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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만들기
2001-08-10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1)

시나리오 작성에서 관객과의 조우까지, 단편영화 만들기 10막10장

영화 만드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조금은 무모한 `시작`이 필요한 법. 아는 게 있다면 그걸 믿고, 모르는 게 있다면 알아가며, 선뜻 떠나는 영화 만들기의 여정에 <씨네21>이 가이드를 마련했다. <지우개 따먹기><외계의 제19호 계획>을 만든 민동현 감독의 글은 영화를 막 찍으려는 이들을 사기충천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 영화를 현실로 바꿔줄 구체적 정보들을 거기 덧붙였다. 내 영화를 만들겠다는, 어쩌면 많은 이들의 오래된 꿈. 그 꿈을 이제 차근차근 펼쳐보자. 최수임 기자

#Scene 1

프롤로그: 머릿속에 갇힌 영화를 탈출시켜랏

자! 지금 당신이 영화를 찍고 싶다면 일단, 머릿속의 영화를 구해내라! 안전한 A4용지나 녹음기 테이프 등 어디라도 답답한 머릿속에서만 꺼낸다면 벌써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처음 머릿속의 영화를 만들어낸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러나 그 머릿속의 영화를 표현의 결과물로 내놓은 것은 대학을 들어간 다음이었다. 난 그동안 무수한 창작을 했었지만, 모든 건 머릿속에서 영어단어에 치이고, 수학공식에 깔려서 사라져버렸다. 꼭 시나리오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자유롭게 머릿속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고 글로 만족 못한다면 그림을 그리든지, 사진을 잘라 붙이면 된다. 머릿속에 있는 영화는 쉽게 포기하거나 잊혀질 수 있지만, 열심히 적어놓거나 사진을 붙여놓는다면 그 공들였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영화를 만들 가능성은 좀더 높아질 것이다. 자! 어서 빨리 도망치자 답답한 머릿속에서∼.

신호등을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혹은 하얀 A4용지를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접어버린 경험이 많을 것이다. 내 머릿속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하니 걸리는 게 형식이다. 처음에 어떻게 적어야 하나? 제목부터 적는 건가? 씬1이라고 적는 것 같던데. 행동과 대사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등등 뭐 이런 여러 의문들 가운데 어느새 커져버린 두려움에 잠식되어 이야기를 결국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불안도 없다”는 영화도 있잖은가? 너무 잘 쓰려하지 마라∼. 지금 첨 시나리오를 쓰면서 무슨 형식인가? 대단한 작품이 될 거라 믿는가? 그냥 편하게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아니면 내일 아침 집 문 앞에 붙일 “조선일보 절대사절” 종이를 적듯 편하게 적어라. 대사는 한칸 띄고 “ ” 이 안에 적어 넣으면 되고, 비주얼을 따진다면 굵은 글자체로 바꾸면 된다. 대사와 행동이 구분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 형식에 갇혀 글을 포기하느니 형식을 포기하여 이야기의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둑질을 했겠는가, 두려워 말라∼. 자유롭게 쓰다보면 당신 나름의 형식이 생기고, 남들과 소통하는 형식과 만나게 되어 있다. 일단, 뭔가를 써낸다는 게 중요하다.

#Scene 2

개인작업 시간을 늘리면 돈을 벌 수 있다.

자 시나리오를 썼다. 이제 영화를 찍으면 될까남? 아니다. 정확한 용어로 ‘PRE-PRODUCTION’이 필요하다. 주로 단편영화에선 작가 개인의 시간이기도 한 이 기간의 작업이 탄탄하고 성실할수록 실제 작업에서 경제적인 절약뿐만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작은 영화에서부터 이런 습관을 키워나간다면 나중에 큰 영화를 찍을 때도 매우 유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단, 페이퍼워크에 강해야 한다. 영화는 홀로 찍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촬영하는 친구나 주변 스탭들이 나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받지 못한다면 편집실의 흡연량이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스토리보드’다. 일명 콘티라고도 하는데 둘의 차이는 좀더 상세하게 그리는 게 스토리보드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영화는 정확히 최소 4번의 창작과정을 거치는데, 첫째가 시나리오이고, 둘째가 스토리보드, 그리고 촬영, 마지막 넷째가 편집이다. 그래서 결국 나온 영화와 시나리오는 항상 다른 모습이었다. 이 말은 끝없이 창작의 긴장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토리보드는 시나리오의 무미건조한 문장을 좀더 생생한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여기서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움직임들을 생각해볼 수 있고, 편집의 호흡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종이에 영화를 한번 찍어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작업은 특히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에겐 두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졸라맨’을 차용해서 그린다면 그리 어렵진 않다. 누구나 최소한의 선과 원과 점으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강조하는 것! 많이 하면 할수록 늘 수밖에 없다. 처음의 그림에 실망치 말고, 꾸준히 그리면 점점 사람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마당발이라야 영화가 더욱 아름다워진다.

