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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홈비디오 코리아는 다음달 중 <프렌즈 시즌 5>, <E.R 시즌 1>, <웨스트 윙 시즌 1> 등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세 편을 DVD로 출시한다. 각 넉 장으로 디스크로 구성돼 있으며 코멘터리와 제작 후담 등 스페셜 피쳐도 담고 있다.
<프렌즈>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 사는 6명의 남녀 친구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 제니퍼 애니스턴과 커트니 콕스 등 출연 배우들을 최고 게런트의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미국이나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E.R>은 시카고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로, 현재 미국에서 `시즌 10'이 방송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보는 것으로 알려진 <웨스트 윙>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백악관 참모진들의 이야기를 그려내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프렌즈 시즌5> 외, TV 외화시리즈 3편 다음달 DVD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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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화가 단원 김홍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제작된다. 영화사 런치박스 픽처스는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이달 중 크랭크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가문의 영광>의 김영찬 작가가 시나리오를 손중이며 <예스터데이>의 정윤수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스토리의 기본이 되는 가정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에 활약했던 풍속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가 김홍도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 그는 1794년 5월 갑자기 나타나 10여개월 만에 140여점의 그림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신비의 인물이다.이같은 주장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한국일보 문화부장 출신으로 만요슈(萬葉集ㆍ7세기 후반의 일본 고위 관료와 일본 왕족들이 읊은 노래 모음) 연구로 이름을 알린 이영희 포항제철 인재개발원 교수. 이 교수의 주장은 96년에는 아사히 TV를 통해 '또 하나의 사라쿠'라는 제목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이 교수에 따르면 단원은 정
단원 김홍도의 예술 그린 영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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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상반기 국내 최고 흥행작 <집으로…> (이정향 감독, 튜브픽쳐스 제작, 튜브엔터테인먼트 배급)가 한국 영화 최초로 아르헨티나에서 지난 10월 30일 개봉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집으로…>제목은 ‘카미노 아 카사 (Camino A Casa / 할머니의 집이라는 뜻)’.영화를 배급한 회사는 Eurocine SA로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특히 많이 배급해온 예술 영화 전문 배급사이다. 이 배급사는 과거에 난니 모레티, 우디 알렌, 스티븐 소더버그,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들을 아르헨티나에 소개했고, 최근에는 다렌 아노프스키의 <레퀴엠>과 조엘 지윅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배급하였다.Eurocine SA에서는 <집으로…>가 최초로 개봉하는 한국 영화라는 점을 내세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전략을 전개하였다. 특히 한국 대사관의 협조 하에 열린 VIP시사회에는 많은 정치인과 유명한 사람들의 참여로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또한
<집으로...> 아르헨티나 개봉 흥행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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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아왔다. 우거지 맨숀에서 엽기 행각을 일삼던 우비소년 일당이 이번에는 TV시리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26부작 <내 친구 우비소년>은 국내 최초의 HD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닝타임 5분의 26부작 모두 더빙을 마치고, 지난 10월26일에는 기술 시사까지 끝냈다.서른명의 소수 정예 스탭이 기획부터 제작까지 들인 시간은 고작 1년. 기획 기간을 빼면 실제 제작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제작비는 기존의 반이라고 할 수 있는 5억원이 들었다. 로이 비쥬얼이 퀄리티를 놓치지 않고 제작 기간과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내실있는 제작시스템과 플래시 제작방식 덕이었다. 비트맵 방식과 달리 플래시의 벡터작업은 이미지를 확대해도 손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 그래서 플래시 기법으로 고해상도의 영상을 작은 사이즈로 작업해 HD 방식으로 출력하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내 친구 우비소년>은 언뜻 플래시 시리즈와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웃겨줘,웃겨줘,웃겨줘!<내 친구 우비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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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아이들과 친하다. 상상력이 고갈되고 사고의 체계가 굳어버린 어른들에게 만화는 읽히지 않는 난독의 텍스트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어떤 만화라도(설령 그 만화의 수준이 조악하다 해도) 놀라운 상상력의 바다다. 어린이들의 상상력, 특히 이미지 언어에 대한 열려 있는 독해력은 만화의 칸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유영한다. 자유롭게 열려 있는 그래픽, 특정한 이야기를 분할된 화면에 나누는 연출, 말풍선이라는 매우 독특한 대화표현방법, 효과선이나 효과음처럼 기호의 힘을 활용한 표현방식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왼쪽부터) <석기시대 천재소년 우가> 와 <곰>레이먼드 브릭스의 <석기시대 천재소년 우가>와 <곰>은 오랜만에 만난 어린이 만화다. <곰>은 곰돌이와 함께 잠이 든 틸리에게 거대한 곰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효율적으로 나뉜 칸 속의 세밀한 파스텔 작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거대한 곰이 창문으로 들어오
