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평의 한 야산. 파헤쳐진 무덤가에서 영화 <휴머니스트> 촬영이 한창이다. 스탭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쌓여 있는 잔설을 피해 촬영장소가 바뀌어 지연된 촬영을 해떨어지기 전에 마쳐야 하기 때문. 오랜 준비 끝에 카메라가 돌아가자 한 두번 만에 쉽게 오케이 사인이 난다. 4개월여의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촬영동선까지 꼼꼼히 짜놓은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을 시도해 촬영속도는 빠른 편이다. 다만 예상치 못한 기상상황으로 애를 먹기도 했다.본인 스스로 ‘염세주의적 낙천주의자’라는 이무영 감독은 사람사는 세상이 돼지우리랑 비슷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영화 <휴머니스트>는 돼지우리에서 시작해서 돼지우리에서 끝난다. 엽기적 내용이 많지만 알고보면 우리 현실 자체가 엽기적인 게 많다. 영화의 영어제목이 인 것에서 짐작하듯이 <휴머니스트>는 돈 때문에 아버지를 납치하는 패륜아에 관한 영화이고 실제로 몇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박한상 사건이 이 영화의 단초가 되었다
세상은 돼지우리, 우리는 패륜아
-
“몬데, 모하는 데”, “엄마야, 멋지다. 장동건이 아니가? 잘났네. 유오성이도 있네. 실물이 헐 낫네”, “사진기 가져왔나”, “와, 안 찍는데”부산 범일동 굴다리시장에 장동건, 유오성이 등장하는 순간, 시장 안은 ‘시장통’이 됐다. 무료하던 차에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지 아지매들은 저마다 오리지널 부산 사투리로 왁자지껄. 어릴 적 만난 친구들의 기억과 그리움, 그리고 중간중간의 단절과 이음. 이렇게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친구>가 부산을 헤집고 촬영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영화 <친구>는 <억수탕> <닥터K>를 감독했던 부산 사나이 곽경택 감독의 3번째 영화. 부산에서만 촬영을 고집(?)해온 곽 감독은 “내 이야기다. 머릿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친구들의 기억들, 강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부산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한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여러모로 영화적이라는 곽 감독이
부산 사나이들, 우리 어릴 적에
-
정지영 감독은 1988년 직배 반대투쟁 시절부터 한국영화계의 투사였다. 지난 10여년 동안 새로운 영화세상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뚝심있고 사심없는 그는 든든한 맏형이었고, 그 때문에 돈 안되고 짐만 되는 이런 저런 감투를 써야 했다. 본업 생각이 꿀뚝 같았겠지만, 후배와 동료들의 간청을 매번 거절하지 못해, 촬영 현장 밖에서 많은 날들을 보내야 했다. 속으론 마지막 감투이기를 바라는 영화인회의 이사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면서, 정 감독은 "이제 나처럼 유연성이 없는 사람은 안돼"라며 웃었다. 그의 짐을 떠맡은 신임 이춘연 이사장(씨네2000 대표)도 따지고 보면 정 감독과 같은 종족이다. 96년 정지영 감독과 함께 스크린쿼터감시단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영화인회의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정 감독과 함께 궂은 일을 해온 사람이다. <손톱> <지독한 사랑> <여고괴담> <미술관 옆 동물원> <인터뷰&
`NGO 역할은 계속, 투쟁전술은 변화`
-
심광진(36) 감독의 입봉작 <불후의 명작>은, 바라보고 있으면 만든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르는 영화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어떤 경우라도 타인을 다치지 않으며 미욱하게 그렇지만 꾸준히 살아간다. 그처럼 다소 어눌한 필치에 발신인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를 이미 받아 읽은 탓인지 심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걸은 눈쌓인 삼청동 길은, 초면의 상대를 만나러 가는 길목답지 않게 푸근했다. 영화 속 여경과 인기가 언제나 고집하던 창가 테이블을 택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개봉 뒤 훌쩍 떠난 여행길에 들른 변산 내소사의 대웅전 문살이 너무 예쁘더라고 감탄하는 그의 눈빛만큼은 짐작대로였다.<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꽃잎>의 연출부로,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조감독으로 개봉을 겪어봤지만, 감독 데뷔작의 개봉은 기분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사상 최고로 두려운 크리스마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멜로보다는 휴먼드라마로 가고 싶었다”
-
-
13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여자. 그 사랑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남자는 뉴욕의 펜트하우스와 최고급 페라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첫사랑이었다가 13년 뒤 크리스마스, 마법처럼 그의 아내가 된 <패밀리맨>의 케이트, 테아 레오니(34). 그는 샤워부스 안에서의 코믹한 엉덩이 춤과 단발머리를 흔들며 케이지의 품으로 돌진하는 소년 같은 몸짓만으로, 가슴 팬 드레스로 유혹하는 뭇 여성들을 한방에 KO패시킬 만큼 충분히 귀엽고 섹시하다. “케이트가 단순히 바가지 긁는 마누라로 비쳐지지 않길 바랐어요. 잭에게 13년 전 그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느끼게 만들고, 지금 케이트와의 생활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 당위성은 오로지 내 연기에 달렸으니까.” 2001년에는 <쥬라기 공원3>, 2002년에는 코언형제가 시나리오를 쓴 <참을 수 없는 잔혹함>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휴 그랜트와 출연할 계획인 그녀에게 <패밀리맨>은 2년간의 긴 휴식 끝에
