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마토그래퍼가 사랑한 여인. <포레스트 검프>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샐리 필드가 조디 포스터, 페이 카닌에 이어 미촬영가협회(ASC)로부터 상을 받는 세 번째 ‘비촬영가 여성’이 되었다. 미촬영가협회가 유일하게 촬영가 이외의 개인에게 주는 상인 ‘가버너즈 어워드’(Board of Governors Award)를 수상한 것. 이 상은 “영화제작술 개선에 확실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해온”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시상식은 2월18일 열린다.
그들의 세 번째 여인
-
50, 6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옛날 할리우드영화를 보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죠. “요새는 저런 영화는 못 만들어.” 이런 한탄조의 회상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어렸을 때 ‘추억의 영화’에 대한 한탄조의 멘트를 지독하게 자주 반복하던 모 영화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를 거의 증오하기까지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사실이기도 합니다. 당연하죠. 200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50년대 사람들처럼 영화를 만든다면 그게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어요?빈센트 미넬리의 뮤지컬영화 <지지>도 절대로 2000년대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입니다. 왜? 클래식 할리우드의 그 예스럽고 풍요로운 느낌하고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공정’한 요새 만들어지기엔 문제가 많답니다. <지지>의 내용을 기억하시는지요? 중년의 사교계 신사가 15살짜리 소녀와 놀다가 그만 결혼까지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영화 만들 수 있어?
-
당신에게 미쳐 있어. 최근까지 헬렌 헌트의 보폭을 돌아보면, 새삼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시트콤의 원제가 떠오른다. 국내에는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던 의 TV시리즈 . 92년 시리즈의 방영이 시작된 이래 헬렌 헌트의 이름에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던 제목이라 귀익은 탓이기도 하지만, 지난 몇년간 그녀에 대한 할리우드의 애정공세가 워낙 유난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오랫동안 개봉작의 대부분은 시나리오로 봤던 영화였다”고 할 만큼 집중포화를 받았다는 헬렌 헌트. 차기작을 고르는 데 2년을 보낸 헌트는, 2000년 가을과 겨울 사이 무려 4편의 영화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10월 중순 미국 극장가에 걸린 <닥터 T와 여인들>을 필두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왓 위민 원트> <캐스트 어웨이>가 모두 그녀의 출연작들.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섬세하면
유능한 여성, 야무진 여인, <왓 위민 원트>의 헬렌 헌트
-
매주 월요일 밤 10시55분뜨거운 여름 수박장수 아저씨가 건네는 삼각뿔모양의 ‘맛보기’수박 한쪽. 드라마도 이 수박과 같아서, 사돈의 팔촌이 애낳은 소식까지 시시콜콜하게 보여주는 연속극보다 가끔은 삶의 단면만을 감질나게 잘라 비추는 단막극이 더 매력적일 때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기 직전까지, 범상치 않은 어젯밤 꿈이야기,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그쪽’씨와 ‘이봐요’양. 기껏해야 한, 두명의 주인공들이 나와 그들의 하루나 한달, 혹은 기억의 한때를 보여주는 게 고작이지만 단막극은 가끔 16부작 미니시리즈보다 더 찡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50부작 대하드라마보다 더 강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4년 만에 부활한 SBS 단막극그러나 이런 단막극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TV만 하루 온종일 보는 ‘테순이, 테돌이’가 아닌 다음에야 맘에 드는 단막극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혹 챙겨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도 잠시 딴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끝나 있기도 하고, 특별한 날 우연히 보지 않으
SBS 단막극 <오픈드라마 - 남과 여>
-
-
최근엔 이름만 들어도 숙연해지는 거장감독들의 신작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감독의 명성 외에도 마틴 스코시즈의 색다른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쿤둔>을 비롯해 기타노 다케시의 모든 작품들을 한국에서도 다 볼 수 있을지 모를 예감이 드는 <키즈 리턴>, 로만 폴란스키보다도 <블레어윗치>로 급부상한 미국의 젊은 제작사의 프로젝트 <나인스 게이트>, 공포영화의 거장이지만 특이하게도 <뮤직 오브 하트>란 음악영화를 만든 웨스 크레이븐 등등…. 근래에 출시된 스티븐 프리어즈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팔메토>,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북> 등 반가운 작품들이 많다.이전에 뽀얗게 먼지쌓인 채 무차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비디오들을 감독별로 분류해 진열한 적이 있다. 고다르, 트뤼포, 코폴라, 알트먼 등 이들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한칸씩 채워가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지
거장이 좋아, 노장은 더 좋아
-
‘말 못하는 이현우’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약속 장소인 MBC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내내 걱정이 앞선다. 조금이라도 취재시간을 벌 심산으로 서둘러 출발한 터였다. 그러나 그런 기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조금 지친 표정이다. 이현우는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사진을 찍기 전 협찬의상으로 갈아입으라는 코디의 말에 영 시큰둥하다. 결국 입고 온 의상 그대로 사진촬영 돌입.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시고 겨우 얼굴 마주보며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원체 마른 얼굴에 분장 탓인지 붉은 분기가 돈다. 애써 준비한 질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덜컥 입에서 나온 첫마디, “요즘 행복하세요?”.맹한 질문에 이현우는 고맙게도 망설임 없이 입을 연다. “스무살 넘으면서 내내 행복이 뭘까 생각했어요. 서른이 되면 좀더 쉽게 답이 찾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은 더 어려워요.”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행복하단다.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 하나를
주제가는 예스! 연기는 글쎄?