`그림책`이 아니라 만화다,<석기시대 천재소년 우가>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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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꽃을 피우던 시기이기도 하다.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은 어디서 그 단서를 얻었을까. 오히려 그것은 당시의 현실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산업사회의 ‘피곤도’는 극에 달했고 그 결과 산업사회 이후에 올 다음 패러다임이라면 그 피곤도의 증가 이외에 다름이 아닐 것이라는 자각이 이런 영화들을 낳는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상력의 배경에는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라는 가정도 들어 있다. 그러니 이 디스토피아적 가정법은 ‘연장선’ 속에서 미래를 기술하는 한 방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그리고 테리 길리엄의 <여인의 음모>(원제 ‘브라질’)가 바로 그런 상상력의 대표자격들인 영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기가 바로 뉴에이지의 발흥 시기와 겹친다는 것. 디스토피아, 뉴에이지, 그 두 갈래는 방향은 달라도 동일한 당대적 조건에서 탄생한 쌍둥이들이다
대조의 미학,<브라질>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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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이건의 <쿼런틴>은 사립탐정일을 하고 있는 은퇴한 테러 전담 경관 닉이 병원에서 갑자기 실종된 여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뻔하디 뻔하다고 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 추리물의 도입부이고 이건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우선 쓰기가 쉽고 진짜 추리소설에서는 굉장히 뻔한 장르 공식이라도 SF와 같은 다른 장르와 결합하면 그 진부함이 쉽게 감소되기 때문이다.그런 걸 생각해보면 이건의 안전한 선택은 오히려 최선이다. <쿼런틴>에서 이야기의 독창성이나 힘, 캐릭터의 개성 따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닉의 캐릭터나 그의 고민, 실종된 여인을 찾아나서는 그의 수색은 점점 무게를 잃고 독자들 역시 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이 소설이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다른 데 있는데, 만약 정말로 독창적인 스토리 라인이 이 소설에 따라주었다면 오히려 독자들의 시선은 엉뚱한 데로 분산되었을 것
미래사회에 대한 예언 혹은 숙고,그렉 이건의 SF스릴러 <쿼런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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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제작한 장진 감독이 TV드라마에서 주연으로 깜짝 출연한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 편의 시를 녹여내듯이 만드는 MBC `한뼘 드라마'의 2회(10∼13일 밤 12시50∼12시55분) `택시 드라이버'편에서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역을 맡는 것.
장진은 매일 지하철역에서 택시를 타는 한 여자(김혜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띄워 전달한다.
영화감독 장진,TV드라마 깜짝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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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내년 2월 열리는 제54회 베를린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8일 부산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베를린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스캔들‥>을 포럼부문에 초청해 같은 원작을 영화화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1988년작 '위험한 관계'와 비교상영할 예정"이라고 베를린 영화제 포럼 부문 프로그래머 도로테 베너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베를린 영화제의 초청작 선정은 각 부문의 프로그래머들이 별도로 담당하고 있으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공식경쟁부문에도 출품해 놓은 상태다. <스캔들‥>의 경쟁부문 진출 여부는 이달 안으로 밝혀질 예정이다.10월 초 개봉해 1-2일 주말까지 전국 323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조선 최고의 요부 조씨부인(이미숙)과 바람둥이 조원(배용준)이 수절 과부 숙부인(전도연)의 정절을 놓고 벌이는 위험한 '게임'을 그린 영화로 1
<스캔들‥>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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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르네상스, 여기서 싹텄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20년을 맞았다. 1984년 남산 영화진흥공사 건물(현 영화감독협회)의 구석진 방에서 출발한 영화아카데미는 이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올해까지 배출한 296명의 영화인 중 대다수가 충무로 현장을 바쁘게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햇수로 20년 영화아카데미의 역사는 곧 한국영화의 최근사와 동의어나 다름없다. 2000년 만하임-하이델베르그영화제, 2001년 발라돌리드국제영화제 등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특별전’이 열리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영화아카데미의 20년을 돌아본다.
