>는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며 <풍경>은 두 남자의 교감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곳에 사는 한, 공포는 끝나지 않는다

단편 삼부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윤종찬이 영화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는 영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 한다. ‘운명’이나 ‘기억’이나 ‘시간’처럼 불가해한 것들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이런 시도는 <소름>에서 완결된 스타일로 드러난다.

굳이 감독의 개인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소름>의 주무대인 미금아파트는 한눈에 일그러진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들어온다. 30년 전 살인사건이 있었던 아파트로 이사온 한 청년이 기이한 운명에 휩쓸리는 이야기를 그린 <소름>은 화면 구석구석 광기와 탐욕으로 얼룩진 한국사회의 단면을 겹쳐놓았다. <소름>이 전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은 그 공포가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어딘가에 시체가 숨겨져 있다”는 <소름>의 대사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 오욕의 한국현대사라는 걸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다. <소름>을 만든 계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에 있을 때 주부대상 TV 토크쇼에서 양성애자인 아들이 낮에는 어머니와 밤에는 아버지와 섹스했다고 얘기하는 걸 봤다. 한번 출연하면 1만달러쯤 거금을 주니까 그런 자리에 나오는데 방청석에서도 그냥 재미있어한다. 우리 사회도 점점 그렇게 가는 게 아닐까. 보험금 타려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이 일어나도 그냥 무심히 지나간다. ‘또 그랬나보지, 뭐’ 하는 태도다. 이젠 그런 일에 무감각하다는 얘기다. 귀신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를 느꼈다. 그 느낌은 정확히 소름이었고 그래서 제목을 <소름>으로 정했다.” 실제로 <소름>의 등장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는 몸서리처질 만큼 끔찍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였고 딸은 자기 남편과 아이를 죽였으며 아들은 여동생을 죽인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이 엄청난 살인의 악업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담겠다”는 감독의 야심은 그리스 비극의 정신에서 출구를 찾는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통음하고 나서야 자기 눈을 찔렀던 오이디푸스왕처럼 <소름>의 주인공은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을 땅에 묻으면서 비로소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 30년이라는 저주의 시간을 단 몇분의 시간에 담아 보여준다. 그것은 참으로 구원할 길 없는 절망이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100번의 약속보다 소중한, 순수한 절망이다.

‘소름’ 돋는 운명의 표정

<소름>이 그리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폐쇄회로는 같은 모티브에서 출발한 단편 <메멘토>와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메멘토>는 70년대 LA 빈민가에서 아파트 수위가 빈집에서 사흘간 혼자 울고 있던 한국 아이를 발견해 키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프랑스에 입양됐던 미국인 고아가 우연히 자신이 버려졌던 아파트로 찾아온다는 내용의 <메멘토>에서 운명은 ‘절망’도 ‘희망’도 아닌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 같은 것이었다. <메멘토>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Don’t Walk’(건너지 마시오)라는 신호가 깜박이는 교차로에 서 있다. 과연 그는 교차로를 건넜을까? 증오나 분노나 두려움이 명백한 대상을 갖지 못한 <메멘토>가 그런 궁금증으로 끝맺는 반면 <소름>은 운명의 신호등이 위험을 알리는데 그걸 의식하지 못한 채 교차로를 건넌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영화의 차이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한계는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공간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닌 곳에서 정치, 사회, 문화적 바탕이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메멘토>에서 아무 표정도 짓지 않던 운명은 <소름>에서 극악하고 흉측한 야수의 얼굴을 내비친다. 공포영화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은 <소름>을 공포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운명의 그 무서운 표정 때문일 것이다.

공간을 살려낸 필름누아르의 스타일

그러나 <소름>을 특별한 영화로 만드는 건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분노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정말 새로운 건 그가 <소름>에서 시도한 묘한 화법이다.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 대단히 직설적인 대사를 내뱉지만 결코 단숨에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속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 선영이 어떻게 남편을 죽였을까? 용현이 마지막에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용현 어머니의 시체는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하다보면 영화가 끝나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뭔가 엄청난 괴물을 본 듯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마치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뭔가 불가해하고 거대한 악에 맞닥뜨린 뒤 경험하는 공포와 열패감은 해일처럼 삽시간에 관객을 덮친다.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과 40년대 필름누아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을 <소름>은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의 현실과 접목해 보여준다. 한눈에 필름누아르의 표식을 뚜렷이 드러내는 건 <소름>이 시도한 실사조명이다.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40년대 미국 필름누아르처럼 <소름>은 화면에서 빛이 들어오는 곳이 어딘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찍혔다. 전체 화면을 환하게 보여주는 일반적 조명과 확연히 갈라지는 조명설계인 탓에 촬영팀에겐 모험이었던 작업. 때로 등장인물이 어둠에 잠겨 누군지 식별하기 곤란할 정도지만 영화는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는 대신 공간을 면밀히 관찰하게 만든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인물처럼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다.

필름누아르의 전형적인 인물인 탐정이나 요부가 나오지 않지만 <소름>의 두 주인공, 용현과 선영 역시 하드보일드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보인다. 감독은 그들의 심리적, 정서적 느낌을 탐구하지 않는다. 용현과 선영의 로맨스도 관객의 몰입이 시작될 무렵 돌연 광기와 살의로 전환되고 용현이나 선영의 심리상태는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짐작된다. 이처럼 건조하고 간결한 표현방식에 대해 윤종찬은 “필름누아르를 의식했다기보다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만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그는 “인물의 뒤통수를 찍고 정면에 있는 얼굴은 안 찍는 식이었다. 당연히 촬영하는 쪽에서 나중에 어떻게 편집하려고 그러느냐고 반발했지만 뒤통수를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면 다시 얼굴을 찍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런 스타일로 인해 <소름>은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된다. 설명적인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상상해서 이야기를 지어낼 여지가 생기고 그 여백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이다.

낯선 영화, 새로운 작가의 탄생

<소름>의 이런 스타일은 한국영화에서 대단히 낯선 것이다. 영화 속에서 504호의 비밀에 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 얼마나 쿨한 엔딩이냔 말이다”라고 울부짖을 때 그 말은 꼭 영화 <소름>을 두고 하는 소리 같다. 윤종찬은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는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제대로 된 하드보일드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소름>은 김기덕의 <수취인불명>과 함께 올해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전혀 연관이 없는 두 영화가 괴물 같은 한국사회를 향해 절규하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70년대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혀죽은 혼혈아와 30년 전 남편 손에 죽은 뒤 미금아파트에 감춰진 여인의 시체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수취인불명>에서 겹쳐지는 인물로 표현한 광기의 역사가 <소름>에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어렴풋한 형체를 드러낸다. 세기 초 한국사회를 배회하는 절망과 공포가 지금 윤종찬이라는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 2001 한국영화의 발견, <소름>

▶ 윤종찬 감독이 말하는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