-
한 남자와 여자의 시냇물 흐르듯 잔잔한 사랑 이야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사건도, 커다란 감정의 출렁임도 없는 이 영화는 일상의 자그마한 풍경을 짜임새 있게 늘어놓는 최근 멜로영화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자가 자신이 품은 사랑의 감정을 남자에게 솜이 물에 젖듯이 자연스레 전달하는 것처럼, 관객의 마음을 구석에서부터 서서히 장악해나가는 이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았던 박흥식 감독이 정성스레 파놓은 ‘함정’과 곳곳에 숨겨놓은 ‘덫’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멜로영화로 간주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 ‘특별한 것’을 이루는 각각의 성분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 꽤나 영악한 영화인 듯하면서도 때론 너무나 순진한 구석이 엿보여 허술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을 해독하기 위해 <씨네21>은 조력자를 구해야 했다. 사실 이 만만치 않은 일을 도와줄 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설경구 취중진담
-
몇년 전만 해도 컴퓨터 관련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은하수 건너 외계에서 온 생명체로 보였다. ‘인간의 언어’로 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단어처리기’로 문서 텍스트나 작성하여 인쇄하고 이메일보내는 게 전부인 초급 사용자로서 CPU의 헤르츠와 램의 클럭수와 하드디스크의 FAT 정도만 아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놈은 생명없는 기계니까.생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컴퓨터가 먹통이 돼서 하늘이 노래지는 일을 경험하면서부터다. A/S를 불렀을 때 “오늘은 힘들고 내일 오겠다”는 답변을 들으면 “오늘 내로 와 주실 수 없느냐”라고 생떼를 부리기도 하고, 마음이 급해지면 딸래미가 홍역이라도 걸린 것처럼 컴퓨터를 들쳐업고 이리저리 헤매다니기도 했다. 데이터를 날려버리는 일은 주기적 사고가 되었다. 그나마 수리가 빨리 되고 비용이 많지 않으면 병을 고친 것처럼 기뻤다. 반면 “수리하느니 새걸로 하나 사시죠”라든가 “정 안 되면 업그레이드라도 하시죠”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상술을 의
컴퓨터 패닉과 바이오펑크
-
우리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역사는 끝났다’는 후쿠야마의 일갈이 한국의 지식인사회를 휩쓸고, 회의와 냉소가 밀물처럼 밀려들던 그 무렵에 우리는 엉뚱하게도 ‘베트남’을 떠올렸다. 20세기가 어떻게 지리멸렬하게 정리되어도 좋다. 그러나 20세기를 통과하면서 한국사회가 베트남에 진 빚에 대해서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었다. 한국은 베트남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미국을 따라, 미국이 지급한 무기를 들고 ‘잘못된 전쟁’에 가담하여 베트남인들의 심장을 겨누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은 20세기를 통과한 인류의 기억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이 전쟁에서 미국은 치욕적인 패배를 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초라한 적들에 자신들이 왜 그토록 고전해야 하는지를 전쟁 동안 알지 못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왜 패배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미국이 만든 ‘베트남영화’를 볼 때마다 서글프게 확
베트남은 끝나지 않았다, <허공에의 질주>
-
단성사는 그 자체로 역사다. 1907년에 세워졌으며 서울 토박이 북촌사람들의 공간이었고 <의리적 구토>에 <아리랑>을 시작으로 <겨울여자> <장군의 아들> <서편제>를 상영했던 곳이다. 이제 단성사가 물러가면 옛 국립극장, 스카라, 인천과 대구의 애관, 만경관만이 추억의 극장문화를 유지하게 되었다.가족의 애경사(哀慶事)에는 간혹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등장한다. 그는 갑자기 나타나 하객과 조문객, 혼주와 상주를 난처하게 만들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깽판’을 친다. 진혼의 슬픔으로 고즈넉한 상가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사람들. 어릴 적 집나간 삼촌과 불길한 소식만 들려오던 사촌누이.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에 대하여 김윤식이 표현한 바 있는 이들 ‘악종(惡種) 인간’은 맏상주보다 더 서럽게 곡을 하고 술상을 뒤엎고 인연도 없는 다른 집 문상객들과 시비를 걸다가는 이윽고 출상의 새벽, 찾아보면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들
헐리는 단성사를 애도하며
-