오, 나의 불멸의 여신님, <패밀리맨>의 테아 레오니
-
지난해 12월 열렸던 제26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는 4년 넘게 지속돼온 에바다 싸움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1996년 11월27일 청각장애자 교육기관 에바다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은 온갖 추악한 비리를 저지르는 재단에 맞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 싸움을 기록한 영상기록 다큐-인의 다큐멘터리 <끝없는 싸움-에바다>(연출 박종필)를 상영한 집행위원회는 싸움의 주체 ‘해아래집’ 사람들에게 특별상인 ‘연대와 인권상’을 수여했다. 이를 계기로 <씨네21>은 늦었지만 이들의 더운 손에 악수를 청했고, 시사지가 아닌 잡지와의 접촉은 처음이라며 이들 또한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해아래집’은 해 아래,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진위천 강가에 있었다. 해아래집은 에바다 싸움을 해온 이들이 일곱 번째로 자리잡은 농성장소이자 2차선 국도변에 ‘청각장애인들의 보금자리’라는 명패를 내건 이들의 작은 삶터다. 원래 음식점 용도로 지어진 방 세개짜리 단층 건물에서 스무명의 청각장애인과 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
웬 남자가 스튜디오 앞을 서성거렸다. 남자는 혼자 뒷짐을 진 채, 별 중요해 뵈지 않는 게시판의 글귀들을 꽤나 집중해서 읽고 있는 듯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다시 힐끗 보았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뒷모습 이상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의 목, 목도리로 둘둘 감은 목인데도, 참 길구나 했다. 반 시간 뒤, 긴 목의 남자는 우리에게 앞모습을 허락했다. 이성재(31).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잠겨진 스튜디오 앞에서 홀로 30분을 기다린 그는 그 흔한 매니저 한명 대동하지 않은 채, 조금의 원망도 섞이지 않은 선한 눈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게 그 하루의 시작이었다.
‘누군가를 저렇게 아프게 바라볼 수 있을까’, TV드라마 <거짓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일생 처음 찾아온 사랑 앞에 번민하던 이성재의 눈빛을 차마 잊지 못할 테다. “언제나 영화를 귀착지라고 생각했어요. <거짓말>을 끝내고 나니 시나리오가 제 손에 쥐어지더군요.” <미
그날 하루가 허락되어 행복하였어라, <하루>의 이성재
-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고, 20대 전반을 택시 드라이버, 족발 배달원, 막노동꾼, 여관 시다, 핫도그장수를 포함한 각종 직업에 몸담고 있다가 목사가 되려고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9년 만에 졸업해선 영화의 ‘영’자도 모른 채 영화판에 뛰어든 남자가 있다. <나도 아내가…>의 늦깎이 조감독 박성범(33)이 그 주인공. 취재 요청에 얼굴이 벌게지도록 쑥스럼을 타던 그가 조심스레 들려주는 인생 얘기 앞에서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주로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택했다는 그의 이력이란 도대체가 편한 일, 고상한 일만 찾는 우리에겐 그저 ‘딴나라’ 일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중 택시 드라이버는 얼핏 듣기에 낭만적이기까지 했다.영화판에 들어온 사연 역시 드라마틱하긴 매한가지.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에서 착실히 목사 수업을 받고 있겠거니 생각하던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금세 대학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정을 붙인 연극동아리에서 연출을 맡아 의
택시 드라이버, 충무로로 가다
-
‘지브리’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일종의 ‘신화’다. ‘아니메 왕국’의 신화를 일궈낸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52) 본부장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지난 12월23일 센트럴시네마에서 열린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제를 찾았다.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등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웠고 첫 작품 <천공의 섬 라퓨타> 이후 <반딧불의 묘> <붉은 돼지> 등 대부분의 ‘지브리표’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를 맡은 그는 <귀를 기울이면> <원령공주> 등의 상영이 끝나자 ‘열혈’ 관객 150명과 마주했다. <원령공주>를 디즈니에서 배급한 것을 놓고 한 관객이 “디즈니와의 합작계획 같은 것은 없냐”고 질문하자 그는 “한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전담하는 디즈니 시스템과 장면별로 여러 캐릭터를 여러 애니메이터가 분담하는 지브리 시스템은 엄연히 다르고, 무엇보다
스튜디오 지브리 사업본부장 스즈키 도시오
-