얼마 전 토론토영화제에 들른 임상수 감독은 이곳 프로그래머로부터 다소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영화아카데미가 뭐하는 곳이냐”는. 이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감독들은 임 감독을 비롯해 장준환, 봉준호, 박경희, 김기덕 감독이었는데, 이중 김기덕 감독을 제외하곤 모두 아카데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아카데미 2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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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깨우친 영화의 '어른' 들
“촬영을 나가서 무심코 카메라를 땅바닥에 놓았는데,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막 화를 내는 거예요. 영화 하는 놈이 이것밖에 못하냐고.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한, 아카데미를 다닌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시려 했던 것 같아요.”(박기용 감독·3기)
교수진이 취약하다는 점은 현재까지도 영화아카데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지만, 그 와중에 학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 ‘어른’들이 있다. 우선, 고 유영길 촬영감독. 그는 영화아카데미의 초창기 때부터 실습수업을 진행했다. 유 감독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영화에 대한 자세를 심어줬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허진호 감독은 “황영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날 유 감독님과 술을 함께 마셨다. 새벽인데, 유 감독님이 쓰레기통을 앞에 가져다놓더니 이리저리 바라보면서 ‘빛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그때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있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한다.
또 한명의 스승은 유재형
영화아카데미 2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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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은 아카데미를 다니던 1년 또는 2년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시간’으로 기억한다. 영화아카데미 출신 5명의 영화인이 회고하는 ‘나는 왜 영화아카데미에 갔는가’, 또는 ‘아카데미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혹은 ‘아카데미는 현장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줬나’.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
조근식 | 13기·<품행제로> 연출
내가 속한 영화아카데미 13기는 변화의 시대를 살았다. 우선 우리 기수들은 남산에서 홍릉으로 이전한 뒤 뽑힌 첫 번째 기수인데, 덕분에 나는 페인트 냄새 채 가시지 않은 새 건물과 새 책상, 그리고 새로 구입한 실습장비들을 마음껏 흠집내며 다닐 수 있었다. 또 우리 기수 때부터 1년에서 2년으로 교육기간이 늘어났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원래는 1년 반 정도의 3학기였던 것 같은데 우리가 졸업작품을 6개월 넘게 찍는 바람에 그냥 2년으로 정리됐던 것 같다. 세 번째는 12기까지 12명 정도를 뽑다가 우리 기수부터 정원이 18
영화아카데미 20년 [3] - 졸업생들이 회고하는 영화아카데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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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5수생의 합격비법
박경목 | 16기·단편 <그녀>, 중편 <후회해도 소용없어> 연출
나는 영화아카데미를 다섯번 만에 들어왔다. 그것은 아카데미 2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대부분 세번 정도의 시도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그 정도에서 그만둬버리기 때문일 거다. 이런 면에서 나는 바보이면서 일면 쓸데없이 집요한 놈이다.
처음 영화아카데미에 대해 들은 것은 1994년도 독립영화협의회에서 하는 정기상영회에서였다. 그때 상영작이 아카데미 11기 작품이었다. 봉준호 감독과 장준환 감독, 그리고 지금 데뷔를 준비하는 허재영 감독의 작품이었다. 영화를 하겠다고 대학 졸업 뒤 고향 대구를 등지고 독협 워크숍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그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나도 저들처럼 영화를 잘 만들 수 있겠지, 라고 꿈을 꿨다.
아카데미를 향한 첫 도전은 12기를 선발하던 94년 겨울이었다. 당시 아카데미 시험의 방식은 매번 바뀌었
영화아카데미 20년 [4] - 졸업생들이 회고하는 영화아카데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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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비통한 이야기지만) 나는 영화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했다. 영화아카데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개교했지만, 나는 그때 소년 가장이었다. 나는 취직을 했고, 정말 한없이 부러운 심정으로 내 친구들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난 그때 진정한 영화광이란 결국 영화를 만드는 마지막 계단에 올라야 한다는 트뤼포의 말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영화 스터디를 하던 김소영은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으로 입학을 했고, 황규덕은 속마음도 모르고 너 내년에 시험 볼 거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로 영화현장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걸 보면서 떠들어대는 것은 다 헛수작들이거나, 잡담이거나, 그도 아니면 질투이다. 영화평론가란 아무리 잘해봐야 이류 영화감독이다(그래도 삼류감독들보다는 낫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하여튼 영화아카데미 1기들과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 모두와 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영화아카데미 20년 [5] - 영화광 정성일이 `질투심으로` 날리는 충고