다시 <링>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하자. 옛날 이야기 한편을 먼저 거론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일본의 아시카가 쇼군(將軍) 시대에 마쓰무라라는 관직자가 있었다. 한 흉가를 얻어 쓰게 된 마쓰무라의 집엔 작은 우물이 있는데 어느 날 밤부터 이 우물에서 귀신이 나타난다. 우물에서 튀어나온 귀신 탓에 마쓰무라 주변인 몇몇이 목숨을 잃고 마쓰무라는 귀신과 조우하게 된다. 여자 귀신은 억울한 사정을 고해바치고 도움을 청한다. 여기서부터는 뻔하다. 귀신의 말대로 우물을 파헤쳐 시신을 찾던 마쓰무라는 시체 대신 작은 거울을 발견한다. 귀신은 거울의 정령이었던 거다.엉뚱하게 생각할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 전래 ‘거울의 정령’에 관한 이 민담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링> 시리즈와 많이 흡사하다. <링> 시리즈에서 영화 내내 거울과 우물의 모티브가 흥미롭게 반복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둘 사이의 유사성은 우연이라기보다 민담과 괴담에서 영화 주제를 끌어오는, 일본영화
[일본 판타지영화]애니미즘은 죽지 않는다
-
이번 원고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쓰겠다며 참고자료를 부탁하자 영화사 관계자는 우스개를 던지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거 제목이 그래서 그렇지, 아줌마들 보는 영화 아냐. 시작하는 연인들 영화인데….” 난 “이거 왜 이래, 나두 ‘필’이 있어!” 하고 강변했고 즐거운 맘으로 극장을 향했다.이야, 정말 너무 재밌겠다! 배우들두 대단하구… 사랑은 언제나 반경 200m 안에 있다구? 이 카피 너무 그럴듯하네… 게다가 제목 좀 봐. 여자친구나 애인이 아니라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구? 실은 나야말로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한테 필요한 건 아내였는데 괜히 남편을 얻었지 뭐야. 자잘구레한 일들이 있을 때 “오늘 그거 꼭 좀 해줘”하고 나가버리면 그뿐이니 정말 편하겠지. 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부푼 기대를 한껏 만끽했다.근데 영화가 시작하고, 나는 온 정신을 내던져 공감할 준비가 다 돼 있는데, 전개가 되면 될수록 지루해지는 것이다. 조짐이 심상찮았다.내가
일상이 뭐가 신선하지?
-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 나이트클럽. 호텔 전체는 새 단장 공사로 분주한데 유독 나이트클럽만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촬영이 한창인 것. 커피가루로 만드는 영화용 스모그가 홀 안을 꽉 메우고 스테이지는 춤추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캇! 죄송하지만 좀더 끈적끈적하게 춤을 춰 주세요.” 임순례 감독이 춤추고 있는 단역배우들에게 조용히 부탁한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고 카메라가 돌아간다. 반주음악과 화면을 딱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와 음악과 연기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디어 춤추는 장면 오케이가 떨어지고 다음은 동네깡패들이 시비를 걸어 밴드 멤버들과 집단으로 싸우는 장면 촬영이다. 싸움의 수위를 조정하느라 몇번의 NG가 나고 아수라장의 싸움장면을 다 찍고나니 어느덧 밖은 깜깜해졌다. 아침 먹고 시작한 촬영이 이제야 끝난 것이다.떠돌이 밴드로 전전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팀의 리더인 성우(이얼)의 고향 수안보에 일자리를 얻
그래도 살아보자!
-
<쌍브르> <니코폴> 등 걸작 프랑스 만화가 연이어 번역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1999년에서 2000년까지 국제 만화제의 각종 상을 휩쓴 꼬르베랑의 <리드뱅> 출간되었다. <르 몽드> 등의 매체와 펑론가들로부터 '온갖 풍부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작품', '만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밀도를 가진 걸작' 등의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앙굴렘 국제 만화제 최고 작품상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얼굴에 커다란 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 리드뱅의 성장사를 다룬 이 작품은 풍부한 터치의 그림으로, 한 소년의 섬세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사라져 가는 시간 속에 부서져 가는 기억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진다. 걸작 프랑스 만화를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는 도서출판 비앤비에서 출간되었다.가면 속의 수수께끼 '정령편' 완간소년소녀의 몽환적인 연애와 오컬트적인 사건들을 다룬 <가면 속의 수수께끼>(학산 문화사)의 정
프랑스 만화 <리드뱅>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