한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 그 남자가 흔히 볼 수 있는 명동의 복잡한 거리에 서 있을 때와 쉽게 볼 수 없는 폐 연탄공장 앞에 서 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미장센이란 말이 있다. 장면화라고도 하는데 영화 속 화면의 배경과 물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영화 속 주제를 더욱더 잘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찍었다면 실제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받았던 인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에 맞는 멋지고 기억에 남을 만한 공간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 그걸 ‘헌팅’이라고 부르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의 PRE-PRODUCTION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를 찍을 맘을 먹고 찾아나서게 되면 그리 많은 공간을 구할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완성해야 할 시간도 있고, 여러 할 일도 있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은 평소에 어딜 가든지 묘한 느낌을 주었던 공간은 기억을 해두고 메모를 해두거나, 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다. 그 장소를 언제 어떻게 유용하게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Scene 3

그대의 빈 주머니에 패기와 용기를 채우라!

지금까지의 작업들은 혼자 집에서 시간만 조금 투자하면 되는 작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다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며, 또한 여러 기술적인 사항들도 챙겨야 한다.

영화는 자본집약적인 예술이다. 여타 순수예술과 달리 영화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지우개 따먹기>를 찍을 때 난 부모님께 무릎을 끓고 어학연수 비용 1200만원을 타냈다. 그것도 모자라서 끝내는 휴학까지 해가며 등록금을 제작비에 보태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뒤 1년간을 신랑, 신부들의 모습을 지겹게 찍어가며 갚아나갔다. 그뒤 난 현실적으로 더이상 부모님께 손을 내밀 용기도 없고 처지도 아니었기에, 홀로 제작비를 구해야 했다. 아마 여러분이 영화를 못 찍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아마도 돈일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의 패기와 용기로 투자자를 모아보자!!

take 1

각종 단편영화지원제들을 체크해라

코닥-이스트먼,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지원제, 여러 인터넷 사이트의 지원제 등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편영화지원제가 많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코닥-이스트먼은 매년 4월쯤 열리며, 3작품을 선정 35mm 필름 1만자와 6회 촬영에 대한 카메라와 현상 등이 지원되며, 그외 편집 및 믹싱에 대해서 50% 할인 혜택을 준다. 다만, 이 지원제의 문제는 현금 지원이 아니기에, 다른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현금 스폰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독립영화지원제는 상·하반기로 나누어 실시되며, 매년 5월경과 11월경쯤 열린다. 매번 20∼25작품 정도가 지원되며, 총 제작비의 50%를 현금 지원한다. 정산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촬영시 꼭 세금계산서 및 영수증을 챙기는 것이 필수다. 그외 여러 인터넷 사이트들이 주최하는 지원제가 있는데 꼭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지원제들은 작품의 판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창작자의 고유한 창작물이 그대로 남의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궁해도 피하는 게 좋다.

take 2

지원서류를 충실히 작성하라

각종 지원제에 응모하든 각 기업의 협찬을 받든 내가 어떤 영화를 어떤 결과물로 만들지 보여줄 철저하고 성실한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 시나리오는 항상 그 앞에 간략한 내용을 정리한 시놉시스라는 일종의 줄거리를 첨부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스토리보드 및 촬영 헌팅지의 사진 등을 첨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영상적인 표현보다는 정확지 않기 때문이다.

take 3

후윈회 등 자기만의 투자방안을 모색하라

학교 후배 중 한명이 추진했던 방법인데 내 생각에는 소규모의 영화를 찍을 때 아주 유용한 것 같다. 바로 후원회를 만드는 것인데 소액의 후원금을 받아서 엔딩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려주는 것이다. ‘3만원 후원회’라고 이름을 정해서 설날, 추석 등의 명절 때 친인척들에게 슬며시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학교 앞 매점 및 문방구, 당구장, 서점 등 학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적어도 10명만 모이면 30만원이다. 어떤 식으로든 재미나게 사람들이 참여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take 4

한낱 제비도 박씨는 물어온다

난 이번 <외계의 제19호 계획>이란 작품에서 바른손이란 문구회사에서 PPL협찬으로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기업한테 어떻게 스폰을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난 그리 특별한 비법이 없다. 뭐 있다고 한다면 조금 억울하고 불쌍하게 생긴 외모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자신감 정도라고 할까? 일단 기업이나 문화단체에서 스폰을 받고 싶다면 무엇보다 많은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어떤 회사가 단편영화 등의 문화적 활동에 관심이 있는가 등의 정보와 어떻게 내 작품과 연결시킬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를 찾아가는 시기인데 모든 회사들은 예산운용 계획을 연말에 짠다. 그리고 그 계획으로 다음 1년간은 집행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11월부터는 회사들과 접촉해야 한다. 그래야만 회사에서 당신에게 지원할 금액을 책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

최소의 돈이라도 후원을 받게 되면 최소 그 대가에 걸맞은 보답을 해주라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지우개 따먹기>로 바른손에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300만원의 돈을 단편에선 누구도 한 적 없는 PPL스폰 해준 것이다. 한낱 제비도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었다는데 기업과의 관계도 인간관계와 같다. 서로 신뢰감을 가져야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인 유대감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Scene 4

