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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짧은 만남과 사랑, 그리고 길고 아프기만 한 헤어짐의 과정을 담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순수하게 텍스트에 몰입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영화 속의 상우와 은수가 서로 보듬다가도 싸우고 상처받아 혼자마음을 곱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어느새 자신의 모습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상우 또는 은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 순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마음속에서 이는 대밭의 ‘솨-서-’하는 소리는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자리잡는다. “영화를 본 건지 내 이야기를 본 건지 모르겠다”는 관객들의 이야기는 <봄날은 간다>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봄날은 간다>는 분석의 영화라기보다는 공감의 영화이며, 극중 은수가 강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콧소리로 아련한 멜로디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하는, 매우 ‘감염성’이 강한 영화다. 달콤한 판타지도, 극적인 로맨스도, 눈물샘을 쥐어짜는 자극도 없이 사랑이야기
그때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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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대수>를 만든 이천우와 장지욱, 두 감독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선후배 사이, 이천우(27)씨는 현재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지랩의 PD이고, 장지욱(26)씨는 영상원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한대수>의 시작은, 절반은 우연이었다.지난해 내한한 스매싱 펌킨즈의 공연리뷰를 보려고 인터넷을 서핑하던 장지욱씨는 우연히 한대수의 홈페이지(www.hahndaesoo.co.kr)를 발견했고, 마침 고민중이던 영화과 졸업작으로 한대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을 중단하다시피했던 한대수지만, 아버지가 팬이라서 듣고 자란 음악에 그 역시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빠를 찍는 것처럼, 단순하게 담아보고 싶다"는 애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설마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뜻밖에 한대수씨는 만나서 얘기하자는 빠른 답변을 보내왔고, 맘대로
“아빠를 찍는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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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점프컷: 사랑, 그 목마름2000년 8월, 김포공항. 전 부인 김명신과 함께 현 부인 옥사나를 마중나온 한대수. 옥사나와 한대수가 키스로 인사하고, 김명신과 옥사나가 서로를 친근하게 얼싸안는다.(<다큐멘터리 한대수> 중에서) 고생스런 뉴욕 생활을 함께 버텨 준 동반자는, 그의 첫 부인 김명신씨였다.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개방적인 성격과 전위적인 취향을 가진 김명신씨는,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던 한국에서 그의 개성을 이해한 드문 사람이었다. “원래 좀 차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어. 조용한 사람은 내가 이상하니까 별로 안 좋아하고, 독특하고 강한 사람들이 날 좋아하더라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거로 시작해 뉴욕의 고달픈 생활까지 20여년을 함께한 아내지만, 잠깐 다른 사람을 맘에 둔 그에게 받은 상처로 결국 사이가 벌어지고 만다. 이혼, 사랑을 잃은 상실감으로 <무한대>와 <기억상실>을 채우며 허우적대던 무렵, 지
“나는 아직 목마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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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세월이었다. 목소리를 다시 직접 마주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멀고 먼 길’을 돌아온 걸까. 32년 전, 한대수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마른 가슴을 축여주는 젊은 가객이었다. 막걸리처럼 걸쭉한 목소리로 외치는 <물 좀 주소>나 “장막을 걷어라”라고 이상향에의 동경을 읊조리는 <행복의 나라로>는 김민기의 수일한 노래들과 함께 70년대 청춘들의 성가 목록에 올랐다. “목적이 있어서 작곡한 건 아니었다”며, “내 삶을 노래하자니 자연히 둘러싼 현실도 담겨 오더라”는 말대로 그의 음악이 설사 사적인 몽상에 가까웠다 해도, 거기 스민 자유의 내음은 암울한 현실에 위안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은 노래할 자유를 잃고 미국으로 떠났고, 우리에게 한대수는 오랫동안 음반 몇장과 함께 목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그가 고국의 무대를 다시 찾은 것은, 대중음악과 한국 록음악사에 대한
“나는 아직 목마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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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감독과 영화는 별개인가? 윤: 그런데 에서 보면 육체관계라는 게 아예 없죠, 놀이동산 갔다 와서 군대 얘기 하면서 무서우니까 살짝 팔짱끼는, 그거 하나였는데 <봄날…>에서는 구체적이 됐어요. 찍을 때, 내 생각에는 감독 자신이 육체관계가 아니라도 사랑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고.허: 은 연애하기 전 이야기고….윤: 거기서도 의도만 있었다면 충분히 설정 가능했죠.허: 왜 그랬을까…. 어쨌든 만들고 났더니 제가 연애하면서 여자 손도 안 잡고 그런 남자로 생각을 해서…. (일동 웃음) 절대 그런 게 아닌데. (웃음)윤: 한국에서는 감독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순수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감독도 순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거죠. (일동 폭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화 하면서 내가 만드는 세계는 나의 정확한 거울일 수도 있지만 내가 꿈꾸는 세계일 수도 있어요. 