서울에 온 올셰이를 미처 만나기 전에, 이런, 어느 제약회사의 달력으로 인상파를 먼저 만났다. 세잔과 모네. 익숙하지 않은가. 식탁 위의 정물화. 가벼운 위트로 삶의 한 단면을 슬쩍 건져올린 카르티에 브레송의 1932년작 <생 라자르 역>과 더불어 모더니티의 생생한 국면을 포착한 모네의, 달력 속의 <생 라자르 역>을 작업실 귀퉁이에 걸고나서, 신사년 1월의 서른한개 숫자를 들여다보니 과연 멋진(이런 제길!) 감정소비의 미장센을 연출한 듯, 간지럽다. 저 다비드와 앵그르풍의 왕정미술파들이 ‘노약자와 임신부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풍자화로 경멸했던 낙선 그룹이 오늘날 아주 익숙한 문명화의 소도구로 전락하고 마침내 봄날 커튼 새로 갈 듯이 하나의 관습적인 인테리어 제품으로 눅눅해져버린, 이 아이러니를 ‘내 책상 위의 달력’이 그대로 말해준다.더불어 생각건대 찌그러진 진주, 그 경멸의 바로크가 오늘날 고전양식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 역시 하나의 문명적 아이러니다. 붉
참을 수 없는 `감각의 제국`이여
-
두 유형이 있다. 매사에 관심있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 천재 모차르트와 범인 살리에리와의 비극적 관계를 숙명적이고 장엄하게 그린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이 천재와 범인의 채울 수 없는 간극을 그린 인간 드라마가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을 다룬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퍼뜩. 극중에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의 태도를 보면 궁정음악가의 계급과 지위에 대한 의례적인 칭송이나 겸양일 뿐, 살리에리의 음악적 재능이나 비전에 대해선 도무지 관심 밖이다.반대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끼적거린 악보를 우연히 집어들고는 그 재능에 놀라워하고 치밀어오르는 시기심으로 악보를 든 손이 떨려오는 것을 견뎌가며 창조주인 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장면을 기억해보라. 모차르트는 타인에 대해 지독히도 무관심했고 살리에리는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다. 살리에리의 지나친 관심은 재능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 열등감은 시기심으로, 그 시기심은 분노로 변해 평생을 모차르트의
네 이웃의 재능에 관심갖지 말라
-
따뜻한 송년인사라도 드려야 할 시점에 한국경제가 썰렁하기 그지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서 면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부운! ‘나라 빚 갚는다’는 나랏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장롱 안에서 금반지를 꺼내어 똥값으로 팔던 국민이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게다가 이번이 한두 번째입니까. “졸라 매자”, “다시 뛰자”고 재탕삼탕 외치는 분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면 이번에도 1∼2년 내에 극복할 겁니다.그런데 개인적으로 한 가지 찜찜한 게 있습니다. ‘드롭 아웃’ 사태 중에서도 제가 나온 (대)학교의 동문들이 실직했다든가, 거리에 나앉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사업이 쫄딱 망해서 야반도주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살아남는다”는 ‘한강의 기적’이 사라진 건 아닌 듯합니다. 한동안 푹 쉬다가 ‘빠방한’ 연줄의 도움을 빌려 언젠가는 재기에 성공하겠죠. 속에서 열불 나고 창자가 꼬이는 이야기지만, 그게 한국의 현실입니다.어느 학교냐구요? 그 이름도
서울대는 건재하다
-
2000년 마지막 날 진짜 21세기를 앞두고 송구영신, 경건한 마음으로 제야의 종소리나 들을까 해서 조신하게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아직 10여분 남았기에 소파에 누웠다가 거실도 춥고 해서 침대 패드를 끌어다 덮었다. 거기까지 기억나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 5시였다. 상상해보라. 나름대로 새해엔 각오도 새롭게 하고 거듭 참사람으로(?) 태어나고자 결의도 다져보려고 했는데 결의와 각오는커녕 잠이 덜 깬 후줄그레한 몰골과 어깨쪽으로 느껴지는 한기에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한바탕 재채기로 나의 21세기는 시작되었다.새해 벽두부터 희망찬 얘기는 고사하고 이렇게 궁상맞은 얘기로 시작해야 하는 내 마음도 아프기 그지없지만 남자가 혼자서 나이먹어가는 풍경이 그렇게 썩 아름답지 않다는 걸 밝혀둔다. 그 당시 심정이 어떠했냐면 고등학교 때 모처럼 맞는 일요일, 한번 마음잡고 놀아보려고 부푼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을 청했다가 거의 해가 저물 때쯤 일어났을 때의 그런 막막한 기분과 똑같았다. 게다가 집에 식
나이, 이제야 실감나네
-
해가 바뀌니 다들 ‘신년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담배를 끊겠다’, ‘운동을 하겠다’는 작심삼일형 계획부터 ‘올해에는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는 모습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는 나 같은 사람마저도 스포츠신문에 나온 ‘올해의 별자리 운세’를 열심히 읽어대고 있으니 때는 때인 모양이다.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는 자리나 시무식 같은 자리에 가도 ‘올해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는다. 신통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다들 건강에 신경써야겠다느니, 가족을 돌봐야겠다느니 등등 평소의 언행에 비춰보아 한입으로 두말 하는 것이 분명한 말들을 건넨다.그렇지만 계획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천은커녕 1년 전에 계획을 세웠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그걸 들춰내는 일이 쑥스러울 뿐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후닥닥 지나가버렸어도 1년 전이라는 시점은 아스라한 옛날 같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에 집착하는
신년 무계획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