두려움의 겹을 넘고 카메라를 들어라

이제 PRE-PRODUCTION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면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당신에게 배우도 없고, 함께 일할 스탭이 없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화내지 마라! 건강에도 안 좋고, 그리 크게 문제되지도 않는다. 당신 주변의 친구들, 주변인들은 좋은 배우와 스탭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내 영화에 참여해주시겠어요? 물어보면 대개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98년 겨울 난 고등학교 동창친구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한 성당에서 중·고등부 연말행사 때 아이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어 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난 뭐 제작비만 대주면 찍겠다고 했고, 성당에서 구해준 8mm 비디오카메라 한대와 학교친구가 식용색소로 만들어준 가짜피 한병을 가지고 <따>라는 여학생들 사이의 왕따를 소재로 한 20분짜리 영화를 찍었다. 아이들은 모두 아마추어 연기자에 스탭이었지만, 우리는 재밌게 찍었고, 연말행사 상영 때 열광적인 반응도 이끌어냈다. 그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할 걸작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날 성당행사에 온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켰다는 것은 자신할 수 있다. 당신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걸작을 만들고 싶다면 포기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난 해군복무 시절 무려 200편에 가까운 영상물을 제작했었다. 그 중엔 결혼식 촬영부터 모특수부대 홍보영화까지 다양한 형식의 영상물들이 있었고, 난 그 많은 영화들을 거쳐서 겨우 세편의 부끄러운 단편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난 개인적으로 내 영화들을 습작이라고 생각한다.

습작은 더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 최고의 찬사는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는 말이다. 그 말은 또 나보고 영화 좀 찍으란 말 아닌가. 그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나?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한다. 처음 영화 찍으면 누구나 엉성하다. 자신의 엉성함을 인정하고, 커밍아웃해야 비로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자 찍어라! 꽃 같은 세상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당신만의 영화를 찍어라∼.

#Scene 5

촬영장에 몰아칠 고난의 폭우를 두려워 말라

이제 촬영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이전에 계획되고 짜여졌던 모든 사항들이 여러 돌변적인 사항들에 의해서 이리 쿵 저리 쿵 엎질러지고 그것을 담아서 다시 제자리로 가져가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이상한 곳에 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앞에서 지루할 정도로 길게 PRE-PRODUCTION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촬영장에서는 천재지변이 수시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천재지변들을 이겨내고 대비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철저한 PRE-PRODUCTION뿐이다. 연기도 그렇다. 특히 아역 연기자들은 이전에 오디션에서 보았던 성실함과 똑똑함은 막상 촬영에 들어가보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카메라 앞에는 국어책을 읽고 있는 평범한 아이나 그새 어딘가 가서 얼굴에 생채기를 내와 이전 컷과 달라진 모습 등의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다. <외계의 제19호 계획>의 어린 아역들은 모두 이번에 처음 연기를 하는 애들이었다. 경력이라곤 연기학원에 등록한 3개월뿐인 그야말로 완전 초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한 첫날 촬영은 지옥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서로 맡은 자전거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자전거를 고장내기 일쑤였고, 연출부는 슬레이트 대신 자전거 고칠 연장을 들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 한강 자전거도로 촬영날이 무슨 세계불꽃축제 기간과 주말이 겹친 날이어서 낮에는 일반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치이고, 밤엔 불꽃 좀 보겠다고 몰려가는 사람들에게 치여서 내가 지금 무슨 컷들을 찍었는지도 모르게 첫 촬영을 마쳐야 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결과는 딱딱한 감정없는 표정의 아이들과 모자란 화면들로 내 가슴을 난도질했다. 난 그날의 결과로 두 가지의 가슴저린 교훈을 얻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역연기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지독스런 PRE-PRODUCTION의 소중함다.

PRE-PRODUCTION의 소중함은 앞에서도 꾸준히 이야기해왔기에 아역연기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은 무엇보다 공간을 느끼고 영화에 대해서 친해질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촬영날 아이들은 내가 맘에 들 때까지 연기를 하느라 계속 자전거를 다시 몰고오고, 다시 몰고오고 힘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연기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감독이란 사람의 울그락붉그락한 얼굴과 고함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그날 밤 우리 집에서 잠을 재운 아역배우 삼인방은 잠들기 전 내 손 위에 자신들의 손을 올려놓고 정말 각오에 찬 파이팅을 외쳤었다. 물론, 그 전에 나의 도덕교과서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러나 다음날, 난 그 지루한 말들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카메라와 친해져 있었고, 자전거와도 그리고 촬영장의 공간에도 스탭들에게도 익숙해져서 그 안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놀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연기에 대해서 더욱더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아역 삼인방 중 한명이 모방송국의 특집극 주인공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런 게 단편영화의 보람이 아닌가 싶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느끼는 것 말이다.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1)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2)

▶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