내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한 것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어봤나요, 사랑 때문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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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갈까, 나도 궁금허: <소름>은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윤: <소름>은 내가 만든 중편 <메멘토>를 장편으로 하고 싶었다가 그게 돈이 없어서 못했어요, 미국에서. 한국에 와서 준비하다가 한번 고쳐가지고 해보려고 했는데, <메멘토> 찍을 때 불만이, 너무 현실하고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너무 인텔리적이고, 현학적인 느낌도 강했고. 그래서 서민의 이야기로 하려 했는데…. 그게 의도대로 됐으면 어머니도 즐거워하셨을 텐데. (일동 웃음)허: <메멘토>를 봤거든요. 의외였어요. 봤을 때의 느낌이나 기억들이. 히스토리에 대한 것을 먼저 듣고 봐서 그런지, 굉장히 감성적인 느낌이 많았던 것 같아요.윤: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늘 갖는 불만이, 시나리오를 할 때나 사랑을 다룰 때도 평이하게 간다고 찍는데 결국은 뒤틀려서 난해해지고…. 뭐 그런 것들이 불만이에요. 외부에서 보면 그게 강점인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내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어봤나요, 사랑 때문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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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과 <소름>의 윤종찬 감독. 멜로와 공포, 장르적으로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감독은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둘에게선 어떤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분명 장르에 속하는 영화를 만들긴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선을 넘어가버린다는 점 말이다. 멜로 아닌 멜로영화를 만드는 허 감독이나 공포 아닌 공포영화를 만드는 윤 감독이나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되새김질하고 추억한다는 면에서 ‘반성적’ 영화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말쑥한 청담동 카페에서 시작해 쩍 벌린 입에 보쌈을 쑤셔넣는 맛이 일품인 주점으로 이어진 두 감독의 대화는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구도의 여행담을 공유하는 자리로 보였다. 이날 대담은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 한편으로 시작, 남녀의 사랑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를 거쳐 결국 감독의 자아와 작품의 관계, 감독이라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어봤나요, 사랑 때문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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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 나이가 들면서 좀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운동도 좀 하고 취미도 즐기고. 난 게으르다. 그래서 강박관념이 많아지고 생활 자체가 닫혀 있는 것 같다. 나야말로 생활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보고 도움을 얻어야겠다.운동장 ‥‥> 에도 나오지만 운동장의 느낌을 많이 좋아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 오후 집안 어른 중 누군가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퇴해서 교실을 나와 가로질러 걷던 운동장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다. 연출부로 일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도 안성기씨가 자신의 어린 모습을 보는 운동장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더라. 마루 ‥‥> 평소에도 열려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마당과 하늘, 비와 햇빛을 볼 수 있는 마루가 좋다. 일본 가옥들은 전통적인 열린 구조를 잘 현대화한 것 같아 부럽다. 영화 속 상우네 집은 어렵게 찾았는데, 모든
“우리 할아버지도 상우 할머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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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명백하고, 지나치게 의미심장한인물의 김정과 움직임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연출은, 그러나 일부 숏의 길이를 애매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소 길을 잃고 연장된 듯 보이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은수가 술 취해 퇴근한 날 밤의 승강이처럼 좀더 끌어줬으면 싶은데 덜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봄날은 간다>를 로 부터의 진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정당한 망설임이 따른다. <봄날은 간다>는 관습적 멜로드라마의 평탕한 대로를 외면하지만, 데뷔작에서 이미 확고한 영화적 비전을 내비친 감독의 두 번재 작품으로는 상당히 안전한 길을 택했다. 유지태와 이영애의 캐스팅을 빼고도 <봄날은 간다>는 영화 내적으로 꽤 많은 확실한 패를 소매 안에 숨기고 게임을 한다.동시녹음 엔지니어라는 주인공의 직업, 세대를 가로지르는 삶의 교감을 대변하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라는 인물 설정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하고 상우네 식구들이 사는 정겨운 변두리 한옥은 너무 명백하게 소멸과 향수의 정취를
사랑이 `여기` 있었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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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날, 허진호 감독은 혼자서 전주행 밤차에 올랐다. 일곱살에 서울로 가족이 이사오기 전까지 살았던 그 도시는 , 소년의 머릿속에서 느리게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열차 안에서 파는 술을 사서 마셨어요. 옆자리의 대학생들이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봐서 무슨 대학교 2학년이라 거짓말을 했던 것 같아요. 전주는 기억과는 달랐어요‥‥. 친척집에는 들르지 않았고, 그냥 만화가게에서 자고 새벽에 올라왔어요." 왜 그날 갑작스런 여행을 생각했을까 물으려는데 대답이겠다 싶은 토막난 말들이 스쳐간다. "작은아버지가 불던 휘파람 소리, 친구들과 올라가서 놀았던 동산, 뭐 그런‥‥." 사라진 것들의 호출에 이끌려 먼 외출을 감행하고 조용히 귀가했던 엉뚱한 열일곱살 소년은 나이를 먹어 영화감독이 됐다. 열렬하게 집요하게 소원한 건 아니었다. 일년 반쯤 다닌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전공한 철학 공부를 더 할까, 다른 일을 해볼까 일년쯤 물끄러미 생각하다가 들어간 영화아카데미에
사랑이 `여기` 있었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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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신문광고가 주가 되던 시절, 카피는 영화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사랑하거던… 부뜰지 마라. 가슴은 썩어도 그대 사랑이 깃들 곳은 남으리라.” <용서받기 싫다>(1964)는 한 여대생(엄앵란)을 연모하는 조각가(신성일)가 그녀의 육체를 유린한 깡패 일당에게 복수한 뒤, 자수하여 십년형을 언도받는다는 내용. 카피에 신파 멜로의 기운을 흠씬 불어넣었다. “착한 아씨 이쁜 아씨 우리 아씨 계동 아씨”는 같은 해 아세아극장에서 개봉한 <계동아씨>의 카피. 계동아씨로 나오는 최은희를 부각시키되, 단순반복 4자나열 어구로 입에 올리기 쉽게 만든 경우다. 1967년의 <일본천황과 폭탄의사>의 경우는 멜로적인 설정이 어색했는지, 애초 카피에서 이를 설득하는 듯하다.“필살의 폭탄용사! 그는 처절한 레지스탕스의 정의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도 뜨거운 피를 지닌 매력적인 남성이기에 그를 사모하는 조국 여성과의 사랑의 삼각 갈등은 어떻게 헤어날 것인가.” <월하
뽕도 따고, 금메달도 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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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 시대의 우울을 녹인 ‘속곳 바람’1981년 불황, 불황, 불황. 신군부의 군화정치에 짓밟힌 것이 영화뿐이겠느냐만, 한가위 명절에도 극장들은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계속 걸거나 창고 속 영화들을 다시 꺼내는 수세적 방책으로 일관했다. 김영애, 원미경 주연의 <빙점 ’81>도 꽁꽁 얼어붙은 추석에 재상영을 거듭했고, <닥터 지바고> 등의 외화들도 당시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극장들에겐 요긴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둠 속에서 생명을 얻는 빛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바람불어 좋은 날>과 함께 리얼리스트가 되어 돌아온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25만5817명)이 추석을 관통, 연장상영됐다. ‘언제나 거기 있던’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12만8932명)로 재발견된 것도 이때였다. 외화로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26만3513명), (28만4285명), <캐논볼>(20만4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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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울고 돈에 웃었다, 극장가 1962 ~ 1997추석은 극장에 손님이 꼬이는 날이다. 그것도 할리우드영화보다는 한국영화가 더욱 그렇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모든 공력을 쏟아붓는 시점이 여름방학 성수기라면, 추석은 짧긴 하지만 한국영화 흥행을 위한 텃밭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영화 배급사는 이 시기가 되면, 촉각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지난 40년의 흥행사가 말해주듯, 항상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한국영화의 암흑기 시절이던 70년대에는 심지어 재상영작 외화들의 포진에 밀려 극장을 잡지 못한 한국영화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제는 한국영화가 한가위 잔치뿐 아니라 한여름 치열한 전투에 뛰어들 만큼 체력이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40년이란 세월을 부대껴야 했다.1960년대 - 70원 주고 본 2500만원짜리 블록버스터1962년 관람료 70원 시절이라고 ‘블록버스터’가 없을까. “총제작비 2500만원, 엑스트라 10만명 동원, 말 300필 공수.” <화랑도>는 당시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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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이 편집한 귀성 음반 14트랙이제 다시, 피할 수 없는 길을 가야 할 때가 왔다. 무사들은 모래바람을 가르며 사막을 건너고 <파리 텍사스>의 해리 딘 스탠튼은 기억상실의 끝없는 벌판을 건너지만, <이지 라이더>의 두 히피는 멕시코에서 미국 북부로 넘어가는 국도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아이다호>의 거지들은 히치하킹을 하여 지평선까지 뻗은 도로를 달린다. 그러나 4천만 남한 민중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길을 가야 한다. 바로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다.. 이 로드무비의목적지에는 무엇이 있나? 고향이 있다. 고향은 문젯덩어리다. 빚은넘치고 노동력은 부족하다. 더구나 거기에는 노령의 귀신들, 부모님이 산다. 노부모는 이 땅 최대의 사회무
길 위의 하룻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